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그렇게 제1회 짭성녀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가감없이 핵심부터 찌르고 들어갔다.
“우선 첫 번째. 왜 내가 자드키엘을 죽이는 걸 막는 거지? 아니지. 전부터 탈주용사 소문이 자자했던 걸 보면 꼭 나만 막는 건 아니구나. 왜 그러는 거야 누나?”
“…….”
“질문 2트. 왜 자드키엘을 지키는 거냐고. 자드키엘이랑 무슨 관계야 누나?”
“…….”
“질문 3트. 개인적으로 좀 찾아본 게 있는데. 전에는 그 대포 가지고 마왕 사냥도 열심히 했다면서. 왜 갑자기 마왕 편을 들고 싶어졌어.”
“…….”
나는 비슷한 질문을 세 번에 걸쳐서 했고. 알테어는 아가리를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갔다. 하나의 질문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쳤다.
“오케이. 접수.”
거기서 제1회 짭성녀 청문회 폐막.
이어서 제1회 짭성녀 고문식 개최.
나는 알테어를 향해 주먹을 힘껏 쥐었다. 사슬을 움직이는 수인이다.
꾸드드득! 알테어를 결박한 그림자사슬이 한계를 모르고 그녀의 사지를 조여 들어간다.
“끄으으윽!”
파슷! 옥죄던 사슬이 그녀의 하얀 살결을 파고들었다. 전신이 피로 물들어 간다.
굳게 걸어 잠겼던 알테어의 입술은 격통으로 신음을 뽑아냈다.
‘반응 좋고.’
그래. 원래 사람이든 미친개든 좋은 말로 안 되면 매를 들어야 한다.
오냐오냐 자란 새끼가 개쳐맞고 자란 새끼보다 범죄율이 높다고 한다. 왜 사람 보고 검은 머리 짐승이라 하겠는가. 매가 보약이라는 옛말 틀린 게 없다.
“내가 X발 존나 상냥해 보이지. 다 농담 같고 장난 같지?”
나는 알테어의 얼굴에 내 면상을 갖다대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고딩 때 빚쟁이들한테 들으면 가장 무서웠던 말 중 하나다.
역시 타산지석이라고. 배워놓으니 어딘가에는 써먹는군.
“대답해 누나. 나도 시간 많아서 이러는 거 아냐.”
거기서 제1회 짭성녀 고문식 폐막.
이어서 제2회 짭성녀 청문회 개최.
“좋아. 양보하지. 직설적인 게 싫으면 좀 돌아가 보자고.”
그쯤에서 옥죄던 사슬을 슬쩍 풀어줬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알테어의 얼굴에 살짝 편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선심쓰는 양 어깨를 으쓱거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알테어에게 물었다.
“좋은 친구 뒀더라. 듀라스랑 모스크덴? 뻐킹 크리미널 크루즈 여행 중에 만났다지?”
“… 하아… 하아.”
“그 친구들이랑은 어쩌다 같이 일하게 됐어. 범죄자 골목식당 찍으려고 그런 건 아닐 거고. 하는 짓 보면 갱생 프로그램도 아닌 거 같던데.”
“…….”
“그리고 운터란트는 왜 배신했어? 혹시 뭔가… 남몰래 알게 된 비밀이라도 있으면 지금 말해줘 누나. 바로 풀어줄….”
“…… 툿.”
대답 대신 알테어는 입술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내 얼굴로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주르륵. 볼을 타고 업계 포상이 흘러내린다. 나는 포상에 몸둘 바를 몰라 전신을 부르르 떨었고. 이내 미친놈처럼 실실 웃었다.
“읽씹 6스택은 선 넘었지.”
제2회 짭성녀 청문회 폐막.
제2회 짭성녀 고문식 개최.
“멸망의 화염.”
설마 대화 좀 해보겠다고 흉마까지 소모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베스타크 검날에 화염을 일으켰다. 시커먼 칼날은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직. 단단히 결박된 그녀의 손바닥에 검날을 쑤셔 박았다.
“불은 답을 알고 있겠지. 작열통이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라던데.”
나는 알아두면 좋은 토막상식을 알테어에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교양과 상식이 부족한 야만인인지, 내 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러댈 뿐이다.
“아하아아악!”
비좁은 동굴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앙칼진 비명이다.
알테어의 손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빈틈없이 휩싸였다. 지글지글 살타는 냄새가 올라온다. 모 해적만화의 불주먹 친구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타다 못해 바스러질 때까지. 그녀는 비명만 내지를 뿐,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 그래 뭐. 500년 짬밥이 그냥 처먹은 건 아니야, 응?”
텄다. 아무래도 인조육체라서 고통이 좀 적지 싶다.
때려 치우자. 이 정도로 입을 안 열면 내 조악한 기술로는 대답 듣기는 글렀다. 그쯤에서 탄식하며 화염을 거두었다.
‘워우.’
불꽃을 거두자 알테어의 손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처참했다. 손목 위까지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에 에테르 병을 어거지로 쑤셔 넣었다.
“아… 흐윽.”
알테어의 입으로 고통에 찌든 신음이 흐르는 한 편.
파아앗. 새파란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에테르 기운이 새카만 손에 모이더니 순식간에 죽은 손을 복구시켰다.
흡사 탈피하는 듯하다. 불타 너덜거리는 살가죽 안으로 다시 하얀 손가락이 등장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 못 하겠냐? 그냥 목에 칼 넣어줄까?”
나는 어검술로 베스타크를 조종했다. 스르륵, 유령처럼 날아간 시커먼 검날이 알테어의 목에 밀착했다.
알테어는 지친 눈으로 그걸 쳐다봤고. 이내 피식, 방독면 안에서 짧은 웃음이 터졌다.
“내가 진실을 말해준들, 당신은 나를 죽이겠죠. 그런데 내가 왜 당신의 의문을 해소해줘야 하나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말하면 살려줄 수도 있지. 속고만 살았어?”
“네. 그렇네요. 속고만 살아서… 더는 아무한테도 속고 싶지 않아요.”
“나도 그래. 잘 봤어. 말했어도 죽였을 거야.”
“…….”
알테어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X대로 꼴아봐라. 그런다고 내 면상이 뚫리나.”
매운맛 박정용과 순한맛 박정용의 결정적인 차이가 이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과거의 나는 생명존중을 최우선으로 행동했지만. 지금 나는 나한테 방해가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
나는 오히려 비릿하게 웃으며 알테어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누나가 내 입장이어 봐. 나를 살렸겠어?”
“그게 무슨….”
“상대가 기회만 되면, 자폭을 해서라도 날 막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데?”
“……!!”
알테어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격한 감정의 표출이었다. 속내를 들킨 것이 적잖이 충격인 모양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 봐라.’
어쩌면… 전생에 그녀가 했던 행동. 혹은 무심결에 했던 말들이, 대화의 열쇠가 될 수도 있겠는데. 가능성 있다. 그쪽을 좀 파보자.
나는 필사적으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고. 이내 알테어의 마지막 발언을 떠올렸다.
“그래. 속죄. 세상을 되살려내 버린 속죄를 한다고 했던가.”
의미심장하게 툭 던졌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녀는 전에 없이 놀라며 숨을 삼켰다.
“… 어떻게. 그런 것까지!”
“어떻게는 알 거 없고. 무슨 뜻인지나 한 번 발해볼까? 용사스럽게 세상을 구해낸 게 뭐가 그렇게 죄스러운데 누나.”
“큭!”
내가 조롱하듯 말하자 알테어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남한테 절대 보여주기 싫은 흑역사라도 들킨 표정이다.
그녀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뭔가요.”
“무슨 까마귀라며. 나보다 누나가 더 잘 알더만. 요즘 나도 나를 잘 모르겠더라고.”
“지금 저와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요?”
“이 말 또 해줘야 돼? 다 장난 같고 농담 같냐고. 아몬드 씨봉봉아.”
됐다. 이제 나도 지쳤다.
말해봐야 입 아프고. 생각해야 머리 아프다. 어차피 얘 무슨 짓을 해도 말 안할 것 같다.
그리고 매운맛 박정용 율법상, 패 죽여도 소용없으면 남은 건 패 죽이는 것뿐이다.
“그냥 뒤져 누나.”
허공을 떠다니던 베스타크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알테어의 목에 밀착한 검을 그대로 조금씩 그어 내렸다.
주르륵. 선명하게 새겨진 상흔에서 핏줄기가 새어나왔다.
“여기다 누나 시체 갈아치우고. 다른 길목의 탈주용사들도 한 놈씩 누나 위로 쌓아줄게. 삼도천 나루터에서 친구들이나 마중나와 있어.”
“…!!”
“다음은 모스크덴. 마지막이 듀라스가 되겠군. 폐공장과 구시가지. 그 순서대로 있지?”
이건 협박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순수한 진심이다. 알테어의 입을 여는 걸 포기했으니 남은 건 몰살 루트뿐이지 않은가.
“자, 잠깐! 잠깐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여기에 써도 될지 모르겠다만.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알테어가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대더니. 결국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음? 갑자기 뭘.”
“내가 아는 바를 전부 말하겠어요. 그러니 그 두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요.”
“… 오호?”
“제발 부탁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 속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뿐이에요. 죄인은 나뿐입니다. 제발, 고문을 해도 나만 하고. 죽이려거든 나만 죽이세요.”
알테어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절절하게 말했다.
그 두 사람한테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둘을 처형하겠다는 소리에 바로 변심한 걸 보면, 상당한 죄책감 같다.
‘이건 또 뒷걸음질 치다 쥐 잡았군.’
운이 정말 좋았다.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이래서 사람이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나는 절박한 빛을 내는 알테어의 시선을 가만히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누나. 시켜서 했으면 살인도 죄가 아니야? 내 생각엔 그런 논리면 세상에 나쁜 새끼가 하나도 없는 것 같거든.”
“그, 그게 무슨…?!”
“누나가 조금만 장난질 치는 것 같다 싶으면. 뇌내 판사님이 그 새끼들한테 사형 때릴지도 모르겠다는 거지.”
거짓말을 섞지 않겠다는 확약을 하라는 소리다. 안 그러면 바로 네 친구들에게 ‘판사님, 비트주세요’ 들어가겠다는 협박이었다.
알테어도 금세 진의를 이해한 듯하다. 이내 고개를 슬며시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겠어요. 이제 와서… 그러고 싶지도 않네요.”
알테어는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말자고. 누가 자초한 건데. 나도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휘적였다. 알테어를 단단히 조이던 사슬이 스르륵, 형체 없는 어둠이 되어 사라졌다.
저쪽이 우악스런 박정용식 협상에 응해왔으니. 나도 그만한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묻는데. 누나. 자드키엘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나는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금 핵심을 찔렀다. 지금만큼은 나도 모르게 입가의 웃음기가 증발해 있었다.
“제가 낮에 말했지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알테어는 피처럼 붉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번엔 그녀의 눈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떴다.
방독면 안에서 알테어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드키엘은… 이미 운터란트의 용사들에게 살해당한지 오래입니다.”
충격적인 진실이 내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