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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82화 (158/280)

182화

― …… 알테어. 너는 또 어떻게… 아니, 왜. 대체 왜 아직도 여기에….

알테어의 목소리에 먼저 반응한 것은 수호 형님이었다.

그녀가 버젓이 살아서, 내 앞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다.

“저, 제가 뭐 잘못했나요?”

내가 계속 눈을 부릅뜬 채 쳐다보니 알테어가 물어왔다. 나는 퍼뜩 시선을 내렸다.

수호 형님도 그 한 마디 이후로 말을 아꼈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단,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입을 닫아버린 행색이다.

“… 아뇨. 아닙니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 같지는 않다.

수호 형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 헥터 카사스가 좀 특수한 케이스였던 모양이다.

방금 형님의 반응으로 98%쯤 확실했지만. 100%를 위해 일단 미미르의 눈을 써봤다.

[명칭: 알테어 바토리]

[별칭: 세 번째 용사. 백염(白炎)의 알테어. 죽음의 천사.]

[LV. 421]

[체력: 950/950 마력: 4300/4300 신체상태: 정상]

[힘: 1130 민첩: 73 지능: 191 히어로 센스: 99]

이변은 없었다.

진짜 세 번째 용사. 수호 형님과 함께 세상의 붕괴를 막았다는 마지막 한 사람이 등장했다.

‘레벨 400이 넘는 사람, 지금 처음 봤다.’

300레벨 이후부터는 정말 토나올 정도로 레벨이 안 오른다.

왜냐하면 날고 긴다 하는 마왕들도 대부분 150레벨 이상 300레벨 이하의 능력치다. 그 터무니없이 강했던 엘더리치도 개인의 능력치만 따지면 지금 나보다 훨씬 약하다.

그러니 그들을 때려잡아 레벨업 하는 용사들 입장상, 자연스럽게 레벨 증가도 그쯤에서 더뎌질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되게 오래 살면서, 말도 안 되게 노가다 사냥을 반복한 거지. 400이 넘는다는 건.’

나는 새삼 부릅뜬 눈으로 알테어의 스테이터스를 주시하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능력치 상태가 왜 저러냐?’

히어로 센스가 최고치인 99인 건 차치하자. 500년 살았으면 오히려 저게 정상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지능캐는 마력이 높아야 하고. 힘캐면 체력과 힘, 민첩이 높아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효율을 따지면 결국 그렇게 된다.

‘그런데 이건 뭐….’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체력은 나보다 낮은데 마력은 엘프리데보다 높고. 힘 스탯은 또 크라네이드 뺨을 후려친다.

간달프냐 X발. 스태프로 패죽이게?

“아. 이 환자분과 아는 사이라면….”

내가 묵언수행을 계속하자, 문득 알테어가 반가운 기색으로 두 손을 모았다.

나는 슬쩍 시선을 맞췄고. 그녀는 알드콘의 상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스칼로 씨와도 아는 사이인가요?”

“…!!”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양 어깨를 부술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벙찐 알테어를 전후좌우로 흔들며 소리쳐댔다.

“스칼로를 알아요?! 어딨습니까!! 살아있죠?! 살아있잖아요 X발!!!”

“아… 그, 이, 이것 좀 놔주세요… 아프네요….”

알테어가 인상을 찌푸리고 내 손을 붙잡았다.

아마 나보다 힘이 센 그녀라면 완력으로 뿌리칠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이성을 되찾길 기다리듯이.

“… 죄송합니다.”

결국 무안해진 내가 먼저 손을 내렸다.

알테어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반응을 이해한다는 모양새다.

“스칼로 씨는 저와 함께 환자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약재를 구하러 망자의 계곡 중류 쪽으로 올라가셨어요.”

“… 망자의 계곡? 약재가 있다고요? 그럴 리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내가 지금 가이서스에만 몇 개월을 있었는데.

감염경로 불명. 치료법 불명. 자드키엘이 소환된 뒤, 약 1년 뒤부터 창궐했기 때문에 ‘흑혈병은 자드키엘이 일으킨다 카더라’하는 찌라시 밖에 정보가 없는 개노답 질병이다.

‘치료제 같은 게 있었으면….’

X발 마왕을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칠 리가 있겠냐. 그만큼 절박하고 답답하니까 다들 홀라당 속는 거 아니겠냐고.

내가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알테어가 알만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제라 하긴 좀 그렇고. 억제제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 억제제요?”

“네. 증상의 확산을 막아주는 억제제가 망자의 계곡 중류에 산재해 있어요. 이겁니다.”

알테어는 누더기 안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고. 내 눈앞에 가져왔다.

꽃이었다.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꽃잎과, 그에 대비되는 새빨간 꽃술이 인상적이다.

내가 홀린 듯이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니. 알테어가 설명을 덧붙였다.

“꿈꾸는 상사화(相思花)라 불리는 꽃이에요. 그것을 달여 마시면… 일시적으로 육체의 안정이 돌아오지요.”

“허어.”

“보통 낮에는 제가 환자들을 돌보고, 스칼로 씨가 꽃을 찾으러 계곡 중류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저와 교대하는 식이죠.”

나는 새파란 꽃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다시 알테어에게 돌려줬다.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에 전에는 의심이 들어있었다면. 이번엔 적대에 가까운 의문이 들어있었다.

헥터 카사스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초의 용사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게 박혀있지 않다.

“이런 건 누가 알려줬습니까. 그리고 왜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까.”

“왜… 라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잘….”

“500년 전 화석이 숨 쉬고 움직이는 것도 놀라운데. 이런 데서 성녀놀음 하는 걸 보니 더 놀라워서요.”

순간 알테어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누가 봐도 자기 정체를 암시하는 말을 흘렸으니까.

“지금 뭐라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선은 퍼뜩 내 뒤쪽으로 향했다. 루시를 지나, 유리아에게 닿았다.

그녀의 부릅뜬 눈이 서서히 풀어진다. 팔자로 일그러진 눈썹에서 걷잡을 수 없는 아련함이 스쳤다.

“… 수호 씨의 후손이구나. 너를 알고 있어. 혹시 나를… 기억하니?”

알테어가 유리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적대적 기운은 느끼지지 않는다. 나는 딱히 막지 않았다.

“…??”

유리아는 처음엔 주춤거렸지만. 알테어의 우수에 찬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점점 저항의 기색이 사라졌다. 이내 그녀는 뒷걸음질 치던 발을 멈췄다.

덥석. 알테어가 유리아를 끌어안았다. 유리아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미안해. 미안하구나. 나도, 너희도 분명 이런 걸 원하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알테어는 유리아를 껴안은 채 연신 영문 모를 소리를 주워섬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먹먹하게 잠겨갔다. 울음을 참는 듯하다.

“…… 아. 아우.”

유리아는 시종일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알테어의 슬픈 목소리를 듣고 연민을 느꼈는지, 가만히 그녀의 등을 쓸어줬다.

알테어의 굽은 등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필설로는 형용하기 어려웠다.

“… 그래요. 마녀의 꿈과 기억을 부수러 왔군요. 인도하는 까마귀.”

더 이상 숨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알테어는 유리아를 놔주며 그렇게 말했다.

곧 그녀의 입가에 연민의 미소가 어렸다.

“당신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역시 헥터는 예언을 뒤트는 데 실패했다는 소리겠지요.”

“…!”

나는 부릅뜬 눈으로 알테어를 주시했다. 그녀의 입에서 민감한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알테어가 나를 올려다보는 붉은 눈에는 타오르는 결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내게 호의적인 결의는 절대 아니었다.

“까마귀. 나는 당신을 돕지 않아요.”

알테어는 그렇게 일축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아무 것도 알려 하지 말고 돌아가 주세요. 제발, 내가 간신히 지켜낸 평화를 방해하지 말아줘요.”

야멸차게 우리에게서 등을 돌려 그대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등에 대고 말했다.

“마녀의 꿈인지 기억인지 나발인지는 모르겠고. 난 자드키엘 죽이러 왔습니다.”

“…….”

“딱히 도와달라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망자의 계곡 중류를 와리가리 하신다니까 더 잘 알겠네. 그냥 그 주변에 어슬렁댄다는 탈주용사? 그놈들에 대해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게 답니다.”

“…….”

“나 좋아하라곤 안 하겠는데. 그 정돈 알려줄 수 있잖아요. 자드키엘을 죽이면 더 이상 역병도 안 돌 거 아닙니까? 당신한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돌아가세요. 당신이 하려는 일,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알테어는 끝까지 내 말을 무시했고. 참다참다 결국 나를 째려보며 일축한다.

그리고 주섬주섬, 환자의 치료를 계속할 뿐이다.

“자. 이것 좀 드세요.”

쪼르륵. 그녀가 꽃을 달인 물을 알드콘에게 먹인다.

다른 생물처럼 꿈틀거리던 기괴한 갑각 다리와 고깃덩어리가 천천히 잠잠해졌다. 알드콘의 괴로움에 찌들었던 얼굴도 점점 평온을 되찾았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X발.’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조금 거북한 기분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의 인사였다.

“… 제 친구 돌봐준 건 감사합니다.”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성당 천막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분위기에 밀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루시와 유리아도 퍼뜩 내 뒤를 쫓았다.

“감사할 건 없습니다.”

그러자니. 등 뒤에서 속삭이는 듯한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냥, 나도 속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여자다. 500년 전 감성이라 그런가. X발.

나는 코웃음치며 성당을 빠져나왔다.

* * *

계곡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우리는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숙소를 걱정해야 했다.

애초에 유입되는 인구가 없으니 당연하긴 하지만. 이 마을엔 딱히 여관이 없다.

“그래도 잘 곳 구하긴 쉬워서 좋네.”

날이면 날마다 병자가 완전히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된다. 그러면 그놈은 알테어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토벌된다. 그 사람이 살던 집은 빈 집이 된다.

그렇게 생긴 공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래서 빈 천막 잡고 아무데서나 자면 됐다.

“그나마 제일 좋은 곳이다. 불만 안 받아.”

나는 중얼거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튀어나온 스프링이 빵뎅이를 자꾸 찌르는 것만 빼면 꽤 쓸만했다.

“으… 이, 이거 뭐냐. 이불이 끈적거린다… 우웩.”

“…!…!!”

다만 지금 루시와 유리아의 불평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흑혈병 병자가 쓰던 천막이다 보니 이상한 곤충 각질 조각이나, 정체모를 점액 같은 게 집안 곳곳에 묻어있다.

나는 천막 구석의 작은 선반을 손끝으로 스윽 문질렀다. 찐득하고 샛노란 점액이 묻어나왔다. 생긴 거나 감촉이나 X같긴 X같군.

“꼬우면 성당 가서 언럭키 스파이더맨들이랑 부대끼고 자든가. 노숙을 하시든가. 강요는 안 한다.”

“… 으그….”

나는 툭 한 마디 뱉었다. 마법같이 불평이 멎었다.

꼴에 병자들이랑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고 싶나보다. 어차피 흑혈병이 소문대로 자드키엘 발이면, 같은 항렬(?)인 루시가 병에 걸릴 리는 절대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얌전히 있어라. 난 좀 나갔다 올 거니까.”

나는 침음을 낮게 흘린 뒤, 소파에서 미련없이 일어났다.

루시는 눈을 끔벅이며 퍼뜩 나를 쳐다봤다.

“엥? 어디 가느냐 용사.”

“곤충 친구들 더듬이 빨아주러 간다.”

“으욱… 저건 씨 말을 해도…!”

대충 대답하고 천막을 나왔다.

루시는 영 찝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루시처럼 따라붙겠다고 고집 피우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런 기분 나쁜 곳을 어슬렁거리긴 싫을 테니 당연하지만. 그 미묘한 반응 차이가 좀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됐어. 고분고분하고 좋지 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역병의 마을을 가로질렀다. 손으로는 화상단말기로 수기를 작성해 나이트레아에게 전송하고 있었다.

[‘알테어 바토리’라는 여자. 그리고 인간사냥꾼 듀라스, 고독의 모스크덴이라는 탈주용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사소해도 상관없으니 전부 찾아주세요.]

보고서 마지막엔 그런 요청을 새겨넣었다. 운터란트의 정보부에 혹시나 관련 정보가 있을까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낮에 갔었던 성당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입구의 천막을 들추고, 내부를 살폈다.

“…… 스칼로.”

그러자 역시나.

알테어가 낮에 말했던 대로였다. 병자를 살피는 스칼로가 거기에 있었다.

“음? 오오.”

뒤룩. 특유의 노란색 일자 동공이 나를 향한다. 그는 반가움에 눈을 크게 떴고. 이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시험의 장막 때처럼 여전히 자애롭지만. 그 땐 없었던 지친 기색이 가득한 미소였다.

“오랜만이군. 친구.”

“… 1년만이네요.”

이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개구리 중년과, 최악의 형태로 재회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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