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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79화 (155/280)

179화

“별 게 다 있네요.”

잭의 실험실을 둘러본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진짜 별의 별 해괴한 물건들이 다 있었다. 백화점보다는 무슨 골동품 상점이나 전당포에 온 느낌이었다.

물건들의 외관도 하나 같이 괴상하다. 겉만 봐서는 무슨 물건인지 상상도 안 된다.

“저의 상상력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잭이 내 혼잣말에 자부심 어린 목소리를 냈다.

잭은 나를 쳐다보며 안경을 슬쩍 추켜올렸다. 마력등의 불빛에 비친 안경이 번쩍거린다.

“한 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시면 골라보시지요. 어떤 물건인지 조목조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본인 분야에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씹더… 마니아 스타일이군.

저런 사람은 뭐 설명 시킬 때가 제일 무서운데. 쓸데없는 정보들이 쓰나미처럼 쏟아져서.

애초에 난 미미르의 눈이 있어서, 설명 안 들어도 무슨 제품인지 상태창만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뭐야.’

나는 대충 눈에 보이는 것 하나를 집어서 미미르의 눈으로 살펴봤다.

무지개 색으로 번쩍거리는 거대한 우산? 아니, 파라솔 같은 물건이다.

[아이템 정보]

[명칭: 허리케인 파라솔 ver. 2.01]

[보정치: 힘+10. 방어도+700.]

[상세: 운터란트 상아탑의 치프 마도공학자, 잭 오스올드 비장의 야심작. 에테르 효율성 때문에 양산은 실패했지만, 창의적인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다. 착용하면 전용스킬 ‘폭풍감옥’을 습득한다.]

[강화 가능 회수: 3]

‘작명센스 하고는.’

명칭 란에서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성능은 그저 그렇다. 애초에 잭 본인도 ‘보조무기’라고 했었으니까. 알맹이는 능력치 자체가 아니라 따라붙는 스킬 쪽이겠지.

근데 이름이 오바빤스다.

90년대 소년만화에 나오는 필살기 이름 같다.

‘설마 다른 것도?’

순간 불안한 느낌이 치고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다른 물건들도 하나씩 만져가며 상태창을 띄워봤다.

[아이템 정보]

[명칭: 달려라 불꽃남자 VOL.3]

[아이템 정보]

[명칭: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아이템 정보]

[명칭: 쪽쪽빨아 막빨아 2000]

[아이템 정보]

[명칭: 들어는 보았나, 질풍반지]

이런 X발.

쭉 둘러보고 허리케인 파라솔을 다시 보니 선녀가 따로 없다.

“하핫! 지금 들고 계신 그 반지는 ‘들어는 보았나, 질풍반지!’라는 놈입니다. 평범한 반지에 에테르 응축 기술을 접목해서, 응축률이 뛰어난 바람의 에테르를 최대한 응축시켰죠. 신체 속도 향상은 물론 무기의 예리도도 증강시켜주고, 미력의 출력을 최대로 하면 약 30초간 허공을 질주할 수도 있는! 엘레강스 하이테크 악세사리 어쩌구저쩌구…!”

아까부터 잭이 따라붙으며 아이템 설명을 좔좔 읊어댄다.

아. 슬슬 귀가 아프려고 한다. 이제 함부로 아이템에 손대기도 무섭다.

나는 퍼뜩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보아하니 성능은 다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는데. 좀 이름 정상적인 거 없습니까? 남사스럽지 않은 거로 하나 가져갈게요.”

“… 아.”

그러자 멈출 생각을 않던 잭의 주둥아리가 단박에 멈췄다.

아니 이 오라질 년아. 왜 대답을 못해. 설마 하나도 없어? 못해도 물품이 100개는 돼 보이는데. 진짜 다 이 모양이야?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이 정도면 감탄스럽다.

나는 마지막으로 눈에 밟히는 장갑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건 좀 멋있네….’

철갑으로 둘러싸인 장갑 외부에 새파란 도색과 장식이 들어가 있었고. 강철의 접합 라인이 밝게 빛난다. 모양새가 택티컬해서 멋지다.

게다가 손바닥 부분에 둥그런 전극 같은 게 달려 있는데. 거기서 새파란 불빛과 스파크가 나오고 있다.

아이론맨 갑옷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집어버렸다.

[명칭: 스턴싸개 MK.3 (희귀)]

[보정치: 힘+10. 민첩+5. 방어도+500]

[상세: 운터란트 상아탑의 치프 마도공학자, 잭 오스올드 비장의 야심작. 생산 단가로 인해 양산은 실패했지만, 창의적인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다. 착용하면 전용스킬 ‘기절 전류’를 습득한다.]

[강화 가능 회수: 0]

이름 거지같은 건 똑같군. 쓰게 웃으며 장갑을 끼우고 손가락을 움직여보자니.

문득 눈앞으로 상태창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시험적으로 착용한다는 게, 내가 이걸 소유했다고 시스템이 판단한 모양이다.

[장비 스킬 ‘기절 전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명칭: 기절 전류]

[효과: 반경 10미터 내 5초간 자장(磁場)생성. 2.5초+a 기절 유발. 재사용 대기 시간: 5분]

[상세: 상태이상 ― ‘기절’을 유발시키는 강력한 자장을 형성한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기절 시간이 증가하며, 접촉 후 발동 시 완전히 정신을 잃게 만든다. 스킬 레벨이 오르면 지속시간이 증가한다.]

‘오. 이건 진짜 좀 괜찮은데?’

스턴싸개가 뭔 뜻인가 했더니. 진짜 스턴을 싸는 장갑이었냐?

CC기(군중제어기술), 그것도 광역CC기가 달린 개인용 보조무기라니.

‘생산 단가가 폭주 할만도 하지.’

황당해서 헛웃음을 흘리자니. 잠깐동안 침묵을 지키던 잭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음.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냐 하시면… 저는 줄곧 실험과 연구를 했습니다.”

“예?”

“25년 전에 철 들고 나서 지금까지 평생. 이 레비아탄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지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물건들을 연구했습죠. 연구밖에 모르는 샌님이니 작명 센스는 좀 이해해 주십쇼. 하핫.”

“… 아.”

반사적으로 걸음이 멈추고 시선을 그에게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무거운 어조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잭의 얼굴엔 씁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저는 디스트릭트10 출신입니다. 아니지. 외지인께는 망자의 계곡이 더 익숙하겠군요.”

“……!”

“자드키엘이 나타나고 디스트릭트10을 망자의 계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지금은 가이서스 지역을 디스트릭트10이라 부릅니다.”

망자의 계곡. 익숙한 지명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잭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흑혈병이 돌자마자 부모님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살아남았고. 운이 좋아서 마법공학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운이 좋게도… 기술관 나이트레아님의 마음에 들어 거두어졌죠. 그리고 운이 좋게 이 공중요새의 건조를 맡게 되었습니다.”

잭은 연신 ‘운이 좋게’를 강조했다.

천운이 없었다면 자기 따윈 진작에 죽었을 거다. 그런 자기비하적인 의도가 느껴졌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옛날이야기 중에, 레비아탄이라는 거대한 드래곤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부모님의 기억이군요.”

발명품들을 휘 둘러보는 잭의 눈가에 우수가 차올랐다.

“강한 힘과 무서운 외모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인간을 사랑했고, 금율을 어겨가면서까지 인간을 도우려던 드래곤. 그 때문에 인간과 신 양쪽에서 배척당했지만, 그 강력함 때문에 신조차 건드리지 못했던 드래곤이라고 들었습니다.”

“… 그, 그렇군요.”

나는 입을 닫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소위 말하는 그거다. ‘회상 타임’이군. 한창 잭이 감정 잡는 이 타이밍에 ‘잡상인 사절이요.’라고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저는 레비아탄을 가슴 깊이 동경했습니다. 설령 신이 나를 막아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신념을 지킨다! 멋지잖습니까. 어머니도… 제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레비아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중요새의 이름이다.

옛날이야기의 막강하고, 인간을 사랑하던 드래곤의 이름을 이 요새에 붙였다.

이 요새를 하늘로 띄운 일등공신은 그걸 말하고 싶은 듯했다.

“용사님. 저는 레비아탄을 재림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부심 넘치던 잭의 목소리는 거기서 급격하게 낮아졌다.

낙차가 심각했다. 방금까지 꿈에 젖어 방글거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인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한 잔혹한 신과, 추악한 마왕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드래곤. 연약한 우리를 지켜줄 진정한 구원자. 강력하고 상냥한 드래곤을 말입니다.”

곧 잭의 미간은 바짝 찌푸려졌다.

나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눈빛에서 형언하기 힘든 슬픔이 전해져 왔다.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름만 같았지, 이 덩치만 쓸데없이 커다란 기생충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

“제게 세상이 추악하고 잔혹하게 보였던 건. 저를 둘러싼 인간들이 하나같이 추악하고 잔혹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불경한 생각을요.”

잭의 넋두리는 약한 혼란으로 시작해서 고요한 분노로 끝을 맺었다.

생각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가만히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다가 툭 물었다.

“그 얘기. 나이트레아한테도 했습니까?”

“아뇨. 용사님이 처음입니다.”

“…….”

“저도 잘 모르겠군요. 왜 이런 궁상을 주절대는지. 하핫.”

그리고 직후. 잭은 모든 것을 잊었다는 양 방실거리는 얼굴로 돌아왔다.

내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보더니 대번 화색을 띄웠다.

“그걸로 하실 겁니까?”

“아, 아. 예. 그냥… 이게 좋아 보이네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잭은 언제 심각한 얘기 했냐는 듯이, 헤벌쭉 웃으며 장갑을 어루만졌다.

“스턴싸개! 과연 안목이 높으시군요. 용사님처럼 기동력과 파워, 유틸리티를 겸비한 분은 군중제어기까지 갖추면 천하무적이 되죠! 하하핫!”

“예… 뭐, 하하.”

뭐지 이 사람. 이중인격인가. 온도차가 적응이 안 돼서 한 동안 어버버거렸다. 나는 잭의 인솔로 정신없이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저벅저벅. 한동안 말없이 발소리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용사님.”

복도를 걷던 중. 앞서가던 잭이 문득 나를 불렀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시선만 들었다. 잭이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이 기술관님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기술관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솔직히 도통 모르겠습니다. 저는 11살 때부터, 부모님이 죽은 그 순간부터 연구밖에 해본 게 없는 병신이니까요.”

“…….”

“하지만 용사님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 자드키엘의 참살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잭은 표정을 보여주지 않은 채 슬쩍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의 경박함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숙하고 정중한 자세였다.

“응원하겠습니다. 용사님.”

그리고 다시 앞장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어조가 희박해서 무슨 표정일지 상상이 안 됐다.

“목적이 악하든 선하든.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운터란트의 정부는 몰라도… 저는 자드키엘의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을 위해 36년을 살았으니까요. 무조건 응원합니다.”

“… 예. 감사합니다.”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는 그 때. 저는 레비아탄의 전설에서 비로소 해방되겠죠. 그 빈자리에 용사님의 이름 석자를 새겨 넣겠습니다.”

뼛속까지 이과충인 잭이 문과충 같은 발언과 함께 빠르게 멀어졌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잭이 나를 부르던 호칭이, 어느새 ‘정용님’에서 ‘용사님’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 후우.”

괜히 꿀꿀해진 기분을 달래기 위해 나이트레아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내 방에 틀어박혀서 창밖을 쳐다봤다.

공활한 하늘. 끝없이 펼쳐진 운해(雲海) 위를 미끄러지는 요새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평화롭고. 안전해 보이고. 또한 방비가 잘 되어있는 미래적인 도시의 풍경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경비병들도 걱정 하나 없는 얼굴에, 당당한 걸음걸이다.

“무릉도원이네 아주. X발.”

크로스페이드도, 미텔란트의 수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언제 마왕이 나타날지 모른다’라는 특유의 긴장감이 없다.

정말 이 요새 위만 다른 세상인 것 같다. 노아의 방주에 탄 신인류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싶다.

‘복잡하구만….’

푸른 장갑을 낀 손을 쥐락펴락 해봤다.

나는 의미없이 잭이 남겼던 뜬구름 잡는 말들을 곱씹었다.

― 제 눈에 세상이 추악하고 잔혹하게 보였던 건. 저를 둘러싼 인간들이 하나같이 추악하고 잔혹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불경한 생각을요.

그 정도로 불경할 것까지야.

나는 인마. 한창 빚 갚을 땐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뭐 했는지 아냐. 운석 떨어져서 전세계 모든 인간들 싹 뒤지길 기도하는 게 아침점호 대신이었다.

“검은 머리 짐승들 추한 게 원투데이인가.”

아무튼 그 사이 마녀사냥꾼 박정용의 열혈팬까지 생겼다고 한다.

솔직히 마녀사냥 같은 복잡한 뒷얘기는 나도 머리아파서 차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자드키엘이랑은 끝장을 봐야겠다.

단순한 결론을 내리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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