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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93화 (169/280)

193화

유원지에 진입하자 얼마 안 돼서 알테어를 만났다.

알테어는 마스코트 동상의 잘린 목을 들고 있었고. 그 상태로 시답잖은 얘기가 좀 오갔다.

그리고 직후. 그녀가 무너져 나뒹구는 퍼레이드 카 위로 올라가더니. 그곳에 놓여있던 무언가를 들어올린다.

“인도하는 까마귀. 돌아가세요.”

그그긍. 들어올린 것만으로도 육중한 비명을 토해낸다.

거대한 대포와도 같은 물건이었다.

‘스펠 건 궁니르.’

나는 사전에 입수한 알테어의 정보 덕분에 그것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했다.

다만 글로만 봤을 때랑, 직접 저 괴물을 봤을 때는 위용의 차이가 엄청났다.

“간신히 되찾은 마지막 안식처까지 망가뜨린다면. 전력을 다해서 당신을 막겠습니다.”

철컹!

알테어는 나직이 경고하며 내게 포신을 겨누었다. 인력으로 저 흉물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은 경이를 넘어 경악을 선사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알테어는 한숨처럼 한 마디 내뱉었다.

“… 그 눈빛. 마녀의 기사와 놀랍도록 판박이네요.”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미미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

마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행색이다.

“삽탄. 화양연화.”

콰아아앙!

눈 오는 것처럼 번쩍이는 미세입자들이 시야가 어지럽혔다.

동시에 터터텅!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며, 갖가지 놀이기구들이 통제를 잃고 미친 듯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워우.”

나는 영문 모를 사태에 식겁한 나머지 신음을 조금 흘렸다.

그것이 ‘마력 과포화’ 상태라는 건 상태창이 등장해서 알려줬다.

“술래잡기를 해볼까요? 일행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날 죽이면 당신의 승리입니다.”

알테어가 훌쩍 뛰어올랐다. 그녀의 머리 위로 달려오는 롤러코스터 선두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때까지 가만히 있던 나는, 알테어의 신형에 대고 쌍뻐큐를 힘차게 뻗었다.

“내가 왜. 븅신이냐?”

그리고 알테어를 뒤로한 채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방향은 똑바로 정면. 이자나미의 심장이 가리키는 잔류사념의 방향이다.

마침 내 진행방향 끝자락 쯤에 떨어져 있군. 전생의 나도 도주를 시도했던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어, 응?!”

알테어의 포커페이스와 미미한 웃음이 단박에 박살났다.

당혹성을 터뜨린 알테어가 허둥지둥하는 것이 어렴풋이 시야 끝에 스친다. 쌤통이다 새꺄.

‘내가 쫓겨도 모자랄 판인데. 알아서 도망가 주겠다니 내 입장에서도 땡큐지.’

이번 생의 제1 당면과제는 잔류사념의 회복이다.

잔류사념을 회복하고 나면, 몰아닥치는 고통을 감내할 시간이 필요하다. 거리는 벌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벌려놓는 것이 좋다.

‘지금이 적기다!’

나는 흑익까지 사용해 전속력으로 유원지를 질러 나갔다.

원래 아끼면 똥 되는 법이다. 지금보다 사용하기 더 좋은 타이밍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다!”

푸화악! 한 번의 날개짓으로 대포알처럼 몸이 사출됐다.

바람이 거세게 얼굴을 할퀴었다. 눈에 익은 놀이기구부터,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겠는 놀이기구까지. 수많은 기물들이 일거에 내 뒤로 쓸려나간다.

“거, 거기 서세요! 서란 말이야!!”

문득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고개를 슬쩍 돌려봤다. 어느새 한참 멀찍이 떨어진 알테어가 허겁지겁 달려 내 뒤를 쫓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쌍뻐큐로 응수해줬다.

“서란다고 서면 내가 니 따까리지 새꺄!”

자고로 씨도 안 먹힐 부탁은 하지도 말아야 하고. 협박을 하려면 그럴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누님.

나는 오히려 놀리듯이 더욱 속력을 높였다. 알테어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고, 그녀의 얼굴 해상도가 점점 흐릿해진다.

‘이 주변인데…!’

알테어가 시야 끝에서 거의 사라질 때쯤. 나는 잔류사념이 감지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날개를 곧장 접고 거칠게 착지했다. 카가가각! 발이 땅과 마찰하며 흙먼지가 일어난다. 수 미터를 밀려난 뒤에야 간신히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있다!”

잔류사념은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워낙 마법진 비주얼이 험악한 데다, 시뻘건 색으로 번쩍번쩍 빛까지 나니 몰라보기가 더 어렵다.

“아니 근데….”

문제는 잔류사념과 함께 딸려오는 전생의 시신이다.

마법진 주변에 흥건하게 흩어진 내 피와 살점. 나는 잠깐 헛구역질을 했다.

“욱, X발… 진짜.”

무슨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썩은 토마토 같다.

인간의 원형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냥 말 그대로 흩어진 살점 덩어리의 집합체였다.

당장이라도 랜턴을 갖다 대려던 손이 저도 모르게 멈칫할 정도였다.

“아 X발… X발 X발 X바알…!”

나는 욕을 숨 쉬듯이 내뱉으며 손을 어거지로 움직였다. 천천히 이자나미의 심장이 사념과 시신에 가까워진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그리고 랜턴이 닿는 순간 두근, 하고 심장이 깊게 고동친다.

특유의 메스꺼운 감각과 함께 전생의 기억이 몰아닥쳤다.

“끄으윽…!”

이 특유의 족같음은 어떻게 신음을 참아볼래야 참을 수가 없다. 한동안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나는 몸을 활짝 펴며 불만 가득한 노성을 내질렀다.

“자폭은 선 넘었지 개년아!!”

이런 X발.

전생의 내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게 됐다. 믿음과 신뢰의 폭발엔딩으로 저렇게 된 거였다.

졌다 싶으면 서렌 치고 깔끔하게 세상 하직할 것이지. 추잡하게 거기서 내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겨? 이 오라질년이 진짜 상도덕도 없네.

‘그냥 이대로 도망칠까?!’

순간적으로 든 유혹.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폭까지 해서 나를 저지하려던 알테어다. 도망치면 농담 안 하고 우주 끝까지 쫓아올 거다. 지구로 가도 쫓아올걸?

‘게다가….’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괴질 흑혈병과 자드키엘에 대해 뭘 알고 있나. 물어볼 게 산더미다.

어떻게 물어보면 알테어가 대답을 잘 해줄지. 이미 생각해놓은 바도 좀 있다.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계획 변경!’

사정이 이렇게 되면 기존의 ‘속공 1대1 작전’은 물 건너갔다.

나는 전생에서 했던 대로, 다시금 관람차를 연신 뛰어넘으며 이를 악물었다.

‘몸만 제압해야 한다. 죽지 않도록!’

전생에 했던 관람차 낚시작전 그대로 간다. 다만 결과만 좀 틀어질 뿐이다.

이미 먹혔던 전적이 있는 작전이다. 변수만 없다면 이번에도 먹힐 확률이 높다.

‘잠입!’

푸쉬익. 전처럼 양쪽 끝단의 관람차에 베스타크와 나를 따로 숨겨놓고. 잠입 스킬로 기척을 최대한 줄였다.

그러자 저벅저벅. 곧 성난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악. 하아… 뭐야. 어디로…!”

알테어의 숨소리는 전생에 비해 눈에 띄게 격렬했다.

하긴 전생에선 나도 달려서 도망쳤지만, 이번엔 흑익으로 날아왔으니까. 저쪽은 발바닥 불나도록 내 꽁무니를 쫓아왔나 보다.

‘이번에도 영혼을 담아서…!’

나는 반대편 관람차의 베스타크를 창 밖에서 보이도록 살살 흔들었다.

혼신의 연기를 깃들여서 그런가. 이번 생엔 어검술조차도 보여주지를 않아서 그런가. 이번에는 전보다도 입질이 빠르게 왔다.

“삽탄! 지옥의 묵시록!!”

다만 그 순간.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투두두두! 번개를 내뿜었던 전과 달리, 이번 생의 알테어는 하얀 불꽃의 산탄을 관람차 전체에 갈겨버린 것이다.

“이런 미친…!”

쾅, 콰콰쾅!

불꽃의 폭우가 관람차를 때린다. 폭발의 면적이 비교도 안 되게 넓다. 국지적으로 시커먼 잿더미를 만들었던 번개와 달리, 관람차의 굵직한 뼈대 전체가 폭발로 요동친다.

그리고 그그그긍. 관람차는 육중한 신음을 토해내며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에라이 X팔!”

좀 더 완벽한 타이밍을 잡으려던 나였지만. 어쩔 수 없이 관람차를 박차고 나왔다.

나는 유성처럼 알테어의 정수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역시. 함정이군요.”

그리고 그 순간, 번득이는 궁니르의 강선이 내쪽으로 반사광을 뿜었다.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가 진작에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튀어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속지… 않았어?!’

전생의 경험을 감안하면, 그녀는 기습에 반응하는 민첩성이 낮다. 이건 처음부터 내가 다른 곳에 숨어있을 것이라 예측한 거다.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삽탄.”

철컹! 명령에 따라 탄피가 궁니르 사출구로 빠졌다. 포신 끝자락에 새하얀 빛이 빠르게 결집되었다.

전생을 뒤져봐도 본 적이 없는,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기류의 마력 탄환이었다.

“이터널 선샤인.”

콰아아앙!

궁니르가 광선을 토해냈다. 굵고 긴 순백의 에너지가 나를 향해 정면에서 날아온다.

눈앞이 온통 새하얗게 물든다. 에너지파를 정면에서 맞는 드X곤볼 악당 캐릭터들이 이런 기분이겠다 싶다.

“으아아 X발 연화아아!!”

머릿속까지 하얗게 뒤덮인 나머지, 알테어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러자 스슥. 시야에서 빛이 사라졌다. 붉게 나부끼는 탐스러운 머리카락만이 가득했다.

어느새 궁니르의 사선에서 벗어나 알테어의 등 뒤로 이동한 것이다.

“어, 어?!”

자기 승리를 확신했을 알테어는 엄청나게 당황했고. 사라진 나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마침내 등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나는 이미 왼주먹을 불끈 쥔 상태였다.

“누님 SM플레이 좋아하나?!”

나는 짐짓 유쾌하게 외쳤다.

파지지직. 왼손에 끼운 스턴싸개가 새파랗게 울부짖는다.

맞으면 뿅 가는 홍콩 펀치를 어깨 뒤로 장전했고. 그대로 알테어의 면상에 있는 힘껏 때려 박았다.

“내가 X발 홍콩 보내줄라니까!!”

퍼어어억!

질펀한 타격음과 함께 새파란 전류가 주먹을 순식간에 감쌌다.

파지지직! 스킬 기절 전류가 발동된다. 제로거리에서 전격을 맞은 알테어의 온몸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파들파들 경련했다.

“카… 학.”

알테어의 눈동자가 순간 핑글 돌더니.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녹 다운. 아이템 설명대로였다. 직접 접촉한 상태에서 스킬을 발동하니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새삼 스턴싸개의 사기성을 실감했고. 중얼거렸다.

“번개… 잘랐다고.”

C랭크 술법 맛이 어떠냐. 나는 장갑 주위로 튀는 스파크를 대충 흩어냈다.

그렇게 싸움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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