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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05화 (181/280)

205화

모스크덴의 시신 위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찰나.

버석. 유원지 광장 쪽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둠 속으로 흘깃 시선을 던졌다.

“… 모스.”

덩그러니 서 있는 시커먼 신형 하나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챙이 넓은 시커먼 모자 아래 검은 고글과 까마귀 가면. 넝마가 된 코트를 펄럭이는 남자.

기억 속의 인간사냥꾼 듀라스, 그대로의 모습이다.

“마음에 들어?”

나는 대충 손에 집히는 걸 듀라스의 발치께로 던져줬다.

철퍽. 질척한 소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그것은, 모스크덴의 다리 조각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듀라스에게 헤죽 웃었다. 진심인지 연기인지 솔직히 나 자신도 이제 잘 모르겠다.

“널 위해 쇠빠지게 준비했다. 중2병 10새꺄.”

모스크덴 때와 비슷한 멘트로 도발했다.

스슥. 까마귀 가면 위의 시커먼 고글이 나를 향한다. 안에서 분노로 미친 듯이 발광하는 붉은 눈이 보인다.

“여신을… 모스를, 우리를… 박해하는, 괴물이구나.”

스르릉. 듀라스가 코트 안에서 익숙한 기역자 곡검을 꺼내들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몸을 웅크린다. 특유의 춤추는 듯한 자세를 이번에도 취하고 있었다.

“죽여야 한다. 전부.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 괴물은, 죽인다…!”

나도 클클거리며 천천히 쌍검을 뽑아들었다.

‘그래. 너는 전에도 그런 반응이었지.’

이놈은 처음부터 호락호락 항복을 받아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건 박정용 오피셜인데. 어떤 거대한 좌절과 마주했을 때,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분노한다.

듀라스는 전생에서 후자였고. 지금도 역시나 후자였다.

‘남은 물의 에테르는… 두 개.’

충분하다.

이제 동료도 없는 듀라스 단신을 이기는 데는 하나만 있어도 떡을 친다.

스르릉. 나는 틀어쥔 쌍검을 놈의 면상에 겨누었다. 조소가 섞인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좋지. 죽여 보든가.”

카아앙!

나와 듀라스가 맞부딪쳤다.

“쉽진 않을 거다!!”

나는 남은 불, 땅, 바람의 에테르를 한 번에 들이켰다. 한층 날렵해진 육신과 감각으로 한 달음에 듀라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전생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듀라스에게 파고들었다. 내가 그의 동선이나 습관, 그리고 사용할 패를 대부분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극…!”

듀라스는 그 확신에 찬 저돌맹진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전생보다 소극적으로 내 공격에 대응했다.

카앙, 카캉! 놈이 연신 내 공격을 막아낸다. 그러나 전처럼 매서운 반격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어떤 노림수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주면 나는 땡큐지.’

이대로 몰아붙이다 그대로 결착까지 내주겠다. 무슨 헛짓거리 따위 시도도 못하도록 틀어막아 주지.

그렇게 결심한 나는 한층 거세게 양손을 휘둘렀다. 칼날과 칼날이 부딪치는 섬광이 점점 격렬하고 빠르게 듀라스를 압박해 들어간다.

‘빈틈!’

그리고 듀라스의 수비에 틈이 생겼다 싶으면, 나는 기다렸다는 양 그곳으로 멸망의 대검을 찔러넣었다.

푸확! 화염을 두른 대검이 스스로 움직여 허공을 갈랐다. 어검술을 사용한 회심의 기습이었지만, 듀라스가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역시 저 이상한 움직임은 성가시다.’

프로메테우스도 안 뜨는 걸 보면 정제화된 스킬이 아니라, 듀라스 본인만의 특수한 움직임… 고유스킬이라는 건데. 상대하는 입장에서 농락당하는 것 같아서 정말 짜증났다.

듀라스가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불꽃이 엉겨붙은 코트자락을 잘라내 버렸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 내게 뿌리려 한다.

“그렇게는 안 되지!!”

순간 눈이 번득였다.

놈의 움직임을 포착한 순간 연화를 사용했고, 나는 듀라스의 뒤편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기포…!”

내가 있던 방향으로 폭발의 룬과 함께 기폭주문을 영창하던 듀라스였지만. 내가 순식간에 증발하자 눈을 부릅떴다.

후두둑. 영창이 멈추자 폭발의 룬들은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한 템포 늦게 듀라스의 시선이 등 뒤의 내게 향했다.

“잡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듀라스의 면상에 칼날을 꽂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우우웅. 듀라스의 정수리에 해골표식이 떠올랐다. 그것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검을 찔러넣었다.

‘끝이다…!’

내가 승리를 직감하고 미소짓는 그 순간. 놈의 까마귀 가면 부리가 쩌적, 반으로 갈라지며 활짝 열렸다.

듀라스의 쩍쩍 갈라진 입술이 드러났다. 그는 무언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훅!”

놈이 물고 있던 무언가를 내게 뱉어냈다.

얇고 긴 강철바늘이었다. 물건의 정체를 안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푸직. 바늘은 내 왼쪽 눈에 명중했다.

“끄아아아악!!”

상상을 불허하는 고통과 반쪽짜리 암흑이 뇌를 쑤시고 들어온다.

탱그랑! 내질렀던 검은 그대로 놓쳐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엎어져 땅을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이런, X발…! 도, 동요하면 안 돼!!’

지금껏 많은 방식으로 죽어보고 상처도 입어봤지만, 산채로 눈알을 쑤셔진 건 처음이다.

아무리 나라도 처음 느낀 유형의 고통에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무언가, 강화된 바늘인가?!’

땅의 에테르가 무용지물이다. 놈의 권총처럼 마법적으로 강화된 게 틀림없다.

이대로 아파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도 듀라스가 태세를 정비하고, 내게 반격을 가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또 죽고 만다! 그럴 수는 없어!!

“후우, 후우, 후욱…! X발 나는 하후돈이다 하후돈이다 하후돈이다아아…!!”

나는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머리를 비웠다. 그리고 눈에 박힌 바늘을 단숨에 뽑아버렸다.

쑤욱, 눈알이 딸려 나오는 듯한 끔찍한 이물감이 들었다.

“끄아악…!”

나는 신음을 애써 눌러 죽이며 곧장 물의 에테르를 들이켰다.

파란 기운이 눈 쪽으로 집중되며 고통이 싹 가셨다. 곧 암전되었던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왼쪽 시야 구석으로 듀라스의 코트자락이 펄럭였다.

“X발!!”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개처럼 낮게 몸을 엎드렸다.

후웅. 내 머리칼 위로 기역자 곡도가 싸늘한 궤적을 남겼다.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히어로 센스가 아니었다면 목이 날아갔을 위치다.

“인정한다. 너 진짜 징한 새끼구나. 한 방 먹었어.”

나는 바닥에 나뒹굴던 멸망의 대검을 어검술로 내 손에 끌어왔고.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설마, 거기서 숨겨둔 수가 또 있을 줄이야.’

끊임없이 나오는 특이한 곡도. 폭발의 룬, 그리고 더블배럴 권총까지.

그 모든 무기들을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도 놀라운 마당인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작전을 변경한다.

아직 내가 모르는 무기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무식하게 몰아붙이는 건 오히려 악수가 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빠르게 듀라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전투를 준비하면서도 머리는 풀가동 중이었다.

‘전생과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내가 같은 테크니션이니 안다.

폭발의 룬은 아까 실패했으니 다시 사용할 확률은 적다. 한 번 까발려진 수법을 다시 사용하는 것의 리스크를 저 새끼도 뼈저리게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아는 변수 행동은 하나. 더블배럴 권총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그 때문에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괴물은… 죽여야, 한다…!”

역시나다.

듀라스는 주문처럼 같은 말을 읊조리며, 그 자리에 우뚝 정지했다. 그리고 빠르게 코트 소매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내 쥐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곧장 자세를 낮추며 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연화.’

스르륵. 시야가 순간 깜빡이며 듀라스의 배후를 점했다.

듀라스는 전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번개같이 뒤를 돌았다. 코트 소매에서 꺼낸 무언가를 내가 나타난 곳으로 겨누었다.

권총. 새빨간 총신이 인상적인 더블배럴 권총이 내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끝났어 새꺄.”

네게 권총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그리고 배후의 접근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이번 공방은 수를 읽힌 내 패배로 끝났겠지.

하지만 내쪽에서 먼저 전부 간파했다. 이래서 같은 수를 다시 쓰는 게 위험하다는 거다.

“스팅어!!”

타아앙!

놈이 권총을 한 발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내가 스킬을 영창했다.

지근거리에서 맹렬하게 쏟아진 기탄이 듀라스의 손목을 후려쳤다. 놈은 총알 두 발을 발사하기도 전에 권총을 놓쳐버렸다.

“크욱…!”

반면 놈이 발사한 탄환은 내 입술을 지나 볼을 할퀴고 지나갔다.

파슷. 새빨간 섬광이 지나간 자리로 화끈한 통증과 함께 볼의 살점과 핏줄기가 튀었다.

‘아프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휘청이는 듀라스의 앞으로 권총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에 날아간다.

“이 대사도 한 번 쯤은 싶었어.”

철컥. 날아가는 권총을 내가 잡아냈다.

그것을 즉시 듀라스의 미간에 정확히 겨누었다. 우우웅. 듀라스의 머리 위로 해골 표식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총알이 스쳐 볼까지 찢어진 입술로, 나는 귀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 석양이 진다.”

타아앙! 발사된 붉은 궤적이 듀라스의 미간을 꿰뚫었다.

사냥 표식과 연계된 엄청난 위력 덕분인가. 듀라스의 육신은 몇 초 동안 허공에 붕 떴다가, 이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후두둑. 깨진 고글과 까마귀 가면의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 괴, 물… 죽…”

듀라스는 흐리멍텅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이내 입을 멈췄다.

죽은 것이다.

“…”

줄줄줄. 듀라스의 미간에 선명한 구멍이 뚫렸다. 새어나오는 피와 뇌수가 바닥에 넓게 퍼져나갔다.

나는 놈의 시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시체 위로 권총을 팽개쳤다.

“버러지 컷.”

길었던 싸움의 종료를 알리는 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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