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보급형 니체 박정용
나의 한없이 진지한 개쌉소리에, 유리아는 처음에 굉장히 당황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줬다. 나름 고해성사를 받는 입장에 과몰입을 해서 사명감이 들어찬 것 같다.
유리아가 곧 손가락을 펴들며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괴, 괴물이 있는 거죠? 주변 사람들 중에요?”
“그래.”
“그 괴물은 용사님이 기억하는 사람 중에만 숨어있나요?”
“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기억에 있다고 무조건 아는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방금 고아원에서 만났던 ‘요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생판 일면식이 없어서 얼굴에 노이즈가 끼었긴 했지만, 무의식은 그녀를 이 악몽에 등장시켰다.
‘즉 현재의 내게는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무의식에 임팩트만 남아있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 꿈에 등장한 모든 것들은 악몽의 파편일 가능성이 있다. 꼭 사람이라는 조건도 없었으니 어떤 사물일 가능성도 있다.
내가 대충 형편에 맞게 설명해주자, 유리아는 으으, 하고 침음을 흘렸다.
“괴물이 무조건 있어요? 없을 수도 있는 건 아니구요?”
“무조건 있어. 걔네를 잡아야 내가 살아남는 세계관인 걸로 치자.”
“엑…?!”
그 말에 유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안 믿는 눈치였던 것치곤 격한 반응이었다.
얘 ‘나x토랑 크리링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나?’ 같은 주제 던져주면 환장할 것 같다. 과몰입 장인이군.
“그, 그럼 무조건 죽여야 돼요? 안 죽이면 용사님이 죽어요?”
“어.”
“그럴 수가. 가혹하네요.”
“그런가?”
“그렇다구요. 자기 소중한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을 찌르는 거잖아요.”
“괴물이잖아.”
“그, 근데 외형이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근데 괴물이잖아.”
“아휴. 됐어요…….”
뭐지. 내가 지구고 이세계고 워낙 족같은 환경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아서 그런가?
나는 가혹한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조건이면 완전 개혜자인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vip흑우가 된 건가?
나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유리아에게 피식,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먹고 살려면 뭔 짓인들 못하겠냐. 진짜 소중한 사람들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변장한 괴물 죽이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괴롭지, 않으세요?”
“원래 뭐든 이루려면 희생이 필요하잖아. 살아보니까 그래. 세상 대소사가 다 그렇더라.”
가볍게 던졌던 말로 시작했지만 끝은 마냥 가볍지 않았다.
그래. 지금까지 무수한 희생을 발판삼아 여기까지 왔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앞으로 내 결단에 의해 누군가는 살겠지만. 누군가는 죽을 예정이다.
내가 이 퀘스트를 혜자라고 느끼는 이유도 그것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존나 저렴하지. 나만 힘들면 되니까.”
여기는 내 망상이 구현된 악몽이니까. 다른 사람이 휘말릴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뒤집어쓴 괴물을 단박에 의심하고 찌를 수 있었다.
상대가 무슨 모습을 하고 있든. 악몽의 파편을 판별하는데 실패하든 성공하든.
찔렀을 때 고통받는 건 나다.
“대단하시네요.”
유리아는 그런 말로 받아쳤다.
유리아가 나를 직선적인 시선으로 올려봤다. 그리고 포근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사님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순간 낯이 좀 뜨거워졌다.
미소녀에게 삼삼한 위로의 말씀을 듣는 게 내 숨은 욕망이었단 말인가. 개쪽팔리네 X팔.
가만히 생각해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니구나. 이건 원래 내가 듣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는 저 말을 항상 미련하게 살던 아버지에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양반은 이미 진작에 자기 마누라 찾으러 삼도천 건너갔다. 그러니 이젠 내가 그 말을 들을만한 인간을 목표로 살고 있다.
“대단하긴 하지. 대단한 호구새끼지.”
나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실제로 이렇게 살아서 들은 소리라고는 호구 소리 밖에 없었다. 아버지처럼 산다는 소기 목적은 달성했으니 불만은 없다만.
그러나 유리아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선을 좀 더 높이 들어올렸다.
“호구라니요. 전부 용사님 말 대로예요.”
나는 유리아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미사실의 강대상 위. 벽면에 붙은 ‘피에타’ 그림이 눈에 띄었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성자를 끌어안고 슬픔을 죽이는 상황을 표현한 예술품이다.
“…….”
저 그림. 고아원에도 똑같은 게 하나 걸려있다.
그래서 나는 저 그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눈물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세상은 없더라고요. 누군가 행복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행복은 희생되잖아요.”
유리아가 한동안 그 피에타 그림을 쳐다봤다. 이내 나와 시선을 맞췄다.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건 그녀가 말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건, 신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 신?”
“네. 신이요.”
“신.”
신이라.
나는 그 한 글자를 연신 입 속에서 되뇌었다.
홀린 듯이 강대상 위로 시선을 올렸다. 죽은 채 늘어진 예수와 눈을 감은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버젓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멍하니 한동안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고맙다 성녀님.”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존재.
있었으면 좋겠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것.
신. 그래. 신이다.
“저거였어.”
내가 끊임없이 성당에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 드디어 찾았다.
나는 곧장 강대상 위로 점프했고, 거기서 한 번 더 펄쩍 뛰어 그림 앞으로 쇄도했다.
휘리릭. 사시미칼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비명처럼 외쳤다.
“신은 뒤졌지 X발!!!”
이세계는 몰라도 지구엔 신이 없다. 혹시나 있어도 내가 괘씸해서 용서치 않는다.
그래. 성당? X발 이딴 X같은 건물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역겨워서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더 사시미 오브 니체!!”
푸욱. 괴상한 기술명과 함께 사시미가 그림을 깊게 파고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마빡에 정확히 적중했다.
그림의 재질은 단단해 보이는데, 두부처럼 물컹한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졌다.
―크하. 한 방 먹었구나.
히죽. 그림 속 성모마리아가 귀까지 찢어진 웃음을 지으며 그런 말을 했다.
주르륵. 그림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거기엔 형체 없이 허물어진 시커먼 괴물이 있었다.
―역시 썩어도 성녀의 후예라는 건가? 기억 쪼가리한테까지 방해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
악몽의 파편이었다.
이번에도 내 추측은 정답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꿈의 주인.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테니… 크흐흐.
“아가리 하십쇼. 내 알아 할 테니.”
나는 한 시라도 빨리 꺼지라는 의미로 놈의 배때지를 연신 쑤셨다.
악몽의 파편은 기분 나쁜 웃음만을 남긴 채 천천히 허물어져 사라졌다.
[알림: 악몽의 파편을 사냥했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2/3) ― 미충족]
어김없이 패널이 떠올랐다.
사냥 성공. 두 번째 악몽의 파편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나는 능숙하게 사시미를 회전해 다시 파카 안주머니로 집어넣었다.
뿌듯한 충실감에 몸을 잠깐 떨었고, 곧장 다음 악몽의 파편을 찾아나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옆에서 털퍼덕. 누군가 바닥에 자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으… 아… 바, 방금 그, 그건… 괴, 괴물?”
유리아였다. 그녀는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기지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녀린 손가락은 실시간으로 녹아내린 그림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 용사님… 아니! 지금까지 했던, 말… 진짜… 였어요?”
퍼뜩. 유리아의 두려움에 찬 시선이 곧 내게 향했다.
나는 뭐라 설명해줄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그녀의 검은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현실과 똑같았다.
“너 진짜 수녀 해도 괜찮겠다. 생각보다 잘하네.”
“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 그거! 그 괴물은…!”
내가 선택한 건 그냥 함구였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유리아에게 성호를 그어주고 성당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수녀님. 천국 가십쇼. 나는 X바 지옥이나 갈라니까.”
“아니 용사님! 잠깐만요!!”
유리아가 빽 소리지르며 연신 나를 불렀다.
물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깔끔하게 무시했다.
* * *
“자 그럼… 마지막 한 놈을 어떻게 족친다.”
나는 성당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서 다시금 화성 시내로 돌아와 있었다.
꿈속인 주제에 잠깐 격하게 움직였다고 엄청난 갈증이 찾아왔다. 인근 편의점에서 콜라 하나 사다 마셨고. 지금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저… 오빠? 정용 오빠 맞죠?”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설마 또 세스나와 설백인가. 순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듯해서 콜라캔을 놓쳐버렸다.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뒤돌아봤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이, 일단 그 둘은 아니군.’
예상대로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얼굴이다.
어깨까지 오는 풍성한 머리칼에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내 또래 여자.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나를 정면으로 마주치자 순간 숨을 삼키더니, 이내 만면에 화색을 띄며 한 발짝 다가왔다.
“와아. 진짜 정용 오빠네!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대박! 저 기억나시죠?!”
여자가 자기 얼굴을 연신 가리키며 내게 물어왔다.
물론 지금 내가 ‘그녀’,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것이다.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얘도 요나 같은 케이스? 무의식의 산물인 슈뢰딩거의 그녀인가?
“설마 저 몰라요? 바로 얼마 전에 평택에서 같이 일했었잖아요!”
내가 기억 못하는 눈치를 보여주자 여자는 충격 먹은 듯했다.
어깨를 늘어뜨리며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왜 기억을 못 해요 오빠. 저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연락은 왜 전부 씹었어요! 설마 일부러 무시했어요?!”
“그, 그날이 무슨 날이죠? 여, 연락이라니… 아.”
어 그래. 기억나는 것 같다.
저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니 기억의 편린이 뇌리 한 구석을 스쳤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정체를 읊었다.
“그, 유도원 알바? 우리 팀장새끼한테 스토킹 당했던?”
옛날에 같은 노가다 현장에서 잠깐 알바했던 여대생이구나.
내 앞에서 볼을 잔뜩 부풀린 여자의 정체는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