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마왕과 성녀
모르는 길을 지도에 의지해 찾아갈 때와, 아는 길을 그대로 되돌아갈 때는 시간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회귀점에서 병자마을로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병자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얼른 가 봐라 쫄따구. 네가 물어보기로 했잖느냐!”
“… 으, 아.”
루시다. 그리고 유리아다.
두 사람이 마을 구석에 짱박혀서 성당 쪽을 노려보며 옥신각신하고 있다.
주로 유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안절부절 했고. 루시는 그런 유리아를 신나게 타박을 하는 중이었다.
“… 뭔 일이야 또.”
보나마나 루시가 또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떨어진지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이 지경이라니. 발 달린 트러블 공장이 따로 없다.
나는 일부러 기척을 죽이고 두 사람에게 접근했다. 좀 놀라게 해줄 심산이었다.
“저 멀대같은 개구리 인간의 꿍꿍이를 밝히기로 했잖아!”
“… 우우.”
두 사람은 내가 가까이 접근한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실랑이를 계속했다.
전후사정은 정확히 모르겠다만. 나는 방금 루시가 빽 소리친 시점에서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직감했다.
‘… 그렇네. 정작 얘네한테 통보를 안 해놨네.’
추측컨대 스칼로가 내 부탁대로 루시와 유리아를 지켜주기 위해 접근했지만. 두 사람은 스칼로를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저렇게 경계하는 모양새 같다.
갑갑한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인정. 이건 설명을 안 한 내 잘못이 맞다.’
스칼로는 못 생겼다.
아니. 진짜 농담 안 하고 개못생겼다.
못생긴 내가 봐도 커버가 안 된다. 존나 못생겼다. 동지끼리 이 정도면 진짜 처참한 거다.
‘못생겼다 해야 하나… 정확히는 혐오스럽지.’
무려 개구리 인간이다.
세상에 귀여운 생물들 많고 많은 가운데 하필이면 개구리.
만화 캐릭터처럼 귀엽게 합쳐놨으면 모르겠는데. 여긴 현실이다. 묘하게 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인간과 개구리를 합쳐놓은 끔찍한 혼종. 그것이 스칼로다.
‘나야 생명의 은인이고… 남자 외모 따위 신경을 안 쓰니 상관없지만.’
감성이 나 같지 않으면 외모만 봐도 질색할 법도 하다. 특히 양서류를 싫어하는 여자들은 더더욱.
이건 스칼로 본인도 눈물을 머금고 인정한 사실이다.
‘… 얼굴부터가 밥도둑이긴 해. 응.’
인간과 양서류 그 중간쯤의 매끈하고 질척한 피부. 그 몸에서 나오는 끈적한 액체.
미역줄기 같은 특이한 재질의 초록색 머리칼. 샛노란 눈동자 속 가로로 찢어진 동공.
사냥꾼 느낌이 나는 가벼운 경갑 차림에, 말 그대로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역관절 구조의 다리. 갈퀴가 달린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우욱. 십…’
상상만 했는데 햇반 땡긴다.
세 공기는 이 자리에서 뚝딱할 자신이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까지 해서 정했는데 뭘 꾸물대느냐!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새삼 몸서리를 치자니 루시가 유리아를 압박했다. 보란 듯이 손으로 가위를 만들어 유리아의 앞에 대고 흔든다.
“… 으으.”
유리아는 루시의 말에 찍 소리도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메모를 끼적여 조심스럽게 루시의 눈앞에 갖다댄다.
[너무 징그러워요. 무서워요. 잡아먹히면 어떡해요.]
일거수일투족이 소극적이던 유리아치고는 격한 액션이 곁들여졌다. 어지간히도 스칼로와 접촉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스칼로.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겁니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도 무섭… 이 아니라! 너 내 쫄따구 하기로 했잖느냐! 상관이 까라면 까는 게지 잔말이 많구나!”
“… 으으.”
유리아는 그 말에도 딱히 필담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뭐야. 진짜야? 마왕의 쫄따구가 된 성녀라니. 대체 내가 없는 사이 둘 사이에 무슨 해프닝이 있었던 거냐. 궁금증이 폭증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용사가… 내 미련한 시종놈이 위험하단 말이다!”
직후 루시가 유리아의 어깨를 붙잡으며 일갈했다.
슬슬 깜짝 등장해 사태를 해명하려던 나였으나. 뭔가 지금 나가면 분위기 머쓱해질 것 같아 얌전히 손을 내렸다.
반면 루시는 유리아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잔뜩 줬다.
“벌써 4번이나 회귀점으로 시간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게야 분명히!”
“아, 우.”
“그 괴상한 개구리 인간과 용사는 친해보였다. 분명 그 개구리 인간은 용사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 어서 용사의 뒤를 쫓기 위해서라도 그 개구리와 끝장을 봐야 한다!”
“… 우응.”
“계집. 너도 용사가 죽는 건 싫다면서!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루시의 서슬퍼런 추궁에 유리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시는 유리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 놈이 걱정돼서 참을 수가 없다. 어차피 부활한다고 해도! 그래도 싫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죽게 놔두고 싶지 않단 말이다!!”
쭈우욱.
루시는 유리아의 탄력 있는 볼을 양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뭘 망설이느냐. 얼른 가서 저 괴물 개구리 놈과 담판을 짓거라!”
“으… 으아으!”
볼을 잡아당기는 게 아팠는지 유리아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팔을 마구 휘저으며 루시를 떼어놓으려 애썼다.
하지만 루시는 절대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희열에 찬 얼굴로 양볼을 마구 주물러댔다.
“이, 이 맛이었구나. 이 맛에! 용사놈이 자꾸 내 볼을 못 살게 구는구나!! 나도… 나도 만질 거야!!”
“아우우! 아흐!”
…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부활하고 요 6개월 동안 내리갈굼이나 배웠다니 통탄에 겹다. 나는 그쯤에서 광기에 젖어 발광하는 루시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등장한 나 때문인가. 두 여자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특히 루시가 심했다.
“으하아악! 요, 용사! 오, 왜, 왜 여기…? 아니, 언제부터?!”
모양 빠지는 비명과 함께 철푸덕 자빠져 버리는 루시.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극적인 반응이었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한참 전부터 있었지.”
“하, 한참 전…?”
순간 루시의 얼굴이 헤쓱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살짝 드러난 그녀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 그… 들었느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 놈이 걱정돼서 참을 수가 없다!”
“아아악! 말하지 마! 나, 나, 나는 그런 말 안 했어!!”
루시가 귀를 틀어막으며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했다.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세상이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나는 이죽거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뭐 그래. 정 그렇게 걱정되면 너도 같이 가. 어차피 성녀님만 데려가나 너까지 포함되나 그게 그거니까 상관없다.”
“걱정 안 했다니까! 허, 헛소리 하지 말란 말이다!!”
“알겠다고. 그런 걸로 하십쇼.”
더 이상 놀렸다간 울리겠다 싶어서 더 이상 언급은 안 하기로 했다. 대신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성당으로 들어왔다.
사실 두 여자들의 해프닝이 아니어도 나는 성당을 가장 먼저 들렀을 거다. 나부터가 스칼로한테 중요한 용무가 있으니까.
“… 스칼로.”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어두운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름밤의 눅진한 공기가 환자들의 고름 썩는 내와 섞여 코를 찌른다.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기에 왔다. 전생의 메모에 적혔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알테어와 같이 구제활동을 했던 스칼로 역시 한통속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스칼로와도, 싸울 수도 있고.’
물론 나도 그런 가능성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원래 그렇잖은가. 떠올리기 싫은 가정이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법이다.
넓은 천막 깊숙한 곳의 강대상 앞.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리는 스칼로.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지나간다.
“뭐 놓고간 거라도 있나? 자드키엘을 죽이러 간다더니… 커허헛.”
스칼로는 돌아온 나를 보고 잠깐 눈을 끔벅였고. 이내 넉살좋게 농담을 던져왔다.
스칼로 입장에선 자드키엘 죽인다고 호언장담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돌아온 꼴이다. 저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지금 태도로 보면, 오히려 내가 돌아오길 바랐다는 행색에 가깝다.
“한 잔 하겠나? 아깐 자네가 베풀었으니 이번엔 내가 쏘겠네.”
스칼로는 강대상 위에 놓인 포도주를 나무 대접에 따르더니 내게 건넸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술은 좀 그렇고요. 잠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슴다.”
“물어보고 싶은 거? 그게 뭔가 친구.”
“알테어가 탈주용사들과 함께 자드키엘에게 향하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더군요.”
포도주를 홀짝이던 스칼로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꿀꺽. 스칼로가 입에 머금은 포도주를 삼키며 말했다.
“… 정말 죽이러 갔다 왔긴 한가 보구먼. 커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나무 대접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온다.
스칼로의 차분한 노란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도 지지 않고 마주봤다.
방금 그 반응은 좋지 않은데. 나는 몸에 긴장을 채우며 물었다.
“스칼로. 알고 있었습니까?”
빙빙 돌아가지 않는다. 떠보지도 않는다. 정면에서 부딪쳤다.
노빠꾸 노퓨쳐 예스 상남자 기질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내 생명의 은인이자, 한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에겐 그게 예의라고 판단했다.
“그래. 알고는 있었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하던 스칼로는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바닥이 꺼지며 한없이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미 반사적으로 흑백의 쌍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 내 행색을 읽은 것인지, 스칼로는 포도주를 마저 비워버리더니 말했다.
“오해는 말아 친구. 나는 그 여자가 하는 짓을 함구해주고 있을 뿐. 그 쪽으로는 일절 협력하지 않고 있네.”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과 어떻게든 믿고 싶은 자신. 두 마음이 한동안 치고 패고 너절하게 싸웠다.
결국 허, 하고 짤막한 웃음을 흘렸다.
“술 처먹고 운전은 했는데 음주운전은 안 하셨다?”
“친구. 나는 똥자루 노친네를 돌보느라 그 여자의 지식이 필요했어. 그리고 그 여자도 자기가 꿈꾸는 상사화를 구해올 동안 병자들을 돌봐주고… 괴물을 처형해줄 사람이 필요했지. 거기서 이해관계가 합치해 협력하는 사이일 뿐일세.”
스르륵.
검 손잡이 위로 머뭇거리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하지만 스칼로를 쳐다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의심과 적의를 담고 있었다.
“… 그 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믿게나 친구. 어디까지나 병자의 치료에 한한 협력관계일세. 그 외 사적인 건 서로가 모른 척을 했을 뿐이야. 내가 함부로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네.”
한동안 말 한 마디 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성당 천막의 눅눅한 공기 중에 가득했다.
“아저씨… 싸워?”
그리고 침묵과 긴장을 깬 것은 둘 중 누구도 아니다.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