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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85화 (161/280)

185화

‘일단 한 숨 돌렸네.’

나는 물의 에테르를 빨아재끼며 씨근거렸다. 워낙 듀라스가 파상공세로 몰아치니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물의 에테르로 나는 치명상을 회복했고. 놈은 내상을 회복할 수단이 없다.

‘이대로 힘을 빼면…!’

결국 시간은 내 편이다. 천천히 돌려 깎으면 승리는 확정적이다.

…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할 때가 내게도 있었다.

퓨퓨퓩! 직후 민가 쪽에서 무언가가 듀라스 쪽으로 날아왔다.

“음?”

듀라스의 어깨로 무언가 날아와 꽂혀 있었다.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눈을 부릅뜨고 날아온 물체를 주시했다.

그것은… 새파란 약물이 들어있는 주사기였다.

“이건 또 뭔….”

나는 당연히 주사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어느샌가 연립주택의 옥상에 서 있는 거구의 남자 하나를 눈에 담았다.

“듀이… 나… 왔어. 공장… 큰 소리… 들렸다….”

반쯤 괴충화가 진행된 반인반충의 흑혈병 환자였다.

왼쪽 어깨 뒤로 곤충의 팔 같은 것이 두어 개 달려있고. 곤충의 각질이 없는 부분은 조잡한 철갑옷 같은 것을 입었다. 머리엔 이상한 양철깡통을 뒤집어썼다.

체구만큼이나 거대한 배낭을 메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총구가 달린 기계식 건틀릿을 찼다.

“힘세고… 강한 약… 준다. 죽으면… 안 돼.”

그리고, 번쩍.

왼쪽 눈알이 있어야할 곳에 카메라 렌즈 같은 것이 달렸고. 거기서 새빨간 레이저 사이트를 내뿜고 있었다.

언뜻 시선처럼도 느껴지는 그것은 아까부터 내 마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거…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미르의 눈으로 거한을 훑었다.

[몬스터 정보]

[명칭: 고독의 모스크덴]

[체력: 3310/3310 마력: 1250/1250]

[힘: 435 민첩: 459 지능: 326]

[상세: 역병 창궐로 폐쇄된 디스트릭트10에서 모든 괴충을 살해하며 3년간 살아남은 정체불명의 인간. 아신의 뜻을 저버린 용사에게 죽음의 철퇴를.]

그리고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또 한 명의 탈주용사. 지금껏 코빼기도 안 보이던 고독의 모스크덴이었다.

“듀이. 내, 친구…. 죽으면… 안 된다….”

놈은 정신박약 마냥 띄엄띄엄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듀라스에게 맞춘 저 약품이… 지금부터 무언가 일으킬 거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 그, 크으….”

그리고 내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약품이 꽂힌 왼팔을 중심으로 듀라스의 몸에 새파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스스슥. 듀라스의 몸에서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 간다. 물의 에테르와 놀랍도록 유사한 기운이었다.

나는 허탈한 나머지 한숨을 흘렸다.

“X발 비겁한 새끼. 힐러님 모셔오기 있냐?”

혼자 포션 빨며 의기양양하던 개추한 과거를 깡그리 잊은 내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곧 그 추측마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 그아아아!”

듀라스를 감싼 파란 기운은 상처를 회복시키는 걸로 끝나지 않고. 놈의 온몸 골격을 뒤틀었다.

우드득, 뿌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점점 거대해지는 신형. 비대해진 근육. 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우지직, 놈의 등가죽을 뚫고 또 하나의 새빨간 팔이 돋아나기까지 했다.

“… 후우욱.”

변신을 마치고 벌크업 헬창이 된 듀라스.

그가 파오후 쿰쩍쿰쩍, 거친 숨을 내쉬며 곡도를 고쳐쥔다. 이번엔 등에 달린 제3의 팔도 주섬주섬 곡도를 쥐었다.

“허. x발.”

내가 생각이 짧았다. 힐러 겸 버퍼였구나.

가지가지 하네 개새끼.

“후욱… 후우….”

듀라스는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가 짙은 안개 속에서 다가왔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2차전을 준비했다.

* * *

듀라스와의 1대1 대인격투는, 각종 아이템의 효과를 힘입은 나의 우세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모스크덴이 합류하고, 듀라스는 2페이즈까지 돌입한 지금.

전황은 확실히 내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욱!”

3대 500은 고사하고, 1500은 칠 것 같은 듀라스가 내게 돌진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아미 놈의 신형이 내게 도달해 있었다. 속도가 경이롭다.

“크… 윽!”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묵직함의 차원이 달랐다.

콰앙, 콰아앙! 한 방 한 방이 대검으로 내려치는 것 같다.

검을 쥔 손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계속되는 검격의 공방으로 손바닥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놈은 짐승마냥 포효를 연신 내지르며 나를 몰아붙였다.

“죽어어! 괴물! 죽어! 죽어! 괴물 죽어어어!!”

그리고 그건 어검술로 몰아치는 파상공격을 받은 듀라스도 마찬가지다.

어검술로 적절히 공방을 대처하는 나와 달리, 놈은 나의 모든 공격을 직접 막아내고 있다. 그러니 나보다 더 신체적으로 부담이 가야 정상이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듀이… 안 된다. 나만 두고, 죽으면… 안 돼.”

듀라스가 다치거나 밀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건물 위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스크덴.

놈이 건틀릿의 손등 부분을 열고 주사기를 장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듀라스를 향해 연신 발사했다.

푸쉬익! 그것을 맞은 듀라스의 몸에서 새파란 증기가 발생하고. 곧 모든 상처는 씻은 듯이 낫는다.

“크… 으어어어!”

그리고 그럴 때마다 듀라스는 강해진다.

더 이상 듀라스의 붉은 눈에서는 이성의 쪼가리도 찾아볼 수가 없다. 피와 침이 섞인 꾸덕한 액체가 까마귀 가면의 부리 부분에서 질질 흘러내린다.

“그오오오오!!”

이미 인간의 쪼가리도 남지 않았다.

놈은 괴물처럼 포효하며 세 개의 우람한 팔로 연신 곡도를 내리친다. 분노한 야수가 무차별적으로 발톱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괴성과 참격이 노도처럼 빗발친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크윽!”

퓨퓩.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공방 도중, 문득 허벅지가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흘깃 쳐다봤다. 가죽 바지를 뚫고 주사기 몇 대가 박혀 있었다. 나는 모스크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모스크덴의 붉은 레이저사이트와 건틀릿도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저, 개새끼가 귀찮게 자꾸!”

나는 황급히 듀라스와의 거리를 벌린 뒤 주사기를 빼냈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오더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후두둑. 시커먼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이런 X발. 또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바로 에테르 병을 꺼냈다.

[상태 이상 ― 맹독]

[지속적으로 막대한 체력을 삭감한다. 장기간 지속되면 연계 상태이상 ― 마비를 발생시킨다.]

역시나. 맹독이 담긴 주사기였다.

나는 패널을 보자마자 물의 에테르를 삼켰다. 이미 전에도 같은 걸로 한 번 당했다. 맹독은 무시할 게 못 된다는 걸 그 때 체감했다.

하나 남았던 물의 에테르까지 바닥난 병을 보고, 씁쓸해진 나머지 혀를 찼다.

‘이런, 망할…!’

캉, 카캉! 카아앙!

그 와중에도 듀라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파상공세에 신형이 점점 밀린다. 팔에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 간다.

‘… 최후의 수단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왼손을 놈에게 뻗었다.

파지지직! 왼손의 강철장갑, 스턴싸개의 손바닥 단자에서 새파란 전광이 모여들었다.

“전류 방출!”

콰지지직! 굵직한 번개줄기들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일대를 휩쓸 듯이 치달린 번개줄기들이 모든 것을 하얗게 태운다. 그리고 번개줄기는 당연히 나와 대치하고 있던 듀라스에게도 닿았다.

“그우우욱…!”

듀라스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경기를 일으키듯 온몸을 경련하는 듀라스. 쉴 틈도 없이 뚜드려 맞던 도중이어서 그런가. 유난히 2.5초라는 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직감했다.

지금 아니면, 이놈을 죽일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나는 비명처럼 기합을 지르며 놈의 품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어검술로 허공에 띄워놨던 멸망의 대검에, 마력을 죄다 때려 박았다.

쿠구구구. 대검이 낮게 울며 음울한 검은 마력을 쏟아냈다.

“멸망의 화염!!”

푸화악! 대검 주위로 선명한 불꽃이 치솟는다.

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검과, 그 뒤로 꼬리처럼 따라붙는 불꽃. 그것이 듀라스를 향해 날아간다.

듀라스와 대검이 닿기 직전. 2.5초가 지나고 스턴이 해제됐다.

놈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죽어어어!”

“그워어어!”

“듀라… 스…! 듀이!!”

나와 듀라스, 모스크덴이 동시에 목청을 높였다. 각자가 저마다의 행동을 개시했다.

나는 들고 있던 베스타크와 에스파다까지 듀라스의 면상에 던졌다.

듀라스는 몸을 격렬하게 뒤틀며 날아오는 대검을 향해 곡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모스크덴은, 나를 향해 다시금 주사기를 발사했다.

“……!!”

퍼퍼퍽!

질펀한 파육음과 함께 시간은 다시 흘러갔다.

세 사람이 찰나에 벌인 행동의 결과가 일거에 눈앞에 펼쳐졌다.

“허억… 허어….”

듀라스는 가슴에 세 개의 검을 꽂고 있었고. 이미 상반신은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중이다.

모스크덴은 불타는 듀라스를 보며 망연자실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는, 옆구리에 맞은 주사기를 뽑아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크… 우, 으윽…!”

[상태 이상 ― 석화]

[마법적 작용으로 몸이 돌처럼 굳는다. 시간 내에 정화하지 않을 시, 사망한다.]

떠오른 패널이 알려준다. 이번엔 아까와 다른 독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이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시선을 손끝으로 돌리자 웬걸. 정말로 손가락이 점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발쪽도 감각은 비슷했다.

“으… 아, 씨, X발…!”

꾸드드득.

손가락에서 시작된 석화는 순식간에 손등으로, 손목으로, 그리고 팔꿈치까지 올라왔고. 발에서 시작된 석화는 발목, 무릎, 그리고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고작 30초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 살려… 살려줘…! 살려줘어!!”

아무도 살려줄 사람이 없음을 알지만. 나도 모르게 외쳤다.

서서히 확실하게 다가오는 죽음. 그것이 가져오는 압도적인 공포감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온몸이 굳어간다. 천천히 내가 무기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 아.’

그래. 어차피 물의 에테르는 모두 소진했다.

동료는 마르크트레스에서 내가 직접 버렸고. 솟아날 구멍은 없다.

그렇다면 굳이, 이 너절한 생을 지속할 필요가 있는가?

― 주인님, 얼른 자살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수호 형님이 멀리서 외쳤다.

보고 있기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어검술을…!’

나는 피식 웃으며 베스타크를 공중에 띄우려 했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아까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마력을 멸망의 대검에 불어넣었다. 잔여 마력이 전혀 없다.

“허.”

피식. 체념 어린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나는 눈을 감고 죽을 때를 기다렸다.

“다음… 엔… 다, 다… 다른… 길… 로… 컥, 그극…!”

혼잣말조차 중간에 막혔다. 체내의 장기가 석화되기 시작한 모양이다.

구토감, 발한, 오한, 현기증, 공포감, 끔찍한 이물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꺼… 걱…!”

그리고 마침내 심장이 석화됐음을 느꼈다. 몸에 피가 안 도는 것이 실감된다.

폐가 석화된다. 숨이 막혀온다.

목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나는 마지막 단말마를 지르려고 했지만. 더 이상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후욱. 눈앞이 시커멓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7월 13일, 23시 15분]

[장소 ― 운터란트. 디스트릭트10, 망자의 계곡 하류 부근]

꽤 오랜만에 생명의 위험을 알리는 표식이 등장했다.

“… 오우. 안 나오면 섭하지.”

얼떨떨하게 패널을 읽는 한 편. 그것으로 반쯤 확신했다.

세 갈래길 중 어딘가에 문제의 탈주용사들이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타이밍에 회귀점이 갱신될 이유가 없으니까.

“일단 준비 해놓고.”

나는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샛길로 빠지면서도, 메모를 끼적여 망자의 함에 넣을 준비를 했다.

이제 와서는 거의 반자동적인 프레이즈였다.

“엥?”

하지만 망자의 함을 꺼내든 나는 당황의 탄성을 흘렸다.

망자의 함이 이미 빛나고 있었다. 전생의 내가 넣어둔 물건이 있다는 소리다.

다시 말하면, 이미 내가 한 번 이상 죽었다는 소리고.

[첫 번째 시도. 오른쪽 구시가지.]

그런 문구가 버젓이 들어있다.

잠깐 뇌정지. 버퍼링. 약 3초 후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용의 적응력,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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