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재입대의 악몽
―앞으로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우리는 영원한 조국의 방패!
멀리서 들리는 군가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형태의 막사. 연병장. 그 위로 20대를 쓸데없이 소비하는 무수한 국방색 빡빡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전역한 777포병부대. 그 위병소 앞에서 나는 어느새 군복을 입은 빡빡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이거. 설마.’
나는 떨리는 눈을 내려 가슴께를 쳐다봤다.
약장이 보였다. 작대기 네 개가 그어져 있다. 병장이다.
전역하면서 분명 오버로크로 박아놨을 텐데. 오버로크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 이게 예비군복이 아니라는 소리다.
‘설마... 설마.’
머릿속으로는 계속 ‘설마’를 되뇌었지만.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돌아왔다?’
버스 탄 것을 기점으로 나는 과거 시점에 돌아온 것이다.
병장 시절. 머리 길이를 봤을 땐... 전역 직전의 어느 때쯤 같다. 아까 수원 화성 때로 따지면 약 2년 전으로 돌아온 셈이다.
숨이 턱 막혀왔다. 나는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 장례 치르고. 부대 복귀한다는 컨셉이냐?’
악랄한 동선 설계에 혀를 찼다. 대충 지금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나는 시니컬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그리고 부대 위병소를 지나 천천히 막사로 걸어갔다.
‘전역 일주일 전. 아버지가 죽었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교통사고로는 절대 죽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이것이기도 하다.
나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특별휴가를 받았고, 지금 버스를 타고 복귀한 것이다. 과거에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무래도 그런... X같은 컨셉을 짜놓은 듯하다.
“악몽 맞았네 이거.”
최초에 아버지 가죽 뒤집어 쓴 괴물새끼가 나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솔직히 이 꿈이 ‘악몽’이라고 칭해지는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 * *
전역한 한국 청년이 꾸기 싫은 꿈 탑3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게 재입대 꿈이다.
안 그래도 족같은 게 재입대 꿈인데. 그것도 내 인생 최악의 순간으로 돌아온 지금. 당연히 내 기분은 하한가를 뚫고 지옥 밑바닥을 치고 있었다.
“저... 박뱀. 괜찮으심까?”
생활관 침상에 석상 마냥 무표정하게 앉아있으려니. 옆에서 누군가 슬며시 물어온다.
순박하고 느긋한 인상의 빡빡이가 있다. 정주완이라는 이름의 이등병이다.
‘보자. 얘는 분명....’
일단 기억엔 있다.
나 전역하기 얼마 전에 들어온 놈. 생긴 대로 정이 많고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였지. 그래서 A급 후임으로 인망이 높았다.
같은 자주포 조종수라 전역 전까지 꽤 많은 얘기를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눴던 대화 자체는 다 까먹었다.
“걱정 마라. 자살 안 해.”
나는 툭 내뱉었다.
나름 농담이랍시고 던진 거다. 듣는 당사자들은 딱히 농담으로 안 들리겠지만.
나는 다시 의미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 그럼 다행입니다만.”
정주완은 그렇게 한 마디 하더니 슬슬 쭈그러졌다. 말 걸지 말라는 오라를 감지한 것이다. 나는 주변을 스윽 훑었다.
우리 부대는 자주포 조종수들만 생활관을 따로 사용하는 특이한 포병부대였다. 그래서 기억 속 생활관엔 전역 날 까마득한 후임도 있고, 동기도 있었다.
“.......”
“.......”
“... 흠. 흐흠. 아우 X발. 왜 이리 덥냐.”
온통 적막했다. TV를 부모님 웬수처럼 쳐다보는 동기 놈의 헛기침만 들려왔다.
다른 것보다도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이 분위기. 기억난다. 아주 잘.’
아무렴 부친상 치르고 온 새끼한테 무슨 말을 걸면 좋을지, 저 놈들이 알 턱이 있나. 나는 자조하듯 피식 웃었다.
나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활관 전 인원이 흠칫, 숨을 삼키는 기색이 느껴졌다.
“잠깐 행정반 좀 다녀온다.”
“아, 아 예! 다녀오십쇼.”
정주완이 퍼뜩 대답하며 나를 배웅하려 일어났다. 나는 손사래를 쳐서 물려버렸다.
저벅저벅. 군화 특유의 묵직한 발소리가 막사 복도에 울려퍼졌다. 나는 행정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례를 대충 올린 뒤 인사치레를 했다.
“병장 박정용, 행정반 용무 있어 왔습니다.”
행정반에서 업무 보던 이름 까먹은 행정병이 흠칫 놀랐다. 라면 처먹던 당직사관 행보관도 퍼뜩 숨을 삼켰다.
행보관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미묘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이내 슬며시 포옹을 했다.
툭툭. 묵직하게 내 등을 두들기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박정용.”
“... 네. 뭐.”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기운 내라.”
“... 네. 뭐.”
이것도 기억과 똑같군. 피식 웃었다.
이것이 부친상의 힘이다. 평소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병사들 못 잡아 처먹어서 안달인 싸이코 행보관 새끼도 이렇게 만든다.
그 때까지 사실 부친상의 실감이 잘 안났는데, 행보관의 이 온순한 반응으로 가장 실감이 났었던 기억이 있다.
“아. 그... 박뱀.”
행보관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을 때. 눈치와 업무를 함께 보고 있던 행정병이 내게 슬며시 다가왔다.
스윽. 그는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꽤 큰 사이즈의 소포였다.
“이, 이거... 드려야 할 것 같아서.”
“... 음?”
“그, 박뱀 휴가 가셨을 때, 박뱀한테 온 겁니다. 그... 박뱀 아버지한테 온 것 같슴다.”
“.......”
나는 잠깐 할 말을 잃고 소포를 멍하니 쳐다봤다.
내가 놀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기억 상 아버지한테서 소포 같은 건 온 적이 없다.
정확히는 소포가 아니라 편지가 와 있어야 정상이다. 나는 오랜만에 그 편지를 보고 싶어서 행정반에 찾아온 것이고 말이다.
“그... 힘내십쇼. 박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행정병은 그렇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뒤, 소포를 가지고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소포 내용물을 간부에게 확인 받고 돌아가야 하지만. 아무리 싸이코 행보관이라도 아버지가 보낸 유품이라는데 그걸 건드리진 않았다.
“아. 오셨슴까.”
“어.”
나는 퍼뜩 인사하는 정주완에게 대충 대답해주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 않은 채 소포를 마구잡이로 뜯었다.
그러자 거기엔....
“허.”
시커먼 망토가 있었다.
밤하늘보다 새카만,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색.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부드러운 재질의 망토.
아무리 봐도 진화의 흑익이었다.
“워. 그, 그건 뭡니까 박뱀.”
옆에서 정주완이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한 나머지 흑익을 그 자리에서 둘러 입었다.
펄럭. 시커먼 망토가 내 어깨 위에서 멋들어지게 휘날렸다.
“개쩔지 않냐.”
정주완이 미묘한 표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딱 저런 반응을 바랐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패널이 하나 떠올랐다.
[악몽에 잠식되었던 힘이 일부 해방되었다.]
띠링, 띠링. 경쾌한 효과음이 이어진다.
부릅뜬 두 눈 앞으로 계속해서 패널이 떠올랐다.
[스킬 해방: 아래 스킬을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페이탈 쏜즈, 흑익, 스팅어]
“...... 하.”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토해냈다.
나는 괜히 흑익의 옷자락을 손바닥으로 쓸어봤다.
‘X발.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던 거냐.’
이 장소. 이 기억 전체가, 이 아이템 하나를 숨기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장치였던 거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악몽의 파편. 쓴웃음이 절로 배어나왔다.
그 순간 털썩, 무언가 흑익 안쪽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음?”
흑익에 정신이 팔려서 동봉된 걸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것을 들어올려 눈앞으로 가져왔다.
‘이건....’
편지였다.
이건 좀 익숙하다. 옛날에 실제로 받았던 물건이니까. 죽기 전의 아버지한테서 온 편지다.
나는 꾸깃하게 접힌 편지지를 거칠게 뜯었다. 내용물을 펼쳐봤다.
[잘 지내나 박병장.]
“크큭.”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버지는 까톡이든 문자든 편지든, 내가 군인일 땐 항상 저 문구로 서두를 끊었다.
내가 이병일 땐 박이병. 일병일 땐 박일병. 상병일 땐 박상병. 그리고 병장일 땐 박병장.
그것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 아들 전역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잘하리라 믿는다.]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된다 박병장!]
[힘!!!!!]
편지 앞뒤 내용은 전부 하얗게 노이즈가 끼었다. 오직 그 세 줄만 살아남아 있었다.
내가 저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
저 ‘힘!!!!!’은 아재들끼리 통하는 암구호 같은 건가. 저 또래는 대부분 저런 말투를 쓰더라.
이 때 아버지는 자기가 곧 죽을 거라곤 꿈에도 모르고 있었을 거다. 내가 휴가를 나갈 때마다 묵묵히 된장찌개를 끓여주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느낌표를 찍었을까.
대체. 무슨 생각을....
“... 아.”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옥죄었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눈물이 울컥 북받쳤다. 하지만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
다 꿈이고 허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내 인간성이 마멸돼 버린 건가.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고, 그냥 한없이 씁쓸할 뿐이었다.
“흑익.”
그리고 나는 중얼거렸다.
화아악! 망토가 거대한 까마귀의 날개로 화했다. 깃털이 검은 눈처럼 사방으로 휘날렸다.
“어떻게 다들, 전역들은 무사히 했나 모르겠구나.”
생활관의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나는 모두를 향해 히죽 웃어주고 생활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다들 잘 먹고 잘 살아라. X팔.”
콰아앙! 창틀을 박찼다. 가공할 충격파가 터져나오며 내 몸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허공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위병소를 훌쩍 넘었다. 막사의 소란이 등 뒤로 들려왔지만 신경은 딱히 쓰지 않았다.
내가 곧은 직선으로 날아온 장소는 다름 아닌 버스 정류장이었다.
‘여기의 용무는 끝났어.’
촤자작! 바닥에 거칠게 착지했다. 제동을 거느라 군화 바닥이 아스팔트에 녹아 묻을 정도였다.
마침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놓여 있었다. 내가 나오는 것만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고향’ 행, 999번 버스]
버스 선두에는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흑익의 날개를 접고 다시 망토로 변화시켰다. 멀찍이서 탈영병 잡으러 달려오는 부대원들이 보인다.
후드득. 나는 페이탈 쏜즈를 발동시켜 가시촉수를 꺼냈다.
“출발해 아저씨. 당장.”
처처척. 서른 개에 달하는 가시촉수를 버스 기사에게 들이밀었다.
버스 하이재킹의 효과는 직빵이었다. 그 꼬장꼬장했던 버스 기사도 헛숨을 들이키며, 군말없이 전속력으로 엑셀을 밟았다.
버스의 속도가 제 궤도에 오른 뒤. 페이탈 쏜즈를 해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 흐.”
나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나는 평상복으로 다시 환복되어 있었고. 창 밖에 군부대 비슷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처럼.
“.......”
나는 그 묘하게 편안한 어둠을 가만히 응시했다. 움켜쥔 왼손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구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접어, 주머니 안쪽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