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추억과 악몽
어느 순간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뜨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 어, 응? 으음?”
당황의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3단콤보로 나왔다. 그만큼 황당했다.
내 앞에 펼쳐진 것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가지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어… 아니.”
사방으로 뻗은 아스팔트 도로.
번쩍이는 LED광고판과 가게 간판.
이제는 오히려 낯설어진 동양인 면상의 김치맨들과 현대적인 패션들.
확실하다. 내가 똥털 때문에 환생트럭 쳐맞고, 이세계 사출되기 직전까지 살았던… 수원 화성의 건설현장 주변 시내였다.
“아니 이게 뭔 일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뒤적였다. 불안하면 검부터 쥐는 습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손은 허전하게 허공을 허우적댔다. 뒤늦게 시선을 내려보니 허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마, 망토도?’
검뿐인가. 흑익도 없다.
너덜너덜한 허리춤의 파우치도, 여태까지 질기게 살아남은 초보자용 가죽배낭도 없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다르다. 툭하면 걸레짝이 돼서 갈아입던 이세계산 옷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죽기 직전에 입고 있었던 곤색 셔츠였다.
“꾸, 꿈을 꾸는 건가?”
그래. 꿈.
생각해보면 내가 들어온 곳은 이름부터가 피안의 ‘악몽’이다.
그렇다면 여기는 진짜 꿈속의 세계란 말인가. 지금 내가 퍼질러 자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나… 감각이 현실적인데?’
나는 손을 쥐락펴락 해보고, 싸대기도 갈겨봤다. 주위를 둘러보고 냄새도 맡아봤다.
감각도 진짜다. 싸대기는 아프다. 행인들은 아무리 봐도 진짜 사람들이고, 내가 기억하는 시가지 특유의 퀘퀘한 냄새도 난다.
“허. 이게 대체 뭔…….”
그런 역겨운 익숙함 속에 내던져진 상황에서 삐빅. 드디어 익숙한 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용사지원 시스템의 패널 생성음이다.
[퀘스트 발생 (에픽)]
[명칭: 종속퀘스트 ? 악몽의 파편 제거]
[난이도: 전설]
[상세: 마녀의 심연을 멸하려는 자,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꿈의 주인 ‘박정용’의 기억 속에 숨은 ‘악몽의 파편’ 세 마리를 사살하라. 마녀는 길었던 악몽에서 눈을 뜨고, 피안의 악몽은 비로소 당신의 소유를 인정할 것이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0/3) ― 미충족]
[조건2: 24시간 내에 게이트를 열고 악몽에서 탈출 ― 미충족]
[보상: 멸망의 신기 ― ‘피안의 악몽’ 소유 자격 부여.]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신기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상태창 패널. 그런데 갑자기 지구로 사출당한 지금은 오히려, 이 패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란 인간이 얼마나 이세계에 물들고 타락(?)했는지 새삼 깨달아서 슬퍼졌다.
‘아니… 근데, 악몽의 파편이 뭔데 십덕아.’
물론 슬픈 것도 잠시. 곧 엄청난 고민에 빠져야 했다.
이 꿈속의 세상에서 악몽의 파편을 세 마리 잡으라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악몽의 파편이 뭔지 정확한 설명이 없다.
이놈의 퀘스트 패널이 X같이 불친절한 건 꿈속이라도 어째 변함이 없었다.
“뭐 일단… 여기가 꿈속은 맞다는 거지.”
나는 습관적으로 중얼거리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세계에서 혼자 생활할 때가 많아서 로빈슨크루소마냥 혼잣말 장인이 됐는데. 이건 현대사회에선 병신 낙인찍히기 딱 좋은 습관이다.
‘여기가 내 기억 속이 맞다면…’
다른 건 몰라도 시간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몇 년도인지. 날짜는 며칠인지 등등.
내가 노가다판 전전하며 수원과 평택을 와리가리 치고 살았다 보니, 같은 화성 시내라도 시간대에 따라 살았던 집이 다르다.
‘일단 쌀쌀한 거 보니 겨울 같은데.’
겨울에 수원 화성의 시가지라.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시간대가 좁혀지긴 한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라서 문제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곧장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보자… 있다.’
왼쪽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걸려 나왔다.
핸드폰 자체는 시간대를 가늠해주지 않는다. 물건을 워낙 막 다루다 보니 핸드폰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 이 폰…!”
하지만 손에 쥐어진 하얀 스마트폰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이건 좀 기억이 날만하다.
박정용의 한국 인생 레전드 사건 탑3 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룸메이트 핸드폰 절도 사건.’ 그 이후에 반강제로 바꾼 핸드폰이니까.
나는 확인삼아 잠금화면을 해제하고 달력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2018년 12월 24일]
[11: 30]
‘역시나.’
예상대로 2018년 겨울이다.
환생트럭으로 요단강 익스프레스 타던 시점에서 딱 2년 전쯤 되시겠다.
‘평택에서 배관조공하다 팀장새끼랑 대판 싸우고 때려쳤었지.’
그 때 팀장이랑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평소에도 만인의 적이었던 정신병자 새끼라 짚이는 게 너무 많다.
어쨌든 기숙사 생활할 때, 룸메들이 짜고 내 핸드폰 훔쳤던 게 하도 어이가 털렸던지라. 업무환경 열악해도 숙식대 돈으로 챙겨주는 곳에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내 집이나 한 번 가볼까.’
이때가 자취 생활을 했던 얼마 안 되는 기억이다. 덕분에 그 때 살았던 집은 아직 빠삭하게 지리를 파악하고 있다.
‘여기다.’
으슥한 골목 어귀에 놓인 후줄근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이름은 소망빌라. 실제 비주얼은 ‘뒤틀린 황천의 빌라’가 더 어울릴 낡아빠진 건물이다.
사는 사람들도 나 포함해서 던전 잡몹 같은 놈들 밖에 없던 걸로 기억한다.
“301호였던가…?”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마자 곧바로 혼잣말이 나왔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나는 3층의 1호 현관문 앞에서 천천히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했다. 지금까지 웬만한 비밀번호는 아버지 생일로 설정해왔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은 거침없었다.
―삐리릭, 삑.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문의 잠금쇠가 풀렸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다 현관에서 덜컥 발걸음을 멈췄다.
“불이 왜…….”
분명 여기는 나 혼자 사는 집일 텐데. 내가 없었음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거기서 일단 위화감을 느껴서 발을 멈췄고. 단칸방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포착했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멈춰버렸다.
‘… 뭐지.’
꿈속의 꿈? 아니면 무의식의 발현인가?
털털한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하나 있다. 나는 천천히 그 사람에게 다가가며 그를 불렀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버지. 나도 같이 웃읍시다.”
방 안에 있는 것은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본 기억도 가물가물한 웃는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뭐긴 뭐여 이눔아. 집 안이 돼지우리여 뭐여? 이러고 살면 골병들어 새꺄.”
아버지가 집 안 구석구석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한다.
나는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뭐 틀린 말이 아니어서 웃은 것도 있고. 나보다 정리 안 하고 살았던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겼다.
‘이런 거였나. 악몽의 파편이라는 게.’
따라 웃은 가장 큰 이유는 그걸 깨달아서 그렇다.
나는 방 옆에 작게 딸린 부엌으로 터덜터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먼지가 잔뜩 쌓인 선반을 뒤적거리며 아버지와 잠깐 말을 섞었다.
“여기엔 왜 있습니까.”
“아들내미 이사했는디 집들이도 못 오냐? 각박해서 살겄어 이거.”
“아뇨. 그 소리가 아니라요.”
드디어 찾았다. 이 방도 오랜만이라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부엌 선반에서 식칼을 꺼내들었고. 곧장 아버지에게 그것을 치켜들었다.
“넌 X발 뭔데 그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냐고. 아버지 죽은지가 언젠데.”
순간 방바닥을 힘차게 박찼다. 한 달음에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이세계 최강급이었던 육체는 온데간데없고, 물먹은 것처럼 무거운 한국인 시절의 몸이었다. 움직이는데 위화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무방비한 아버지… 정확히는, 아버지의 가죽을 뒤집어쓴 무언가를 기습하기엔 충분한 속도였다.
“아니, 야 정용아! 지금 무슨…!”
아버지(였던 것)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주워섬겼다. 하지만 어림없다.
푸욱. 식칼이 거침없이 아버지의 뱃가죽을 파고든다. 아버지의 두 눈이 순식간에 부릅 뜨였다. 나를 쳐다보는 눈에 당황이 가득했다.
“어떻게, 네가… 이런…….”
아버지가 배신감 어린 눈빛으로 호소하며 감성을 파는가 싶더니.
씨익. 입꼬리가 귀 끝까지 찢어졌다. 그 안에 숨어있던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 설마, 이런 반응을 하다니. 놀랍구나 꿈의 주인. 가장 심혈을 기울인 위장이었는데. 어떻게 바로 눈치챘나.
츠츠츠. 놈의 형상이 점점 허물어졌다.
인간의 살가죽이 녹아내리듯 흐물흐물해지고, 거기에 남은 건 무정형의 시커먼 괴물이었다. 반으로 갈라진 몸뚱이 안에 날카로운 이빨만 가득 보이는 흉한 괴물.
괴물은 연신 킬킬대며 웃었다. 아주 흥미만만한 기색이 다분한 광소였다.
―대단히 흥미로운 정신세계구나. 일부러 네가 가장 있었으면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존재들에만 골라서 숨었는데 말이야.
눈앞의 괴물… 추정 ‘악몽의 파편’은 나를 도발하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웃음소리가 심히 거슬렸다. 나는 놈의 입 안에 쑤셔 박힌 식칼을 우드득, 한 바퀴 회전했다.
그러나 손맛이 딱히 없다. 아니나 다를까 괴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렇게나 살아있길 바라면서. 정작 아버지가 존재하는 세계는 온 힘을 다해 부정하는구나. 나의 현혹술이 이렇게까지 거부당하는 건 처음이라 좀 당혹스럽군.
듣자하니 무슨 현혹술을 쓴다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진작에 죽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어도.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아무런 위화감을 못 느끼도록 하는… 그런 종류의 최면인 것 같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리 싸물고 뒤져. 기분이 좀 역겹네.”
빙글빙글빙글.
시커먼 괴물놈에게 찔렀던 칼을 연신 돌려댔다. 별 데미지가 없는 것 같길래 이번엔 훅훅 연속적으로 쑤셔봤다.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다만 칠흑의 괴물은 내 반응 자체가 재밌다는 듯이 더욱 크게 웃었다.
―흐흐흐. 너무 노하지 마라 꿈의 주인. 여기는 네놈의 기억을 토대로 내가 제작한 허구의 세상이다. 창조주한테 열내봐야 너만 손해야.
“…….”
띠껍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괴물 주제에 나보다 이성적이군.
나는 식칼을 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아니꼬운 눈으로 괴물을 가만히 쏘아봤다.
츠츠츠. 괴물은 특유의 갉아먹는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고. 이내 방바닥 아래로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너무 맥없이 당해버렸다만. 나머지 둘은 나처럼 쉽진 않을 거다. 크흐흐흐.
놈은 3류 악당 대사와 함께 말끔하게 사라졌다.
보통 제일 먼저 개쳐발린 사천왕 새끼가 꼭 ‘후후, 나는 사천왕 중 최약체에 불과하다’ 같은 자기비하적 발언을 자주 한다. 저 새끼가 그런 느낌인가 보다.
‘그래서, 퀘스트는?’
나는 극심하게 피곤해진 몸을 침대 위로 내던졌다. 잠시 후 문제의 퀘스트 패널이 다시금 내 앞에 등장했다.
[알림 ? 악몽의 파편을 사냥했다.]
[조건1: ‘악몽의 파편’ 사냥 (1/3) ― 미충족]
한 마리 사냥 성공으로 뜬다.
역시 아버지 탈을 쓴 그 검은 괴물이, 내가 사냥해야 하는 악몽의 파편이 맞았다.
“내가 간절히 있길 바라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것…….”
나는 악몽의 파편이 슬쩍 흘렸던 단서를 곱씹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였다는 소리다. 그 사실 자체가 불쾌해져서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피곤하다. 침대에 누우니 이대로 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졌지만. 이내 자리를 박차고 현관문을 열었다.
‘시간이 없어.’
이 악몽에는 분명 24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다.
꿈속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한밤중. 그러니까 내일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방금의 아버지처럼 개족같은 놈들과 두 번이나 더 마주쳐야한다는 소리가 된다.
“후. 가볼까.”
나는 날이 바짝 선 사시미 하나 챙겨서 성큼성큼 방을 나왔다.
집 주변의 골목길을 의미없이 어슬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