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알테어어님 한 판 해요
알테어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왜 이 동상은 목만 여기에 왔을까. 그런 의미없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짙은 안개 속에서 나부끼는 새빨간 적발. 그리고 우수에 잠긴 붉은 눈동자.
기계장치가 잔뜩 달린 방독면 때문에 눈 밖에 안 보였지만. 두 가지 뚜렷한 특징 덕분에 도저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붉은 머리의 여인… 알테어는 동상의 머리에서 시선을 들었다. 나를 직시하는 눈꼬리가 아주 살짝 호선을 그린다.
미미한 눈웃음과 함께 그녀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당신이 포기하길 때까지 몇 번이라도 말하겠습니다.”
알테어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뛰어올랐다.
뒤집힌 퍼레이드 카 위로 올라간 그녀. 이내 그곳에 놓여있던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그긍. 들어올린 것만으로도 그것이 육중한 비명을 토해냈다. 거대한 대포 같은 물건이었다.
‘스펠 건 궁니르.’
나는 알테어의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 덕분에 그것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했다.
무려 수백 년 전에 야심차게 개발됐다는 운터란트의 대마왕용 결전병기. 과도한 마력 요구량과 터무니없는 중량 때문에 적합자가 알테어 밖에 없었다는… 그 무기다.
몰라볼 수가 없었다. 생긴 것부터가 너무 개성이 넘쳤으니까.
“대의를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자드키엘을 죽이는 것도 마녀를 죽이는 것도. 당신이 벌이는 행위 모든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포신의 길이만 내 키를 훨씬 상회하고. 구경은 내 허벅지만하다.
대포의 약실이 설치된 본체는 더 가관이다. 번쩍이는 철갑과 정교한 기계장치로 둘러싸인 무식하게 거대한 사각형 철덩이.
얼핏 보면 냉장고에 포신 달아놓은 흉물을 들고 있는 것 같다.
“까마귀. 돌아가세요.”
물론 지금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런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알테어가 들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신히 되찾은 내 안식처까지 없애려 든다면. 난 전력을 다해서 당신을 막을 겁니다.”
철컹!
알테어는 나직이 경고하며 내게 포신을 겨누었다. 인력으로 저 흉물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은 경이를 넘어 경악을 선사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냐?’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알테어의 능력치가 그렇게 편중되었는지. 그 능력치는 기형적인 게 아니다.
오직 저 무기. 스펠 건 궁니르를 사용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완성된 스테이터스였다.
“… 그 눈빛. 마녀의 기사와 놀랍도록 비슷하군요.”
그리고 내가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알테어는 한숨처럼 한 마디 내뱉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미미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 마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행색이다.
“삽탄(揷彈).”
처처척!
알테어의 나직한 명령. 그에 따라 궁니르에서 촉수처럼 얇은 전선다발이 흘러나온다.
허공을 꿈틀거리던 그것들이 쏜살같이 알테어의 등을 파고들었다.
“윽…!”
알테어가 낮은 신음을 흘리는 것과 함께, 전선을 타고 새파란 마력의 기운이 궁니르로 흘러들었다. 궁니르의 사각형 약실이 시퍼렇게 번쩍인다.
스펠 주입. 그녀가 지금 스펠 건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화양연화.”
푸쉬이익!
알테어의 주문이 영창됐다. 동시에 궁니르 총신의 정교한 기계장치가 미친 듯이 철걱거린다.
이내 배기판에서 엄청난 증기를 뿜어내며 텅! 거대한 금속탄피 하나를 바닥에 떨궜다.
‘무슨 일이…!’
알테어는 포신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어느새 눈부신 에너지 덩어리가 포신 끝부분에 모여 있었다.
순수하고 압도적인 마력의 응집체. 문외한인 나조차도 느껴지는 거대한 에너지에 경악하는 찰나.
“발사.”
콰아아앙!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궁니르가 불꽃을 뿜었다.
엄청난 충격파와 반동 때문인지, 알테어를 중심으로 퍼레이드카가 움푹 찌그러졌다.
피피피핑!
그렇게 하늘을 향해 날아간 마력의 덩어리는 공중에서 체류하며 잠깐 번쩍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방으로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흩어진 마력의 먼지로 사위가 동화 속 풍경처럼 파랗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알림: 마력 과포화 - 대기 중에 마력이 충만해졌다.]
[지속적으로 마력이 대폭 회복된다. 마력 사용 시 평소보다 적은 마력을 소모한다. 지속형 스킬들의 지속시간이 대폭 증가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은 상태창이 나타나 통보해줬다.
일단 알테어가 내게 적의를 가진 건 확실하다. 나는 검을 뽑아 전투를 대비하면서도,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 과포화…?”
방금의 허공에 발사한 탄환은… 일대를 마력 과포화 상태로 만들기 위함인가?
하지만 대체 왜. 본인만 마력이 지속충전되면 모를까 나까지?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굳이?
무수한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곧 사방에서 밝혀졌다.
“이 죽어가는 땅은 당신을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텅, 텅, 터텅!
경쾌한 소리가 연신 울리며 사위가 갑자기 환해졌다.
동력이 끊어져 있던 무수한 가로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 충만해진 마력 때문에 다시 작동한 듯하다.
―꿈과 희망이… 숨쉬는 곳… 스키드… 랜드에… 어서오세요….
그리고 띄엄띄엄 끊기는 기괴한 목소리가 울린다.
팡파레와 오르골 음색에 섞여 울리는 지직거리는 목소리. 유원지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숨을 삼키고 사방을 황급히 살폈다.
자세히 상황을 살펴보니. 지금 그런 자잘한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알테어는 당황하는 나를 비웃듯이 말했다.
“술래잡기를 해볼까요? 다른 길목을 지키고 있는 제 동료들이 오기 전까지. 날 죽이면 당신의 승리입니다.”
철컥, 철컥, 철컥.
태엽장치를 삐걱이는 수많은 마스코트 인형이, 좀비떼 마냥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다.
멀찍이 우뚝 선 자이로드롭이 상하로 마구 오르내리고 있다. 회전목마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미친 듯이 회전했다.
거대한 회전관람차는 찬란한 빛을 뿜으며,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두두두두!
알테어의 머리 위로 깔린 레일에 롤러코스터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술래는 물론 당신이에요.”
알테어는 그런 말을 남기고 수직으로 높게 도약했다.
덜컹! 그녀는 롤러코스터 선두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롤러코스터는 그녀를 싣고 엄청난 속도로 레일을 달렸다.
“어?!”
당연히 나는 당황의 탄성을 흘렸다.
닭쫒는 개새끼마냥 쳐다보자니, 쿠르르르! 굉음과 함께 롤러코스터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알테어가 빠르게 시야 끝으로 멀어졌다.
“… 아니, 이런 미친!”
요즘 이 말만 계속 내뱉는 거 같다. X발. 그런 생각에 씨근거리며 곧장 흑익을 사용했다.
푸화악! 솟아난 날개로 허공을 치솟았다. 멀어지는 롤러코스터의 꽁무니를 필사적으로 뒤쫒기 시작했다.
“게 섯거라아아!!”
* * *
지리멸렬한 롤러코스터 술래잡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롤러코스터는 멈추지 않고 레일을 돌았다. 게다가 속도도 점점 폭주기관차처럼 빨라지고 있다.
나는 필사의 추격전을 벌이는 와중.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아니… 저 년은 X발 안 메스껍나?!”
레일을 따라 날파리처럼 앵앵대는 나도 속이 뒤집힐 것 같은데. 정작 롤러코스터 위에 자석처럼 붙어 있는 알테어의 표정은 미동도 없이 평온했다.
“호락호락하진 않을 겁니다. 까마귀.”
오히려 내가 거의 따라잡았다 싶은 때마다 시기적절하게 철컹, 격철음이 난다.
히어로 센스로 느껴지는 쎄한 느낌에 쳐다보면. 궁니르의 포신이 정확히 내 면상을 겨누고 있다.
알테어의 짤막한 명령어가 들려온다.
“삽탄. 번개 도둑.”
콰쾅! 파지직!
정면에서 천둥같은 발포음과 함께, 굵직한 번개줄기가 일곱 줄기로 갈라져 쇄도한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쏟아지는 듯한 박력이었다.
“끄악!”
나는 진작에 온몸을 미친 듯이 비틀고 있었다.
회전력으로 가까스로 비행궤도를 바꿨고. 푸른 벼락들이 내 등을 간발의 차로 훑고 지나갔다. 짜릿한 전율이 스친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시작에 가까웠다.
“삽탄. 스노우 피어서(SNOW PIERCER).”
궁니르의 포신 끝에 모이는 기운이 급변한다.
꾸드득. 주변의 공기마저 하얗게 얼어붙는 차가운 마력이 깃들었다. 이내 모여든 서리들이 샷건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온다.
콰콰콰콰! 거대한 얼음과 눈의 창이 시야를 뒤덮고 우박처럼 쏟아졌다.
“끄아아아!”
현란하게 날개를 퍼덕여 무수한 고드름 줄기를 피했지만. 포화가 워낙 촘촘해서 자잘한 생채기가 나는 건 감수해야 했다.
문제는 그런 자잘한 상처들이 아니다.
[상태이상 - 동상]
[신체나 아이템 일부가 얼어붙는다. 회복 전까지 움직임이 제한되며, 방치할 경우 동사한다.]
꾸드득. 상처를 주변으로 하얀 서리가 맺히더니, 순식간에 혈색이 죽으며 감각이 사라졌다. 실시간으로 살이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나는 씨근거리며 물의 에테르를 집어 삼켰다. 몸 주변을 아른거리던 서리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벌써 두 개 밖에 안 남았다고..!?’
이걸로 벌써 반이나 에테르를 소진했다.
저 쥐새끼 같은 년의 꽁무니를 쫓다가, 별의 별 괴상한 마탄(魔彈)들에 얻어맞은 결과다.
설상가상이라고 하던가.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으, 으어?”
열심히 퍼덕이던 날개짓이 덜컥 멈춰버렸다. 나는 당황의 탄성을 흘렸다.
몸을 스쳐지나간 고드름들은 당연히 흑익의 날개자락도 스쳤고. 흑익이 찢어진 부위를 중심으로 단단히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아 나 썅팔!!”
이대로 추락하면 치명상 확정이다.
결국 나는 최대한 저공으로 활강을 시도하며 흑익을 해제했다.
“크으으!”
카가가각! 쌍검을 땅에 박아 제동을 걸었다. 바닥을 한참 밀려난 뒤에야 몸이 멈췄다. 나는 얼얼한 팔을 털어내며 하늘 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이런, X발.”
내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바이킹 위.
어느새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알테어가 거기에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포신 끝에 달고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헛웃음과 함께 짤막한 욕설을 쏟아내자니.
“삽탄. 지옥의 묵시록.”
알테어의 시동어와 함께 콰과과광! 벽력 같은 굉음이 터졌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새하얀 불꽃의 폭우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세상의 종말이라도 맞이한 듯한 풍경이었다.
“페이탈 쏘…!”
나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외쳤다가, 중간에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X됐다. 흑익은 지금 꽝꽝 얼어붙은 상태였지. 나는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
콰콰콰쾅!
간발의 차로 순백의 폭격지대를 벗어났다. 등 뒤로 엄청난 연쇄폭발이 일어나며 충격파가 나를 밀어냈다.
콰당탕! 한참 날아간 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간신히 지면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
매무새를 정돈하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나.
시선을 퍼뜩 높이 들었다. 알테어는 어느새 바이킹에서 뛰어올라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고고하게 올라서 있었다.
“… 후후.”
여전히 잔잔한 눈웃음을 치며, 까마득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분에 못 이긴 나머지 펄쩍펄쩍 뛰었고.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이 쌔끼야!!”
닭 쫒던 개새끼의, 개같이 추한 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