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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20화 (196/280)

220화

캉, 카카캉!

두 자루의 멸망의 대검이 맞부딪치며 연신 불꽃을 튕겼다.

공터는 어느새 사방이 검고 붉은 화마로 가득했다. 공기조차 바싹 말라 숨쉬기가 힘들 정도다.

지옥이 있다면 딱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하하하하!”

“크으으!”

카아앙!

공방의 연계는 꽤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내가 우세한 싸움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반대다.

“하하하! 즐겁구나 꿈의 주인!”

놈은 시종일관 맛이 간 얼굴로 광소를 흘렸다.

부우웅! 어느새 눈앞까지 당도한 짭정용이 연신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역시 전투는 모름지기 손맛이 아니겠나!!”

콰앙, 콰쾅!

나는 수비일변도로 그것을 막아내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이 트럭에 받히는 것 마냥 육중한 일격이었는데. 심지어 그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다.

‘기세가 엄청나다...!’

이 새끼는 무늬만 박정용이었지, 알맹이는 나 이상의 무언가였다.

실질적 무력은 힘을 잃기 전의 나와 비슷해 보이지만. 저 광기 어린 기세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순간, 맹공의 틈을 비집고 대검을 찔러 넣었다.

“X발! 뒤져 좀!!”

카아앙! 긴 금속음이 울렸다. 짭정용을 파고든 검이 허망하게 막혔다.

허탈한 충격이 손끝에서 울리길 잠시. 곧 놈이 맞붙은 대검을 한껏 밀어붙이며 힘으로 나를 억눌렀다.

가가각, 가각. 대검의 칼날이 뿌리부터 갈려나가며 찌뿌듯한 염을 토해냈다.

“한참 약체화된 지금 육체로 합을 맞추다니. 전투의 노련미 하나는 경이롭구나 꿈의 주인. 어지간히도 파란만장하게 살아서 그런가?”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짭정용과 시선을 마주했다.

정신이 놈의 시커먼 눈동자로 빨려드는 듯했다. 거기에 도사린 형용 못할 광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강제로 수비태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대론 안 된다. 손도 못 쓰고 압사 당한다.

이내 결단을 내렸다. 연화를 사용해 놈의 뒤로 순간이동을 감행했다.

“연화!”

“연화.”

하지만 똑같은 순간에 짭정용도 같은 스킬을 영창했다.

마치 내가 연화를 쓰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역시, 지금도...!’

대체 무슨 조화인가. 내 행동이 술술 읽히고 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스슥. 시야가 급변했다. 내게 등을 보이고 있어야 할 짭정용은, 나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스르릉. 짭정용이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어 나를 내려다봤다.

“연화를 같은 타이밍에 쓰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꿈의 주인. 참고하도록.”

콰아앙! 짭정용이 내려친 대검이 충격파를 쏟아냈다.

대가리가 박살나기 직전에 멸망의 대검을 들어 막아냈지만. 온몸의 내장이 찌부러지는 듯한 둔중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욱...!”

기침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지만 후두둑.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핏줄기는 막을 수 없었다.

내상을 입었다. 맞은 것도 아니고 막았을 뿐인데. 기가 막혔다.

‘이건... 너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힘, 스피드, 스킬의 가짓수까지. 차이가 너무 현격해서 돌파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재정비가 시급하다. 내가 서둘러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짭정용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도망가면 섭섭하지!!”

순식간에 내 품으로 쇄도해온 짭정용의 신형.

무언가 시커먼 것이 내 가슴팍으로 치달린다 싶으면, 이미 대검이 내 목을 향해 시퍼런 날붙이를 날름거렸다.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페, 페이탈 쏜즈!!”

촤자작! 사방으로 퍼져나간 가시촉수가 내 주변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그 사이 5분의 쿨타임이 돌아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방금 합으로 내 목은 떨어졌을 것이다.

“쯧.”

짭정용도 역시 그것을 무시하진 못했다.

태태탱! 놈은 공격하던 검을 회수해 자신에게 날아온 가시들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문제는 그 때부터다. 잠깐의 쉴 새도 없이 곧장 달려든 짭정용이 중얼거렸다.

“자. 이건 이제 어떻게 막을 텐가?”

촤자자작! 짭정용의 등 뒤로 펄럭이던 어둠의 장막이 30갈래로 갈라졌고. 일제히 내게 쏟아졌다.

페이탈 쏜즈. 내가 스킬을 소진한 걸 보자마자 보란 듯이 그 스킬로 응수해왔다. 나를 농락하려는 의지가 다분했다.

“으아아아!”

나는 발악하듯 기합성을 지르며 멸망의 화염을 뿜어냈다. 그리고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화르륵! 불꽃의 장막이 대부분의 가시를 태워버렸다. 그러나 일부는 화염장막을 뚫고 내게 달려들었다.

“크윽!”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회피했다.

파스슷! 가시 중 일부가 팔다리에 스쳤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상처가 점점 늘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물의 에테르가 이렇게 소중하다. X발....’

새삼 에테르병의 부재가 절절히 뼈로 사무쳤다. 나는 상처들을 대충 압박해 긴급지혈을 하려 했지만. 짭정용은 이번에도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지 못하는 스킬로 나를 농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븐 소드 피어스.”

피피핑! 달려드는 짭정용의 주변에 푸른 스파크와 함께 일곱 개의 마력검이 생성되었고. 내게 일제히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순간적으로 격심한 갈등이 뇌리를 스쳤다.

‘방어? 회피?’

회피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발끝에 힘을 줘 지면에서 뛰어올랐다.

‘오른쪽. 위. 발밑...!’

파파팍! 탱탱볼이 튕기듯이 자잘한 점프를 연신 이어나갔다. 점프할 때마다 발 앞으로 마력검이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스파크가 눈앞에서 번득였지만,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마력검을 차근차근 피해나갔다.

‘이걸로 마지막...!’

마지막 7번째 마력검을 피해내 반격에 나서야겠다 싶은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촤르르륵! 시커먼 사슬들이 사방에서 나를 향해 치달렸다. 어느새 놈이 그림자 사슬을 발동시킨 것이다.

나는 억 하는 사이 사지를 속박당해 버렸다.

“자승자박이란 딱 이 꼴이지.”

내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퍼뜩 시선을 위로 올렸다.

어느새 시커멓게 일렁거리는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내 위를 장악해버린 짭정용. 그가 나를 내려보며 이죽대고 있었다.

“이건 네 기억 속의 전투 방식을 그대로 카피한 거다. 꿈의 주인.”

나는 짭정용의 두 손을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놈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

퍼어억!

시야 밖에서 무언가가 내 등을 후벼팠다. 전신이 크게 뒤흔들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충격이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벌벌 떨리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느새 짭정용의 가짜 대검이 내 배를 뚫고 나와 있었다.

“커... 억...!”

철철철. 셔츠가 쏟아지는 피로 빠르게 젖어갔다. 등과 배가 동시에 화끈거리는 걸 보면 대검이 몸을 완전히 관통했지 싶다.

누가 내 짜바리 아니랄까봐. 나는 기가 막혀서 중얼거렸다.

“어검... 술이군.”

짭정용의 말 대로였다.

세븐 소드 피어스로 시선을 교란하고, 흑익으로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다음. 어검술로 상상도 못한 방향에서 기습한다.

이건 요즘 내가 자주 사용하는 전술을 그대로 재현한 움직임이다.

“아... X발. 이건, 뭐... ”

졸렬하고 더럽고 치사해서 욕을 하고 싶은데. 욕해봤자 내 면상에 침 뱉는 꼴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나는 천천히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거. 싸움... 진짜, 족같이... 하네.”

그래. 욕을 못하겠다면 극찬을 박자.

빠르게 의식이 아득해졌다.

* * *

어느 순간,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뜨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어, 응? 으음?”

당황의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3단콤보로 나왔다. 그만큼 황당했다.

“... 어?”

내 눈앞에 수원 화성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어서냐고? 그럴 리가. 이제 그건 무려 네 번째다. 그걸로 놀랄 짬은 지났다.

나는 슬쩍 왼손을 들어올렸다. 어느새 왼손이 거대한 벌레의 다리로 바뀌어 있었다.

“으, 으아아악 X발!!”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손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 나자빠져 곤충처럼 변해버린 손을 만지작거렸다.

“뭐, 뭐, 뭐지. 대체 이건 뭐냐??”

짭정용에게 죽어서 악몽이 처음 시점으로 돌아온 건 알겠다.

그런데 이 손은 뭐냐. 환각인가? 왜. 갑자기 왼손이 곤충처럼 각질로 뒤덮여 있냐고.

‘우, 움직인다.’

나는 내 의지대로 곤충의 팔을 움직여봤다.

꾸드득. 관절이 까딱거리며 잽싸게 움직였다. 특유의 단단해 보이는 갑피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대혼란에 빠져 있던 내 앞으로 삐빅, 어김없이 패널이 떠올랐다.

[알림: 네 번째 악몽이 시작되었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2/3) ― 미충족]

[조건2: 24시간 내에 게이트를 열고 악몽에서 탈출 ― 미충족]

[보상: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 소유 자격 부여.]

거기까진 항상 악몽이 리셋될 때마다 뜨던 그대로의 패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 가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붉은 패널이 추가로 등장했다.

[경고: 악몽의 침식이 시작되었다.]

[상세: 꿈벌레가 몽주(夢主)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악몽 내에서 죽음이 반복될수록 침식이 촉진된다. 침식이 완료될 경우, 악몽에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제야 직면한 상황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바퀴벌레의 발톱처럼 흑갈색으로 번들거리는 왼손에 시선을 박았다.

‘악몽의, 침식.’

그래. 반복된 죽음에 패널티가 없을 리 없다. 처음부터 예측하지 않았던가.

세 번의 죽음으로 패널티를 받은 것이다.

‘처음은 한쪽 손.... 그러면 다음은?’

나도 모른다.

다리일지 팔일지 몸통일지, 아니면 대가리일지. 갑자기 급발진해서 온몸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번 악몽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꿈일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꿈틀거리는 괴충의 왼손을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마냥 혜자는 아니다 이거냐?”

확실한 건 두 가지다.

이대로 다시 악몽의 파편에게 꼴아 박았다간 백퍼센트 의미 없이 죽을 거고. 그 의미없는 죽음이 나를 진짜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것.

이 꿈에서 괴충화가 완성되면. 바깥의 내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힘을 더 모아야 해.’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 개사기 육체를 가진 주제에 정정당당 운운하던 놈이다.

그리고 놈은 분명 이 악몽 자체가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만든 세상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합격이 절대 불가능한 시험은 없어.’

짭정용이 그 스펙을 운용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나도 그 언저리 스펙까지는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소리다. 내가 찾아냈던 아이템... 힘의 파편들이 어딘가에 더 숨어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다.

“... 찾아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결의에 차서는 한 마디 했고. 변이한 손을 숨기듯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거리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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