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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24화 (200/280)

224화 빅―픽쳐

피피피핑!

무수한 마력검의 궤적이 짭정용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이 온통 푸른 직선으로 메워질 정도였다.

“몇 번을 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짭정용은 손쉽게 같은 스킬로 상쇄시키고, 대부분은 가볍게 피해버렸다. 공터의 바닥에 그가 피해낸 마력검들로 푸른 스파크가 가득해질 정도였다.

순간 짭정용의 눈이 매섭게 번들거렸다.

“하하핫! 아까보다도 빈틈이 많잖아!”

퍼거억!

순간 왼손에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내가 날린 마력검의 틈바구니를 뚫고, 짭정용의 마력검이 왼손에 적중한 것이다.

왼손이 형체도 없이 너덜거렸다. 괜찮다. 어차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곤충 손이었으니까.

“이제 앞으로 한 방! 초조한가? 초조한 거냐? 하하하핫!”

드르르륵!

한 층 거대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십자가의 말뚝은 이제 루시의 정수리 바로 위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내가 벌이는 일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세븐 소드 피어스, 세븐 소드 피어스!!”

두두두두! 방금처럼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마력검의 포화를 더욱 촘촘히 했다.

몇 개 마력검은 완전히 짭정용을 빗나가 애꿎은 바닥만을 때리기도 했다.

짭정용이 신난 행색으로 목청을 높였다.

“뭐냐, 꿈의 주인! 두려움에 자포자기라도...!”

하지만 그 순간.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짭정용의 행동이 순간적으로 움찔 멎었다.

태태탱! 짭정용이 별안간 대검을 회수해 마력검을 직접 후려쳐 없애버렸다. 그리고 입가를 한껏 비틀어 올렸다.

“아하. 그런 거였군...!”

이런. 행색을 보니 저 새끼 눈치 깠다. 그렇다면 타이밍은 지금 밖에 없다.

나는 바닥에 꽂힌 채 필사적으로 유지시켜놓던 마력검들을, 일제히 조종해 들어올렸다.

“좀 뒤져. X발 그만 쫑알대고.”

우우우웅.

수십 개의 잔류 마력검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나는 그것을 놈을 향해 일제히 때려 박았다.

전후좌우 사방팔방, 모든 방향에서 빽빽하게 마력검이 날아갔다.

퇴로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핫.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형태의 공격.... 한 방 먹었구나!”

짭정용은 이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후의 내 계획도 모두 간파했다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실제로 놈이 내 계획을 알아챘든 아니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내가 이겼다.’

사실 이것은 도박수에 가까웠다.

짭정용의 독심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하지만 내가 옳았어.’

놈의 독심술이 완벽했다면 첫 마력검 세례부터 피해내지 않고 상쇄시켜서 없앴어야 했다.

첫 수에서 내 빅―픽쳐를 간파하지 못하고, 이번 기습포화를 허용한 시점에서. 이미 내 승리의 발판은 완성되어 있었다.

“역시 궁지에 몰려야 머리를 쓰기 시작하는군! 진작에 이랬으면, 내가 저런 귀찮은 짓을 할 이유도 없었잖나 꿈의 주인!!”

놈은 페이탈 쏜즈를 사용했다. 가시를 움직여 자기 주위를 할퀴듯이 전방위로 긁어냈다.

파지지직! 눈이 멀 듯한 스파크가 일제히 터졌다. 마력검들은 그 엄청난 수가 무색하게, 시커먼 가시촉수들에 긁혀 허망하게 막혀버렸다.

‘새끼. 본 주인인 나보다도 잘 쓰네.’

이건 기본적으로 세븐 소드 피어스가 페이탈 쏜즈보다 약한 것도 있지만. 짭정용이 가시촉수의 컨트롤을 워낙 귀신 같이 다룬 것도 있었다.

하지만 방금 건 신호탄에 불과하다. 내 공세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멸망의 화염.”

대검에 불꽃을 두르고 곧장 짭정용에게 대검을 던져버렸다.

동시에 나는 흑익을 사용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하핫! 전과 똑같은 수를...!”

짭정용이 호탕하게 웃으며 흑익을 발동시켜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거세게 날아가는 대검 쪽으로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을 부릅뜬 짭정용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윽?!”

푸화악!

짭정용이 등에 멘 대검에서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불꽃이 향한 방향은 다름 아닌,짭정용의 면상이다.

자기 대검이 뿜어낸 붉은 화염의 역습. 그것을 읽고 놈은 고개를 숙인 것이다. 화염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태워먹었다.

“행동은 읽히는데. 정확한 발동위치까지는 좀 늦게 읽히나 보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짓이겨진 곤충의 왼손을 연신 까딱거렸다. 전번 악몽에서 놈이 했던 말을 그대로 재현했다.

“꼭 내가 가진 대검만 화염을 두르라는 법은 없다. 이거였나? 좋은 거 배워간다. X발놈아.”

“... 흐, 흐핫!”

짭정용이 짐짓 유쾌하게 웃었다.

물론 나는 놈이 즐거워할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뭘 빠개 X발!”

내가 어검술로 날린 대검에서 스팅어가 발사되었다.

하지만 상대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보란 듯이 어검술로 대검을 띄워 똑같이 스팅어로 응수했다.

콰아아앙! 매섭게 날아간 두 개의 기탄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형태 없는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그림자 사슬!”

“그림자 사슬!”

나는 그 시점에서 스킬을 영창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하나 남은 물의 에테르를 마저 빨아재꼈다. 그리고 여러 스킬로 놈의 시야를 쉴 새 없이 교란하기 시작했다.

“세븐 소드 피어스!”

“세븐 소드 피어스!”

짭정용도 같은 스킬로 계속해서 내게 대응했다.

놈의 얼굴에는 위태로운 웃음이 떠 있었다. 이미 자기 말로를 직감한 눈치다.

나는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에도 순순히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건....’

내가 지금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본인이 말했던 대로... 내가 분노로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본 걸로 만족하는 건가?

아니다. 잡생각은 일단 놈을 죽이고 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

‘그림자 사슬. 스팅어. 세븐 소드 피어스. 그림자 사슬...!’

투두두두! 콰지지직!

온갖 스킬들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얽혔다. 연신 사방이 번쩍이며 섬광과 굉음을 토해냈다.

카카캉! 검붉은 불꽃의 대검이 허공을 유영하며 연신 서로의 목을 탐했지만. 결국은 서로의 대검에 속절없이 막혀 불꽃만 흩뿌리길 반복하고 있다.

“으아아아!”

“으하하하!!”

거울을 앞에 두고 춤추는 듯한 대칭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고함과 광소가 스킬의 포화 속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 아비규환의 한 가운데. 나는 어느새 날개짓을 반복해, 짭정용의 코앞까지 도달해와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놈의 대가리를 향해 일그러진 왼손을 뻗었다.

“페이탈 쏜즈!!”

나는 기습적으로 스킬을 영창했다.

“페이탈 쏜...!”

그것을 반사적으로 따라하던 짭정용에게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체념한 듯 허탈하게 웃었다.

반대로 내 얼굴엔 지금껏 참아왔던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사용할 수 없겠지.’

짭정용의 페이탈 쏜즈는 어디로 갔는가?

첫 수에서 내가 쏟아냈던 잔류 마력검들을 막는 데에서 소모했다.

그리고 네가 이것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페이탈 쏜즈는 쿨타임이 있는 스킬이다. 이 아만보 새끼야.

“죽어.”

싸늘하게 뇌까리며 가시촉수들을 일거에 채찍처럼 휘둘렀다. 쇄애액! 매서운 파공성과 함께 전방위에서 가시촉수들이 압박해 들어갔다.

놈은 한 박자 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세븐 소드 피어...!”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스킬이 채 영창되기도 전에 가시들이 짭정용의 육체를 훑고 지나갔다.

우드드득! 사방에서 치달린 가시들이 놈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아.”

짭정용은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이내 짭정용의 등에 달렸던 시커먼 망토가 불타는 것처럼 하늘로 흩날렸고. 동시에 토막난 육체쪼가리들이 후두둑, 바닥에 흩어졌다.

“끝... 났다. 하악. 하아...!”

흑익이 해제된 나도 그 앞에 거칠게 착지했다. 마력과 정신력을 극한까지 끌어다 썼던 나는, 그 순간에도 사실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쿠당탕!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크... 윽!”

한참을 알딸딸하게 발발 기고 나서야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짭정용... 악몽의 파편 잔해에 다가갔다.

“... 크. 하. 놀랍다. 놀라워.”

오체분시된 짭정용이 유쾌하게 중얼거렸다.

말로는 놀랍다고 했지만. 나의 모순된 행태를 조롱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자기 목숨과 타인의 목숨이 이렇게까지 온도차가 날 수 있다니. 허수아비 몸통 안에 뜨거운 심장이 들어 있었구만? 으하핫.”

“아가리.”

“... 흐흐. 아무래도 내가 최고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군. 뭐, 마지막 공방이 충분히 즐거웠으니 됐어. 이젠 만족한다.”

어느새 놈이 뒤집어 쓰던 내 얼굴 가죽이 흐물흐물 녹아 있었다.

토막나서 꿈틀거리는 시커먼 악몽의 파편. 길게 찢어진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기분이 절로 나빠졌다.

“유언은 안 받는다.”

놈의 미친 넋두리에 대꾸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말없이 에스파다를 번쩍 들어올렸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꿈의 주인. 좀 이상하지 않나? 네 지금 반응을 보니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씨익. 길게 찢어진 괴물의 입이 서서히 짙은 호선을 그렸다.

놈이 세치 혀를 나불대 유언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귓구녕이 없어서 내 말을 못 들은 모양이다.

“네가 지금 하려는 짓. 마녀의 계승의식 말이다. 거기엔 네가 소중히 여기는 저 여자의 희생도 필요하지? 아니. 오히려 그녀야말로 고귀한 희생의 주체잖아. 응?”

“.......”

나도 모르게 검을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내 기억을 읽었다 하니 감상이 좀 궁금해져서 그랬다. 지껄여 보라는 시선으로 가만히 악몽의 파편을 쳐다봤다.

놈은 기괴하게 찢어진 입으로 연신 킬킬거리며 말했다.

“소중한 그녀... 루시 양에게 동의는 구했나? 고통스럽고 막중한 임무... ‘세계의 유지자’라는 짐을 영원히 짊어질 각오가 됐는지 말이야. 만약 아니라면 너무 가련하지 않은가?”

“.......”

“가장 큰 희생을 감당할 여인이 네 영웅놀음에 희생되는 꼴이잖나. 그녀는 정말 이 세상의 존속을 원하나? 의무를 그녀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건, 네 형편좋은 망상 아닌가?”

나는 가만히 뒤를 돌아봤다.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고통에 신음하는 루시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찡그린 그녀의 미간 한 가운데를 쳐다보다가, 별안간 피식 웃었다.

“너는 X팔. 하다하다 내 개꿈한테까지 동정을 받냐. 많이 죽었구나 루시.”

푸직. 망설임 없이 에스파다를 괴물의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특유의 질척한 손맛이 느껴졌다. 동시에 고대하던 마지막 패널이 떠올랐다.

[알림 ? 악몽의 파편을 사냥했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3/3) ― 충족]

마지막 악몽의 파편이 죽었다. 길었던 악몽 사냥이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악몽의 파편은 기분 나쁘게 웃지 못했다. 나는 땅 밑으로 스멀스멀 사라지는 악몽의 파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개빡치지만. 옳은 말이다 새꺄. 나가면 바로 물어본다.”

나는 이래봬도 옳은 소리면 원수의 말도 귀담아 듣는 남자다.

루시와 상담할 일이 하나 생겨버렸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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