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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204화 (180/280)

204화 분노의 질주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7월 13일, 23시 15분]

[장소 ― 운터란트. 디스트릭트10, 망자의 계곡 하류 부근]

꽤 오랜만에 생명의 위험을 알리는 표식이 등장했다.

“… 오우. 안 나오면 섭하지.”

얼떨떨하게 패널을 읽는 한 편. 그것으로 반쯤 확신했다.

세 갈래길 중 어딘가에 문제의 탈주용사들이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타이밍에 회귀점이 갱신될 이유가 없으니까.

‘선택을 잘 해야겠…’

나는 턱을 긁적이며 고민하려다,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코앞에 목이 잘린 채 나뒹구는 내 시체를 봤기 때문이다.

“으오왁 X팔! 이거 뭐여 썅!”

오랜만에 당하는 상황이라 바닥에 나자빠졌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러나 베테랑 경력자답게 곧 정신을 차렸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랜턴을 발동시켜 시체에 갖다 댔다.

우우웅. 불길한 보랏빛과 함께 기억의 격류가 머리로 쏟아진다.

“끅…”

고통에 비틀거리길 잠시.

나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들었다.

“…”

무언가에 홀린 사람마냥 성큼성큼 유원지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유원지를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낮은 울음을 토해내며 날아갔다.

* * *

유원지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까마귀. 돌아가세요. 간신히 얻은 안식까지 방해한다면, 내 전력을 다해 당신을 막…”

궁니르를 들어 올리며 지겹도록 반복된 멘트를 내뱉던 알테어.

그녀는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흡, 숨을 삼켰다. 당연히 멘트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카아앙! 알테어가 황급히 들어올린 궁니르가 멸망의 대검과 맞부딪쳤다.

“싸물어. 뒤질 준비나 해 씨X년아.”

나는 으르렁거리듯 말하며 히죽 웃었다.

알테어는 인상을 찌푸리며 궁니르를 거칠게 휘둘렀다.

“… 무례한, 침입자군요!”

쿠과광!

힘에서 차이가 완연하다 보니, 멸망의 대검으로 기싸움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검을 밀어낸 궁니르가 나를 압살할 기세로 다가온다.

‘연화.’

곧장 연화를 발동시켰다.

스르륵. 부릅뜬 알테어의 눈동자가 사라지고, 붉게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만 온통 시야에 가득하다.

우우웅. 알테어의 정수리 위로 시커먼 해골표식이 떠오른다.

“죽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목을 자를 기세로 검을 내질렀다.

검날이 목에 닿기 직전, 알테어는 비명처럼 외쳤다.

“삽탄! 지옥의 묵시록!!”

콰콰콰쾅! 궁니르가 엉뚱한 방향으로 하얀 불꽃탄을 쏟아낸다.

알테어는 그 반발력으로 퍼레이드카 위에서 밀려났다. 내가 내지른 검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쿠과과과! 백염탄이 쏟아진 장소가 새하얀 불꽃의 폭발로 연신 번쩍인다.

“역시 좀 치네. X발년.”

그 찰나의 상황에 반발력으로 회피할 생각을 하다니. 이건 좀 놀랍다.

나는 잇달아 연화를 사용해 알테어의 배후로 이동했다. 알테어가 뒤늦게 나를 포착하고는 숨을 삼킨다.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는다.’

작전은 딱히 없다. 굳이 있다면 ‘우라돌격’이다.

저 년에게 거리나 시간, 무엇이든 잠깐만 줘도 주도권은 넘어간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몰아붙여 주겠다.

우우웅. 다시금 해골표식이 알테어의 목숨을 탐하듯 새겨졌다.

“두 번은 안 당합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알테어도 간파했다.

그녀가 펄쩍 앞으로 뛰며 허리를 돌렸다. 내 전방으로 번개의 마탄을 머금은 궁니르가 겨누어졌다.

‘역시.’

그러나 상대가 500살 처먹은 베테랑인 건 알고 있다. 같은 수법이 안 먹힐 건 대충 예상했다.

나도 이미 알테어의 역공에 대한 회피기동을 하는 중이었다.

“삽탄, 번개도둑!”

파지직! 그녀가 발사한 번개의 마탄은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짜릿한 고통에 인상을 바짝 찌푸렸다.

나름 궤도를 예측하고 피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정말 가공할 탄속이다. 나는 혀를 낮게 찼다.

‘아직 멀었지!’

나는 다시금 스슥, 연화를 사용해 알테어의 배후를 점했다.

이로서 세 번째.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알테어는 반사적으로 전방을 향해 스텝을 밟는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혐오가 진득하게 어려 있었다.

“집요하군요!!”

모기 마냥 주변에서 앵앵대는 내가 어지간히 짜증났는지, 알테어는 궁니르를 파리채처럼 짜증스럽게 휘둘렀다. 다급하게 휘두른 것치곤 정확히 내 머리를 노리고 있다.

카아앙! 이번에도 귀를 찌르는 금속음이 울린다. 알테어는 흠칫 몸을 굳혔다.

“거, 검이… 날고 있어?”

내가 궁니르에 부딪친 것은 멸망의 대검과 에스파다가 아니었다.

마력을 잔뜩 불어넣어 어검술로 뽑아 올린 멸망의 대검. 이쪽 대검도 한 중량 하는지라, 이번엔 아까처럼 힘싸움에서 호락호락하게는 밀리지 않았다.

히죽. 나는 회심의 미소를 알테어에게 보란 듯이 지어보였다.

“멸망의 화염.”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몰아붙여야 한다.

내 주력기술 대부분이 노출된 상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차라리 죽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정도로 앞으로의 전투가 불리해진다!

“간다!!”

가슴에 덕지덕지 쌓인 흉마가 세 개의 검에 동시에 흘러들어간다. 화르륵. 나를 둘러싼 세 개의 핏빛 불꽃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알테어가 낭패감 어린 얼굴로 입술을 씹는다. 그리고 궁니르의 끝자락에 마력을 다급히 모으기 시작한다.

“삽탄!! 백겨…!”

“조까 X발.”

나는 멀리서 총을 겨누듯 쌍검을 알테어의 면상에 조준했다.

알테어의 표정이 흔들렸다. 내 입가에 짙게 걸린 승자의 미소를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팅어.”

콰콰쾅!

세 개의 검에서 동시에 알테어를 향해 쏟아지는 기탄. 실로 기습적인 타이밍이었다.

본래 궤적조차 보이지 않는 무형의 탄이지만, 지금은 멸망의 화염을 두르고 있어 지옥의 화염탄이 되었다.

“이, 이런…!”

알테어는 낭패 어린 신음을 흘렸다.

그녀는 날아오는 화염탄을 멍한 얼굴로 응시하다, 이내 궁니르를 세로로 들어 자기 육체를 최대한 가렸다.

콰콰쾅!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간 화염의 기탄들이 궁니르를 거세게 두들겼다. 압도적인 열기와 화염폭풍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꺄아악!”

지옥염에 휩싸인 알테어가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얕게 말아 올렸다.

‘소용없어.’

그 불은 평범한 방식으론 절대 꺼지지 않는다 알테어. 꼬우면 나처럼 불사신 돼서 자살런 하시든가.

내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가가자니. 알테어가 화염에 휩싸인 채 궁니르를 필사적으로 들어올렸다.

“삽탄!! 백경!!!”

알테어가 절규하듯 영창을 내질렀다.

콰아아! 궁니르에 장전돼 있던 물줄기가 수직으로 치솟았다.

난폭한 파도와 하얀 포말로 이루어진 수류의 고래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거세게 추락했다.

나는 하늘을 가득 메운 채 가까워지는 고래를 보고 어이를 상실했다.

“이런 미친…!”

퍼버벅!

주변에 있던 나는 물론이고, 알테어 본인도 그 압도적인 고래의 해일에 집어삼켜졌다. 한참을 수류에 휩쓸려가던 나는 흑익을 사용해 간신히 거기에서 빠져나왔다.

“푸하악!”

숨을 몰아쉬며 물의 에테르를 집어삼켰다.

수류에 휩쓸리느라 바닥났던 기력과 삭감된 체력이 모두 회복된다. 나는 한층 맑아진 정신으로 알테어를 수색했다.

“개 또라이년이 진짜 자폭 특성이라도 찍었나…”

끈 떨어진 인형처럼 수류에 휩쓸려가던 알테어의 육신은, 회전목마에 거세게 처박혀서 그 아래 널브러져 있었다.

물론 멸망의 화염도 마력의 수류 덕분에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헉… 커헉, 허억…”

전신이 바싹 그을린 채 생쥐꼴이 되어있는 알테어. 격한 기침과 함께 머금고 있던 물을 한 움큼 토해냈다.

눈의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마치 본능처럼 비척비척 일어나 궁니르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이 상태에서 맞으면 좋아 죽겠다. 그치?”

그러나 어림도 없지. 나는 이미 알테어의 배후로 연화를 사용한 상태였다.

알테어가 내 목소리에 따라 가까스로 시선을 돌렸다. 파지지직. 나는 새파랗게 번개를 뿜는 왼손의 손가락을 우드득, 풀고 있었다.

“이번엔 홍콩 말고 천국 가자, 씨X년아.”

덥석. 나는 멍하니 풀린 알테어의 면상을 우그러뜨릴 듯이 세게 쥐었다.

알테어가 나직한 신음을 흘리길 잠시. 스턴싸개가 새파란 전류를 전방위로 방사하기 시작했다.

“샤이닝 핑거어어어!!”

내가 고함과 함께 시야가 새하얗게 명멸했다.

주변이 온통 물투성이라 그런가. 전류가 차원이 다르도록 매섭게 사방으로 날뛰었다.

세상의 종말이라도 도래한 듯한 번개의 춤사위가 이어졌다.

“으… 거, 헉.”

알테어의 눈은 이미 까뒤집혀 있다. 퍼덕거리는 육체가 곧 바닥에 처박혔다.

파지직. 나는 장갑 주변에서 일렁이는 스파크를 흩어내며, 그제야 참았던 숨을 일거에 토해냈다.

“우선, 하나.”

* * *

잠시 후. 전생과 비슷한 시간대에 모스크덴이 유원지로 찾아왔다. 나는 이미 그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작동하지 않는 바이킹 앞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던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모스크덴을 보고 해맑게 웃어줬다.

“전이랑 장소도 완전히 다른데 용케 찾아오네. 반은 벌레새끼라 그런가. 내 정수리 냄새라도 나냐?”

“… 아. 아아.”

하지만 모스크덴은 내 조롱에 대꾸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른 데에 시선이 팔려서 반응을 못했다. 넋 나간 듯이 간헐적인 신음을 흘릴 뿐이다. 아마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모스크덴의 레이저 사이트가 노려보는 곳으로 시선을 훌쩍 돌렸다.

“저거? 개쩔지.”

내가 연출해놓은 유원지의 새로운 데코레이션이 어지간히 감동적이었던 걸까.

모스크덴은 그대로 털썩. 무릎부터 무너져 버렸다.

“여, 여신… 여신님…”

모스크덴이 열심히 찾는 여신님.

알테어는 반시체가 된 채, 바이킹의 선두에 여신상 대신 묶여 있는 상태였다.

“어, 어떻게… 어떻게. 저런.”

온몸이 새카맣게 그을린 데다, 안 그래도 넝마였던 옷은 사실상 대부분 벗겨져 있다.

온몸이 자잘한 칼집 투성이다. 꾸덕하게 굳은 피와 진흙으로 온몸이 엉망진창이다. 물론 칼집은 피를 내려고 내가 직접 낸 것이다.

여신은커녕 거지새끼라는 호칭도 아까운 몰골이 아닐 수 없다.

“널 위해 쇠빠지게 준비했다.”

나는 중얼거리면서 멸망의 대검을 뽑았다. 곧장 검신에 새빨간 화염을 둘렀다.

“마음에 들어? 대형 바퀴벌레.”

화르륵.

거센 화염이 들이닥치며 내 그림자를 짙게 흩뿌렸다. 악마처럼 거칠고 거대한 그림자가 모스크덴의 머리위로 천천히 가까이 다가간다.

네 여신을 저 지경으로 만든 것이 나다. 그리고 이젠 네 차례다.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여, 여신님. 듀이… 사, 살려줘…!”

모스크덴의 반응은 전전생과 그대로였다.

무참히 유린당한 알테어를 보고는 전투 의지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바닥을 박박 긁으며 내게서 멀어지려 애썼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리액션이군. 나는 히죽 웃으며 대검을 들어올렸다.

“오지 마아아아아!!”

그런데 직후 모스크덴이 절규하며 내게 건틀릿을 내밀었다.

피피픽! 무언가 날아와 내 팔에 박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그것을 뽑아냈다. 갈색 용액이 든 주사기였다.

[상태 이상 ― 석화]

‘미친. 별 게 다 있군.’

석화 독은 지금 내 기억상 처음 맞아봤다. 내가 바리에이션의 다양성에 감탄하는 찰나,

꾸드득. 손가락 끝에서 감각이 사그라들더니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X발.”

욕을 씨근거리며 곧장 물의 에테르를 들이켰다. 화려한 푸른 기운이 몸을 감싼다. 굳어가던 신체 말단의 이물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부릅뜬 눈을 모스크덴에게 부라렸다.

“귀찮게 하네. 개버러지 새끼가.”

퍼걱!

직후 질펀한 파육음이 모스크덴에게서 울렸다.

내가 들고 있던 대검을 그대로 던져버렸고. 건틀릿을 끼운 모스크덴의 오른팔을 썩둑 잘라버린 것이다.

“아… 아, 아아아악!”

모스크덴이 잘린 팔의 단면을 부여잡고, 바닥을 마구 구르며 통곡한다.

나는 그 추한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쌍검을 뽑아들었다.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한 방에 보내줄게. 먼저 가서 여신님 묫자리나 닦아놔라 씨X놈아.”

어느새 난 모스크덴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발 아래 엎드린 모스크덴은 양철깡통 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온몸을 굳혔다.

지이잉. 레이저 사이트가 내 미간 정 가운데를 조준하고 있다. 넋나간 목소리가 깡통 안에서 흘러나왔다.

“괴, 괴, 괴… 괴물.”

우드득, 뿌득. 콰드득!

모스크덴은 듣기 싫은 유언을 마지막으로 온몸을 갈갈이 찢겼다.

“허억… 허억. 허억.”

내 말마따나 모스크덴은 정말 대형 바퀴벌레 같았다.

아무리 잘라대도 좀처럼 죽지 않았다. 놈의 육체가 일말의 반응도 없을 때까지 도륙을 계속하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뿌드득. 모스크덴의 갈비뼈에 박힌 대검을 어거지로 뽑아냈다. 나는 얼굴에 흐르는 땀과 피를 대충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남은 새끼. 한 놈.”

소매로 얼굴을 닦다가 피가 눈에 들어갔는지 세상이 온통 적갈색이다. 알테어도 모스크덴도 피가 검었으니 누구의 피인지 잘 모르겠다.

“흐. 흐흐. 흐흐흐흐흐…”

아무튼 기분이 절로 고양되는 색감이었다.

나는 걸레짝이 된 모스크덴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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