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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98화 (174/280)

198화 연기대상 후보자들

나는 뽑아낸 아래턱을 가만히 쳐다봤다.

알테어의 피에 젖은 입안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반으로 찢어진 혓바닥이 너덜거리며 붙어 있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다.

“씁.”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알테어의 손을 치웠다.

뽑아냈던 아래턱을 퍼즐 맞추듯, 그녀의 얼굴에 끼워 맞췄다.

“또 개소리하면 다음엔 안 붙여준다.”

나는 물의 에테르를 알테어의 반토막난 입에 흘려 넣었다.

파아앗! 눈부신 푸른빛과 함께 찢어졌던 턱살이 순식간에 붙는다. 흐르던 핏줄기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절단된 관절과 살점도 거짓말처럼 아물었다.

“아, 흑… 으윽…!”

알테어는 손을 더듬거려 다시 붙은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떨궜다.

나는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미, 미안해요… 그, 그만하세요…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까… 너무 아파요. 흐흑…!”

“허?”

나는 황당한 나머지 헛웃음을 흘렸다. 500년 살았다더니 한다는 짓이 즙 짜기냐.

헥터 카사스는 치밀한 근성과 관록이 엿보이는 작전이라도 있었지. 나를 막겠다고 큰소리 쳤던 것치곤 한심한 꼬라지가 아닐 수 없다.

‘뭐, 이러면 나야 좋지.’

그래. 괜히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것보단 이렇게 순응적인 게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그림자사슬을 꺼내려 했다. 유원지에 돌아온 이상 도망치거나 허튼 짓을 못하도록 묶어놓기 위해서였다.

“여신… 님.”

하지만 직후 깨닫게 되었다.

알테어의 허튼 짓은 이미 진작에 시작됐다는 것을 말이다.

“울… 울지 마. 여신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고독의 모스크덴. 알철깡통을 뒤집어쓴 거구의 흑혈병 감염자. 어느새 유원지의 어둠 속에 그의 신형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신님. 괴롭히는, 나쁜 놈은… 내가, 없애줄 거니까.”

모스크덴의 시선은 피투성이로 널브러져 구슬프게 우는 알테어에게 향해 있었다.

지이잉. 놈의 왼쪽 눈 대신 달린 레이저 사이트가 내 미간에 꽂혔다. 붉은 광선이 분노를 표상하듯 연신 깜빡거렸다.

게다가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 여신을 박해하는, 괴물.”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 위였다.

털퍼덕. 자이로드롭의 끝자락에 올라타 있던 시커먼 신형이 모스크덴 옆으로 착지한다.

“이 도시에, 사방에, 괴물이 가득해.”

검은 모자와 검은 고글, 그리고 검은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

스르릉. 검은 코트 안에서 기역자 곡도를 양손에 꺼낸다. 그리고 내게 겨누었다.

“죽인다. 괴물은, 모두. 죽여야 한다.”

인간사냥꾼 듀라스. 그의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까마귀 마스크 안에서 울려 퍼졌다.

특이한 외날 곡도가 달빛을 받아 시리게 빛났다. 한 손은 어깨 위로, 그리고 한 손은 내쪽으로 쭉 뻗은 특징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썅년이…!”

나는 곧장 욕지기를 주워섬겼다.

부릅뜬 눈을 알테어에게 향했다. 알테어가 왜 그렇게 갑자기 눈물을 쏟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자고로 여자의 즙은 남심을 울리는 법이다. 다른 길목의 동료들이 추격한 상황을 예측하고, 말하자면 자해공갈쇼를 벌인 것이다.

“후우.”

그리고 알테어는 언제 그렇게 펑펑 울었냐는 듯, 나직한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두 탈주용사에겐 보이지 않도록 입술만 움직여 내게 속삭였다.

―나를 살려둔 선택. 이젠 후회하나요?

그렇게 말한다.

알테어의 눈가에 미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입장이 뒤집혀 사면초가가 된 나를 비웃듯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열받게 하는 천하의 개썅년이군.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한 음절씩 또박또박 으르렁거렸다.

“내가 죽든 살든. 반드시 너는 죽게 될 거다 씨봉방년아.”

쪽수를 이용한 트릭쇼는 좋아하지 않는다. 헥터 카사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500년 전 용사들은 다 이 지랄인가? 나는 이를 으득으득 갈아재끼며 메모 한 장을 망자의 함에 더 추가했다.

[알테어 바토리를 무조건 죽여라. 가능하면 고통스럽게 죽여라.]

이제 내가 잔류사념을 회복하면 증오심 때문에라도 반드시 유원지로 올 거고.

회복을 못 하더라도. 이 메모를 보면 알테어에게 뭔가 중요한 게 있는 줄 알고 무조건 올 거다.

‘몇 번을 죽더라도 반드시 죽인다.’

마지막 인류애가 날아갔다.

박정용의 자비심 없는 40단 컴보를 보여주겠다. 너희들이 살아남는 데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솔직히 이번 생은 글렀고.’

나는 전투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다른 길목을 선택했을 때도 모두 나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합류한 탈주용사들이 2대1만으로도 벅찬 상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알테어까지 더해 3대1이 될 판국이다. 솟아날 구멍이 요원하다.

“듀라스. 모스크덴. 잠시만 시간을 끌어줘요. 나는 궁니르를 찾아와서 합류하겠어요.”

내 뒤에선 알테어가 유유자적하게 그런 통보를 하고 있었고. 종종걸음으로 전장을 이탈하는 중이었다.

이가 갈리는 상황이었찌만. 제 집 앞마당 마냥 설치는 알테어를 저지할 수도 없었다.

“받들겠습니다. 여신이여.”

잠깐 알테어에게 시선을 돌린 사이. 듀라스가 쏜살같이 내게 접근해 곡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크윽!”

채애앵! 손바닥이 찌르르 울리는 손맛. 베스타크와 곡도가 맞붙어 길게 울었다.

검은 고글 안으로 듀라스의 붉은 흉안이 보인다. 나를 향해 집착과 광기를 흩뿌리는 그 눈을 보고 실감했다.

‘집중 안 하면… 죽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까 알테어 저년한테 처먹인 물의 에테르 2개가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씨근거리며 멸망의 대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에테르 풀도핑을 감행했다.

우우웅. 짧게 공명한 대검이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속전속결!”

나는 에스파다까지 뽑아들고, 세 개의 검으로 듀라스를 몰아붙였다.

태태탱! 듀라스는 처음엔 내 공격을 제법 수월하게 막아냈다. 나는 속으로 슬쩍 감탄하는 한 편. 질풍 같은 연격으로 놈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아싸 좋구나!!”

한 방이 묵직한 멸망의 대검.

정석적인 궤적으로 파고드는 베스타크.

그리고 변칙적으로 사각에서 쏟아지는 에스파다.

나는 정신이 빠질 듯한 연격으로 듀라스를 몰아붙였다.

“그으윽…!”

그 중에도 특히 멸망의 대검이 쥐약이었다.

콰앙, 콰아앙! 타격당할 때마다 듀라스의 무기가 우그러지다시피 했고. 그 사이 쌍검으로 연격을 쏟아내면 어김없이 생채기가 생겼다.

‘세븐 소드 피어스!’

어느 순간 검 세 개를 동시에 휘둘러 마력검을 쏟아냈다.

채채챙! 듀라스는 무수한 곡도를 코트 안에서 마구 꺼내 마력검을 격추시켰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특이한 모양 덕분인가, 곡도가 날아오는 꼴이 부메랑 같았다. 속도와 궤적만 보면 마력검보다도 빠르고 변칙적이지 싶다.

“윽!”

어느 순간. 놈이 내게 돌멩이 몇 개를 던졌다.

시퍼렇게 빛을 내는 문자가 적힌 돌. 그 빛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빛나는 순간. 히어로 센스가 감각을 미친 듯이 확장시켰다.

나는 숨을 삼키며 백스텝을 밟았다.

“기폭.”

퍼퍼펑! 돌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내 신형을 마구 바닥에 패대기쳤다.

“크학!”

나는 골통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폭연 속에서 더 이상 듀라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히어로 센스의 날선 감각으로 주변을 쳐다봤고, 이내 좌측면으로 멸망의 대검을 휘둘렀다.

후웅, 가공할 파공성과 함께 멸망의 대검은 허공을 갈랐다. 낭패감에 아찔해진다.

‘이런!’

대검의 붉은 궤적 아래. 듀라스는 몸을 뱀처럼 유려하게 숙여 달려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쇄애액! 내 목을 노리고 수 개의 곡도가 쏟아진다.

“페, 페이탈 쏜즈!!”

너무 다급한 나머지 스킬 시동어를 비명처럼 내질렀다.

촤자자작! 가시촉수가 미친 듯이 쏟아지며 내게 향하던 곡도를 모두 쳐내버렸다.

‘미친… 움직임이 너무 유동적이잖아!’

낭패감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듀라스는 굳이 따지자면 나 같은 부류였다. 현란한 와리가리(?)로 전투의 주도권을 제어하는 테크니션 계열.

이런 계열은 처음 만나면 굉장히 상대하기가 까다롭지만, 같은 계열인 이상 패턴이 파악되면 정말 상대하기 쉬워진다.

‘문제는 파악하기도 전에 전투가 끝난다는 거고!’

나는 짜증내듯이 뒤를 돌며 검을 마구 휘둘렀다.

채채챙! 예리하고 은밀한 궤도에서 날아오던 주사기 몇 개가 허공에서 박살나 흩어진다.

“아… 깝, 다.”

모스크덴이 회전목마 뒤에 숨어있다가 더듬더듬 말한다.

치지직! 부서진 주사기에서 흩어진 용액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용액은 닿는 것을 닥치는 대로 녹여갔다.

부식액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력한.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가지가지 한다 아주!”

전투의 경험.

역시 경험 부족이 치명적이다.

‘1대1이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놈들의 깡 스펙 자체는 나보다 살짝 낮다. 그러니 지금이 밤인 만큼, 기공술까지 사용하면 스펙으로는 거의 1.7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듀라스가 워낙 변칙적 움직임이 잦아서 그렇지. 지금만 해도 1대1 전투 자체는 내가 압도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연계 공격에는 답이 없어!’

아무리 스펙이 높아져도 사각 공격의 반응에는 한계가 있다.

뒤통수에 빵꾸 내서 눈깔을 추가로 달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자동차 후방카메라도 아니고 X발.

모스크덴의 기습에 신경을 쓰다 보니 듀라스와의 공방 집중력도 흐려진다.

‘어검술 자동방범도 안 통해.’

투사체 자체는 ‘적의’가 없다.

그래서인지 모스크덴의 주사기 저격엔 적의를 감지하는 어검술도 반응을 못했다.

너무 치명적이고. 너무 짜증나는데. 히어로센스 말고는 어떻게 대처할 수단도 없다. 그래서 환장 팔짝 뛰시겠다.

‘이번 잔류사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전투의 경험에 있어서 초장에 우위를 잡는다. 그리고 일거에 몰아붙여 압살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 아니다.

놈들의 전력. 그리고 전투와 연계 스타일을 최대한 끌어내서 분석한다.

그리고 최대한 회귀점과 가까운 장소에서 묫자리 찾아 죽는다!

‘아 몰라! 나머진 다음 생의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오늘 할 과제 내일로 넘기는 대학생마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약 3초. 나는 찰나의 소강상태에 곧장 종식을 고했다.

투콰앙! 지면을 박차고 다시 듀라스에게 달려든 것이다.

“흡!”

차아앙! 순간 듀라스의 품으로 파고든 나는 에스파다를 하늘 높이 쳐올렸다.

당황한 듀라스의 움직임이 격해졌고, 거리를 벌리려다 태세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이다!’

천금 같은 빈틈이 보였다.

나는 온힘을 다해 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명치에 베스타크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삽탄.”

이런 X발. 측면에서 알테어의 짤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말의 미련없이 발을 땅에 박아 제동부터 걸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몸을 틀어 달려가던 궤도에서 이탈했다.

“이터널 선샤인.”

콰아아앙!

직후 내 진로 상으로 새하얀 빛의 기둥이 쏟아졌다.

시야를 새하얗게 메우는 태양처럼 눈부신 광선. 궤도에 있던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리는 압도적인 빛의 기둥이었다.

정신 나간 위력에 나도 모르게 넋을 잃었다.

“… 허.”

나는 눈앞에 펼쳐진 초토화의 현장에 헛숨을 삼켰다.

광선이 적중한 자이로드롭의 거대한 기둥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구구궁, 땅이 길게 울리며 귀가 먹먹해졌다.

푸화악! 엄청난 흙먼지가 울컥 일어난다. 짙은 안개와 섞여 시야가 한층 좁아졌다.

“아래턱을 힘으로 뽑히는 경험은 500년 동안 처음이네요. 얼마 안 남은 저의 첫경험을 가져가셨어요. 까마귀.”

그리고 흙먼지 저편에서 알테어가 걸어오고 있었다.

쿠구구구. 빛의 광선을 뿜어낸 궁니르가 압도적인 열기로 아지랑이를 일렁거렸다.

철컹. 붉게 달궈진 포신의 강선이 번들거린다. 알테어는 그것을 똑바로 내게 겨누었다.

“그런 거침없는 행동까지 똑같아.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마녀의 기사… 수호 씨가 자꾸 떠올라요. 그래서 정말 그립고. 끔찍하게 증오스럽습니다.”

위이이잉.

궁니르의 포신으로 압도적인 빛의 에너지가 재차 집결했다. 눈이 멀 것처럼 쏟아지는 빛 속에서 알테어의 붉은 눈이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으음. 알테어는 나를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군. 복잡한 심경인데.

그 순간, 수호 형님이 낄 데 빠질 데 구분 못하고 한 마디 얹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체념이 담긴 웃음이었다.

‘끝났다.’

1대2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1대3? 장난하냐.

가뜩이나 근접, 버퍼, 원거리의 3박자 구성이다. 찢어진 쪽지에 써있던 것처럼 묶어놓고 맞는 미래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빠르게 세 사람을 향해 치고 나갔다. 놈들이 긴장을 채워 넣으며 각자의 무기를 내게 겨눈다.

‘바로 지금!’

나는 그 순간 눈을 번득였고, 무기를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그리고 철푸덕. 그 자리에서 냅다 주저앉았다.

“누님! 항복! 무조건 항복하겠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호바바밧, 스스로도 깜짝 놀랄 속도로 지면에 머리를 연속으로 처박았다.

박정용식 사죄의 108배가 시작되었다.

“음?”

“엉?”

“으?”

갑작스런 내 행각에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는 와장창 부서졌다.

대신 듀라스, 모스크덴, 그리고 알테어의 의문에 찬 탄성만 그곳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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