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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18화 (194/280)

218화 ME! ME! ME!

“우선 첫 번째 질문.”

나는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깔았다.

그리고 천천히 검지손가락을 두 사람 앞에 들이밀었다.

“조, 좋아! 와라! 짝퉁 따위에게 질까 보냐!”

“흥, 누가 할 말을.”

두 루시가 동시에 미간을 좁히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미묘한 긴장 속에서 나는 툭 말했다.

“루시에겐 말이야.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곳에 점이 하나 있다.”

“응?”

“어?”

루시 원투가 얼빠진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멍하게 풀린 두 루시의 눈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질문을 계속했다.

“그게 어디일까. 말하기 좀 그러면 손으로 가리켜도 된다.”

루시들은 끔벅이던 붉은 눈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서로의 몸을 슬쩍 훑어봤다.

이내 얼굴을 확 붉히며, 양쪽에서 나를 향해 불꽃 로우킥을 갈겼다. 양다리가 동시에 화끈거렸다.

“이 미친 용사!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느냐!!”

“이 천인공노할 새끼가! 그, 그건 또 언제 봤어!!”

잡아먹을 듯이 소리치며 연신 발길질을 해대는 루시들.

나는 잠깐 동안 묵묵히 맞아주다가, 그녀들의 버릇 나쁜 발을 양손으로 가볍게 낚아챘다.

“억!”

“악!”

갑자기 발을 채이자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에 나자빠졌다. 나는 엉덩이를 문지르는 그녀들에게 다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언제 보긴 새꺄. 너 부활할 때 봤다. 네가 알몸으로 당당하게 들이대 놓고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

“.......”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 건지, 발갛게 익은 얼굴이 한없이 바닥을 향해 침몰했다. 두 루시의 입 중 어떤 입도 변명을 못했다.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펴며 빠르게 통보했다.

“아무튼 민증도 없고 아이핀도 없고, 공인좃증서도 없는 마당에. 이거만큼 확실한 본인인증이 어디 있겠냐. 말하기 좀 그러면 그냥 가리키라고. 3초 준다. 3, 2, 1.”

나는 쉴 새 없이 빠바박 몰아붙였다.

루시 원투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 어?”

“잠깐만!”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자, 에라 모르겠다는 얼굴로 각자 신체 어딘가를 가리켰다.

돌핀 루시는 가슴 바로 아래 명치. 그리고 원피스 루시는 꼬리 옆쪽 엉덩이였다.

“.......”

나도 모르게 합죽이가 됐다.

... 아니. 잠깐. 이건 좀, 내 계획에서 엇나갔다.

“용사...?”

“역시... 내, 내가 진짜지?”

루시 원투가 꼼지락거리며 물어왔다. 둘 다 수치심과 굴욕감이 점철된 표정이었다.

곤란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준비된 정답은 가슴 아래가 맞긴 한데....’

망했다. 꼬리 옆 엉덩이? 거긴 내가 본 적이 없다. 난 어디까지나 정면 풀샷만 본 적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원피스 차림의 루시 쪽은 정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출제자인 나조차도 모르는 정답 말이다.

“음. 이, 이번 건 무승부.”

이건 문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부덕의 소치였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당연히 두 루시는 발끈하며 결과에 항의했다.

“그런 게 어딨냐 용사! 어쩐지 질문부터가 뭔가 좀 이상했다!”

“솔직히 말해봐라. 그냥 내가 곤란해 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게지!”

새끼 눈치 빠른 거 봐라.

원피스 루시가 눈치 빠른 거 보니 짝퉁이 확실하다. 나의 루시는 저렇게 눈치가 좋지 않아.

그리고 나는 억울하다. 진짜 사심없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기 위해 던졌던 질문이었다.

“아 몰라.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나는 노발대발하는 루시들을 무시한 채 황급히 두 번째 질문을 시작했다.

“그럼, 두 번째. 나와 처음 만난 곳은 어디냐.”

루시들은 항의가 깔끔하게 무시당하자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내 둘 다 슬쩍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해왔다.

이 상황의 타개를 가장 바라는 건 내가 아니고 두 사람이니까. 결국은 나한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이라면... 부, 분명 할센베르크라는 성의 후줄근한 방이었다.”

“음... 내가 기억하기론, 적랑이라는 허연 늙은이의 저택이었다.”

이번에도 대답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내용은 판이하게 달랐다.

살짝 빨랐던 게 돌핀 루시. 그리고 다음이 원피스 루시다.

나온 대답들을 가만히 곱씹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대답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

잠깐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가까스로 다음 질문을 생각해냈고. 이내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이다. 잠깐이라도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 전부 말해.”

루시들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어떤 기준으로 판별하려는 건지 가늠됐지만, 이번엔 뭘 알기 위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하지만 어리둥절하면 어쩔 텐가. 결국 둘 다 더듬더듬 한 명씩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검은머리 치유사 계집. 파랑머리 하녀. 그리고 용사, 그리고 또....”

“치유사 계집. 파랑머리 괴력녀. 네놈. 그리고 또....”

설백. 세스나. 그리고 나. 여기까진 두 루시가 똑같이 되짚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좀 다를 것이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두 루시의 입술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녀들이 말을 계속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돌핀 루시 쪽이다.

“그래. 붉은 머리 뾰족귀 남매! 이렇게 다섯이 아니었더냐?”

반 박자 늦게 원피스 차림의 루시도 퍼뜩 입을 열었다.

“내 쫄따구! 그 허연 눈의 성녀라는 계집까지 네 명이지 않느냐.”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통렬하게 끄덕였다.

“흐음. 역시나.”

진짜 루시가 누구인지. 그리고 악몽의 파편이 누구인지. 세 개의 질문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첫 번째 질문도 큰 공을 세웠다. 정말이다.

“내가 아는 오리지널 루시는 이쪽이다.”

나는 돌핀 팬츠를 입은 루시의 손을 붙잡았다.

복싱에서 판정승 결정하는 양,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계속 말했다.

“내가 루시라고 처음 이름을 붙여줬고. 처음부터 신나게 뺑이를 같이 쳤던 여자. 제나와 제논을 기억하고 있고. 내가 절대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 루시는... 너다.”

나는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정체를 중얼거렸다.

‘마지막 대답이 결정적이었다.’

부활한 2회차 루시는 전생의 인물들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하다.

2회차 루시의 세스나와 설백에 대한 한줄 평은 ‘동료(였던 것)’. 그리고 ‘왠지 모르게 띠꺼운 불여시들’이라고 했다.

이게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나도 모른다. 우습게도 루시 본인조차 모른다고 했다. 기억은 거의 없는데, 그 때 느꼈던 감정들만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이다.

‘완전한 기억이라기보단... 감정의 찌꺼기 같은 느낌이었지.’

그나마 설백과 세스나에 대해선 어렴풋하게라도 기억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루시와 접점이 적었던 제논과 제나는 사실상 거의 기억을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첫 번째 루시는, 돌핀 팬츠를 입은 그녀가 맞았다.

“야. 밥은 먹고 다녔냐.”

1회차 루시를 보고 있자니 절로 아련한 기분이 샘솟았다. 그래서 중얼거렸다.

만화 같았으면 3주는 거뜬히 날로 처먹을 회상씬이 떠오를 타이밍이었다.

내 판결에 대한 루시들의 반응은 대강 비슷했다. 아찔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다.

“용사...!”

“용사!!”

그러나 이후 행동은 극명하게 갈렸다.

1회차 루시는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2회차 루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내 2회차 루시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빽 소리질렀다.

“웃기지 마라! 내, 내가 진짜다!! 저, 저건... 저런 나 따위! 나는 모른단 말이다!”

2회차 루시는 원피스 자락이 들썩이도록 앙칼지게 외쳤다. 그녀의 쫙 편 손가락이 1회차 루시를 가리켰다.

하지만 1회차 루시는 콧방귀를 뀌며 내게 몸을 한층 밀착할 뿐이다. 약 올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걸 묵인했다.

그것이 원체 야속했는지, 2회차 루시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용사! 날 봐! 그년에게 속지 마라! 지금 네 옆에 있는 건... 네 옆에 있어야 하는 건! 그년이 아니라 나란 말이다!!”

2회차 루시가 절박함을 담아서 외쳤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이 내 반대편으로 달라붙었다.

나는 그녀가 발광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넌 아까부터 뭔 개소리냐?”

“으에?”

“당연히 네가 진짜지. 내가 오리지널이 이쪽이라고 했지, 진짜라고 하데?”

“... 어? 뭐, 뭐라고?”

그 말에는 2회차 뿐만 아니라, 내게 달라붙었던 1회차 루시도 똑같이 당황했다.

1회차 루시가 더듬더듬 말했다.

“요, 용사. 지금 무슨 말을....”

1회차 루시가 붙잡힌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쎄한 것을 느끼고 손을 빼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그녀의 손목을 더욱 바짝 틀어쥐어 도주를 원천봉쇄했다.

그리고 싸늘하게 벼린 시선으로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

“내가 이름을 붙여줬고. 제나와 제논을 알고. 절대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오리지널 루시는 말이야. 뒤졌어 이 새끼야.”

이 꿈에 제논도 제나도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확신했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죽었다고 인지한 사람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이걸 반대로 말하면 이런 소리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죽었다고 인지한 사람이 나오면. 그 새끼가 무조건 악몽의 파편이다.’

나는 1회차 루시의 배때지에 멸망의 대검을 쑤셔 박았다.

푸욱.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찌르기였다.

“개짓거리는 거기까지다. 악몽의 파편.”

검 손잡이 끝으로 물컹거리는 손맛이 왔다.

이건 악몽의 파편이 확실했다.

“아, 윽....”

잠깐의 침묵 속에서 루시의 낮은 신음이 흘렀다.

어느 순간, 1회차 루시의 입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 흐. 푸흐흐흐.

시선을 슬쩍 돌려보니 역시나. 루시의 얼굴이 흐느적거리며 짓이겨져 있었다.

우드득. 그 안에서 시커먼 무정형의 괴물이 가죽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놈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한바탕 숨바꼭질은 여기까지군. 아주 즐거웠다 꿈의 주인.

멘트를 보아하니 생각보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모양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직후. 히어로 센스의 날선 감각이 뒷목을 후려쳤다.

“... 이런 씨!”

나는 악몽의 파편에게서 검을 뽑아내고 퍼뜩 거리를 벌렸다.

퍼퍼퍼퍽!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로 꿈틀거리는 어둠의 촉수가 날아들었다. 잠깐만 망설였으면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꿰뚫렸을 기세였다.

―이제 놀이가 아닌 진짜 시험을 시작해 보지.

그런 말을 하며 꿈틀꿈틀 몸을 변형시키는 악몽의 파편.

‘... 그래. 어디 내 팔자에 X발. 전투 없이 날로 먹을 생각을 했을까.’

잠깐이나마 안일했던 내 자신을 질책했다.

나는 헛웃음과 함께 멸망의 대검을 바짝 고쳐 쥐었다.

―정신적 성장이란, 자기가 만든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지금까지의 자신을 뛰어넘는 것!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악몽의 파편의 꿈틀거림이 점점 잦아들었다. 시커먼 괴물이었던 것이 사람의 형상으로 점차 형태를 갖춰나갔다.

루시는 아니다. 하지만 루시보다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꿈의 주인.”

나였다.

상하좌우 어느모로 보나 X발 박정용이었다. 변신을 완전히 마쳤을 때는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까지 나랑 똑같았다.

저 정도면 정용이 애비도 속겠다.

“회수한 힘의 파편은 고작 두 개인가? 나는 공평한 걸 좋아하니. 특별히 무기 개수 정도는 맞춰주지. 아하하!”

스르륵. 악몽의 파편 오른손에 시커먼 기운이 모여들어 새빨간 검 하나를 만들어냈다. 어깨 뒤로 어둠이 길게 늘어지더니 망토처럼 펄럭거렸다.

악몽의 파편은 내 면상을 향해 히죽히죽 웃었다.

“아?”

찰나의 순간이었다.

별안간 그의 시선이 내 뒤에서 떨고 있던 루시에게 향했다. 나와 루시가 거의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우우웅. 루시의 머리 위로 선명한 해골 마크가 박혔다.

“우선 방해꾼부터 없애고.”

사냥 표식. 내가 밥 먹듯이 쓰는 그 스킬.

정체를 깨닫자마자 반쯤 본능적으로 루시의 앞을 막아섰다.

“위험...!”

푸직. 파육음이 울리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한 발짝 늦게 복부에서 격통이 찾아왔다. 시선을 슬쩍 내리자, 어느새 바짝 다가온 악몽의 파편이 멸망의 대검을 쑤셔 박는 모습이 보였다.

“커... 억.”

털썩. 무릎이 저절로 꿇렸다.

최강 용사 시절의 체력치가 없어서 그런가. 삽시간에 의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몇 초에 이르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서 거의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다.

“안... 용사! 죽... 면! 아, 아아앗!”

옆에서 원피스 차림의 루시가 시끄럽게 빽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늘한 뺨으로 뜨거운 물방울 몇 개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

언제나처럼 농담을 섞어 멘트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은 뻥긋도 하지 않았다.

의식이 완전한 어둠으로 침잠되기 직전.

“준비가 되면 언제든 찾아와라 꿈의 주인. 도전을 기다리겠다. 흐흐흐흐.”

광기 섞인 내 웃음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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