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스턴싸개의 추억
개틀링건을 아는가?
여러 개의 총신을 회전시키는 연발기관총 말이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말해준 일화라 기억하고 있는데. 개틀링건의 최초 개발자는 ‘리처드 조던 개틀링’이라는 미국의 의사 겸 발명가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곧잘 만드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남북전쟁이 주야장천 지속되자, 갑자기 미쳐가지고 개틀링건을 고안한다.
이유는 심플하면서도 심오하다.
개틀링 박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 명이서 100인분을 감당하는 무지막지한 총이 있으면 전쟁에 끌려나가는 사람도 적어지겠지. 나아가서 이 무기의 공포로 인해 전쟁이 점점 줄어들 거다!”
상호확증파괴 전략.
물론 틀리진 않은 생각이다. 다만 인간의 욕심을 살짝 얕본 생각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밝혀준 바에 따르면. 전쟁이 멈추려면 핵폭탄 정도의 공포와 억제력이 필요하다.
최약체를 투하해도 최소 10만 단위를 초토화할 수 있어야, 비로소 공포가 시작되고 전쟁은 멈춘다.
그렇다.
싸움을 멈추고 싶으면 개틀링건 정도로는 안 된다. 핵이어야 한다.
귀찮은 날파리들이 덤빌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경지의 힘.
무협지에서 은거기인들이 괜히 X빠지게 센 것이 아니다. 그 정도 강력함은 있어야 세상이 은거기인 라이센스를 발급해주는 거다.
‘세계최강’급은 스펙만 보면 이미 달성했다.
그 경지를 넘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필요하다. 이름하여 ‘핵정용 프로젝트.’
그렇게 되고 싶어서 마르크트레스에서는 적랑에게 가르침을 요청했던 거고.
“나 좀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그 때는 나이트레아에게 염치불구하고 물어보는 상황이었다.
나이트레아는 갑작스런 질문에 눈썹을 추켜세웠다.
“… 뭐라고?”
여기는 레비아탄.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운터란트 국립대학 겸, 마법공학 연구소다.
그 상아탑의 국장이자 기술부 장관인 나이트레아. 그녀의 개인실에 쳐들어간 나는, 책상에 멀뚱히 앉아있던 나이트레아를 빤히 쳐다봤다.
“뭐 없습니까? 나도 막 유두에서 빔 쏘고 싶은데.”
마르크트레스에서 출발한 레비아탄이 운터란트에 다시 도착하기까지. 약 사흘 걸린단다.
‘준내 심심하다.’
이 시간을 그냥 허송세월하기엔 너무 아깝다. 나이트레아가 마련해준 귀빈용 특실에만 처박혀 있기도 좀이 쑤신다.
유두빔 안 되면 손등에서 전기톱도 괜찮다. 세스나 보니까 호쾌하고 마초적이라 멋있더라.
“으음.”
뭐 당연히, 나이트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자기가 손님으로서 들인 사람이라지만.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은 얼굴이다.
그녀는 서류와 실험재료가 마구 어질러진 책상을 슬쩍 치우더니. 이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내게 시선을 던졌다.
“… 강하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데 웬걸. 의외로 반응이 긍정적이다.
‘뭔 개소리냐 X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와줄 수도?’라는 뉘앙스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라서 좀 당황했다. 생각해 놨던 약팔이들이 무용지물이 되자 나도 모르게 허둥거렸다.
“어,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는데요. 그냥 어떻게든 강해지기만 하면 상관없는데….”
그래서 맥아리 없는 대답을 해버렸다. 뱉고 나서 후회했다.
X발 역시 유두빔 나오게 해달라고 할걸. 찌찌에서 안 되면 손에서라도.
“흐음.”
나이트레아는 두 손을 깍지 끼우고 턱을 괴었다.
한동안 고민하더니, 파란 단발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나도 당신이 싸우는 걸 몇 번 봤잖아? 압도적으로 강하던걸. 적랑이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 이상이겠다 싶던데.”
“아, 예… 감사합니다?”
난데없는 칭찬세례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나이트레아는 한숨처럼 웃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안 돼. 미안하지만 운터란트의 기술력으로도, 아직 네 참격보다 강한 위력을 내는 개인 화기는 만들 수 없어. 그 정도 위력이면 휴대가 안 되는 대형화기가 돼버리지.”
“아….”
그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살짝만 더 구질대보기로 했다.
“그, 혹시 개회식 때 병사들이 썼던 강화 슈트 같은 건…?”
본인 방금 모빌수트 파일럿 되는 상상함.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이트레아는 피식, 귀엽다는 듯이 얕은 웃음을 흘렸다.
“너 그게 얼마짜린 줄은 알고 말하는 거냐?”
“모르는데 비싼가 보군요. 닥칠게요.”
나는 입맛을 다시며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러자 나이트레아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후후. 그래도 모처럼 들어온 마녀사냥꾼 신참이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긴 한데….”
이내 그녀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네모난 단말기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지구의 스마트폰처럼 생긴, 화상전화 겸 기록용 단말기. 내가 가이서스에서도 썼던 바로 그것이다.
운터란트의 마도공학은 세계제일!
“잭. 나야.”
이내 네모난 화상 안에 남자의 얼굴이 떴다.
안경을 쓰고, 황금색 곱슬머리와 노란 눈. 마빡에 ‘나 공돌이다’라고 써 붙인 면상이었다.
묘하게 낯이 익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나이트레아와 함께 국빈회의를 참가했던 잭 오스올드라는 남자다.
예 기술관님. 뭐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설마 레비아탄 기기결함?
“아니. 여기 당신 발명품에 관심 있을만한 사람이 하나 있어서.”
―오… 설마 그 손님인가요? 의외군요.
“의외라니?”
―힘만 무식한 전사처럼 생겼던데. 망토 안에 떡대랑 잔근육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런 걸 실전 압축 근육이라 하던가요? 하핫.
신나서 떠벌거리는 그 말에 나이트레아의 시선이 내게 흘깃 닿았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힘만 무식한 건 팩트라 딱히 데미지가 없다.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혹시 견학 좀 시켜줄 수 있겠어? 팔 수 있거나, 줄 수 있는 것들로.”
―저야 뭐 환영이죠. 하핫.
“그럼 내 방으로 와줘. 최대한 빨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기술관님.
삐빅. 남자의 화상이 끊어졌다.
그리고 쾅! 곧장 문이 열리며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잭 오스올드였다.
“찾아왔습니다 기술관님!”
너무 빠르잖아.
쿠빵맨이냐? 쿠빵맨도 시키자마자 도착은 안 한다.
나이트레아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마를 짚으며 잭의 면상을 삿대질했다.
“또 내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냐?”
“하핫. 그야 뭐, 손님분이 들어가는 걸 보고 제가 필요한 일이 생기겠다 싶어서. 기술관님은 뭔 일만 있다 하면 저한테 짬시키잖습니까.”
“…….”
나이트레아는 태연하게 실실거리는 잭을 쳐다보다가, 이내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은 없는지 반박은 못 했다.
그녀는 멋쩍은 듯이 손사래를 쳐 우리를 축출했다.
“아 그래. 알겠으니까 데리고 나가. 너 보면 없던 두통이 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기술관님.”
잭은 능글맞게 웃으며 퍼뜩 인사를 박았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나이트레아의 방을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본새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둘 중 하나겠군. 엄청 친하거나, 엄청 사이가 안 좋거나.
개인적으론 전자로 보인다.
“무신제 활약은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피에 젖은 달그림자씨. 잭 오스올드입니다. 이렇게 정식으로는 초면이지요?”
성큼성큼 복도를 앞장서던 잭이, 문득 빙긋 웃으며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악수 요청이었다.
“초면… 아, 네. 뭐… 그렇네요. 그랬지요.”
그렇군. 내가 국빈회의에 참석했던 건 없던 일이 됐구나. 나는 얼떨떨하게 손을 맞잡았다.
국빈회의 때의 첫인상은 꽤 이지적이라, 나이트레아처럼 쌀쌀맞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빅뱅이론 출연할 것 같은 유쾌한 공돌이다.
“박정용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잭은 많은 파라이소 사람들이 그렇듯, 내 이름을 듣자 일단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전뇽? 이름이 되게 어렵구만요.”
“그나마 이상하게 말한 사람 중엔 제일 비슷했네요.”
“하핫. 바보 중에 1등입니까.”
잭은 유쾌하게 웃으며 “천재 중에 꼴찌보단 낫군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사람 좀 마음에 들려고 한다.
“그래서, 제 발명품을 보고 싶으시다고요?”
“예. 그냥 뭐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게 있나 싶어서요.”
지구보다도 미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요새 복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어떤 방 앞에 선 잭이 의기양양하게 물어왔다. 본새를 보아하니 그 방이 바로 문제의 ‘발명품’들이 모여있는 방이지 싶다.
“하핫. 압니다 알아. 무슨 느낌인지. 정용님처럼 강한 사람에겐 통상적인 운터란트식 개인화기가 무의미하지요. 전투에 유용한 보조도구를 찾고 계시죠?”
묘하게 짜증나는 얼굴. 다 안다는 듯이 음흉하게 눈썹을 튕기는 잭.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좀 마음에 안 들려고 한다.
“… 네. 뭐, 그렇게 되겠습니다?”
“정말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의 무한한 상상력과, 운터란트의 놀라운 기술력이 합쳐진 어여쁜 아가들이 지금도 제 연구실에 잠들어 있습니다.”
자기 발명품을 보고 ‘어여쁜 아가들’이라고 했다.
일단 얘도 정상은 아니구나. 나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판단을 내렸다.
“자자. 어서 들어오시죠!”
잭은 신나서 어두운 방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 앞에서 잠깐 가만히 방문을 쳐다봤고. 이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나는 애초에, 내가 가진 건 이 악물고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주변 정도는 확실히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지고 싶다. 그런데 루시는 마왕 중에서도 최강의 마왕이다.
‘실패도 도피도. 한 번이면 족하지.’
루시와 내게 덤벼오는 놈들도 그만한 실력과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 갈리도록 짜증나지만, 그만큼 치밀했던 헥터 카사스와 그 따까리들처럼.
그러니까 나는….
“최강이 된다.”
용사 중 최강이라는 적랑을 넘어서 대륙 최강.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면. 적어도 힘이 모자라서 억울할 일은 없어지겠지.
목표가 정해졌다. 나는 한 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잭의 연구실에 성큼성큼 나아갔고.
―소름 돋았다 정용아. 갑자기 왜 혼자 중얼거려. 십덕이야? 최강이 된다 이지랄….
기껏 사람이 마음잡고 다짐하는데, 수호 형님이 사정없이 초를 쳤다. 정면으로 지적받으니 개쪽팔리다 X발.
제발, 나가, 뒤지십쇼.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