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나는 성녀 유리아를 데리고, 가이서스에 마련한 내 임시거처에 돌아왔다.
유리아의 손에는 근처 노점에서 사준 닭꼬치와 정체모를 튀김 같은 것이 잔뜩 들려 있었다.
“음. 이 집도 오랜만이군.”
참고로 루시는 없다.
여기는 말 그대로 내가 조사를 위해 가이서스에 구입해 놓은 전초기지고. 루시는 좀 더 망자의 계곡과 가까운 거처에서 대기 중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비좁고 음습한 골방에 있는 것은 나와 유리아, 둘뿐이다.
“일단 들어와라. 뭐 대충 아무데나 앉아.”
마르크트레스는 판잣집이 유행(?)했었지.
운터란트의 지상에는 컨테이너 집이 유행한다. 나무판자보다 보기 쉬운 게, 가이서스의 수많은 폐공장에 널린 컨테이너이기 때문이다.
내용물은 딱히 다를 거 없다. 허름한 살림살이 몇 개와 다 무너져가는 침대. 끝.
그래도 여기는 컨테이너 주제에 무려 샤워실도 딸려 있다. 이 정도면 신라호텔 부럽지 않지.
“뭐해. 들어와 앉아.”
“…… 으.”
할센베르크 하수도에선 변종 뉴트리아 뜯어먹으며 몇 날 며칠을 지냈던 나다.
비바람 막아주면 컨테이너든 판잣집이든 군용 A형텐트든 사는 데 지장없다.
아니 정정한다. 군용 A형텐트는 좀 싫다. 그건 최소 생존의 마지노선을 씨게 넘었지.
“… 으. 우우….”
나는 하염없이 출입문 앞에서 쭈뼛거리는 유리아를 보고, 새삼 집의 꼬라지를 다시 살폈다.
‘아하.’
왜 그녀가 가만히 있는지를 깨달았다.
먹다 버린 음식물 껍데기나 각종 잡동사니로 온통 어질러져 있다. 앉기는커녕 발 디딜 틈도 거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를 가리켰다.
“그럼 침대에 누워있어. 어차피 바로 너한테 볼일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
유리아가 눈에 띄게 몸을 움츠렸다. 은백색의 신기한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 유난쩍은 반응에 미간을 슬쩍 모았다.
‘뭐지 X발.’
왜 저렇게 무서워하냐.
하긴 내가 여자들이 보고 안심할 면상은 아니지. 강력범 수배전단에 나랑 비슷한 얼굴이 심심찮게 보이던데.
군대에선 뉴스보다가 동기한테 신고당한 적도 있다. 진짜로.
‘이럴 때는….’
나는 유리아가 안심할 수 있도록,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히죽거렸다.
그리고 최대한 그녀를 배려해 멘트를 쳤다.
“난리통에 혼란스럽지. 일단 너 먼저 샤워해라. 샤워실은 저쪽이다.”
“…!!!”
그런데 웬걸. 유리아가 허겁지겁 뒷걸음질 치더니, 벽에 바싹 붙어 다리를 파들파들 떨었다.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윽, 우… 흐흑.”
“…?”
X발 뭔데. 아무리 내가 훈남은 아니라지만.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면 마음에 기스 난다.
관상은 사이언스라는 걸 증명해줘 내가?
“형님. 쟤 왜 즙 짭니까. 증증손자 심리 좀 파악해주십쇼.”
―단어 선택에 좀 문제가 있지 싶은데.
내가 결국 혈연 찬스를 사용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해 못할 부류의 것이었다.
나는 고개 빳빳이 들고 당당함을 어필했다.
“침대에 누워있어라. 바로 너한테 용무 있다. 먼저 씻어라. 이게 왜?”
―악덕 포주 모가지를 참살하고. 수많은 교단 전투원한테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형체도 안 남게 찢어 죽인 남자한테 끌려왔잖아. 원빈 면상이라도 무섭지 않을까?
“…….”
―게다가 방 꼬라지 좀 봐라. 후줄근한 컨테이너 같은 데 끌려와서 그런 얘기 들으면 한 따까리 하자는 소리 같잖아. 목적을 좀 똑바로 말해줘야 할 거 같은데.
그건 그렇네.
최근 매운맛 박정용의 저세상 감성은 과거의 순한맛 박정용과는 많이 다르다. 진라면 순한맛과 매운맛 수준으로 다르다.
일반인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했군. 통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근데 컨테이너는 어쩔 수가 없는… 후. 됐다.”
나는 변명하다가 스스로 한심해져서 그만뒀다.
가이서스에서 이런 컨테이너 말고, 번듯한 집에서 살고 있는 부류는 크게 셋뿐이다.
이쪽 구획을 주름잡는 갱의 단원. 어쩌다 흘러들어온 졸부 용사. 아니면 그들에게 고용된 고급 창녀.
‘이 컨테이너도 비싼 돈 주고 산 거라고.’
가뜩이나 여기 사람들은 용사 불신 풍조가 팽배하다.
마왕 토벌 보상으로 나오는 ‘슈엘츠 금화’는 취급도 안 한다. 할렘가의 지하경제는 모두 운터란트 전용 금화로만 통용된다.
거점 마련할 돈 모으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그것 때문에 몬스터 출몰지 돌면서 한 2개월 뺑이 치느라 시간 오지게 날렸다.
나는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이고는, 천천히 유리아에게 다가갔다.
“성녀님.”
나는 유리아가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조금 멀찍이 떨어져 그녀를 불렀다.
“…?”
두려움이 잔뜩 낀 하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보면 볼수록 빨려들 것 같은 신기한 색이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말했다.
“나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해. 그냥 네 힘이 좀 필요해서 데려온 거다.”
“…….”
“왜 괴상한 사이비 교단에 잡혀서 이용당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근데 내가 일단 네 생명의 은인이다. 알고 보면 나도 착해.”
그 대목에서 수호 형님이 풉, 하고 낮게 웃었다.
멘트 수준 봐라 X발. 90년대 조폭영화냐.
“즈용이 흐십스 쓰바….”
이 빌어먹을 김치맛 마검 새끼는 도와주진 못할망정. 진지한 국면마다 초를 친다니까.
어쨌든 나는 가식적인 웃음 따위 집어치우고, 덤덤하게 유리아의 앞에 사실들을 늘어놓았다.
“네가 진짜 성녀의 후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관심도 없는 사이비 교단까지 들쑤시며 너를 데려온 거다.”
“…….”
“나는 지금부터 마왕 자드키엘을 죽이러 망자의 계곡 쪽으로 갈 거다.”
“……!”
“그러기 위해선 네가 가진 통찰의 눈이라는 힘이 필요해. 힘을 빌려줘야겠어 성녀님.”
내가 진지하게 눈을 마주보자, 유리아의 미친 듯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점점 차분해졌다.
그녀는 이내 뭔가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 흠. 좋아.”
말이 워낙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대화할 마음은 들었나 보다.
여기까진 좋다. 나도 하면 되긴 하는군. 인싸력이 상승한 기분이다.
나는 천천히 질문거리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럼 성녀님. 일단… 통찰의 눈이라는 게 정확히 뭐지? 자기한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고는 있나?”
끄덕끄덕.
유리아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템이냐? 나한테 넘겨줄 수 있으면 지금 줘. 당장 널 풀어주지.”
도리도리.
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넘겨줄 수 없다? 그럼 스킬 같은 거냐?”
끄덕끄덕. 이하생략.
아니 근데 주댕이를 용접기로 지져놨니? 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아가리 한 번 벌리는 일이 없누. 사람 자꾸 젊은 꼰대로 만들 테야?
“그냥 말로 자세하게 대답해주면 안 되냐? 성녀님. 너 벙어리야?”
끄덕끄덕. 이하생략.
…… 아니 잠깐만. 끄덕끄덕?
“… 너 벙어리라고? 진짜 말 못해?”
끄덕끄덕.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봤지만.
여전히 유리아는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였다.
“어 X발.”
―어 X발.
나와 수호 형님이 동시에 욕을 내뱉었다. 당황한 나머지 저절로 나왔다.
백색 눈동자를 말똥말똥하게 치켜뜬 유리아를 보며, 나는 착잡한 한숨을 흘렸다.
“… 후우.”
수호 형님의 먼 자손이자 고대 성녀의 후예. 통찰의 눈을 가진 유리아 루에바.
그녀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 * *
오. 전설 속 성녀의 후예가 실존한 것도 놀랍지만. 벙어리일 줄은 또 몰랐네.
“그러게요. 좀 골치 아프네요.”
나는 쥐고 있던 손바닥만한 단말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단말기에는 나이트레아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 있었다.
화면 속의 나이트레아가 책상 위에 턱을 괴었다. 미소 띈 그녀의 얼굴이 한층 클로즈업 된다.
어쨌든 망자의 계곡 최심부로 진입할 실마리는 찾았네. 운터란트가 25년 동안 못한… 아니, 안 한 작업을 6개월만에 해내다니. 운터란트 참모부를 대신해서 감사할게.
“됐습니다. 딱히 이런 미친 나라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참고로 이 스마트폰처럼 생긴 단말기로 말할 것 같으면.
운터란트 기술부가 자랑하는 ‘에테르 화상 교신 및 기록전달 단말기’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진짜 전화기와 비슷한 용도가 맞다.
쓸데없이 이미지 깎아먹긴. 어디서 호구라는 소리 자주 듣지?
물론 스마트폰처럼 기능이 다양하진 않고, 통화 가능 범위도 에테르 중계기가 건설된 운터란트 영토 내로 한정되긴 한다.
그래서 가이서스 같은 할렘가는 중계기 유지보수가 잘 안 돼서, 통화가 안 터질 때도 많다.
지금만 해도 나이트레아의 화상이 빈번하게 깨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잭한테 받은 ‘그거’는 잘 쓰고 있어? 감상이 어때?
문득 나이트레아가 내 손목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내 왼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철그럭. 파란 빛이 인상적인 철제 장갑이 하나 끼워져 있었다. 택티컬한 미래적 디자인을 자랑하는 강철의 장갑. 그 이름하여….
[명칭: 스턴싸개 MK.3 (희귀)]
[보정치: 힘+10. 민첩+5. 방어도+500]
[상세: 운터란트 상아탑의 치프 마도공학자, 잭 오스올드 비장의 야심작. 생산 단가로 인해 양산은 실패했지만, 창의적인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다. 착용하면 전용스킬 ‘기절 전류’를 습득한다.]
[강화 가능 회수: 0]
… 스턴싸개다.
똥싸개, 오줌싸개 할 때 그 싸개.
사람을 기절시키는 전류를 뿌직뿌직 발사한다고 붙은 이름이란다.
이 제품의 발명자이자, 레비아탄의 메인 개발자이기도 한 잭 오스올드의 말에 따르면. ‘특징을 컴팩트하게 설명하는 멋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보다 쓸 일이 없네요. 나중에 쓰게 되면 말하겠슴다.”
―하긴. 그게 없어도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쓸 일이 없으면 좋은 거겠지.
“그 말도 맞군요.”
―그럼, 또 알아내는 게 있으면 보고해줘. 혹시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나도 전력으로 조사해줄 테니까.
“예. 고생하십쇼 누님.”
삐빅. 인사를 마지막으로 통신 단말이 검게 물든다.
방이 적막해졌다. 나는 다시금 왼손의 장갑에 시선을 던졌다.
… 그 말대로다.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이, 스무스하게 잘만 풀리면 참 좋을 텐데.
‘이 X같은 세상이 나를 그렇게 놔둘 리가 없지.’
나는 장갑 끼운 손가락을 괜히 까딱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솨아아아―. 방의 구석 쪽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유리아가 샤워하는 소리다.
반투명한 문 너머로 그녀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비친다.
어허. 새끼 눈깔 돌아간다.
X발. 꼴에 제 혈육이라고 눈치는 귀신같군.
나는 퍼뜩 다시 단말기로 시선을 박았다.
‘착한 생각 하자.’
어떡한다. 사운드가 너무 빠방해서 애국가고 반야심경이고 다 소용없을 거 같은데.
지난 6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회상해 볼까.
‘일행들 몰래 야반도주하고 나서. 그 다음에….’
그래. 레비아탄에 탑승하고. 이 장갑을 받았던 게 거의 그 직후였지.
나는 샤워실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뇌를 피하기 위해, 반쯤 억지로 회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