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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84화 (160/280)

184화 파수꾼들

디스트릭트10의 구시가지는 전체적으로 19세기말 유럽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대가리에 든 게 없어서 19세기 유럽이 정확히 어떤 시대인지 모른다만. 그냥 느낌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산업혁명 그 언저리 아닌가?

“흐음.”

시가지 왼쪽 측면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강물. 그 너머로 줄줄 늘어서 있는 폐공장 단지.

광장의 거대한 시계탑을 중심으로 가도가 방사형으로 퍼져나갔고. 길을 따라 늘어선 민가나 상가들도 훨씬 근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구획 자체는 마르크트레스와 비슷했지만, 문명 수준이 수백 년은 앞선 느낌이다.

‘뭐야 저건. 설마 자동차냐?’

길가에 찌그러지고 내팽개쳐진 말 없는 수레들.

내부에는 복잡한 기계장치와 더불어 룬문자가 새겨진 보석들이 빼곡했다. 마력을 동력삼아 이동하는 자동차 비슷한 이동수단 같다.

“별게 다 있네.”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공장과 맞붙어있는 시가지라 그런가. 민가의 대부분은 여러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진 연립주택 형식이었다.

‘여기는 부자들 집인가?’

관리가 안 되어 무너지고 쓰러진 연립주택에 비해, 호화스러운 개인주택들은 세월이 무색하게 비교적 멀쩡했다.

이런 망해버린 작은 도시에서도 빈부격차가 보이다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이건….”

박살난 보도블럭과 무너진 건물을 피해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던 와중. 나는 커다란 건물 하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멈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 피아노.”

희미하게 전해지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피아노 연주에 맞춘 노랫소리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잔해를 치우고 통로 안으로 진입하자, 시종일관 어두웠던 내부가 일순간에 밝아지는 장소가 등장했다.

‘극장? 영화관?’

아무튼 둘 중 하나 같다.

완전히 무너져내린 천장에서 달빛이 내리쬔다.

널찍한 무대 위로 망가진 무대장치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그 앞으로 콜로세움처럼 비탈진 관객석이 주르륵 이어져있다.

띵, 띠리링.

그리고 관객석 가장 위에 서있던 내 눈에,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남자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

챙이 넓은 가죽 모자 아래 검은 고글.

까마귀를 닮은 가면을 쓰고, 넝마가 된 검은 코트를 둘러쓴 남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멓다.

남자는 더듬더듬, 피아노를 연주했다. 뚝뚝 끊어지는 발랄한 음색. 동요 같았다.

분위기 때문인지 오히려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 어저께 뒷집의 조는 곤충이 되어 하늘을 날았네.

반주에 맞춘 노랫소리는 피아노 위에 올려진 장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모난 상자 안에서 반짝이는 하얀 돌. 거기서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목소리. 일종의 축음기… 혹은, 오르골처럼도 보인다.

― 어제 우리 엄마는 곤충이 되어 동생을 먹었네.

섬뜩한 노래 가락. 뚝뚝 끊기는 피아노 반주는 같은 구절을 계속 반복한다.

그리고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오늘 나는 캐서린의 아빠를 먹었네.

―캐서린 도망쳐. 멀리멀리 도망쳐.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내일은 누굴까. 누가 우리의 식탁에 오를까.

―내일은 누굴까. 누가 우리와 친구가 될까.

그리고 우뚝. 노래와 피아노가 멈췄다.

남자가 고장난 기계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커멓게 칠한 가면의 눈두덩 안으로 희번득한 붉은 눈이 나를 쏘아봤다.

“내일은, 너겠지.”

순간 나는 등줄기가 곤두서는 전율을 느꼈고. 곧장 놈의 정보를 스캔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인간사냥꾼 듀라스]

[체력: 2350/2350 마력: 2400/2400]

[힘: 387 민첩: 548 지능: 210]

[상세: 괴충을 끝없이 죽이고 죽인 끝에, 모든 인간을 죽이려 했던 자. 아신의 뜻을 저버린 용사에게 죽음의 철퇴를.]

피아노를 쳤던 것은 탈주용사. 인간사냥꾼 듀라스였다.

나는 곧장 쌍검을 뽑아들었고. 어느새 눈앞으로 번득이는 무언가를 힘껏 쳐냈다.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군.’

카아앙!

불꽃과 함께 금속음이 튀었다. 베스타크에 막혀 바닥에 박힌 그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기역자로 심하게 꺾인 외날의 곡검. 흡사 부메랑 같기도 했다.

“모두, 괴물의. 유충이다. 사랑하는 이의, 생살을 씹어먹는. 괴물이 된다.”

스르릉. 듀라스가 중얼거리며 코트 안에서 똑같은 곡검을 하나 더 꺼냈다.

양손에 하나씩 그것을 든 듀라스가 내게 시퍼런 날을 겨누었다. 춤을 추는 듯한 특이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유충일 때, 죽여야 한다. 더 이상… 추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듀라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하지만 포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위!’

카아앙! 다시금 금속이 맞붙으며 불꽃이 튄다. 어둑한 사위가 번쩍인다. 벼락처럼 내리꽂힌 듀라스의 곡검 한 자루가 눈부시다.

나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부딪친 검이… 하나?’

순간 뒷목이 오싹해졌다.

몸이 거의 반자동적으로 에스파다를 휘둘렀다.

“흡!”

키이잉! 에스파다 옆으로 부메랑처럼 날아온 곡도.

내 목을 향해 날아오던 곡도가 에스파다의 날밑과 스쳤고. 궤도가 살짝 틀어져 어깨를 핥고 지나갔다.

서걱. 예리한 절삭음과 함께 화끈한 통증이 덮친다.

“크윽…!”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상상도 못한 일격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준비를 제대로 못 했다. 우선 거리를 벌려야 한다.

하지만 듀라스는 어느새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내게 쇄도하고 있다.

‘… 빠르다!’

카카캉! 어느새 하나의 곡도를 더 꺼내든 듀라스는 쉴 새 없이 압박해왔고. 나는 기회를 보다가 펄쩍 뛰어올랐다.

쩌엉! 도약하는 가속도에 더해, 팔을 X자로 휘두르자 놈의 신형이 순간 휘청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으라아!”

검끼리 부딪친 반탄력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고. 회전력을 실어 놈의 턱을 후려찼다. 깔끔한 뒤돌려차기였다.

퍼어억! 정통으로 골통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크욱….”

놈이 가면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잠시 비틀거렸다.

그야말로 잠시다. 그는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코트자락을 뒤져 무언가를 내게 뿌렸다. 그리고 본인은 백스텝으로 유유히 거리를 벌린다.

날아온 물건을 눈에 담았지만. 순간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돌멩이. 룬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멩이가 가득했다.

공기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순간 어이가 없어져서 숨을 삼키자니.

“기폭.”

놈이 마스크 안에서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돌멩이들이 눈부신 빛을 뿜기 시작했다.

나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흑익으로 그 자리에서 치솟았다.

“이런 X발!”

콰아아앙!

돌멩이들이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엄청난 후폭풍을 쏟아냈다. 공중으로 치솟았던 나 역시 그 여파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크악!”

날개짓으로 폭풍을 거스르지 못했다. 나는 극장 벽에 처박히다 못해, 낡은 벽을 뚫고 시가지로 튕겨나왔다.

쿠웅! 골통이 울리며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은 나는 에테르부터 삼켰다.

‘방심은 금물이야!’

처음부터 불, 땅, 바람, 그리고 물까지 풀도핑으로 빨았다.

거기서 모자라 기공술까지 발동시켰다. 온몸이 새파란 마력으로 감싸지며 몸이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쇄애액! 무너진 극장 벽면 너머에서 수많은 곡도가 날아왔다.

“어딜!!”

카카캉!

뱀처럼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종횡하던 곡도였지만. 향상된 반사신경은 그것조차 예측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거의 미래예지 수준이었다.

“장난은 끝이다 새꺄!”

촤르륵! 세븐 소드 피어스와 페이탈 쏜즈를 발동했다. 그리고 예측된 궤도로 마력검과 가시를 날렸다. 도처에서 불꽃이 번쩍인다.

후두둑. 스무 개가 넘는 곡도가 내 주변으로 맥없이 추락했다.

“…….”

듀라스는 아무 말도 없이 극장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금 두 손에 코트 안의 곡도를 꺼내 내게 겨누었다.

X발 대체 몇 개나 있는 거야. 저 정도면 검림보다 심하다.

내가 씨근거릴 틈도 없이 놈이 다시금 내게 쇄도해왔다.

“으아아!”

카아앙! 이번에는 놈이 곡도 두 개를 동시에 부딪쳐왔다.

기회다. 놈의 양손이 봉쇄되었다. 멸망의 대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어검술로 들어 올리려는 순간.

놈이 먼저 왼손의 곡도를 놔버리더니, 이내 코트 안을 뒤져 무언가 내 면상에 들이밀었다.

‘어….’

권총. 총신이 나란히 달린 더블배럴 권총이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X발 유레카!!”

타타앙! 제로거리에서 권총 두 발이 순식간에 발사되었다.

발사 직전 가까스로 모가지를 틀어 마빡에 숨구멍 나는 건 면했지만. 볼이 양쪽으로 심하게 찢어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나는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했다.

‘땅의 에테르 효과를 뚫고 데미지를 입히다니…!’

저 총, 뭔가 특수한 마법 처리를 거친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해명할 시간은 없었다.

키이잉! 놈의 권총 손잡이에서 날카로운 날붙이가 튀어나오더니. 그것이 그대로 내 목을 향해 쇄도한 것이다.

스펙이 내가 한참 웃돔에도 계속해서 답답하게 이어지는 공방에 입술을 깨물었다.

‘늦었다…!’

상상도 못한 곳에서, 상상도 못할 기교로 쉴 새 없이 쇄도하는 공격.

지금까지 이런 타입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냥은 안 간다!’

나는 연화를 사용했다.

듀라스의 뒤로 순간이동해, 단숨에 놈의 경추를 향해 검을 마주 휘둘렀지만.

놈은 내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뒤를 돌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허, 억.”

예상치 못하게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검을 휘두르던 손에 힘이 빠져버릴 정도였다.

“으아아!”

서걱!

내가 휘두른 베스타크는 듀라스의 허리를 베었고.

그의 총검은 내 팔꿈치에 깊숙하게 박혀 들어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듀라스가 팔뚝 깊숙이 박힌 총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끄으윽!”

우지지직! 질척한 소음이 신경줄을 긁었다.

팔꿈치의 관절 사이로 구불구불한 날붙이가 날뛰었다. 뼈마디와 인대가 처참하게 박살나는 감각이 전해진다.

“저리, 꺼져어어!”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나는 멸망의 대검에 주입하던 마력을 필사적으로 재개했다.

마침내 대검이 덜덜 떨리며 검집을 빠져나왔고. 듀라스의 정수리로 기습 참격이 쏟아졌다.

“… 욱!”

듀라스 역시 그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황급히 곡도를 들어 틀어막으려 했지만.

키킹! 멸망의 대검에 정면으로 맞부딪친 얄팍한 곡도는 단박에 부러져 버렸다. 놈의 마스크 안에서 흡,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퍼어억!

멈추지 않은 대검이 듀라스의 흉부에 적중했다.

“커… 억…!”

낡고 뭉툭한 대검이어서 그런가. 듀라스의 방어로 참격의 속도가 느려지자, 베지는 못하고 후려 패는 형국이 되었다.

놈은 쳐맞은 반발력으로 튕겨나가 보도블럭 위를 한참동안 데굴데굴 굴렀다.

“크후우.”

하지만 마치 좀비마냥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쿨럭. 놈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부리처럼 튀어나온 가면의 턱부분에서 핏줄기가 뚝뚝 떨어진다. 상당한 내상을 입은 건 분명했다.

“후우… 후욱.”

하지만 스르릉. 놈은 다시금 코트 안에서 새로운 곡도를 꺼내들었다.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글 안으로 비치는 붉은 눈에서 광기어린 집착이 심해진 느낌이다.

“괴물. 이미 괴물이구나. 죽여야 한다. 죽여야. 죽여야 해.”

듀라스가 중얼거리며 천천히 다가온다.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야. X발 괴물 새끼가.”

내가 요즘 패드립보다 싫어하는 욕을 하다니. 살아서 아침 해 볼 생각은 버려라.

나는 사납게 웃으며,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를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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