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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81화 (157/280)

181화

또 다른 성녀

우리는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망자의 ‘계곡’이라는 지명답게, 지형이 점점 높다란 절벽으로 막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시푸르뎅뎅한 빛깔의 걸쭉한 강물이 하나 흘렀다.

우리는 널찍한 강 주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이건….”

그러자 어느 순간, 계곡 한 가운데를 장엄하게 틀어막은 거대한 장벽이 하나 등장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어느 모로 보나 인조 건축물이었다. 나는 적랑과 나이트레아에게 들었던 것과, 가이서스에서 얻었던 지식들로 그 장벽의 정체를 유추했다.

‘이게 그거군. 감염자 방어선.’

세스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원래 망자의 계곡 용사시험의 내용은, 밤만 되면 미친 듯이 몰려드는 괴충들을 이 감염자 방어선에서 100마리 토벌하는 것이다.

할센베르크의 과거 용사시험. 북방의 언데드 100마리 잡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람이 없으니 뚫려버린 모양이군….”

용사가 더 이상 소환되지 않으니, 감염자 방어선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용사들의 소환처였던 에라크마도 망해버렸고. 한참 후방의 가이서스 지역까지 결국 역질이 퍼지게 된 것이다.

나는 낮게 혀를 차며, 격벽 중앙의 완파된 대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으워 씨… 뭐, 뭔놈의 해골이 이렇게 많은 게냐.”

“병자 시체들 갖다 버린 거지 뭐.”

계곡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으스스해졌고. 햇빛은 점점 잦아들었다.

게다가 가는 길목, 걸쭉한 강 속, 주변에 흔들리는 갈대밭 할 것 없이, 썩다 만 시신과 유해가 가득하다.

하나 같이 몸 어딘가가 징그러운 곤충 형상으로 뒤틀려 있었다.

“우, 우윽…!”

따라오던 유리아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끔찍한 참상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돌린다. 하지만 거기에도 어김없이 시체가 있다. 다른 데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한 네 번 연속으로 그러자, 유리아는 졸도할 것처럼 안색이 새하얘졌다.

‘음… 솔직히 좀 귀찮네.’

아쉽게도 착한 박정용은 마르크트레스에서 뒤졌다. 지금 난 주변의 참상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일일이 과민반응 하는 유리아에겐 좀 짜증을 느끼고 있다. 전진이 눈에 띌 정도로 더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아서 미안해요.]

그럴 때마다 유리아는 그런 말을 종이에 써서 내게 보여줬다.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는 의지인 건지. 보여준 종이는 즉각 버렸다. 그러다 또 더뎌지면 다음에 다시 쓰고, 또 버리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는데.

세 번째 구역질할 때부턴 내가 그냥 버리지 말고 재활용하라고 했다.

“미안한지나 알면 됐어. 진정되면 다시 출발하자.”

내가 뭘 어쩌겠나. 그냥 그렇게 말하고 등이나 뚜들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곡 안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성가신 것은 유리아 뿐만이 아니게 됐다.

키기… 키키키킥!!

사방에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거대한 곤충괴물들이 앞을 막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드문드문 인간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는 괴물. 흑혈병이 전신에 도진 병자들의 말로였다.

“내가 그리 맛있어 뵈냐?”

수가 족히 백을 넘길 정도였다.

어디서 맛집 소문 듣고 줄서있는 모양새에 절로 헛웃음을 흘렸다.

[몬스터 정보]

[명칭: 일레느 한센]

[체력: 430/430 마력: 0/0]

[힘: 48 민첩: 101 지능: 1]

[상세: 흑혈병으로 인해 거대한 괴충으로 변모해버린 인간. 돌이킬 방법은 없다.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다.]

괴충화가 끝난 병자는 몬스터들로 표기되는 명실상부 괴물들이었지만. 명칭만큼은 인간이었을 때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그게 좀 불쾌했다.

“별 놈들이 다 있네. X벌.”

어떤 놈은 바퀴벌레처럼 지면에 납작 붙어 더듬이를 발발거렸고.

지네처럼 수많은 인간의 다리가 달려 기어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거미처럼 끈적한 점액질을 사타구니에서 늘어뜨려 나무에서 내려오는 놈.

사마귀처럼 유방을 찢고 나온 칼날 달린 앞발을 가진 놈도 있다.

인간이 그렇듯이, 각양각색에 천차만별이다.

“히, 히익…!”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유리아.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반면 루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숙하게 내 뒤로 숨었다. 똑같이 무능함에도 온도 차가 확연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래서 회사들이 신입 뽑아도 경력 있는 신입 찾는 거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씩 다 상대하기도 귀찮고. 깍두기 둘 지키면서 저 물량을 상대할 자신도 없고.’

어쩔 수 없군.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새빨간 대검을 뽑아들었다.

우우웅. 낮게 울음을 토하는 거대한 대검. 그것을 어깨 위로 치켜든 나는, 스킬의 시동어를 되뇌었다.

“멸망의 화염.”

푸화아악!

대검에서 혈액처럼 검붉은 불꽃이 치솟았다. 밤의 어둠을 살라먹는 폭력적이고 압도적인 열기의 불꽃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괴충들이 그 불꽃의 열기에 놀라 조금씩 주춤거렸다.

“… 아.”

유리아가 불꽃에 홀린 듯한 탄성을 흘린다.

동시에 나는 대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일섬.”

화르르륵!

검의 유려한 궤적을 따라 불벼락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주변의 갈대밭이 일거에 타오르며 불바다가 되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괴물들의 살갖을 태우고, 불티를 사방으로 흩날렸다.

키에에에엑!

키기긱! 키이이익!

한동안 괴물들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인간의 육성과 곤충의 울음소리를 섞은 듯한 불쾌한 울림이었다.

[알림 ― 흉마 소모]

[특수스킬: ‘멸망의 화염’ 사용으로 축적된 흉마를 소모한다. 인간성이 소폭 마멸되었다.]

그렇다고 한다.

나한테 깎여나갈 인간성이 아직 남았다는 사실이 놀랍다면 놀랍다.

사방이 불타는 가운데 비명이 울리니 지옥도가 따로 없다. 유리아도 그렇게 느꼈는지, 눈물을 흘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반면.

“거 잘도 타는구로. 따듯해서 좋구나.”

“군고구마 마렵다.”

저세상 감성의 마왕과 그 하수인은, 신명나게 불타는 사방을 둘러보며 그런 말을 지껄였다.

표정은 둘 다 평온하다 못해 무료했다.

* * *

우리는 결국 불탄 괴충 사체가 즐비한 계곡 끝자락에서 노숙을 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반나절을 더 걸은 뒤에야, 마을 비슷한 것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느린 도착이었다. 깍두기가 1+1로 달려 있으니 애로사항은 제곱으로 꽃이 피더라.

“으. 뭐 보이는 게 없구나.”

루시가 눈앞을 휘적이며 투덜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계곡의 폭이 돌연 넓어지는 곳이어서 그런지,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도착한 곳은 본격적인 마을이라기보다는… 유원지의 입구 같은 곳에 임시 천막을 둘러놓은 모양새였다.

[꿈과 희망이 숨쉬는 곳. 스키드 랜드에 어서오ㅅ]

마을 어귀에 놀이동산의 입구에서 볼 수 있는 환영 팻말이 하나 붙어 있었다. 낡고 해지다 못해 끝부분의 글씨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마을이 어째 애벌랜드 느낌이 풍긴다 싶더니. 유원지 터가 맞았군. 나는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꿈과 희망 다 뒤졌는고….”

루시는 땟국이 잔뜩 낀 팻말을 꺼림칙한 표정으로 쳐다봤고. 이내 진저리를 치며 내게 들러붙었다.

“… 뭔가 기분 나쁜 곳이구나. 귀신 나올 것 같다.”

“마왕씩이나 돼서 귀신이 무섭냐?”

“무, 무섭긴 누가 무섭다 그러느냐. 안 무서워.”

“알았어. 들어가기나 해.”

“미, 밀지 말거라! 알아서 들어간다니까!!”

우리는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을로 진입했다.

후줄근한 천막의 마을은 전체적으로 낙후되고, 낡았고, 기름때가 끼었고, 절찬리에 죽어가는 중이었다.

‘장난 아니군.’

마을을 가로지르는 거리에는 녹슨 파이프가 난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파이프는 광장 중앙에 위치한, 머리가 박살나버린 마스코트 동상으로 이어졌다.

유원지의 쇄락한 영광이 깃든 마스코트 동상. 이 마을의 처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 그 에라크마? 거기보다 심하구나.”

루시가 중얼거렸고. 나는 동의했다.

거니는 사람들 얼굴에는 힘이 없었고, 도처에 걸인과 흑혈병 병자가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나 하면. 부서진 기계와 잡동사니가 마을 한 구석에 산처럼 마구잡이로 쌓여있다.

아무래도 망자의 계곡 깊은 곳, 중류 쪽의 유원지와 폐공장의 산물들 같았다.

“뭐… 일단은 여기서 음식들이나 좀 사놓자고.”

“암. 그래야지.”

다행인 건 적어도 식료품 상점 정돈 있었고, 성당도 있다는 것이다.

성당. 성당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기는 슈엘츠 금화도 쓸 수 있겠어.’

이러면 여신의 신전에서 보증하는 용사 전용 금화, 슈엘츠 금화도 통용될 가능성이 높다.

어째서 가이서스에도 없던 프로피샤 여신의 성당이 이런 산간오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 둘만 있으면 됐다.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내가 도와줄 건덕지는 없다. 신경써봐야 대가리만 아프다.

내 전문은 죽는 거랑 죽이는 거지 살리는 게 아니다. 인명구조에 관해선 짚신벌레와 동 티어다.

인간미가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설백이 옆에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다. 에라크마에서 이런 소문을 들었느니라.”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하자니. 옆에서 루시가 내 옆구리를 쿡쿡 쑤시며 말했다.

루시를 향해 슬쩍 시선을 내렸다.

“소문? 무슨 소문.”

“여기에 은자(隱者) 성녀가 있단다. 증세가 심각한 병자들은 오히려 이곳까지 찾아온다고 했느니라. 병자들을 돌봐주고 기똥찬 치료제를 나눠준다나?”

“성녀라면….”

당연히 유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리아는 갑자기 시선이 집중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툭 물었다.

“너 언니나 여동생 있냐?”

도리도리. 유리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외동이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루시를 쳐다봤다.

“짭인가 본데.”

“뭐, 자기 살려준다는데 진짜 가짜가 중요하겠느냐.”

“그건 그렇네. 그 짭성녀 이름은 뭔데.”

“주워들었다 했잖느냐. 자세한 건 묻지 마라.”

“… 새끼 까칠하긴.”

가볍게 타박을 받은 나는 잡화점 천막부터 들렀다.

각종 술부터 장물이 확실한 무기, 다양한 약초까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들쭉날쭉한 가격에 파는 잡화점이었다.

그래서인가. 가게 테이블에 앉아 술을 홀짝이는 중년 사내들이 몇 보였다.

주점 역할도 겸하는 모양이다.

“에… 보자. 이것도 사고, 이것도 사고. 아. 저것도 주실래요?”

이번엔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식량과 물을 구입했다.

건량은 생각보다 엄청 싸고. 물은 또 엄청 비싸서 놀랐다. 하긴, 지역 특성상 식수는 비쌀 만도 한가?

그것을 루시에게 보여주자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인 모양이다.

“… 금화 51닢입니다.”

잡화점의 여주인은 퀭한 눈으로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 뚫어지겠다 싶을 정도로 유심히 쳐다보는데, 그 시선은 내가 금화를 주머니에서 꺼내자 절정에 달했다.

터질 듯이 부릅뜨인 눈은, 이내 짙은 공포로 파랗게 질렸다.

“슈, 슈, 슈엘츠 금화… 다, 당신… 요, 요, 용사?”

“… 예. 그런데요?”

“으… 아… 으…!”

여주인은 눈에 띄게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공포가 깃들었다.

“…?”

뭐지. 나 아무 짓도 안 했다.

아무리 운터란트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용사를 싫어한다지만. 왜 저렇게 자지러지는 반응이 나오는 거냐.

‘설마 환율 때문에… 는 아니겠고.’

아무리 지역마다 슈엘츠 금화 가치가 조금씩은 차이난다지만. 그걸로 저렇게 귀신 본 것마냥 발광할 것 같지는 않다.

알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소문 들었나? 요즘 망자의 계곡 중류 쪽에서 탈주 용사들이 극성이라던데….”

문득, 뒤에서 술마시던 사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들었지 그럼. 인간사냥꾼 듀라스랑 고독(蠱毒)의 모스크덴 말이지? 듣자하니 그놈들의 지원을 받는다던데.”

“그놈들?”

“왜 있잖나. 자드키엘과 결탁했다는, 레비아탄의 천인공노할 윗대가리….”

“어허. 이 사람 큰일날 소문을! 쉿!”

몸을 벌떡 일으킨 사내가 나머지 한 사내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다급히 눈치를 보던 사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시선을 피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들을 거 다 들은 상태다.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탈주용사?’

정확히 뭐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다만. 원래 앞에 ‘탈주’ 붙으면 닌자든 용사든 터무니없이 세지는 법인데.

‘아…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하필이면 그놈들이 망자의 계곡 심부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고 한다. 아마 높은 확률로 마찰이 생길 것 같다. 지금 내 호구센서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 보니 거의 확실하다.

앞길이 깜깜해지는 한 편. 내가 왜 저런 눈빛을 받는지 알게 됐다.

‘인간사냥꾼 듀라스. 고독의 모스크덴이라.’

나는 문제의 탈주용사 두 사람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뒀다.

두려움의 눈초리는 언제 받아도 입맛이 쓰다. 한 시라도 빨리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나는 최대한 말없이 금화를 꺼내주고는 서둘러 식료품점을 나왔다.

“… 수고하세요.”

괜히 겁먹게 한 게 미안해서 100금화 주고 왔다. 여주인은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돈 많이 받아서 기분 나쁠 건 없겠지.

예상대로 그녀는 가게를 나가는 우리를 뒤로한 채 허겁지겁 돈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뭐냐 용사. 왜 그렇게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튀는 게야!”

“입닫고 얌전히 따라와.”

내가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오자 루시가 퍼뜩 물어왔다.

그리고 빠르게 동네의 성당을 찾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짭성녀 면상이나 좀 봐야겠다.”

운터란트 최남단. 중앙정부조차 사실상 포기를 선언한 망자의 계곡에 성당이 있다? 당연히 그곳에 문제의 성녀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찌그러진 동상 앞에 세워진 거대한 천막으로 서슴없이 발을 내디뎠다.

“꺄윽!”

그런데 마침 조그마한 신형 하나가 성당 안에서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나를 뒤늦게 발견했는지, 그대로 부딪쳐왔다.

나는 미동도 없었지만 부딪쳐 온 꼬맹이 쪽은 벌러덩 자빠졌다.

“으… 아으.”

소녀였다. 타라보다도 어려 보이는, 10세 미만 정도의 소녀.

뒤집어 쓴 거적때기 안에 초록색 머리칼과 붉은 눈. 창백한 피부는 군데군데 파란 혈관이 불거져 나왔고. 관자놀이 위로 흉측하고 길쭉한 더듬이가 연신 꿈틀거린다.

그리고 날개. 등 뒤로 잠자리의 그것 같은 여섯 장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 얘도 환자인가.’

아무리 감성이 곱창났어도 저렇게 어린 애가 저 꼴이 된 걸 보면 마음이 편하진 않다.

가볍게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제야 초록 머리 흑혈병 소녀가 퍼뜩 일어났다. 그녀는 잠시 동안 빤히 내 얼굴을 주시하나 싶더니.

“… 우윽!”

영문 모를 낮은 신음과 함께 퍼뜩 나를 피해 달아났다.

경계심이 많군. 하긴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당연한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성당 안으로 진입했다.

“우… 으으….”

“크… 으… 키익….”

안에는 수많은 병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아직 인간에 가까운 사람. 괴물에 가까운 사람. 그리고 죽기 직전인 사람. 4열종대로 천막에 누운 모든 이들의 신음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들려온다.

연민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방금 어린 소녀를 봤을 때보단 확실히 덜했다.

“……!!”

그러나 성큼성큼 성당을 가로지르던 발은 우뚝 멎었다.

병자들의 면면을 흘깃거리던 어느 순간. 봐서는 안 될 얼굴 하나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 알드콘.”

얼굴의 반절이 기괴한 각질로 뒤덮인 붉은 머리의 소년.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던 작은 몸은, 뒤룩뒤룩 불거져 나온 둥그런 살덩이로 뒤덮여 있었다.

시뻘건 살덩이가 한 데 뭉쳐 꿈틀댄다. 상반신에 고기로 만든 포도가 열린 것 같다.

“… 아… 아아…. 너, 인마… 오랜… 만… 이다.”

이름을 부르면서도 내가 잘못 봤길 바랐다.

하지만 붉은 머리의 소년 병자… 아니, 무늬만 소년인 늙은이. 알드콘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희미하게 웃으며 칠판 긁는 목소리를 냈다.

‘야… 이, 개X발….’

아득한 추락감이 발끝에서 느껴졌다.

수많은 시체를 봐도, 살육을 자행해도 아무렇지 않던 가슴이 통렬하게 욱신거린다.

한동안 참담한 심정으로 누워있는 알드콘을 내려다봤다.

“어머. 환자분의 가족분… 되시나요?”

그 순간. 천막 안쪽에서 목소리가 다가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는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염처럼 치렁거리는 붉은 장발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테어 바토리라고 합니다. 흑혈병으로 쓰러지신 수녀님을 대신해, 1년 전부터 여기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어요.”

자애롭게 휘어진 눈꺼풀 속 새빨간 눈.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누더기 차림의 20대 후반 가량의 여자. 그녀가 자기소개를 해왔다.

무려 최초의 3용사 중 하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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