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일단 당장에 드는 의문점은 이것이었다.
“… 만약 악몽의 파편이 아닌 사람을 오해해서 죽이면… 어떻게 되지?”
그렇다. 오류에 대한 패널티가 궁금했다.
패널티가 없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어차피 꿈인데, 지나다니는 등장인물 몰살하고 다니면 그만이니까.
보통은 거부감 때문에 꺼리겠지만 매운맛 박정용은 한다. 나 같은 미친놈 대비책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시험해 볼까…?’
나는 파카 안주머니에 숨겨온 사시미칼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생각했다.
물론 잠깐뿐이다. 곧 포기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면 어쩌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게다가 지금 직면한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첫 번째 악몽의 파편을 죽였을 때를 떠올렸다.
‘다른 두 악몽의 파편들이 저항을 안 한다는 보장도 없어.’
아버지 행세를 하던 놈은 기습이 어쩌다 잘 먹혔다.
하지만 다른 놈들도 형편 좋게 기습이 먹힌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 평소 팔자 생각해보면 격렬하게 저항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렇게 되니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 나 스킬 쓸 수 있나?”
마침 여기는 인적도 뜸한 뒷골목. 시선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 애초에 전부 허상이잖아. 무슨 눈치를 보고 있냐.
… 그럼에도 두 번 세 번에 걸쳐 주변을 확인한 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한 번 시도나 해보자.’
숨겨왔던 사시미를 들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마력이 검 끝으로 모이는 것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미지화 했다.
어느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허공에 사시미칼을 휘둘렀다.
“세븐 소드 피어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난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엄동설한 바람과, 거기에 편승한 엄청난 쪽팔림의 후폭풍뿐이다.
꿈속에서도 이렇게까지 쪽팔릴 줄은 나도 몰랐다.
“끄, 으오오오…!”
노도처럼 밀려오는 민망함에 망둥어 마냥 팔딸팔딱 몸부림치고 있자니.
“거기, 미친 짓 하는 오빠!”
뒤에서 나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게 확실하다. 이 주변에서 지금 미친 짓을 하던 남자라면 나 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연실색한 나머지 탄성을 낮게 흘렸다.
“허?”
뭐지.
거기엔 세스나와 설백이 있었다.
그녀들이 인근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채,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 거기서 뭐해?”
“우리랑 잠깐 놀래?”
껄렁거리는 걸음걸이.
연신 입가에 떠 있는 짓궂은 웃음.
그리고 짧고 타이트하게 줄인 치마.
교복 마의 위에는 검은색 메이커 패딩.
게다가 세스나의 경우는 무려 파란색으로 머리를 염색(?)까지 했다.
‘저건 꼭…’
그래. 전형적인 고등학교 일진들의 모습이었다.
내 학창시절 기억으로 이미지화 돼서 그런지, 지금 기준으론 좀 유행에 뒤쳐진 차림새였다.
바짝 굳어있던 내 앞으로 세스나와 설백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상체를 한껏 밀착하며 말했다.
“오빠. 돈 좀 있어?”
“우리가 지금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조금만 빌려줄래?”
세스나와 설백이 삥을 뜯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나는 남자 양아치들한테도 잘 안 쫀다. 애초에 노가다 현장일 하면서부턴 근육과 떡대가 좀 붙어서, 양아치들 쪽에서 나를 피해다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없다곤 하지마? 나오면 10원에 이거 한 대양♥.”
드르륵! 세스나가 손목에서 전기톱을 꺼낸 뒤로는 얘기가 달라졌다.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세스나는 특유의 방글거리는 얼굴로 태연하게 전기톱을 들이밀었다. 나는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 여깄습니다.”
10원에 한 대가 아니고 10만원에 한 대라도 죽는다.
전기톱 쑤시면 알파고든 이세돌이든 박정용이든 한 방에 간다. 나는 바짝 고개를 쭈그린 채 번개 같이 지갑을 바쳤다.
“이런 위험한 건 왜 갖고 다녀 오빠? 이리 줘. 압수~.”
내 손을 장난스럽게 어루만지던 설백이 사시미를 툭 채갔다.
그녀는 칼날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다 이내 할짝, 핥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형용 못할 위험한 빛이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충격적인 행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뭐지. 대체 뭐지.’
아니, 꿈이니까 설백이랑 세스나가 나올 순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저 모습은 뭐야.
왜 교복이냐? 왜 일진 양아치지? 그리고 왜 하필 나를 삥뜯는 거냐고.
내 머릿속 두 사람의 이미지는 이런 껄렁한 거였나? 그렇진 않을 텐데?
‘… 두 사람한테서 도망친 신세라 그런가…?’
그렇군. 가능성 있다.
내가 무의식중에 ‘피하고 싶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서 저런 꼬라지가 된 것 같다. 나는 침음을 삼키며, 뱀처럼 얽힌 세스나와 설백의 손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그, 그럼 가진 것도 다 드렸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비굴한 웃음과 함께 총총 물러나던 내 뒷덜미를 덥석. 설백이 붙들었다.
숨이 턱 막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강제적으로 멈춰졌다.
“크, 헉.”
“잠깐만 오빠.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설백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왔다. 갑자기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불쑥. 상체를 아까보다 더욱 밀착했다. 세스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들러붙는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나를 끼운 채 제들끼리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까 오빠 좀 귀엽다. 내 취향이야.”
“아, 나도 좀 맘에 들어. 몸이 꽤 좋네요 오빠?”
만지작 만지작. 두 사람이 내 몸을 더듬으며 나를 품평하더니.
“잘됐다 오빠.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우리랑 잠깐 같이 놀래요? 어차피 할 일도 없죠? 딱 보니 개찐따 같은데.”
“여친도 없죠? 하는 짓 보니 없을 거 같아요. 그럼 콜?”
갑자기 이 새끼들이 명치에 극딜을 먹이기 시작했다. 뇌내 세스나와 뇌내 설백의 맹공에 피토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나머지 그런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집에 좀 가보려고요…….”
“에이. 개소리하지 말고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저희랑 좀 놀아요 오빠. 네?”
세스나가 고혹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팔짱을 깊숙이 끼웠다.
뭉클.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팔에 닿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유추하긴 어렵지 않다. 나는 번뇌를 물리치기 위해 육군 복무신조를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드득. 설백이 반대쪽에서 내 팔을 부술 것처럼 세게 쥐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야. 너 X발 뭐하냐?”
서슬퍼런 목소리로 말하는 설백.
나한테 하는 말인가. 제 발 저려서 화들짝 설백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니라 세스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세스나는 보란 듯이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하긴. 오빠 꼬시고 있는데?”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년아.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웃겨. 내가 먼저 발견했어.”
“말은 내가 먼저 걸었잖아.”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진다. 오뉴월에 서리를 뿌릴 법한 싸늘한 눈빛이 교차했다.
이내 나는 두 사람의 안중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세스나와 설백은 각자 교복 앞섶을 뒤적이더니 무기를 꺼내들었다.
세스나는 내가 옛날에 쓰라고 줬던 엘더리치의 단장을. 그리고 세스나는 언제나처럼 전기톱을 말이다.
“어 그래. 해보자 이거지? 좋지 뭐. 안 그래도 전부터 너 마음에 안 들었어.”
“누가 할 소리를? 빨리 덤비기나 해 이 개년아.”
왜 갑자기 제들끼리 싸우냐. 내부분열인가? 영문을 모르겠다.
어쨌든 이건 신이 내린 기회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다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두 사람이 전의를 불태우는 동안 슬금슬금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전력질주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앗, 오, 오빠?”
“이 새끼 또 어디 갔어?!”
두 사람의 시야 바깥으로 사라지기 직전. 내가 도망친 것이 발각되었다.
등 뒤에서 당황에 찬 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해진 나는 한층 발을 잽싸게 놀려 미친 듯이 골목을 질주했다.
세스나와 설백이 뒤늦게 내 뒤를 쫓아오며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정용님!! 가지 말아요!!”
“또 이렇게, 말도 없이 도망치는 거예요? 너무해요!!”
두 사람이 절박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 악물고 두 사람을 무시했다.
이내 세스나와 설백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성공적으로 따돌린 것이다.
“… 쓰읍.”
나는 낮게 한숨을 흘렸다.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두 사람이 사라지기 직전에 외쳤던 말이 자꾸 머리를 뒤흔들어서 그랬다.
‘그래. 그거였군.’
단순히 내가 두 사람을 피하고 싶어서 저런 모습으로 등장한 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양아치 같은 꼴로 등장해서 나를 압박한 거다.
… 중간에 지들끼리 왜 싸웠는지는 모르겠다만. 덕분에 살았으니 됐다.
“여긴 또 어디야.”
나는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시가지에서 10분 거리 정도 떨어진 아파트 밀집 지역이었다. 잘 떠올려보니 내 기억에도 익은 장소다.
“아. 여기였군.”
조금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자 역시나 예상대로다.
아버지의 출신 고아원과, 거기서 같이 운영하는 ‘소망성당’이라는 작은 성당이 하나 있었다.
‘성당이라.’
고아원 쪽은 개인적으로 기부하느라 자주 가봤지만. 성당 쪽은 영 접점이 없었다. 덕분에 신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일하는 수녀는 물론 신자 얼굴 하나 모른다.
“…….”
그런데 왜일까.
내 발걸음과 관심은 고아원이 아니라, 자꾸 성당 쪽으로 자석처럼 끌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의심이 갔다.
‘한 번 가볼까.’
이곳은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든 악몽의 세계다.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데는 분명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성당으로 다가갔다.
“계십니까…….”
끼이익. 낡은 대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진 성당에 대한 이미지가 빈약하다 보니 성당의 구색도 굉장히 빈약했다.
나무 칸막이로 작게 마련된 고해실을 지나갔다. 미사를 드리는 널찍한 방이 곧장 나를 반겼다.
“허.”
나는 강대상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두 사람을 눈에 담았고. 피식 웃어버렸다.
복장을 봐서는 이 성당의 담당 신부와 수녀다. 하지만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까 양아치 이인조랑 같은 맥락인가.’
내가 한국에 정 붙였던 사람들 죄다 뒈지거나 손절 당해서 그런가.
어째 배경은 명실상부 지구의 대한민국인데. 등장하는 사람은 이세계 사람들뿐이었다.
지금 내 앞에 등장한 신부와 수녀도 마찬가지다.
“언제 업종변경 하셨습니까. 변경백님.”
나를 천천히 돌아보는 검은 신부복 차림의 남자는 할센베르크 변경백이었고.
그 옆에서 입을 뻥긋거리며 인사하는 수녀님은 유리아 루에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