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11화 (187/280)

211화

“오오. 정용 공. 어쩐 일인가. 고해성사라도 하러 왔나?”

변경백이 인자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신부스러운 멘트도 함께였다.

“어서오세요 용사님. 잘 오셨어요. 헤헤.”

유리아도 방긋 웃으며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수녀스러운… 은 모르겠고. 유리아스러운 멘트도 함께다.

잠깐. 근데 쟤가 육성으로 말을 한다?

“있잖아. 성녀님.”

“네?”

“말을 할 줄 아네? 내 꿈속이라 그런가?”

“후후. 이게 다 사랑의 힘이죠.”

유리아가 수줍게 웃으며 양뺨을 살짝 붉혔다.

사람 설레게 그런 멘트를 서슴없이 내뱉다니. 얘도 보통이 아니군.

내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자, 유리아는 퍼뜩 내 손을 잡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주님의 넘치는 사랑이 있으면 세상에 불가능할 게 없답니다. 용사님도 얼른 주님 믿고 행복해지세요.”

“… 어, 그래. 내가 잘못했다.”

모양새만 유리아지 알맹이는 사실상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설백과 세스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반가운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변경백 쪽을 흘깃 쳐다봤다.

‘변경백은 내가 알던 변경백이랑 좀 많이 섞인 거 같은데.’

증거는 내게 던진 인사말과 지금 보여주는 태도다. 아무래도 현실에서의 친밀도나 이해도에 따라 혼합율(?)이 개인차가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변경백이 생각보다 신부복이 잘 어울려서 좀 놀랐다. 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변경… 아니 신부님. 어떻게 신부 일은 좀 할만합니까?”

내가 놀리듯이 묻자 변경백은 난처한 듯이 웃었다.

“뭐, 신자가 얼마 없다보니 재정 상태가 좀 문제일세. 조만간 성당 문 닫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야.”

“허어…….”

아슬아슬하게 사는군. 꿈속에서조차 팔자가 박복한 양반이다.

아니, 전제가 잘못됐다. 애초에 할센베르크 령의 이미지가 내 뇌리에 그렇게 남아 있으니 이렇게 표현된 거겠지.

나는 납득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지를 치켜들어 옆에서 방실대는 유리아를 가리켰다.

“얘는 뭔가요. 어쩌다 알게 됐어요?”

“소망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일세. 수녀 활동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잡일을 좀 맡기면서 신학과 쪽으로 대입을 준비하는 중이네.”

“아. 고아원… 그렇군요.”

이 소망성당은 바로 옆의 소망고아원과 같은 재단에서 운영되는 곳이다.

거긴 참고로 우리 아버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아원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나도 모르게 개인기부를 계속했던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도 몇 번 가봤지.’

아버지가 죽고, 고아원에 발길이 끊어지자 아버지 번호로 장문의 문자가 왔었다.

무슨 일 있느냐. 연락도 없고 통 오질 않으니 걱정이 된다.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당시 삐딱하기 그지없었던 내 감성으론 ‘돈줄이 끊겨서 걱정된다’라는 식으로 비쳤었다.

그래서 반쯤 싸울 생각으로 빠따 하나 챙겨들고 찾아갔는데.

‘정작 아버지 부고를 들은 원장님이 오열했었지.’

그래서 나는 닭 쫒던 개새끼 마냥 벙쪄가지고는 머쓱하게 야구소년인 척을 했다.

여차저차 하다 보니 거기 애들이랑 진짜로 야구를 하며 놀아줬고. 그 뒤로 코 꿰이듯이 내가 기부를 이어나갔다는, 그런 재미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뭐, 여기도 딱히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성당 내부를 눈대중으로 재빨리 훑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물건이나 인물은 없다. 눈앞의 두 사람 중 하나가 악몽의 파편이 아닌가 의심이 되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는 마당이니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

‘일단 고아원을 가보고 생각하는 게 낫겠어.’

결정을 했으니 행동할 시간이다.

나는 곧장 성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저 그럼 고아원 좀 가보겠습니다. 용무가 있는 건 그 쪽이라서요.”

“오오, 그래. 원장선생님께 안부 좀 전해드리게나.”

“예. 그럴게요.”

넉살 좋게 웃는 변경백에게 웃음으로 보답해줬다.

나는 미사실의 문을 열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마당 겸 운동장인 넓은 공터를 지나자 익숙한 고아원 풍경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쯤에서 고개를 뒤로 확 돌렸다.

“윽.”

졸졸 따라오던 유리아가 흠칫 발걸음을 멈췄다.

… 이 상황은 좀 익숙한데. 전에 현실에서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지 않았나?

나는 그 때 그대로의 대사를 내뱉었다.

“야. 왜 따라와.”

“그, 그냥 저도 고아원에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 딱히 따라간 거 아니거든요.”

“네가? 무슨 볼일.”

“… 제가 제 집에 간다는데 꼭 볼일이 있어야 하나요?”

오. 유리아가 토라진 듯이 볼을 부풀리며 말대꾸를 했다.

벙어리가 아니라 덜 답답한 건 둘째 치고. 반응이 신선해서 재밌다. 나는 마냥 순종적인 것보다도 이런 까칠한 반응을 좋아하는 건가?

나는 김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뭐 그래. 마음대로 해라.”

“… 네. 마음대로 할게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배시시 웃는 유리아. 그녀가 내 쪽으로 한 발자국 성큼 가까이 다가와 걸었다.

표정과 발걸음이 유난히 경쾌했다. 그 사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다.

“와아! 유리아 언니다!”

“언니!!”

“누나아아!!”

우리가 고아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놀던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 유리아를 향한 관심이었다. 인망이 엄청나군. 박정용 유니버스에서 고아원 슈퍼인싸로 설정됐나 보다.

그런데 모여든 면면들이 가관이다. 유리아에게 엉겨 붙는 그들 몰래 헛웃음을 흘렸다.

‘별 놈년들이 다 있네.’

고아원에서 실제로 봤던 꼬마들이 있는가 하면. 이세계에서 스쳐지나간 지인들도 섞여있었다.

케른에서 반지를 받았던 타라. 병자마을의 벌레소녀 페니. 그리고 내가 얼굴도 몰라서인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얼굴이 흐려져 있는 요나까지.

내가 이세계에서 엮인 불행소녀 트리오였다.

‘모르는데 아는 사람이라니.’

얼굴은 모른다. 그런데 얼굴이 흐려진 꼬맹이가 알드콘이 지키고 싶어 했던 ‘요나’라는 걸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

꿈속의 인물 기억이라는 게 원래 이런 식이긴 하다만. 그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으니 신기한 기분이다.

‘아. 혹시…’

나는 어떤 가정을 떠올렸고. 퍼뜩 아이들의 면면을 신중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기대하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망의 한숨을 슬쩍 흘렸다.

“… 누구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유리아가 내 낌새를 보고 슬쩍 물어왔다.

거 눈치도 귀신같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아니. 찾긴 무슨. 없어.”

사실은 제나의 얼굴을 찾고 있었다.

내 꿈속에 그녀가 있을 곳이라면 분명 이곳이다. 꿈의 주인인 내가 그렇게 확신하는 불행소녀 중 하나니까.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악몽의 세상에서 등장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은 재현되지 못한다. 접수.’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등장한다면 그놈이 바로 악몽의 파편일 확률이 높다는 소리겠군.

나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고 잠깐 멍해졌다.

‘근데 제나가… 어떻게, 생겼었더라.’

나는 꿈속의 밤하늘을 보며 멍하니 상념에 잠겼다.

제나의 얼굴이 어느새 어렴풋하다. 요나의 얼굴처럼 노이즈가 끼어서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마빡을 쥐어 싸매고 허, 낮은 숨을 토해냈다.

* * *

소망고아원의 원장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게 센 인상 후덕한 할머니다.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알바생 두 명이었다.

“아이 썅, 거 그만 좀 엉겨붙어라 이 쌔끼들아!”

“어허. 애들한테 쌍욕이 뭔가 쌍욕이. 교양이 없어 이 똥자루는.”

애들의 장난에 연신 불 같이 화를 내는 알드콘.

그리고 알드콘의 불꽃 쌍소리에 면박을 주는 스칼로가 그 주인공이다.

“교양은 X벌. 네 면상이나 교양 좀 챙겨라. 애들이 너만 보면 무서워서 울잖아 새꺄. 너 땜에 내가 독박쓰고 있어 X벌럼아!”

“… 치, 치사하게 인신공격인가? 노친네 수준 참…….”

두 사람은 여기서조차 서로 쉴 새 없이 티키타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짙은 향수를 느낀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시궁창 같은 바깥의 현실과 매치가 안 돼서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 저 둘은 아니겠지. 아마도.’

딱히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간절한 바람이다.

안 그러면 저 둘 중 누군가를 내 손으로 쑤셔야 한다. 다른 사람들 먼저 죄다 쑤셔보는 한이 있어도 그건 피하고 싶다.

나는 저 두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구나. 지금 처음으로 실감했다.

“결국,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군.”

나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며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옆에 유리아가 있다는 걸 깜빡 잊고 튀어나온 것이다.

유리아가 의문스런 표정으로 퍼뜩 얼굴을 가까이 했다.

“수확? 뭘 얻으러 갔던 건데요?”

“엉?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나는 대수롭잖게 얼버무렸지만, 유리아가 끈질기게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 아니긴요. 그러고 보니 할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가더니. 정작 가서는 아무것도 안 했죠? 새벽의 토끼에요?”

“너무 알려고 하지 마. 다친다.”

“흐음. 아까도 혼자 골똘히 생각하시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있죠?”

유리아의 집요한 질문공세는 꽤 오랫동안 계속됐다.

고아원을 나와서 공터를 지나, 다시 성당에 들어올 때까지 이어졌다.

“마침 신부님도 없는데, 저한테 고해성사 해보세요 용사님. 네?”

유리아는 짐짓 성모 마리아라도 된 양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뇌쇄적인 개량 수녀복을 입은 그녀인지라 굉장히 신성모독적인 광경이었다.

유리아 말대로 변경백은 그 사이 어디로 간 건지 안 보였다. 나는 고민 끝에, 유리아에게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성녀님. 좀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네네. 뭔데요?”

“만약에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교묘하게 변장을 한 괴물이라고 치자. 그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도플갱어처럼. 나는 그 사람을 찾아서 죽여야 되는 처지에 놓여있단 말이야.”

“… 네?”

역시나 유리아는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여줬다.

웃던 얼굴이 그대로 굳으며 난처한 기색을 띈다. ‘이 새끼 갑자기 뭔 개소리지? 뭘 암시하는 거지?’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한없이 진지하게 고해성사를 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찾아내서 족칠 수 있을까. 좋은 방법 있으면 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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