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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97화 (173/280)

197화 누님, 어른이 되세요

나는 딱히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반박하지도 않았다.

이유가 부족하냐고? 당연히 부족하지 X발. 어쨌든 내 입장에선 그냥 자기 삔또가 상했으니 땡깡 부리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인생 쓴맛 좀 봤다고 지랄하는 수준 보라지.’

25살 먹은 나도 세상에 쓰레기 천지라는 건 안다.

동방의 한 현자께서는 ‘인간이 5명 모이면 반드시 하나는 쓰레기가 있다’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현대에서도 통용되는 금쪽같은 금언(金言)이다.

‘네가 뭔데 그 사람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냐.’

절망적인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사수해?

흑혈병 환자들이 진실을 알고 자살을 하든 돌파구를 찾든. 그건 흑혈병에 걸린 본인들이 감수할 문제지. 누가 너보고 쳐막으라고 라이센스 줬냐.

‘지랄났다 병신년.’

뭐 내 입장은 그렇다만. 나는 알테어의 비뚤어진 사상을 교정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니 X대로 살지 뭘 쳐묻냐. 애초에 내 방해만 안 했으면 아무 간섭 안 했어.”

500살 처먹었으면 대가리가 이미 굳을 대로 굳었을 거다.

우발적 범죄자는 교화라도 되지만 사상범은 답도 없다. 저 년은 사상범이다.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고서 저러는 거다.

말 섞으면 내 아가리만 아프고. 생각하면 내 대가리만 깨진다.

“다만 어른이 됐으면. 자기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500살 먹은 어른 오브 어른에게 역꼰대질을 좀 했다.

알테어가 눈을 끔벅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을 살려놨으면 책임을 져야지. 생각보다 인간족속이 개추하니까 싹 뒤질 때까지 빤스런이나 치겠다는 거 같은데. 지구의 신이랑 비슷하네. 무책임한 쓰레기 새끼가 따로 없어.”

내가 신랄하게 비난하자 알테어는 입을 지그시 닫았다. 반박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듯하다.

못 하겠지 그럼. 틀린 말씀을 했어야지 X바꺼.

“어쨌든 마음대로 살아라. 내 방해만 안 하면 돼.”

나는 그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알테어를 등진 채 자드키엘의 시신에 걸어갔다.

문득 등 뒤에서 알테어의 눌러 죽인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 당신이야말로. 감당할 수 있겠나요?”

나는 슬쩍 뒤를 쳐다봤다. 알테어가 도전적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기와 분노. 그리고 약간의 연민이 담긴 눈빛이었다.

“까마귀. 당신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요. 당신이야말로 마녀의 자리에 불사의 마왕을 계승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무게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가요?”

“알 바냐 X발.”

“그 강대한 꼬마 마녀님도 결국은 한계가 왔어요. 아무리 불사의 마왕이 계승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개체라고는 하지만. 결국의 결국엔 그녀도 한계가 오겠죠. 그 때 당신은….”

“개소리하지 말고 가만히나 있어라. 나 너 아직 싫어한다.”

나름 진지하게 추궁한 그녀였지만. 나는 욕지거리를 주워삼기며 가볍게 잘라버렸다.

진지충 아웃. 선비충 밴. 과몰입 노. 잘라먹기를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말 잘리면 당하는 사람은 상당히 빡친다.

“… 당신처럼 생각없이, 대의에 휘둘렸다가 처절하게 후회하는 자가 바로 나예요. 기껏 조언해줬더니….”

알테어도 꽤나 빡이 돈 모습이었다.

숨까지 거칠게 식식거린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라 좀 신선하다. 방금 그 주제는 알테어에게 있어 좀 민감한 화제였던 모양이다.

“후회는 내가 할 건데 왜 누님이 지랄이슈. 이상한 새끼.”

진짜로 내 앞날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그 말로를 직접 겪었다 보니 도저히 못본 척을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드키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도망치면 뭐가 달라지나. 이러나저러나 세상 둘로 쪼개진다는데. 남자가 칼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도망쳐서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잖냐.”

“도망치지 않아서 도달한 곳이 낙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나요.”

“어? 음….”

“내가 도망치지 않아서 도달한 곳이 바로 지금입니다. 이 세상이 낙원처럼 보이나요?”

이 말에 저렇게 되받아친 사람은 처음이다. 나도 모르게 벙쪄서 걸음을 멈췄다.

너도 심사가 앵간치 뒤틀렸구나. 사람이 분수에 안 맞게 500년이나 살면 저렇게 되나 보다.

헛웃음을 흘리며 알테어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이래서 사상범이랑 대화하기 싫다는 거야.”

서로 주관이 뚜렷해서 합의점이 없다. 주야장천 대화해봐야 줄줄이 평행선만 이어진다.

의미도 없는 귀찮은 짓은 질색이다. 그래서 나랑 비슷한 독불장군 타입과 말 섞는 걸 싫어한다. 뭐 대부분이 그렇긴 하겠지만.

“이제 그쪽에서 말 걸면 턱주가리 뽑아버릴 거다. 짭성녀.”

“… 어머. 무서워라.”

“무섭긴 X발. 죽이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 하십쇼.”

나는 단단히 일러놓고는 다시금 앞으로 전진했다.

철벅. 피의 웅덩이가 깊게 고인 지역에 발을 디뎠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발이 움푹움푹 빠진다. 자드키엘의 시신이 담긴 고치는 10미터 안팎까지 다가왔다.

[알림 - 접근 경고]

그리고 한 발짝 더 전진하려 하는데. 눈앞에 패널이 하나 떠올랐다.

[상세: 이 앞, 세 겹의 안개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거짓을 간파하는 능력 없이 접근할 시, 자드키엘의 유산 ‘피안의 미궁’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웅. 서늘한 경고음과 함께 등장한 시커먼 패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낭패감에 이마를 짝 소리 나도록 후려쳤다.

거짓을 간파하는 능력. 통찰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아… X발.”

아까 동굴 가로질러 오는데 통찰의 눈은 써버렸다.

피안의 미궁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만. 자드키엘 접근을 막고 있는 걸 보니 일종의 결계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걸 뚫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안개의 벽이… 세 개?’

이러면 어차피 환영 동굴을 통과할 때 안 썼어도, 성녀의 문장 아이템 효과로는 저 결계를 뚫을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뚫을 수 있긴 하겠다. 좀 오래 걸려서 문제지.

‘통찰의 눈. 쿨타임 24시간이던데….’

나 혼자서는 저 결계 뚫는 데만 사흘이 걸린다.

그걸 여기 앉아서 죽치고 기다릴 수는 없다. 꼼짝없이 병자 마을까지 유리아 데리러 다시 갔다 와야 되나?

‘쯧. 그래. 차라리 그게 빠르긴 하겠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흘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알테어가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조금 놀란 기색이 섞여 있었다.

“… 설마, 미궁의 경계를 간파할 줄이야. 흑혈병 괴충으로 전락하길 기대했더니.”

알테어는 내가 퍼뜩 쳐다보자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리고 앞장서서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봤고. 이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알테어의 멱살을 쥐어챘다.

“누나. 함부로 접근하면 X된다고 말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았나?”

“턱주가리 뽑히기 싫어서요. 어쩔 수 없었네요.”

“… 그래. 인정.”

내가 했던 말이 있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쿨하게 멱살을 놨다.

그러자 알테어가 흐트러진 앞섶을 가볍게 정리하더니. 내게 어깨를 으쓱거린다. ‘이제 어쩔 테냐?’라고 온몸으로 비아냥대는 행색이다.

“돌아가실까요? 당신도 그 미궁을 돌파할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인데.”

처음부터 저 결계를 믿고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거군.

혹여나 말려 들어서 뒤지면 더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 X발 앙큼한 할매가 뒤질라고.’

내가 저 ‘피안의 미궁’이란 걸 돌파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한 걸 테지.

유리아의 존재를 알면서도 저렇게 강짜를 부리는 걸 보면, 쟤도 안개의 벽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나 보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처럼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속으로만 알테어를 비웃어줬다.

나중에 유리아를 데려왔을 때. 그녀가 얼마나 놀랄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일단 돌아간다. 작전상 후퇴.”

“네. 그러시죠.”

알테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신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맴돌았다. 대놓고 조롱하는 것이다.

아까부터 개깝치네 이 새끼. 티 안 나게 배빵 한 대만 칠까?

‘쯧. 지금은 쟤가 중요한 게 아니니….’

화는 나지만 보류한다.

주머니를 뒤져 펜과 종이를 꺼냈고. 알아낸 중요한 사실들을 적어나갔다.

[자드키엘은 이미 죽었다. 흑혈병은 자드키엘이 퍼뜨린 것이 아니다.]

[유원지 끝자락의 절벽에는 자드키엘에게 직행하는 동굴이 있다. 참고.]

[알테어와는 교섭 가능성이 있다. 탈주용사들을 볼모로 협박하면 금방 넘어올 거다.]

나는 다음 생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망자의 함부터 본다.

혹시나 잔류사념 회복이 여의치 않을 때. 최대한 세세하게 적어놓으면 이번 생처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흐음.”

뭐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상황이 여유롭다 보니 평소보다 장황하게 메모를 작성했다.

작성한 메모를 전부 함에 넣은 뒤.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메모까지 작성했다. 혹시나 싶어서 웬만한 경험은 다 메모해 놓으려는 심산이었다.

[중요: 지금 당장 돌아가서 유리아 데려가라. 잔류사념보다 급하다.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해라.]

또박또박, 중요한 걸 강조하기 위해 글씨도 굵게 쓰고 별표까지 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마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전생의 내가 강조하니 뭔가 있겠지’하고 유리아 데리러 털레털레 돌아갈 거다.

“까마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꿈꾸는 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핀 비밀동굴을 거의 통과했을 무렵이었다.

문득 알테어가 지친 목소리를 냈다.

“턱주가리 뽑히고 싶으면 하십쇼.”

나는 당연히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알테어는 정말 턱주가리가 뽑히고 싶은 건지, 계속 씨부려댔다.

“우리에게 남의 생명을 멋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지요. 죽이는 건 물론이지만. 살리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놨더니, 만약 그 사람이 희대의 살인마가 된다면. 나는 정말로 옳은 일을 한 걸까요?”

웬걸. 조또 관심 없고 재미도 없는 철학 강의였다.

나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상사화를 헤쳐 나가며 건조하게 대꾸해줬다.

“턱뽑 1스택. 3스택 쌓이면 진짜 뽑는다.”

“당신이 신념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았습니다. 뭔가 개인적인, 강렬한 악감정으로 움직이는군요. 과거의 수호 씨가 오직 꼬마 마녀님을 위해 움직였던 것처럼.”

하지만 알테어는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 할말을 계속해서 나불댈 뿐이다.

이윽고 동굴을 빠져나가고, 조심스럽게 유원지를 질러갈 때 그녀의 수다가 절정에 달했다.

“그래서 수호 씨와 똑닮은 당신에게는 꼭 묻고 싶어요. 까마귀. 나는… 그 때 옳은 선택을 했던 걸까요? 이 세상은 정말 그 무수한 희생을 치러가면서까지 존속할 가치가 있을까요?”

“턱뽑 2스택.”

“까마귀. 당신은 마왕 루스티카를 계승시킬 생각이죠. 그 선택은 무수한 생명을 구하겠지만, 앞으로 또 막대한 희생을 낳겠죠. 당신은…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정말 나처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거기까지.

나는 일언반구 없이 알테어에게 고속으로 접근했다.

“3스택.”

터억. 알테어의 방독면을 우악스럽게 벗겨냈다.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 속으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아래턱을 붙잡고, 있는 힘껏 내쪽으로 당겼다.

뿌드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아래턱이 뽑혀 나왔다.

“아, 아아아악!!”

알테어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엎어진다. 두 손으로 가린 입 쪽에서 철철철.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쯧쯧. 나는 혀를 세게 차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공부 못하는 새끼들 종특이야. 쳐맞기 전엔 말을 안 들어 처먹어 꼭.”

내가 나중에 후회할지 안 할지는 삼신할머니가 아니라 모르겠고. 지금 네 턱주가리 뽑은 건 후회 안 할 자신 있다.

나는 한숨을 패액,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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