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망했네, 자폭!
알테어가 높다란 자이로드롭 위로 올라간 뒤. 잠깐의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이 망할… 끌려다니지 마! 초조하면 안 된다고!!’
나는 양 볼따구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쫘악! 알싸한 고통이 밀려온다. 분노와 초조함으로 점철됐던 머리가 조금은 식는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초조해하고 있다. 이 전투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초조해하면. 저년이 노리는 대로 흘러가는 거다!’
시간을 끌면 폐공장지대. 더 시간을 끌면 구시가지까지.
각 지역을 담당하는 탈주용사들이 전투를 감지하고 지원하러 올 것이다. 그 사실이 자꾸 내게 조바심을 줬다.
‘침착해. 일단 침착하고 생각을 해보자.’
시간에 구애받으니 전략도 단조로운 추격이 되고. 움직임도 단순해진다. 그러니 움직임을 읽혀서 자꾸 알테어의 마탄에 얻어맞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뭔가, 이 상황을 역전시킬만한 요소가 필요하다.’
이렇게 끝도 없이 경찰과 도둑 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술래와 도망자 입장을 바꿀 어떤 기발한 요소가….
“… 아니. 잠깐.”
나는 퍼뜩 몸을 굳혔다.
문득 벼락처럼 뒷목을 후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하잖아. 애초에 왜 내가 쟤를 쫓아야 하냐?
“하. 하하 참나. 아~ 나 X발.”
깨닫고 나니 어이가 탈탈 털렸다.
나는 연신 헛웃음을 흘리며 욕을 주워섬겼다. 어리석었던 지난날의 자신에게 내뱉는 욕이었다.
‘처음부터.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것도 전부. 계획된 거였구만?’
500년 산 할매라서 갬성이 풍부한가 했더니, 예미 지랄. 자기한테 어그로를 쏠리게 만들려는 계략의 일환이었구나.
내가 술래. 자기는 도망자. 그런 무의식적인 각인을 내게 박고. 내가 자기를 필사적으로 쫓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내 목표가 저 년 모가지 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 애초에 내 목표는 이 세 갈래길을 지나쳐서 자드키엘을 죽이는 거었다.
저 여자를 죽자고 쫓을 이유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쯧.”
나는 혀를 한 번 세게 찼다.
백척간두 위에서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에 시선을 던졌다.
지가 뭐라도 되는 양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불쑥. 쌍뻐큐를 날려줬다.
“백날 그러고 있어라 씨봉방년아! 나 먼저 간다 수고!”
두두두두! 나는 한껏 도발을 마친 뒤 총알같이 도주를 거행했다.
어찌나 필사적으로 달렸는지, 지나간 자리마다 보도블럭이 팝콘처럼 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흑익이나 아껴놓을걸!’
아쉬움에 탄식하던 찰나. 최소한 다음 생의 내게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리던 와중에 파우치를 뒤져 메모를 휘갈겼다.
[유원지 알테어. 빤스런 장인. 도발에 적대할 필요 없다. 어차피 시선만 묶어놓고 도망친다.]
나는 메모를 거칠게 찢어 망자의 함에 넣었다. 정신없이 찢어 넣느라 글자 일부가 뜯겨나간 걸 얼핏 봤다.
하지만 지금은 확인할 틈이 없었다. 개떡 같이 써있어도 찰떡 같이 알아봐주길 바랄뿐이다.
“이, 이런… 거기 서세요!”
그리고 내 후미에서 기다리던 반응이 튀어나왔다.
알테어가 다급하게 나를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실실 흘렸다.
‘상황은 역전됐다.’
나는 지금껏 터무니없이 오버스펙인 적들이랑 싸우는 게 특화돼서 말이야.
슬프게도 추격하는 쪽보단, 추격당하는 싸움이 더 익숙하거든?
“어이쿠 위험!”
피피핑! 얼음의 송곳들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쏟아진다. 나는 미친 듯이 회전하는 회전목마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피했다.
콰쾅, 콰장창! 회전목마의 모형 말들이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얼음의 포화가 끝나고 나자, 멀쩡하게 돌아가는 목마는 단 한 대도 없었다.
“하하하! 자기, 나 잡아봐라~!”
나는 대놓고 열을 돋구기 위해 같잖은 소리를 내뱉었고. 동시에 목마를 뒤로한 채 다시 도주를 재개했다.
“거기 서! 이대로… 빠져나가게 두진 않습니다 까마귀!”
알테어는 ‘아잉 거기서 자기~.’로 응수하는 대신 험악한 얼굴로 일갈했다.
그래. 저런 업계포상도 나쁘진 않지. 오히려 환영하는 바다. 저게 요즘 트렌드니까(?).
“삽탄! 지옥의 묵시록!!”
파파파파! 순백색 불꽃탄의 파도가 등 뒤를 하얗게 물들이며 내게 쏟아진다.
워낙 광범위한 폭격인지라 도망갈 구석이 요원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잘 구운 직화구이 박정용이 되고 만다!
‘막을 거. 막을 거…!’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고. 이내 머리맡이 번득였다.
‘저거다!’
곧장 흑백의 쌍검을 던져 어검술을 발동시켰다.
내 의지에 따라 쏜살같이 날아간 쌍검은 주변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마스코트 인형의 모가지를 우지직, 거침없이 꿰었다.
검 하나당 약 세 개씩 인형을 꿰자, 나는 인형 모가지를 꽂은 채로 검을 회수했다.
“고기방패!”
그리고 불꽃이 쏟아지는 방향을 향해 인형을 들이밀었다.
콰과과광! 화염탄이 인형에 닿을 때마다 폭죽처럼 불꽃이 펑펑 터진다. 시야가 연신 하얗게 번득이는 와중, 인형은 불꽃에 휩싸여 시커멓게 으스러졌다.
“아오 X발 뜨거!”
나는 그을린 손을 재빨리 털어냈다. 그 외에 큰 상처는 없었기에 다시금 발을 재촉했다.
유원지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이제 곧 밖이다. 여기만 벗어나면 이제 망자의 계곡 상류 지역이다!
“거기 서! 서란 말이야!”
알테어도 어지간히 급해졌는지 반말로 고함을 쳤다.
안 그래도 500살 처먹은 할머니한테 띠꺼운 존댓말 듣기 짜증났는데 잘 됐다.
“서란다고 서겠냐 X발! 인생 편하게 살려고 하네 할매!”
투쾅, 콰쾅! 연신 분노에 찬 번개줄기가 내게 쏟아진다.
하지만 무엇 하나 직선적으로 달려가는 나를 맞추지 못했다. 그나마 가까이 온 벼락은 슬쩍 움직여서 쉽게 피해냈다.
‘단순해.’
공격에 아까 같은 예리함이 없다.
알테어가 지금 절찬리에 초조해하고, 감정적으로 내게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멸망의 화염!”
기회를 봐서 오히려 내쪽에서 역공을 가했다.
푸화악! 불꽃이 대검에서 치솟는다. 나는 가볍게 휘둘러 핏빛의 불꽃을 알테어에게 흩뿌렸다.
그러나 알테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불꽃의 장막을 향해 포신을 겨누고 조용히 읊조린다.
“삽탄. 백경(白鯨)!”
쿠구구구! 거대한 파도가 포신 끝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얀 포말과 불길처럼 일렁이는 성난 파도가 거대한 고래의 모양으로 뭉치더니, 이내 불꽃들을 한 입에 잡아먹었다.
멸망의 화염은 평소의 집요함이 무색하게, 파도에 삼켜져 맥없이 스러졌다.
“… 수호 씨의 불꽃을 사용하는 건 놀랍지만. 내겐 통하지 않아!”
알테어가 이글거리는 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얼굴의 해상도가 아까보다 선명하다. 방금의 공방으로 꽤 거리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이런 미친!’
견제 좀 쑤셔보려다가 오히려 개피 봤다. 나는 이를 씨근거리며 다시 달리기에 집중했다.
“엇?!”
하지만 내 뜀박질은 이내 제동이 걸렸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눈앞을 쳐다봤다.
까마득한 절벽이 전방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막다른 길…?!’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철컹, 철컹! 등 뒤에서 육중한 격철음이 연신 가까워진다. 알테어가 내게 접근하는 소리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변에 눈을 돌렸고. 이내 절벽과 비슷한 높이까지 뻗어 올라간 회전관람차를 시야에 담았다.
“저거다!”
나는 황급히 관람차 객실 지붕에 훌쩍 올라탔고. 펄쩍펄쩍 점프했다.
덜커덩! 원형 철골에 열매처럼 맺혀 있는 관람차 객실을 두 세 개씩 뛰어 올라갔다.
‘여기서 저년을 완전히 뿌리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어검술을 사용했다. 양쪽 끝부분의 두 관람차 창문을 동시에 깨부쉈다.
관람차 하나엔 베스타크를 집어넣었고. 나머지 하나엔 내가 숨어들었다.
‘잠입!’
푸쉬익.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어둠 속으로 사르르 녹아들었다.
숨을 삼키고 기척을 최대한 죽였다.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뭐야. 어디로…!”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작업을 치는 사이 알테어는 관람차 코앞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
저벅저벅. 침묵 속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도 내가 관람차로 향했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른 듯했다.
여기까진 계획대로다. 나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다음 작업을 개시했다.
‘집중해라. 아버지랑 낚시 갔을 때를 떠올려…!’
나는 천천히, 영혼을 담아서. 반대편 관람차에 넣어둔 베스타크를 어검술로 조종했다. 흔들흔들. 유리창 위로 베스타크를 올리고 슬쩍 흔들었다.
낚시할 때 미끼를 흔들 듯이. 마치 진짜 내가 있는 것처럼. 물지 않고는 못 버티게.
그리고 물고기의 반응이 즉각 터져나왔다.
“삽탄, 번개 도둑!!”
촤자자작! 수십 줄기의 번개가 쏟아진다. 내가 아닌 베스타크가 들어있는 관람차로 말이다.
푸른 번개는 베스타크를 넣어둔 관람차는 물론이고, 그 일대를 온통 새하얗게 지져버렸다. 멀리서 보니 새삼 위력이 감탄스럽다.
“해치웠나?!”
알테어는 셀프 사망 플래그를 꽂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야는 온통 폭연으로 가득해진 미끼 관람차에 박혀 있었다.
‘이겼다.’
그래. 알테어 바토리.
사람이 초조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사고가 막히기 마련이지.
‘너는 지금 세 가지를 간과했다.’
첫째. 능력치를 힘과 마력에 모두 꼴아 박은 너는 민첩성이 후달린다는 점.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뒤를 이렇게까지 바짝 쫓아왔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나도 원숭이가 아니야 썅년아!!”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콰아앙! 나는 관람차 문을 발로 차 박살냈고. 그대로 알테어의 사각에서 쇄도했다.
“멸망의 화염!”
푸확! 하늘 높이 치켜든 멸망의 대검에 불꽃이 일렁인다.
불꽃의 궤적을 꼬리처럼 늘어뜨리며, 나는 알테어의 정수리로 유성처럼 내리꽂혔다.
“앗…!”
알테어는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더니 몸을 비정상적으로 비틀었다. 궁니르를 거세게 횡으로 휘두른다. 부우웅, 가공할 파공성이 들려온다.
궁니르의 압도적인 중량으로 나를 후려쳐 버리겠다는 심산이리라.
“으아아아!”
“…!”
그녀가 휘두른 궁니르의 포신이 내 머리를 후려치기 직전.
알테어와 나는 동시에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지었다.
“연화!”
나는 입을 열어 스킬을 외쳤다.
스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기술이 작렬한다. 나는 알테어의 등 뒤에서 눈을 떴다.
“어?”
알테어의 자신만만했던 얼굴은 멍하니 풀려버렸고.
푸확! 멸망의 대검이 그녀의 등짝을 뚫고, 명치에서 쑤욱 솟아난다.
“…….”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뚝, 투둑. 그녀의 거칠게 벌어진 가슴께가 활활 불타오른다. 지글지글 끓는 피가 바닥에 한 움큼 떨어졌다.
“……!”
생살이 내부부터 타오르는 고통에도 알테어는 비명 한 번을 지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유령처럼 비틀거릴 뿐이다.
“… 허.”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고. 참았던 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녀의 상처에서 흐르는 핏방울을 시야에 담았다.
기름처럼 탁한 흑색이었다.
‘나이트레아가 준 정보… 사, 사실이었군.’
나는 왜 알테어가 비명을 참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둔중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거다.
문서로 봤던 정보들이 눈앞에서 사실로 드러나자 소름이 돋는 찰나. 문득 등 뒤에서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신, 님. 아, 안 돼….”
털썩. 거한 하나가 무릎을 꿇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양철깡통을 뒤집어쓰고 몸의 반절 이상이 괴충화가 진행된 남자. 나는 놈의 특이한 인상착의를 알고 있다.
‘고독의 모스크덴.’
나이트레아가 정리해준 프로필 속 탈주용사 중 하나.
이 흑혈병 환자만 잔뜩 있는 멸망한 도시에서 3년 동안 홀로 버텼다는 의문의 사내.
“늦었어 새꺄.”
나는 잔인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여신님이라. 보아하니 알테어를 꽤 의지하는 듯싶어서 말이다. 기선제압을 해주기 위해 계속 비아냥거렸다.
“조만간 너도 똑같이 해줄 거니까. 거기 딱 기다려라.”
“아아… 아아아…! 싫어… 살려… 살려줘 듀이!! 흐어어엉!”
모스크덴은 내 공갈협박에 진심으로 겁먹은 모양새였다.
그 엄청난 거구가 아깝도록 바닥을 질질 기며, 내게서 멀어지려 안간힘을 썼다.
‘뭐야 저건.’
반응이 예상 밖이군. 길길이 날뛰었으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는데.
이런 놈들한테 두 번이나 죽었다고? 전생의 나도 어지간히 방심을 했나 보다.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혀를 낮게 찼다.
“후우.”
말 나온 김에 곧바로 공약을 실천하기로 했다. 모스크덴도 꼬치구이로 바싹 익혀주기 위해 대검을 뽑아내려 힘을 줬다.
그러나 대검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 윽?!”
나는 퍼뜩 알테어를 다시 쳐다봤다. 그녀의 왼손이 내 대검을 꽉 쥐고 놔주지 않고 있었다.
알테어의 붉은 눈에서 새빨갛게 타오르는 집념과 투기를 읽어냈다. 숨을 삼켰다.
“그렇, 게는… 못 합니다. 까마귀.”
우우웅.
알테어의 손에 들려있던 궁니르가 위험할 정도로 밝은 빛을 토해냈다.
“당신을. 저 너머로, 보낼 순 없어. 여기서… 내 목숨이 다하더라도.”
우웅, 우웅, 우웅.
연신 궁니르에서 빛이 점멸하고, 장치가 미친 듯이 맞물리며 소음이 커진다.
무언가 일어난다. 굉장히 위험한 뭔가가. 히어로 센스가 발동되다 못해 발광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야! 대, 대체 왜 그렇게…! 왜 날 그렇게 못 막아서 안달이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이러는 거 아냐 인마!!”
나는 억울한 나머지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대검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시 힘 스탯의 차이가 너무 완연하다. 꿈쩍도 않는다. 낭패감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후후.”
그리고 씨익.
알테어는 눈웃음쳤다. 거기엔 짙은 체념과 권태가 담겨 있었다.
“아.”
그 얼굴을 보니 의도는 몰라도, 지금 알테어가 하려는 짓은 확실히 깨달았다.
망연자실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X발! 뒤지려면 혼자 뒤질 것이지!!”
대검을 놓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뛰었다.
등 뒤에서 슬픔에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했을 텐데요. 속죄하고 있습니다. 이 추악한 세상을 되살려 버린 속죄.”
우우우웅!
알테어의 의지를 알아채기라도 한 양, 궁니르는 최고조로 빛을 뿜었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찬란한 빛이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해 사방으로 쏟아질 것 같다.
아니. 폭발하겠지. 알테어는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어를 내뱉었다.
“삽탄.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콰아아아앙!
먹먹한 굉음과 함께 압도적인 빛의 기둥이 쏟아진다.
궁니르에서 시작된 빛의 폭발은 일대의 모든 것을 휩쓸고, 유원지 전체를 휩쓸어 폐허만을 남겨놓았다.
물론 나와 알테어, 그리고 모스크덴까지 어김없이.
한 줌의 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