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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19화 (195/280)

219화 재도전

어느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뜨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들숨을 있는 힘껏 들이켰다.

“크허어억!”

주변에 펼쳐진 건 어김없이 화성 시내의 풍경.

나는 죽었다. 악몽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것을 뇌로 직접 때려 박는 광경이었다.

익숙해져도 절대 적응은 안 되는 죽음의 혼란과 공포. 그것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 앞으로 삐빅, 패널이 떠올랐다.

[알림: 세 번째 악몽이 시작되었다.]

[알림: 악몽의 파편이 종식될 때까지 피안의 악몽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2/3) ― 미충족]

[조건2: 24시간 내에 게이트를 열고 악몽에서 탈출 ― 미충족]

[보상: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 소유 자격 부여.]

두 번째 악몽도 실패. 세 번째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격해진 숨을 고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어느 정도 숨이 안정되자, 나는 우선 등 뒤와 허리춤을 살폈다.

‘... 좋아.’

흑익과 멸망의 대검이 버젓이 내 몸에 달려 있었다.

다행히 전번 악몽에서 얻은 아이템과 스킬은 그대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와. 저사람 뭐야? 코스프레야?”

“푸하하! 개웃겨 X발.”

한창 복장 점검을 하고 있자니 주변에서 쑥덕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퍼뜩 주위를 살펴봤다. 얼굴이 모자이크된 수많은 군중들이 나를 쳐다보며 제들끼리 한 마디씩 얹고 가는 중이었다.

“저 칼 진짜야...? 그, 그럼 좀 위험한 새끼 아니냐?”

“진짜는 병신아. 당연히 짭이지.”

얼굴이 모자이크 돼서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뜨거운 관심은 대부분 내가 찬 흑익과 멸망의 대검에 꽂혀 있었다.

심지어는 지나가던 꼬맹이가 엄마 소매를 붙잡으며 나를 삿대질했다.

“엄마! 저 형 옷 봐봐! 존나 이상해!!”

“씁! 그런 말 쓰는 거 아니야! 너도 공부 안 하고 나쁜말 쓰면 저렇게 된다!”

“크헉! 앞으로 착한 말만 하고 공부 열심히 할게요! 으아앙!”

... 나는 오늘 복장만으로 한 아이를 갱생시켰다.

물론 일련의 과정은 모두 내 무의식이 작용한 허상들이다. 스스로가 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라 생각해서 그것이 반영된 듯하다.

‘빠, 빨리 도망가자.’

허상이라는 걸 알아도 왜 이렇게 쪽팔린지 모르겠다. 배경이 대한민국이라 그런가?

정작 현실이었던 파라이소 대륙에선 ‘피젖달’ 명패 달고 무투대회까지 출전했으면서 이 모양이군. 그 땐 저도 미쳤었다죠.

나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전번 악몽의 마지막 순간을 상기시켰다.

―준비가 되면 언제든 이곳으로 찾아와라. 도전을 기다리고 있겠다. 꿈의 주인.

악몽의 파편이 남겼던 한 마디가 뇌리에 어른거렸다.

마침 잘 됐다. 나는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망설임 없이 고향 행 버스에 올라탔다.

“오냐. 하라면 못 할 줄 아냐?”

원하는 대로 언제든지 찾아가 주마. 제발 그만 좀 찾아오라고 빌 때까지 말이다.

나는 오기를 담아 피식, 사납게 웃었다.

* * *

나는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야산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제단 주위로 인산인해였던 동네 사람들은 신기루처럼 죄다 증발해 있었다.

더 이상 엑스트라들을 유지시킬 이유가 없으니, 아예 존재 자체가 삭제된 듯하다. 나는 대충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 짭정용! 도장 깨러 왔다 새꺄!”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산 정상에 올랐다. 턱까지 찬 숨을 고르며 전방을 노려봤다.

전번 악몽에서 나를 죽였던 마지막 악몽의 파편... 이하 ‘짭정용’이 있었다.

“으음? 아아.”

짭정용은 무료한 얼굴로 칼끝을 바닥에 벅벅 긁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놈은 오랜 지인이라도 만난 양 반갑게 인사해왔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군.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자기 죽음을 이렇게 빨리 극복하다니. 역시 까마귀의 적합자는 일반인과 격이 다른걸. 마음에 든다.”

헤죽헤죽. 내 면상 달고 능글맞게 웃는 짭정용.

그것을 마주한 난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느라 필사적이었다.

‘와. X발 진짜 개패고 싶네.’

내가 저렇게 웃으면 상상 이상으로 족같구나.

딴에는 살인미소랍시고 여자들한테도 자주 저랬는데. 저건 그냥 살인을 부르는 미소였다.

새삼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모쏠인 이유가 멀리 있지 않았구나. 통탄을 금치 못했다.

‘루시는....’

슬쩍 공터를 훑어봤지만 원피스 차림의 루시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존재가 말소된 모양이다. 짭정용은 루시에게 ‘방해물’이라고 했으니까.

‘뭐, 없는 게 나로서도 이득이긴 하지.’

문제는 저쪽이 내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줬다는 사실 자체다.

왜지? 내 머릿속을 훤히 꿰고 있다면, 루시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나는 무조건 그녀를 지킨다는 걸 알 거다. 방금 전도 그래서 죽었다.

일부러 약점을 없애주다니. 그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뭐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꿈의 주인. 나는 매력적인 네 내면세계를 좀 더 즐기고 싶은 거야. 방해꾼 없이 말이야.”

짭정용은 중국산 멸망의 대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나는 당연히 숨을 삼켰다. 놈이 내뱉은 말이, 내 생각을 읽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타이밍과 내용이었으니까.

짭정용은 내 날카로운 시선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했다.

“이렇게까지 빨리 세 마리가 전부 간파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보통은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꿈벌레한테 정신을 서서히 뜯어 먹히다 죽는데 말이야.”

짭정용이 유유자적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잠깐 곱씹다가 미간을 좁혔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 야. 밖에서 괴물 돼서 돌아다니는 새끼들 알지. 흑혈병도 다 네가 원인이냐?”

“밖? 악몽 외부세계 말인가. 인과를 따지자면 내 탓이긴 하지. 악몽의 확산 자체는 불가항력이지만. 일단 꿈벌레로 변하게 만드는 건 내가 맞아.”

혓바닥이 쓸데없이 긴데, 결국 저 새끼가 원흉 맞다는 소리다.

“새끼가 말을 어렵게 꼬고 있어. 뒤질라고.”

내가 자연스럽게 검을 들어 올리자 짭정용도 그에 맞춰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는 짭정용에게 나도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응수했다.

“어쨌든 너만 죽이면 역병은 확실히 종식된다. 결론은 그거군.”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그렇게 끝나버리면 재미가 없잖아. 나를 조금만 더 재밌게 해달라고. 꿈의 주인.”

“재밌게 해줄게. 라잇 나우.”

직후 나는 멸망의 대검을 어깨 위로 장전했고, 짭정용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투두두두! 제법 빠른 질주 속도가 나왔다.

최신버전 박정용보단 훨씬 느리고. 지구의 알파버전 박정용보단 훨씬 빠르다. 대충 케른에서 불사교 때려잡던 박정용과 비슷한 속도였다.

나는 달려가는 와중에 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페이탈 쏜즈!!”

파파파팟! 가시촉수로 변한 망토가 짭정용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 때까지 짭정용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히죽, 입꼬리를 더욱 위로 말아 올리더니.

“페이탈 쏜즈.”

두두두두!

똑같이 망토를 가시촉수로 변화시켜 내 쪽으로 쏟아냈다.

‘이런 미친?!’

나는 당연히 경악했다.

그래. 전번 악몽에서 사냥 표식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 새끼는 외형만 닮은 게 아니다. 나와 완전히 같은 스킬을 쓴다!

“귀찮게 하네 이새끼!”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침착하게 가시들을 컨트롤했다.

파파파팍! 총 60개의 가시들이 허공에서 복잡하게 뒤엉키며 갈기갈기 찢어졌다. 시커먼 흑익의 쪼가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앙을 꿰뚫으며 짭정용에게 계속 돌진했다.

‘생각하자.’

지금 내가 돌려받은 스킬은 총 6개.

페이탈쏜즈와 흑익, 그리고 멸망의 화염, 연화, 어검술, 스팅어까지. 이 여섯 개의 스킬을 어떻게든 조합해서 저 놈을 꺾어야 한다.

‘지금 최적의 수는...!’

나는 일단 볼 것도 없이 멸망의 대검 표면에 멸망의 화염을 둘렀다.

화르륵. 겉잡을 수 없이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이 내 뒤로 꼬리처럼 늘어졌다. 나는 어느 순간 지면을 박차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음?”

짭정용은 순간 눈썹을 비틀어 올렸다.

그럴 수밖에. 내가 도약한 곳은 공격을 위한 점프라기엔 너무 먼 위치였다.

나는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이글거리는 멸망의 대검을 짭정용의 면상에 냅다 던져버렸다.

“총알배송이다!!”

진면목은 지금부터다. 순간적으로 화염의 방향을 손잡이 쪽으로 폭증시켰다.

나는 비장의 스킬을 영창했다.

‘스팅어!!’

푸화악! 기탄이 불꽃의 형태로 폭발했다.

멸망의 대검이 터무니없는 속도로 가속했다. 그야말로 대포알처럼 새빨간 궤적이 쏟아져 나갔다.

짭정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장대소했다.

“하핫. 그래! 네 특기는 그거였지. 검을 휘두르지 않고 던지는 거. 그 기상천외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단 말이야.”

다 안다는 듯한 말투와 느긋한 행색에 의문이 드는 찰나. 놈의 게슴츠레한 눈빛이 순간적으로 나를 직시했다.

나는 그 안에 도사린 서늘한 살의를 읽어냈다.

‘흑익!!’

지면에 착지하기 직전에 흑익으로 날아올랐다.

퍼어억! 내가 착지할 지점으로 무언가 거세게 날아와 꽂혔다.

불꽃이 날름거리는 붉은 대검. 내가 날렸던 대검이 반사되어 내 목숨을 노리고 날아왔다.

“... 어?”

순간 말문이 막혀 아연실색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퍼뜩 짭정용을 쳐다봤다. 놈은 검은 마력이 일렁거리는 오른손으로 내 멸망의 대검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입가에 건 채. 그는 훈계하듯 말했다.

“멸망의 대검에 흉마의 불꽃을 두른다. 그게 멸망의 화염이라는 스킬이지?”

짭정용은 그런 말을 하더니 불끈, 주먹을 쥐었다.

푸화악! 활화산 같은 검은 화염이 내 멸망의 대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 정도로 사방이 화염으로 가득찼다.

‘내, 내가 낸 게... 아니야.’

출력의 차원이 다르다. 내가 낸 화염이 아니면, 당연히 짭정용이 낸 화염이라는 소리.

나는 뱀처럼 쉭쉭거리는 폭염 앞에서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꼭 내가 가진 대검만 된다는 소리는 없어. 그렇지?”

짭정용이 짐짓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스르륵, 자기 대검의 칼날을 손가락으로 슬쩍 훑었다.

화르륵. 놈의 손가락이 지나간 곳으로 시커먼 화염이 치달렸다.

“칼 들어. 꿈의 주인.”

저벅저벅. 이번엔 짭정용 쪽에서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스르릉. 놈이 대검을 어깨 뒤로 장전했다. 내가 달려들었을 때와 소름 돋게 똑같은 자세였다.

“즐겨보자고. 한 바탕 꿈속의 최종보스전이다!”

놈이 지면을 박차고 쇄도하기 직전, 유쾌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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