227화
거울에 비친 나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3미터에 육박하는 빼빼마른 거구에, 기괴한 외관을 한 괴물.
“어엉?”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
시뻘건 안광을 빛내던 괴물도 쩌저적,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검은 천 안으로 보이는 아가리 속엔 시커먼 공허가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거울 속에서 서슬퍼렇게 예광을 뿜었다.
“와우.”
전체적인 형상은... 그래. 꼭 허수아비 같다.
크기가 3미터쯤 되는 빼빼마른 육체. 검은 천을 대충 둘둘 감아놓은 전신. 듬성듬성 비치는 천 안으로는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다.
눈이 있을 자리엔 형광펜으로 대충 긁어놓은 듯한 시뻘건 안광이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아아.”
나는 아까처럼 입을 다시 벌려봤다.
쩌적, 공허가 거칠게 찢어졌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아가리가 드러났다. 스스로도 좀 오싹해진 나머지 퍼뜩 입을 닫았다.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전신을 쳐다봤다. 나는 허리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검이... 없어졌네.’
베스타크와 에스파다가 사라졌다. 멸망의 대검도 마찬가지다.
대신 양손에 다섯 갈래로 길게 뻗은 흑백의 손톱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베스타크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있었다.
그리고 날렵한 인상의 흑색 경갑. 최소한의 급소만 가리는 것이, 딱 봐도 방어력보단 기동성을 중요시했다는 디자인이다.
“... X발. 존나 간지나는데?”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히어로 영화의 메인빌런 마냥 위압적으로 변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자니. 문득 패널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알림: 연계 스킬 ‘까마귀 폭풍’을 습득했다.]
[스킬 정보]
[명칭: 까마귀 폭풍]
[효과: 반경 50미터 내에 안개까마귀 군대를 소환.]
[상세: 마갑 스케어크로우의 결전 스킬. 모든 잔여마력을 소모하여 특수 탄환 ‘안개까마귀’를 소환한다. 안개까마귀는 반경 50미터 내의 모든 생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완전히 초토화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레벨 증강은 불가하다.]
‘아아... 이런 스킬이었군.’
그나저나 설명이 무지막지하다.
‘완전히 초토화’라는 단어는 모든 스킬 설명을 통틀어 처음 본다.
‘이것까지 지금 시험해보기엔... 좀 그렇네. 위험할 수도 있고.’
나는 시선을 슬쩍 들어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엄청난 까마귀의 군집을 보니 ‘초토화’라는 단어가 영 마음에 걸렸다. 나는 서둘러 마갑을 해제했다.
“후우.”
스르륵. 변신이 풀리자 훌쩍 높아졌던 시야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네.’
스케어크로우 폼으로 변신했을 땐, 흡사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손을 괜히 쥐락펴락 해보며 바로 다음 스킬로 넘어갔다.
흑익이 변형된 또 다른 변신 스킬. 마갑 다크 레이븐이었다.
“다크 레이븐.”
시동어를 나직이 외웠다. 처음은 스케어크로우 때와 거의 동일했다.
흑익의 시커먼 천들이 나를 빠짐없이 둘러싸더니, 한참동안 꿈틀거리며 천천히 조형을 만들어 나갔다.
이번엔 아까처럼 무식하게 눈앞까지 가리지 않았다. 다만 투구를 만들기 위함인지, 안면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빈틈없이 감싸였다.
“오오.”
그리고 흑익의 변형이 완전히 끝났을 때.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절로 탄성을 흘렸다.
‘아까랑은 정반대의 느낌이네.’
철그럭. 새카만 광택을 흘리는 중갑옷을 두른 내가 거기에 있었다.
아까처럼 몸이 거대해지거나, 완전히 다른 생물로 변신한 느낌은 없었다. 말 그대로 천 쪼가리가 멋들어진 예장용 갑옷과 투구로 변해있을 뿐이다.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멋진데.”
아까의 스케어크로우가 폭력적인 메인빌런 같았다면. 이번 건 반대편인 히어로 같았다.
갑옷이 온통 시커먼 데다 투구도 까마귀 머리 같이 생겨서, 엄밀히 따지면 좀 다크히어로 같긴 하다만. 어쨌든 아까보단 훨씬 절제미가 도드라지는 외형이었다.
‘저건 뭐지?’
문득 등 쪽이 유난히 묵직해서 슬쩍 몸을 돌려보니, 어깨 위로 쭉 뻗은 거대한 날개 같은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난 이것이 흑익이 변형된 스킬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이거... 날 수도 있구나?”
내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기 무섭게 푸화악! 머리통이 뒤흔들리는 굉음이 터졌다.
날개 전체에서 검은 마력이 초고속으로 분사되는 소리였다.
“으... 어!”
나는 억, 하는 사이 그 반발력으로 하늘 높이 사출되었다.
부우웅. 허공을 휘적거리다, 유원지 전체 풍경을 한 눈에 담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이런 X발!!”
이런 미친. 다크 레이븐의 제로백이 상상 이상으로 좋은 나머지, 나는 자드키엘 잘 잡아놓고 모든 것을 리셋시킬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생긴 게 날개 같길래 흑익처럼 날갯짓을 하나 싶었더니. 추진기 형식으로 나는 거였냐?
‘저, 정신 집중! 이렇게 허무하게 뒤질 순 없어!!’
잡생각을 하는 사이 최고점을 찍은 나는 빠르게 추락해 갔고.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날개 부위에 마력을 쏟아 넣었다.
“끄윽!”
쿠구구구!
날개가 마력을 고속으로 분사하며 내 몸을 다시 위로 밀어냈다.
다소 불안정하긴 했지만, 나는 천신만고 끝에 두 발로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시, 십년감수했다.’
나는 뒤늦게 땀을 닦아내며 냉큼 갑옷을 해제해 버렸다.
그러자 띠링. 뒤늦게 패널 하나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알림: 연계 스킬 ‘라스트 댄스’를 습득했다.]
[스킬 정보]
[명칭: 라스트 댄스]
[효과: 검기(劍氣)의 무한한 발현. 공격한 대상의 완전한 말살.]
[상세: 마갑 다크 레이븐의 결전 스킬. 모든 생명력을 검에 담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최후의 검무를 펼친다. 검기에 베인 자는 가이알란트 차원에서 존재가 말살된다. 시공회귀가 발생해도 말살된 대상은 복구되지 않는다. 말살에 성공하면 그 대가로 시전자는 즉사한다. 레벨 증강은 불가하다.]
“.......”
이번 건 감탄사조차 지르지 못했다.
워낙 초월적인 내용이라 제대로 읽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중얼거렸다.
“말살?”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내 시선은 아까부터 계속 그 단어에만 박혀 있었다.
‘일단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 스킬을 사용하면 특정한 검에 검기를 두르고, 죽을 때까지 검을 휘두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검기로 어떤 대상을 베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 대가로 나는 즉사. 하지만 죽은 뒤에 시공회귀가 일어나도, 사라진 존재는 되살아나지 못한다?
‘아니, 이건....’
제대로 이해하고 보니 더 황당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냥 자폭이잖아.”
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죽자!’
다만 나는 죽어도 살아나니, 결국 살아남은 나의 승리네!★
... 대충 이런 소리다.
‘뭐... 어딘가엔 도움 되겠지. 어딘가엔....’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패널을 물려버렸다.
잠깐 팽개쳐놨던 루시와 유리아를 다시 들쳐 업었다. 병자마을로 걸어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좋네. 좋긴 한데....’
직접 시운전을 해본 결과. 분명 둘 다 좋은 스킬로 진화한 건 맞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흑익과 페이탈 쏜즈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 썼다 보니, 표면상 강화라고는 해도 마냥 기쁘진 않았다.
몸에 익었던 전략과 전술을 바뀐 스킬에 맞춰서 개량해야 하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골치 빠개지네 이거.’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도, 바뀌면서 생긴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쿨타임이 대폭 늘어나고, 마갑의 유지에 흉마를 소모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스킬들을 다시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아 그래. 나머지 하나는....”
그쯤에서 아직 확인 안 한 스킬이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두 개 스킬의 임팩트가 커서 잊혀졌던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 스킬 패널로 고개를 돌렸다.
[스킬 정보]
[명칭: 글레이프니르]
‘글레이프니르’라는 이름의 스킬이 생겨 있었다.
내 유일한 속박기인 ‘그림자 사슬’이 변형된 스킬이다.
여기서 나는 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많이 쓰는 스킬을 꼽으라면 단연코 연화와 세븐 소드 피어스였다.
그런데 왜 그 두 스킬을 제치고 그림자 사슬이 숙련도 3위 안에 랭크한 걸까.
‘흑익과 페이탈 쏜즈는 이해라도 되지만. 그림자 사슬은 자주 쓰지 않았는데.’
그림자 사슬은 효과는 사기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약점이 뚜렷하다.
페이탈 쏜즈와 세븐소드 피어스는 시전 시 경로를 지정해 놓으면, 그 뒤는 투사체가 알아서 움직이는 매커니즘이다. 하지만 그림자 사슬은 사슬 하나하나를 일일이 내가 조종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20개나 되는 마법의 사슬을 조종하려면 집중력이 쭉 빨리고, 한술 더 떠 사슬 유지하는 데 마력도 오지게 잡아 처먹는다.
‘게다가 사슬 속도도 느려 터졌지.’
불사교 때처럼 개좁밥들이 물량만 많은 경우가 아닌 이상, 그냥 써서는 절대 안 걸린다. 내 레벨 대 전투에서는 보통 견제기 정도의 의미만 있다.
‘문제는 견제의 효율부터 세븐 소드 피어스 쪽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거고.’
덕분에 사용하는 상황이 매우 한정된다.
하지만 의문도 거기까지. 나는 생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납득하고 말았다.
‘그러네. 불사교 때. 그 때 진짜 오지게 썼었지.’
내가 20개나 되는 사슬을 한꺼번에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 무수히 뒈지고 뒈지면서 몸으로 체득했다. 변경백 때는 ‘죽을 뻔’하면서 세븐 소드 피어스를 연마했지만. 그림자 사슬은 말 그대로 ‘죽으면서’ 배웠다.
“그렇군. 뭐, 모든 기술이 그렇지.”
말하자면 실전 압축 경험이랄까. 원래 숙련도라는 게 꼭 사용 빈도로만 갈리진 않는 법이다.
그때 나는 진짜 필사적이었다. 확실히 극한상황에서 연마했던 그림자 사슬은 숙련도가 높을 만도 하다.
그렇게 나는 대충 납득하고, 글레이프니르 패널을 제대로 읽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