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특정업계의 포상
죽은 악몽의 파편을 뒤로하고 시선을 조금 들었다.
어느새 내 앞에는 허공을 잡아 뜯은 것처럼 시커먼 균열이 나 있었다. 내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자 패널이 하나 떠올랐다.
[알림: 종식된 악몽]
[상세: 길었던 마녀의 악몽은 끝났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피안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다. 꿈에서 각성할 경우,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 소유권을 꿈의 주인에게 이양한다.]
아무래도 눈앞의 저게 그 퀘스트 패널에 나왔던 게이트인 듯하다.
나는 천천히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을 불쑥 들이밀자 익숙하면서도 꺼림칙한 감각이 온몸을 치달렸다. 순간이동 게이트들 특유의 그 느낌이었다.
“... 큭.”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질적인 마력이 온몸을 훑고 내려갔다. 나는 오묘한 느낌을 한동안 음미하며 꿈에서 깨길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데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흐음. 여기서 죽는 것도 흉마가 꽤 많이 쌓이는구나.”
나는 귀신 목소리라도 들은 양,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정신 상태에 영향을 줘서 그런가? 이건 나도 몰랐네. 지식이 늘었군.”
하얗게 부서지는 악몽의 세상 한 가운데. 처음 보는 남자가 멀뚱히 서 있었다. 내 또래 쯤 돼 보이는 장발의 한국인 남자였다.
나는 직전에 들린 목소리로 남자의 정체를 직감했다. 몰라볼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 형님? 수, 수호 형님?”
천천히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 수호 형님은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씨익,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휘적휘적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자드키엘이 옛날에 죽은 건 나도 예상 밖이었다만, 훈수 안 해도 어련히 잘 돌파했구나. 역시 디아나의 안목이야. 실한 놈으로 골랐다니까.”
“아니 형님! 그, 그 모습은 뭡니까. 어떻게 여기에...!”
나는 다급히 수호 형님을 추궁했지만. 그는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다만 제 할 말만 남기고 스르륵, 새하얀 빛에 삼켜져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앞으로 하나 남았다. 좀만 더 노력해주라. 너와 내 소중한 그녀들을 위해서.”
형님이 사라진 자리엔 베스타크 한 자루만 지면에 고고히 박혀있었다.
물론 곧 그마저도 사라졌다. 모든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 윽!”
누군가 내 머리끄댕이 붙잡고 어거지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잠깐 아득해졌다.
* * *
나는 눈을 떴다.
“푸하악!”
오랫동안 숨을 참았던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온몸이 공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숨을 들이쉬었다.
“허억, 허어. 후우....”
한동안 정신없이 호흡에만 열중했다. 이내 제정신이 돌아오자 서서히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의 어스름한 하늘이 가장 먼저 보였다. 나는 지금 질척한 피의 웅덩이 한 가운데 누워 있었다.
‘깨어난... 건가.’
나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왼손을 들어봤다. 설마하니 아직 곤충 손인가 싶어서였다.
“으, 응?”
근데 무언가에 단단히 붙들린 양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광경은... 내 손을 꽉 쥔 채 안절부절하는 루시와 유리아의 얼굴이었다.
“뭐하냐 너네?”
황당한 나머지 한 마디 했다.
그런데 말보다 먼저 쿨럭, 핏줄기가 목구멍에서 울컥 쏟아졌다.
“... 얼씨구.”
나는 얼떨떨하게 입가를 만졌다. 새빨간 선혈이 손끝에 묻어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삭신이 미친 듯이 쑤시고 있었다.
“어, 아. 아아악...!”
이제 보니 내가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루시와 유리아가 잡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서였다. 나는 뒤늦게 찾아오는 격통에 온몸을 꿈틀거렸다.
심히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와중. 루시와 유리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요, 용사?!”
“아아!!”
두 사람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깃드는가 싶더니. 반응이 천양지차로 갈렸다.
유리아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고, 루시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내 가슴께를 마구 떄리기 시작했다.
“이, 미친 용사야! 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갑자기 제 혼자 죽어간단 말이냐!”
“으아앙! 으흐아앙!”
아. 아프다.
생각보다 주먹이 매웠다. 나를 때리는 손놀림에 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 진짜! 그대로 죽는 줄 알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아느냐! 아냔 말이다!!”
두 여자의 리액션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악몽 속에서 피똥 싸는 동안, 현실의 내 몸뚱이도 꽤 다이나믹하게 고통받았나 보다. 지금 반응만 보면 갑자기 칠공분혈하면서 테크노 댄스라도 췄나 싶다.
‘아... 이, 일단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안 그래도 악몽의 파편이 비아냥거렸던 걸 루시한테 바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틀렸다. 더 이상 손가락이고 입이고 까딱도 안 한다.
띠링. 움직이지 못하는 내 대신 패널이 눈앞에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명칭: 마녀를 죽여라 ? 두 번째 의식]
[난이도: 전설]
[상세: 인도하는 까마귀가 마녀의 악몽을 멸살했다. 그릇에 마녀의 추억과 방대한 지식이 채워졌다. 마녀의 영원한 안식은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
[보상: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 체력+1000. 마력+500. 모든 능력치 +150. 히어로 센스 +20]
우우웅. 시야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위쪽이었다. 하얀 나무 위로 매달려있던 자드키엘의 고치가 찬란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담겨있던 자드키엘의 시신도 마찬가지다. 푸르고 고운 입자가 되어 밤하늘로 흩어졌다.
“... 아.”
유리아가 그 광경을 목도했다. 그녀의 울음이 멈추고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루시도 나를 패다 말고 그 빛에 홀린 듯이 시선을 박았다. 보기 싫어도 알아서 시선이 모이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푸른빛의 군집들은 루시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어, 으앗?!”
루시가 당황 어린 탄성을 흘렸다. 필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했지만, 푸른빛은 얄짤없이 루시의 육체를 파고들었다.
“아흐악, 자, 잠깐만...! 뭐, 뭐냐 이거!”
루시가 한동안은 눈을 부릅뜨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이내 약에 취한 마냥 눈꺼풀이 자연스레 감겼다.
풀썩, 그녀의 신형이 내 위로 맥없이 쓰러졌다.
‘끝난 건가.’
나는 루시를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아스타르트 때도 지금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었기에 안다. 오히려 이거야말로 마녀 계승의식의 퀘스트가 정말로 끝났다는 증거였다.
내 입에서는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후우.”
털퍼덕.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게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화들짝 시선을 돌렸다.
쓰러진 루시의 등 위로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생김새가 익숙한 조그만한 지네였다.
꿈속에서 나를 잘근잘근 씹었던 그 벌레. 기분 나쁜 외형의 그것이 루시의 등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X발 뭐야! 끼야아악!!”
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개지랄을 떨었다.
대체 저게 뭐지. 와관만 봤을 땐 악몽의 파편이 ‘꿈벌레’라고 말했던 그놈의 유충 버전 같다. 아니. 그렇게 밖에는 볼 수 없는 외형이었다.
내가 부릅뜬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자 패널이 떠올랐다.
[명칭: 피안의 악몽]
[보정치: 극의에 달한 스킬의 최종강화. ‘피안윤회’를 통한 기억의 각인.]
[상세: 마녀의 꿈과 추억이 깃든 멸망의 신기. 소유하려는 자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다. 악몽의 파편을 부숴 소유권을 획득 시, 마스터 레벨에 달한 스킬 중 숙련도가 가장 높은 스킬을 최대 세 개까지 최종강화 한다. 소유 시 고유스킬 ‘피안윤회’를 습득한다.]
“뭐?”
나는 떠오른 상태창을 보고 잠깐 얼어붙었다. 익숙한 상태창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피안의 악몽’ 상태창이 어째서 저 기분 나쁜 지네한테 떠있냐.
저건 분명 자드키엘의 고치 속에 있던, 이상한 알 같은 물체에 붙은 상태창이었는데....
“... 알?”
나는 중얼거리다 말고 흡, 숨을 멈췄다.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그렇구나. 알.’
곤충은 알을 까고 나오지.
그러면 처음부터 피안의 악몽은 그 알 같이 생긴 게 아니라...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저 벌레를 가리키는 거였나?
“아니. X발...!”
잠깐만. 이건 좀 아니지.
그 똥고생을 했는데, 줄 게 없어서 저런 벌레를 준다고? 뭐 지네로 술이라도 담가먹고 정력왕 되라는 건가?
“서, 서... 성녀님!”
나는 도움을 바라는 얼굴로 유리아를 쳐다봤다.
지금 생리적으로 저 지네를 온몸이 거부하고 있다. 탈진해서 옴짝달싹 못하니 저 벌레를 제압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녀를 부른 것이다.
“...... 으, 에, 윽.”
하지만 유리아는 나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녀는 이미 하늘에서 떨어진 지네를 쳐다보고 돌처럼 굳어 있었다.
유리아의 하얀 눈동자가 빙글, 다이나믹하게 회전했다. 기절해버린 것이다.
나도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키이이익!
그 순간 지네... 피안의 악몽이 특유의 거슬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파바바박. 벌레가 내 쪽으로 똑바로 기어왔다. 나는 기겁하며 몸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전신이 꼼짝도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뿐이었다.
“으, 어, 어어...!”
벌레는 내 몸을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가슴, 목, 그리고 신음을 흘리는 입술을 지나 귓불 언저리에서 잠깐 꿈틀거렸다. 안 좋은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치달렸다.
우지지직! 벌레는 그대로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끔찍한 이물감이 뇌속을 미친 듯이 헤집었다.
“으... 가, 카하아아악!!”
눈앞이 총천연색으로 물들며 시야가 뒤틀렸다.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자극하는 듯했다.
사가각, 사각. 두개골 안을 직접 긁는 듯한 기분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온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펄떡펄떡 경련을 반복했다.
“끅...!”
정신줄이 희미해지고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려던 그 순간. 스르륵, 순식간에 모든 소음이 음소거 되었다.
뇌속을 헤집던 지네의 꿈틀거림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동시에 모든 이상현상들이 일거에 잦아들었다.
“으, 허억!”
시야는 멀쩡하고 소음도 전혀 없다.
대신 숨이 막힐 정도의 적막이 사방에 깔려있었다.
“허억... 허어. 하아....”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피곤함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기진맥진해 게슴츠레하게 뜬 눈앞으로 띠링, 패널이 연신 떠올랐다.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을 소유했다.]
[고유스킬 ? ‘피안윤회’를 습득했다.]
피안의 악몽을 내가 소유하게 됐다는 통보였다.
방금 그게 설마 피안의 악몽을 소유하는 과정이었던 것인가.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 눈가를 가렸다. 그리고 연신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아니... X발. X발 진짜 나랑... 장난하냐.”
손바닥만한 벌레랑 뇌내동거하는 게 무슨 소유야 X발.
왜, 십이지장충 갈고리촌충도 콜렉션으로 몸속에 소유하시지. 다 모으면 기생충 시너지도 받고 좋겠네. 개X발.
‘기분 나빠. 토할 것 같다.’
아직도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남아있는 듯하다. 나는 온몸에 끈덕하게 들러붙은 불쾌함을 애써 털어내 버렸다.
참지 못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질질 흘렀다.
“이 X발. 마녀야. 정녕 이게 최선이었냐.”
얼굴도 모르는 마녀의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만큼 족같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