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캐피탈리즘, 호!
다음으로 들른 곳은 당연히 소망성당이었다.
옆에서 유리아가 곤란한 얼굴로 안절부절 했다.
“아으. 용사님. 대체 뭘 찾으시는 건데요오....”
저럴 만도 하다. 갑자기 쳐들어온 내가, 일언반구도 없이 온 성당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유리아의 질문을 한사코 무시했지만. 그녀가 울먹이기 시작하자 결국 대답해줬다.
“사실 나도 몰라.”
“예?”
“뭘 찾는지 나도 몰라. 근데 여기 어디에 분명히 있어. 내 감이 그렇게 부르짖고 있어.”
“... 그, 혹시 정신머리나 양심을 잃어버리신 게 아닐까요?”
입이 뚫린 유리아는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는구나. 매콤한 언변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유리아를 팽개친 채 수색을 재개했다.
옆에서 유리아가 우우, 하고 볼멘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개를 팩 돌렸다.
“아이, 저도 이제 몰라요. 신부님 불러올 거예요!”
“어 그래. 꼭 좀 불러오렴.”
안 그래도 혼자 찾는데 한계를 느껴서, 물어볼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나는 손을 휘적거려 유리아를 배웅해주고 다시 수색에 몰두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덜컹. 성당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유리아가 어느새 변경백을 데려온 것이 보였다.
“아니 정용 공. 뭘 하고 있나? 성당 꼴이 말이 아니군 그래.”
변경백은 성큼성큼 다가오며 놀란 듯이 말했다.
그 말대로 성당 꼬라지는 개판 오분 전이었다. 미사실 의자와 강대상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고, 창고가 마구 어질러져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진중한 얼굴로 변경백을 마주봤다.
“변경백님. 잠깐 고해성사 좀 할 게 있습니다.”
“... 음?”
내 진지한 표정에서 심각함을 감지한 것인가. 변경백도 흠칫 몸을 굳히더니,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저벅. 변경백이 천천히 미사실 앞의 고해실로 걸어갔다. 고해실의 낡은 나무문을 열며 그가 내게 눈짓했다.
“들어오게. 주님은 모든 것을 사해주실 걸세.”
“어, 음. 예....”
... 그냥 물어볼 게 있다는 말을 나름 재치 부려서 ‘고해성사’라고 표현했는데.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뭐, 어쨌든 각 잡고 얘기할 자리가 마련됐다는 목적은 달성됐다. 나는 대충 납득하고는 변경백을 따라 고해실로 들어갔다.
* * *
“난 또 뭐라고.... 이 사람 참, 물건 찾는다는 얘기를 뭐 그리 심각하게 하나.”
“하. 하하하.”
변경백은 처음에 ‘잃어버린 물건 좀 같이 찾아주십쇼’ 같은 말이 나오자 맥빠진 한숨을 흘렸다. 설명하긴 복잡하니 그냥 웃어서 얼버무렸다.
그리고 변경백이 이내 곰곰이 생각을 해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네에게 줬던 검 있잖나.”
“네, 에스파다요. 그게 왜요?”
“아까 보니까 그게 내 방에 돌아와 있더군. 자네가 갖다 놨나?”
“... 거, 거 그거!! 그겁니다 변경백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역시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바로 변경백에게 에스파다의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일까. 고해실 가벽 뒤의 변경백 실루엣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으음. 맨입으로 말인가?”
“... 예? 매, 맨입?”
“내가 깊은 뜻을 담아 선물했던 검을 관리소홀로 잃어버린 것도 섭섭한데 말이야. 그걸 공짜로 돌려달라는 건 좀 양심적이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 같구만 그래. 흠흠.”
돌려돌려 충청도 스타일로 말하는 변경백.
아니 저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가벽 너머로 비치는 변경백의 실루엣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툭 말했다.
“그러니까... 사례금 달라고요?”
“사례금은 무슨. 그냥 요즘 성당 사정도 많이 안 좋고 하니, 성의를 담아 헌금이나 좀 할 수 있나 하는 거지. 흠흠.”
나는 이마를 짝 소리 나도록 짚었다.
“와우. X발 유레카.”
대쪽 같던 변경백은 어디가고,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타락 세뇌조교가 완료된 변경백이 눈앞에 있었다. 캐피탈리즘이란 이다지도 무섭구나.
나는 고해실 책상을 쾅, 두들기며 외쳤다.
“아니 변경백님! 지금 장난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나중에 꼭 드리겠습니다! 고작 돈 따위로 우리의 뜨거운 우정이 이리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하지만 오히려 변경백은 가벽 뒤에서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뽑아냈다.
“정용 공. 그게 무슨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인가.”
“어, 예?”
“왜,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은화 30냥이면 팔리잖나. 신의 아들도 돈이면 되는데 이 사람아.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딨겠나.”
“.......”
대한민국의 할센베르크 변경백은 성경까지 곡해하며, 자본주의의 암퇘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연실색한 내 앞으로 변경백이 떠벌떠벌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돈 없는 놈들부터 주님 만나러 가는 법이야. 이승의 것은 쓸데없다 설파하는 종교인들도 이승 조기졸업하고 싶어 하진 않더군.”
“그, 그야 그렇지만.”
“정용 공. 나는 뭐 흙 퍼먹고 성당 운영하나? 배곯지는 않을 돈이 있어야지. 거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인심 좀 쓰시게.”
“크으윽!”
뭔가 야속하고 짜증은 난다. 그런데 실로 옳은 말이라 뭐라 반박을 못 하겠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다가도, 나는 어느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 그, 듣자듣자 하니 들을수록 옳은 말이네요. 변경백님.”
“그렇지? 그러니까 헌금 좀 내게. 그 자리에서 에스파다를 바로 돌려주겠네.”
“쓰읍.”
하긴. 어차피 별나라 꿈동산 돈인데 닳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애걸하는데, 까짓 거 내가 주고 만다.
콰당. 나는 자리를 박차고 고해실 문을 열었다. 반대편에서 어슬렁어슬렁 나오는 변경백을 척, 삿대질 하며 외쳤다.
“거기 딱 기다리십쇼. 헌금 얼마 바라십니까!”
“음. 대충 한 20... 아니 30만원만 낭낭하게 넣어주면....”
“15만 받으십쇼! 갔다 오겠습니다!”
어딜 그 짧은 사이 10만원이나 올려치려고. 나는 은근슬쩍 올라간 헌금을 반으로 후려치고 성큼성큼 성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일단 서둘러 자취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책상 위에 나뒹굴던 지갑을 열어봤다.
‘보자. 돈이 얼마나 있더라.’
구깃한 만 원짜리가 11장. 조금 부족하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은행 앱에 들어가 계좌 잔고를 확인해 봤다.
[박정용 님 계좌 잔액: 31,450원]
이상하다. 잔고가 이거 밖에 없을 리가 없는데.
핸드폰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내막이 대충 짐작되었다.
“아. X발.”
그래. 보나마나 거하게 토토질 했다가 개털렸겠지.
이 시기의 나는 정말, 당장 내일 일조차 생각 안 하고 살았다. 그래서 돈의 행방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국 근처 편의점 ATM에서 3만원을 인출했지만. 여전히 만 원이 모자란다.
‘이, 이렇게 되면.’
입술을 깨물고,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편의점에서 안쪽의 으슥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간 나는... 아까 멋진 대사 쳐주고 헤어졌던 설백과 세스나에게 찾아갔다.
“누님들. 만 원만 빌려주십쇼.”
그리고 불꽃 그랜절을 박으며 금전을 요구했다.
뜨거운 시선이 뒤통수로 느껴졌다. 쪽팔림이 노도처럼 엄습했다. 그럴수록 더욱 깊숙이 머리를 박고 오체투지를 했다.
“와. 정용님... 진짜 너무 추해요. 어떻게 나이 25개 처먹고 여고생한테서 삥을 뜯어요.”
“...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게요....”
세스나와 설백이 측은한 표정으로 고개를 붕붕 젓더니. 이내 지갑에서 5천 원씩 꺼내서 내게 건넸다.
내가 감동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자 두 사람은 이내 피식 웃었다.
“역시 정용님은.”
“우리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그치?”
“응응.”
둘이서 군체생물 마냥 주고받더니 의미심장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원인 모를 한기를 느낀 나는 거듭 감사를 연발한 뒤, 곧장 다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자본주의 변경백님! 내가 돌아왔습니다!”
콰당! 미사실 문을 열고 준비한 15만원을 변경백의 손에 냅다 쥐어줬다.
“여기 돈 있수다!”
“감사합니다 고객... 아니, 형제님.”
변경백은 생전 본 적 없는 영업용 스마일과 함께 하얀 골검을 건네줬다.
이거 하나 얻자고 무슨 개쪽을 당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과 함께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띠링, 이제는 익숙해진 효과음과 함께 패널이 떠올랐다.
[악몽에 침잠되었던 힘이 모두 해방되었다.]
‘모두라는 건... 이게 끝이라는 거군.’
나는 주먹을 한 번 불끈 쥐어봤다.
익숙한 초인의 힘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꿈속에 진입하기 전과 동등한 수준이었다.
[스킬 해방: 아래 스킬을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후방타격, 잠입, 기공술, 아머 브레이크]
스킬도 웬만한 건 다 돌아왔다.
이걸로 준비는... 만전이었다.
“.......”
나는 성당을 나가기 직전, 변경백과 유리아를 슬쩍 돌아봤다. 두 사람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유리아에겐 똑같이 손을 흔들어줬지만. 변경백에겐 콧방귀를 뀌었다.
“그 돈으로 삼겹살이라도 사먹고! 성령 충만하게 사십쇼! 에이―멘!”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은 나는, 언제나처럼 오른쪽 허리에 에스파다를 찼다.
익숙한 중량감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시내로 나가 고향 행 버스에 올라탔다.
‘... 결국, 베스타크는 없군.’
그 점이 이상하기도 하고. 못내 아쉬웠다.
어쨌든 에스파다를 찾아낸 걸로 힘이 모두 해방됐다고 했으니... 베스타크는 이 악몽에 아예 구현이 안 된 모양이다.
‘검 안의 수호 형님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겠군.’
나는 이런 저런 가능성을 떠올려 보며 가만히 시간을 죽였다. 불안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잡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끼기긱. 버스는 찌뿌듯한 소음을 흘리며, 나를 꿈속의 고향에 데려다 놨다.
나는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날아가다시피 야산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짭정용! 형 왔다 새꺄!!”
나는 정상의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고래고래 외쳤다.
짭정용은 전과 똑같은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외침에 반가운 기색으로 퍼뜩 아는 척을 해왔다.
“오. 이번엔 꽤 오래걸렸구나. 꿈의 주인... 응?”
나를 가만히 훑어보던 그는 흥미 어린 탄성을 연신 흘렸다.
“... 하핫. 왜 늦었나 했더니. 모든 힘을 되찾았구나. 전투가 좀 더 즐거워지겠군.”
스르륵. 놈의 왼손에 새하얀 무형의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이내 에스파다와 똑같이 생긴 순백의 골검이 그곳에 생겨났다.
놈은 새로 뽑아낸 중국산 에스파다를 내 앞으로 까딱거렸다.
“와라. 3차전을 시작하자. 꿈의 주인.”
“오냐!”
퍼엉! 지면을 박차자 몸이 포탄처럼 놈에게 쇄도했다.
이제는 인간시절보다 훨씬 익숙해진 초인의 속도. 지금까지 힘이 봉인된 상태로 다녀서 그런가. 몸이 어느 때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유쾌해진 나머지 목청을 높였다.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폭풍돌격 박정용이 간다!!”
카아앙!
에스파다와 멸망의 대검이 짭정용의 검들과 격돌했다. 귀를 찌르는 금속음이 공터를 쩌렁쩌렁 울렸다.
복수전의 개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