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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23화 (199/280)

223화 짭정용 어서 오고

카카캉! 카아앙!

지리멸렬한 공방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소모전을 계속했을까. 나는 슬슬 긴장감은 고사하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알아낸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첫째로, 짭정용의 스펙은 지금의 나보다 살짝 낮다.

노 버프 상태를 기준으로 완력과 스피드에서 미미하게 차이가 난다. 굳이 따지자면 멸망의 대검을 얻기 전의 나 같다. 스탯마다 약 50정도씩 능력치가 모자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둘째.

‘이 X발! 행동을 훤히 읽히니 뭘 할 수가 없잖아!’

좋아. 마지막으로 다시 시험해보자.

나는 집요하게 품으로 파고드는 짭정용을 강제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무영창으로 스킬을 조작했다. 혹시나 입술을 읽히는 건가 싶어서 그랬다.

‘그림자 사슬!’

촤르르륵! 내가 손을 내민 곳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그림자 사슬이 쏟아져 나갔다. 손은 짭정용의 착란을 일으키려고 일부러 뻗은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짭정용은 가소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림자 사슬.”

촤자자작! 놈이 뽑아낸 사슬이 귀신 같이 내 사슬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이건 내 기만작전을 예측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꿈의 주인.”

콰장창! 서로의 사슬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맥없이 바스라졌다.

나는 놈의 기분 나쁜 웃음에 대고 대차게 혀를 찼다.

“쯧. X팔.”

그렇다. 놈은 내가 직후에 할 행동을 훤히 꿰는 능력이 있었다.

기공술과 에테르 버프까지 바르면 놈을 상회하는 스탯임에도, 아직까지 내가 못 이기고 있는 이유가 이거였다.

‘거의 15분가량이 쓸데없는 소모전만 이어졌다.’

이미 버프 에테르인 불, 바람, 땅의 에테르는 소진된지 오래다.

게다가 기공술 버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의 에테르도 지속적으로 흡입하니, 이미 물의 에테르도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사태는 점점 악화될 게 분명하다. 나는 슬슬 초조해지고 있었다.

“야 너. 대체 원하는 게 뭐냐.”

나는 짭정용을 노려보며 징글징글하다는 어조로 씨근거렸다.

짭정용은 눈을 끔벅이며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나? 즐거움. 전율.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피튀기는 혈전.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지구전으로 끌고 가서 나 말려 죽이려는 거 아니고?”

“그럴 리가 있나. 애초에 네 왼손 상태가 그 모양이라, 지금까지도 널 죽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죽일 거였으면 굳이 말려 죽일 필요가 없지.”

그렇게 말하는 짭정용의 시선은 내 왼손에 가 있었다.

까드득. 시커먼 각질로 뒤덮인 곤충의 왼손. 손가락을 움직이자 각질이 마찰하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나는 반사적으로 왼손을 짭정용의 시야에서 숨겼다.

“슬슬 변이가 시작된 모양이지?”

짭정용은 흰자위가 전혀 없는 시커먼 눈을 번득였다.

아주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놈이 연신 킬킬거리며 말했다.

“이 세계의 네가 좀먹히기 시작하면 말이야. 외부세계의 네게도 영향이 갈 거다. 지금쯤이면 고열이나 오한, 발작, 토혈... 수많은 이상 증상으로 신음하고 있겠는데.”

“.......”

“그러다 정신이 완전히 좀먹히고 나면, 그 때부터 밖에서도 변이가 시작되지. 꿈벌레가 뜯어먹은 네놈의 뇌에서 유충들이 부화한다. 그러면 끝이다. 절대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해.”

와! 정말 알고 싶은 정보! 감사합니다 채택할게요!

옘병 지랄. 짭정용은 전혀 안 궁금한 정보들을 쉴 새 없이 나불댔다.

나는 대충 한 귀로 흘리다가, 놈의 목소리가 희열로 들끓어갈 때쯤 퉁명스럽게 물었다.

“야. 그런 말은 갑자기 왜 하냐. 목적이 뭐야?”

“네가 조금이라도 초조했으면 해서. 여기서 죽음을 반복할수록 점점 진짜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걸 실감해줬으면 좋겠구나.”

진성 변태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더 족같은 건 저 새끼의 표정을 볼 때, 방금 그게 순수한 진심이라는 거다. 나는 혐오감이 잔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충분히 즐기지 않았냐? 벌써 세 번째 접대 받잖아.”

물론 접대용으로 두 번이나 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피 튀기는 싸움은 할 만큼 했잖은가. 꼬장 그만 피우고 나 좀 여기서 꺼내달라 이 소리다.

하지만 짭정용은 여전히 내 면상 달고 개띠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고작 이 정도로 혈전이라 칭하긴 좀 그렇지. 뭐랄까. 긴장감이 한참 부족해. 왜 이러는 걸까 꿈의 주인?”

“뭐 이 새꺄?”

“다른 수많은 인간들은 너보다 한참 약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실상 100중 99... 아니. 1000중에 999는 내 정체조차 모른 채로 서서히 벌레들한테 뜯어 먹혔거든?”

짭정용이 턱을 쓰다듬으며 태연하게 고민했다.

‘수많은 인간들’이라는 건 아마 바깥의 흑혈병 환자들을 말하는 것일 테다. 페니와 알드콘의 얼굴이 뇌리를 잠깐 스쳤다.

끈적한 불쾌감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를 슬쩍 악물었다.

“그런데 걔네들이 너보다 훨씬 긴장감이 쫄깃해. 발악하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

놈은 시커먼 눈을 번들거리며,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직시했다.

“행복한 꿈에 안주하고 싶다는 갈망. 아니면 반대로 탈출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느껴졌지. 그게 산산조각날 때의 압도적인 쾌감이 내가 사는 낙이라고.”

“... 뭐. 근데 나는 다르냐?”

“너는 그런 절박함이 없어. 내가 너를 죽이든, 그 반대가 되든. 어느 쪽도 만족을 못할 것 같단 말이지. 하도 죽고 죽여대서... 자기가 누군지조차 헷갈리는 놈이라 그런가?”

“.......”

“허수아비를 패는 것 같구나. 뼈대만 남아서, 들판에 멍청하게 서있는 허수아비 말이다. 하하핫.”

뭔 소리를 저렇게 늘어놓나 했더니. 모아놓고 보니 순도 높은 개소리였다.

“들어서 손해봤네. X발.”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전투태세를 가다듬었다. 생각에 잠겼던 짭정용이 문득 아, 하는 탄성을 내며 나를 쳐다봤다.

기분 탓인가. 입가의 비웃음이 안 좋은 방향으로 짙어진 것 같다.

“그래. 맞아. 처음엔 그냥 장애물인줄 알았는데... 이러면 좀 긴장감이 생기나?”

스르륵. 짭정용이 지휘자처럼 손을 휘적거렸다.

드드드드. 내 등뒤로 땅이 용트림을 하더니 무언가 솟아올랐다. 나는 별안간 솟아난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헛숨을 삼켰다.

“... 루시.”

거대한 십자가에 두 팔이 결박된 루시가 있었다.

“으, 으으. 요, 용사....”

루시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나를 입에 담았다.

인상은 잔뜩 찡그렸는데,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기절한 채로 잠꼬대를 하는 듯했다.

나는 그 때까지 참았던 숨을 가쁘게 토해냈다.

“허.”

루시가 매달린 십자가는 내가 아는 것과 좀 디자인이 달랐다.

일단 그녀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말뚝이 달려 있었다. 십자가 뒤쪽의 기계장치와 연결된 그것이 연신 위태롭게 덜컹거렸다.

말뚝의 용도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매달린 자의 처형 위해 달아놓은 게 분명했다.

“그래. 그 표정이지! 이제야 좀 혈전의 느낌이 나는군.”

내가 망연자실하게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니. 짭정용의 마냥 즐거운 목소리가 귓구멍으로 때려 박혔다.

어느 순간 내가 중얼거렸다.

“꼭 오냐오냐 해주면 선을 넘는다니까. 이 X발 개버러지 새끼들이.”

나는 이미 짭정용의 코앞까지 접근했고. 멸망의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두르고 있었다.

짭정용의 웃는 얼굴로 대검의 궤적이 쇄도했다.

“엇....”

콰아아앙! 폭발에 가까운 타격음이 울렸다. 동시에 짭정용이 한참을 밀려나갔다.

힘 스탯의 차이가 있어서인가. 놈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크... 흐하.”

한참을 밀려나던 짭정용의 신형이 멈췄다. 놈의 입에서 버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푸직. 짭정용의 손바닥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참격의 압력을 못 버티고 찢어진 것이다.

“즐겁군. 즐거워지기 시작했어!! 방금 건 읽고도 당했다 꿈의 주인!!”

짭정용은 자신이 완벽히 방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즐거워했다. 광소를 머금은 짭정용이 두 개의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나를 압박해왔다.

카캉! 카아앙! 대검과 에스파다가 연신 부딪치며 격렬한 금속음을 쏟아냈다.

“앞으로 세 방이다! 네가 나한테 세 방만 더 맞으면 저년을 죽이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 거다. 그리고 그걸 네가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거야! 하하하! 즐겁겠구나!!”

카아앙! 놈이 광소와 함께 대검을 정면에서 막아냈다.

나는 그 반동에 몸을 실어 춤을 추듯이 물러났다. 듀라스의 움직임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자 곧장 스킬을 영창했다.

“세븐 소드 피어스.”

개소리는 무시한다. 최대한 생각을 자제하자.

하나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저 새끼를 찢어죽일 수 있을까.

저놈은 생각을 읽는다. 그러니 모든 잡생각은 생기는 즉시 폐기한다.

“소용없다는 걸 모르겠나!”

피피핑! 짭정용은 내가 날린 마력검들을 허무하리만치 쉽게 피해냈다.

나는 바닥에 박힌 채 스파크를 토해내는 마력검들을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 계속해서 세븐 소드 피어스를 영창했다.

“허술하다!”

푸직. 그 와중에 짭정용의 에스파다가 내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검술의 궤도를 읽혀 역공을 당한 것이다.

“우선 한 방.”

이죽거리는 짭정용의 목소리. 동시에 드르르륵! 뒤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났다.

슬쩍 루시를 쳐다보니, 머리 위의 말뚝이 아까보다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동요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죄어오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

하지만 이내 요동치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이를 부서질 듯 악물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동요하면 안 된다. 내 작전의 승리를 확신해라.

앞으로 두 방 맞기 전에, 놈을 찢어 죽여버리면 그만이야!

“세븐 소드 피어스!”

나는 대검과 에스파다를 교차하며 뚝심있게 마력검을 생성했고, 마구잡이로 사출했다.

투두두두두! 무수한 마력검이 기관총알처럼 짭정용을 향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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