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후우.”
나의 화려한 스킬(?)에 실신해 온몸을 경련하는 알테어.
나는 쓰러진 그녀를 앞에 두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서둘러 그림자 사슬을 발동시키려 했다.
“진짜는 지금부터지.”
그렇다. SM플레이의 본방은 결박부터… 가 아니고.
수틀리면 자폭을 해버리는 개미친 카미카제년과 대화의 테이블을 구축하려면. 일단 아무 짓도 못하게 온몸을 묶어놓는 게 상책이다.
‘그 전에 무기부터 무력화 시켜둘까.’
나는 알테어 옆에 널브러져 있던 궁니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장이 3미터를 넘어 보이는 거대한 마법 포격기. 육중하고 정교해 보이는 기계장치가 덕지덕지 붙어 비주얼부터가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습관처럼 빤히 쳐다보자 어김없이 패널이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명칭: 스펠 건 - 궁니르]
[보정치: 마법 사용 시, 마력량에 따라 마스터 레벨+a까지 위력을 증폭.]
[상세: 대마왕 병기 프로젝트 ‘궁니르’ 프로토타입. 에테르 증폭 장약을 삽입하여, 지정한 음성 명령에 따라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킨다. 과도한 기초마력 요구량과 경량화 실패로 프로젝트가 폐기됐으며, 사용이 가능한 자는 세계에 한 명뿐이다.]
[강화 가능 회수: 0]
‘이거 혹시, 내가 쓸 수 있으면….’
알테어가 다양한 마탄의 포화를 쏟아내던 모습을 떠올렸다.
무지막지했지. 역시 전투에서 리치 차이라는 건 무시할 사항이 못 되고. 무엇보다 솔직히 준내 멋있었다.
이참에 검사에서 포수로 전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궁니르의 손잡이를 붙잡고 슬쩍 들어 올려봤다.
“윽!”
웬걸. 꿈쩍도 않는다.
나름 제대로 힘을 줬는데 1센티도 끄떡없다. 무게감을 보아하니 크라네이드급의 힘 수치가 아니면 들어올리긴 커녕, 끌고 다니기도 요원할 듯했다.
‘역시 부술 수밖에 없나.’
결국 나는 입맛을 다시며 검을 빼들었다.
키이잉! 세븐 소드 피어스와 페이탈 쏜즈를 발동시켰다. 모든 스킬을 궁니르 한 점으로 집중시켰다.
어느 순간, 일거에 그것들을 궁니르로 때려 박았다.
“흡!”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태태탱! 높은 금속음과 함께 마력검은 불꽃을 튕기며 튕겨 나왔고. 페이탈쏜즈의 가시들은 궁니르 표면에 닿자마자 볼품없이 찌그러졌다.
“얼씨구.”
나도 모르게 황당한 탄성을 흘렸다.
엄청 단단하군. 하긴 생긴 것부터 단단하게 생기긴 했다만. 이 정도 스킬 포화에도 기스 하나 안 날줄은 몰랐다.
‘내 필살기는 생물한테만 통하고….’
사냥 표식에 이은 연화와 후방타격의 콤보는 ‘배후’를 기습할 수 있는 생물 전용이다. 무기물에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코리안 시크릿 웨펀 기질이 다시금 내 발목을 잡는구나.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 괜히 얼굴을 손으로 부볐다.
“아… 이렇게 되면.”
아예 심문할 장소를 옮기자. 궁니르를 옮기는 건 불가능하니 알테어를 옮기는 수밖에.
애초에 장소는 좀 더 으슥한 곳으로 옮길 생각이긴 했다.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위험하니까.
나는 전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 고독의 모스크덴. 그놈이 찾아왔었다.’
그리 긴 여유는 아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5-10분 가량이 지난 시점에 놈은 여기로 온다.
모스크덴의 합류시간이 이번에도 대략 그 정도라면. 지금도 한가하게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일단 정보 갱신이나 해둘까.’
나는 파우치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을 적어넣었다.
[유원지는 알테어. 공장단지는 모스크덴. 구시가지는 듀라스다.]
[알테어는 한 번에 못 죽이면 자폭을 시도한다. 폭발물 취급주의.]
유원지에 먼저 도착한 게 모스크덴이었으니, 나머지 구시가지는 듀라스 맞겠지. 나는 그렇게 납득하고는 쪽지를 찢어 망자의 함에 넣었다.
이번엔 전처럼 거칠게 안 찢었다. 혹시나 죽으면 이번처럼 이상한 오해할라.
‘움직이자.’
곧장 알테어를 들쳐 멨다. 기절한 알테어는 젖은 빨래마냥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나는 무너진 관람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옆으로 쭉 펼쳐진 높다란 절벽을 따라 걸으며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흑익을 아낄 걸 그랬나….”
유원지에서 상류로 올라가는 길은 이 절벽을 통과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절벽 위까지 건너갈 유일한 수단이었던 관람차는, 알테어가 뿜어낸 하얀 화염탄의 포화로 붕괴됐다.
이러면 아직 쿨타임이 20분도 넘게 남은 흑익이 영 아쉬워진다.
‘그래도 어딘가 통로 비슷한 게 있을 텐데.’
이대로 길이 끊어질 리가 없다.
나이트레아가 넘겨준 디스트릭트10의 지도에 따르면, 유원지에서 상류로 넘어가는 길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절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연신 맴돌았고. 이내 어떤 지점에서 우뚝 멈춰섰다.
“… 뭐야. 여기.”
벽을 더듬던 손이 벽 안으로 훌쩍 통과해 있었다.
순간 내가 환상을 보고 있나 싶어서 퍼뜩 손을 뺐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손을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우우웅. 낮은 공명음을 내며, 어김없이 손이 절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알림 - 스킬 발동: 통찰의 눈]
[거짓된 환상을 발견했다. 모든 거짓과 허위, 기만을 거절한다.]
‘환상?’
눈앞에 펼쳐진 절벽의 일부가 환상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마르크트레스의 대나무숲을 떠올렸다. 적랑이 어떤 조치를 취하자마자 신기루처럼 땅의 일부가 사라지면서, 계단이 등장했었지.
여기도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잠깐 침음을 삼켰고. 이내 큰맘 먹고 절벽 안으로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흡!”
우우웅. 역시나 내 머리는 아무 저항도 없이 절벽의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리고 환상 내부의 광경을 눈에 담고 탄성을 흘렸다.
“워. X발.”
꽃밭이다.
동굴처럼 어둡고 축축한 길목을 따라, 이름 모를 꽃들이 번쩍이며 신비한 푸른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저 신비한 푸른색. 분명 어디선가 봤었다. 나는 이내 기억 속에서 빛의 출처를 찾아냈다.
‘꿈꾸는 상사화다.’
알테어가 성당에서 보여줬던 꽃. 흑혈병 감염자들의 병기 진행을 늦춘다는 그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꽃을 주시했다. 미미르의 눈을 발동하기 위해서였다.
[아이템 정보]
[명칭: 꿈꾸는 상사화]
[보정치: ???]
[상세: ???]
[강화 가능 회수: ???]
이런 예미, 돌팔이 혐미르의 눈 같으니. 또 물음표냐.
나는 반쯤 기대를 접은 채 흘깃 베스타크에 시선을 가져갔다. 수호 형님에게도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형님. 저 꽃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습니까.”
―으음? 흐음.
수호 형님은 퍼뜩 탄성을 내뱉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멋쩍은 어조로 말한다.
―너 말이다. 보통 미미르의 눈으로 확인 안 되는 놈들을 나한테 물어보지?
“예. 그렇죠?”
―근데 그 시스템을 구축한 게 나잖아? 거기에 기재되지 않은 정보는 나도 모른다고 봐야하지 않겠냐.
“그 말은….”
―모르겠다는 소리지.
“나가 뒤지십쇼 형님.”
―힝.
아무튼 존나 기구한 박정용 인생. 세상 X바 주변에 도움 되는 새끼들이 없어.
그래. 애초에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드러워서 그냥 지나치고 말지.
“칵 퉤 X발.”
나는 혀를 차고 동굴 안으로 몸까지 밀어 넣었다.
우우웅. 젤리의 벽을 통과하는 듯한 끈적한 이물감이 전신을 휩쓸어가고. 나는 이내 꽃밭의 위에 당당히 섰다.
‘이런 곳에 이 꽃이 숨어있었다니.’
알테어는 지금까지 여기서 꽃을 따왔던 건가. 새삼 어깨의 알테어를 쳐다봤다.
이 여자도 통찰의 눈을 가지고 있나? 아니면 나처럼 비슷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보유했다거나.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겠군.’
애초에 낮에는 스칼로가 이 꽃을 따러 온다고 했다.
망자의 계곡 중류에 산재했다고 했으니… 좀 더 눈에 띄는 군생지가 있는 거겠지. 그게 차라리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으, 으음….”
그리고 그 순간. 어깨에 걸쳐놨던 알테어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움찔움찔. 몸이 가볍게 떨려온다. 고장난 몸을 움직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차리기 직전이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내려놓고 그림자 사슬을 발동시켰다.
“아, 흐윽?!”
가까스로 눈을 뜬 알테어의 온몸으로 뱀처럼 파고드는 시커먼 사슬. 그녀가 경기를 일으키듯 깜짝 놀란다.
“꺄읏!”
새된 비명이 터졌다.
촤르륵! 이내 팔 다리, 그리고 허리와 목까지 칭칭 묶인 알테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얼떨떨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알테어의 시선이 문득 내게 꽂힌다.
“… 까마귀!”
알테어의 붉은 눈이 순식간에 적대감으로 물들었다.
현 상황의 주동자가 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나 보다.
“너무 소리 지르진 마시고. 누나.”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손가락을 조금 까딱거렸다. 꾸드득. 사슬이 그녀의 육체를 조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 으윽…!”
동시에 알테어의 괴로움에 찬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전신을 격렬하게 바동거려 저항하는 그녀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림자 사슬은 마법의 사슬이다. 한 번 속박되면 디스펠 마법에는 해제돼도,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다.
궁니르 원툴 올힘법사에겐 극상성이라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나도 SM에는 딱히 관심없거든. 서로 쉽게쉽게 가자.”
나는 사슬을 조금 아래로 조종해 알테어와 눈높이를 맞췄다.
방독면 위로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눈초리가 보였다. 나는 덤덤하게 주변에서 상사화 한 줄기를 꺾었고, 보란 듯이 알테어의 앞에 흔들었다.
“그, 그건….”
그제야 알테어는 주변을 제대로 살펴봤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새파란 꽃들을 보자 그녀의 눈은 이를 데 없이 부풀어 올랐다.
“여, 여기는 대체…?!”
알테어도 적잖이 놀란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런 공간은 처음 목격한 모양이다.
역시 그녀는 여기를 모르고 있었군. 나는 알테어의 의문에 찬 눈빛과 목소리를 흘려내며, 마저 통보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 잘 해 누나. 뒤지기 싫으면.”
이겨놓고도 자폭으로 억울하게 죽은 탓에 누나한텐 악감정이 좀 남아있거든.
현생의 나는 널 용서해도 전생의 나는 널 용서 못하겠대. 그렇지 전생의 정용아?
맞아 정용아.
난 저 500살 처먹은 짭성녀 할매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어.
우드득. 손가락 관절을 풀며 입꼬리를 잔인하게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