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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76화 (152/280)

176화 성녀 탈취

운터란트는 과학이 발달한 세계에서 온 용사들의 지식을 빨아들여, 파라이소 식으로 개조한 ‘마도공학’을 기반으로 발전한 나라다.

그 집단지성의 정수가 바로 운터란트의 공중요새이자 수도, 레비아탄이다.

이 레비아탄에 사는 수도의 시민은 1등시민이고. 지상에 잔류해 레비아탄의 유지를 위한 자원채굴이나, 무기 생산 활동을 하는 자들은 2등시민이라 한다.

그런 특수한 나라인 만큼 다른 나라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용사들과 원주민 간의 암묵적인 갈등.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고위 관직을 많이 차지하는 용사들.

지나치게 공중요새에 집약된 방위체계.

지상의 도시로 잘 이어지지 않는 기술 발전의 수혜.

그로 인한 시민들의 생활수준 격차.

지상의 할렘화.

그 외 기타 등등. 타국도 아는 공공연한 오명이 많다.

일개 노가다꾼인 내가 봐도, 이 나라는 여러 모로 뒤틀려 있다.

온통 황야와 사막뿐인 척박한 땅. 그리고 산발하는 마왕의 출현.

그것들에게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공중요새 레비아탄이 탄생했다. 적어도 만든 이의 의도는 그게 맞다.

그러나 정작 그 공중요새들은 높으신 돼지새끼들을 지켜줄 뿐, 위험에 노출된 지상의 인원들에게 무관심하다.

운터란트의 발달된 기술들도 전부 공중요새에서만 누리고 있다. 그 수혜가 지상까지 전달되지 않아 기술 격차가 심각하다.

말하자면 매드맥스 세계관 위에 SF지상낙원이 떠있는 건데.

그 지상낙원이 막대한 자원도 빨아 처먹는 바람에, 안 그래도 족같은 인생 살던 매드맥스 친구들이 더 고통 받는 형국이다.

나쁘게 말하면 옘병 X발 개족같은 상황이고. 좋게 말해도 개족같은 상황이다.

이미 운터란트의 지상과 레비아탄은 서로 다른 세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의 인식, 기술력, 생활수준, 모든 방면에서 그랬다.

그래서 그런가. 운터란트 2등시민들은 가끔씩 상상도 못한 상식 밖의 일들을 벌이기도 하더라. 진짜 매드맥스처럼.

운터란트 최대의 할렘가이자, 괴질이 퍼지는 ‘망자의 계곡’이 코앞에 있는 지역.

내가 지금 체류하는 가이서스 지역 또한 그런 일이 한창 벌어지는 중이다.

악마숭배를 넘어서, ‘마왕숭배’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말이다.

* * *

여기는 망가진 서커스장을 개조한 연설장의 한복판.

웅성웅성. 수근수근.

거대한 무대 앞. 관객석에 남루한 차림의 군중이 수백 명쯤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 단상을 쳐다보는 수백 쌍의 눈.

하나 같이 신체 일부가 곤충처럼 매끈한 각질로 뒤덮였고. 곤충의 다리가 꿈틀거렸으며. 기형적으로 불어나 움찔거리는 살덩이를 붙인 이도 있었다.

모두 망자의 계곡에서 퍼지는 원인불명의 괴질, 흑혈병(黑血炳)의 병자들이었다.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신도님들!”

그리고 텅!

천장의 낡아빠진 마력등이 켜졌다. 무대 위로 깜빡이는 불빛이 쏟아진다.사람들은 불빛 아래 나타난 인물들을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연신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

어둑한 무대 위.

곤충과 사람을 반쯤 섞어놓은 듯한 괴기스러운 생명체가 의자에 묶여 꿈틀대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하얀 사제복을 입고 광대가면을 쓴 펑퍼짐한 남자. 그리고 노출이 굉장한 개량 수녀복을 입은 여자가 쭈뼛거리며 서 있다.

“친애하는 신도 동지 여러분. 이번에 소개할 분은, 여러분께서 손꼽아 기다리시던 분입니다!”

가면의 남자가 장중한 목소리로 외친다. 수백 명의 청중들이 내던 박수소리가 일제히 조용해졌다.

가면 남자는 자신과 수녀복 여자를 차례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는 이번 기적 나눔 축제의 목회자인 시미언 고자르스. 그리고 옆에 계신 이 분은! 고대 슈엘츠 성녀의 마지막 혈육, 기적을 낳는 구원천사교의 재림성녀! 유리아 루에바님이십니다!”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

그야말로 ‘광신도’라는 말이 어울리는 열렬한 반응이었다.

모든 열광은 시미언이라는 남자보단 성녀의 혈육이라는 여자한테 가 있었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절박한 시선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음험한 욕망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

여자는 그 뜨거운 시선이 닿을 때마다 인두로 지진 듯 몸을 흠칫거렸다.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있다.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듯했다. 이 자리 자체를 어지간히도 극혐하는 행색이었다.

“하하! 고맙소 동지들! 자드키엘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열광의 도가니에 가면의 남자는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수녀복의 여자는 옷의 파인 부분을 연신 가리려고 애쓰며 고개를 떨궜다.

‘흐음.’

그 광경을 천막 입구 부근에 기대서 지켜보던 나.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빠르게 훑으며 미미르의 눈을 사용했다.

[명칭: 시미언 비르겐 고자르스]

[별칭: 구원천사교의 교주]

[LV. 3]

[체력: 180/180 마력: 100/100 신체상태: 정상]

[힘: 13 민첩: 6 지능: 15]

[명칭: 유리아 루에바]

[별칭: 구원천사교 재림성녀, 성녀의 혈육, 마지막 예언자, 기적을 낳는 천사]

[LV. 25]

[체력: 50/110 마력: 450/450 신체상태: 공복, 갈증, 쇄약]

[힘: 3 민첩: 5 지능: 71]

상태창을 보니 확실해졌다.

이곳은 가이서스에서 요즘 유행하는 ‘구원천사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집회 현장이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운터란트 남단의 가이서스 지역.

괴질 흑혈병이 퍼지기 전까진 군수산업의 요충지이자, 유동량이 가장 활발했던 상업 지대.

지금은 역병이 드문드문 퍼져가는 병자들의 도시이고. 사실상 무법지대로 전락한 할렘가다.

일단 정용아. 자드키엘을 죽이려면 말이야. 내 자손의 힘이 필요할 거다. 내 자손부터 찾는 게 빠를걸?

나는, 당장이라도 자드키엘의 모가지를 뽑아버리기 위해 망자의 계곡으로 향하려 했지만. 가이서스에 도착한 뒤 수호 형님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수호 형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수백년 전. 마녀의 기사 한수호는 세계의 존망을 걸고 바쁜 와중에도, 세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프로피샤의 성녀와 썸을 탔다. 그리고 갈 데까지 가서 한 따까리 했다.

성녀는 한수호의 애를 뱄다. 그 대가로 성녀는 추방되었고, 자손은 지금까지도 가이서스 지역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마왕 자드키엘은 현혹과 꿈의 결계에 둘러싸여있다. 자드키엘에게 수월하게 접근하기 위해선, 성녀의 피가 가진 ‘통찰의 눈’이라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호 형님의 자손… 정확히는 성녀의 자손을 찾게 되었다는 소리.

나는 수개월에 걸쳐, 자드키엘과 성녀의 후예에 관련한 정보를 수집했고. 가이서스를 꽤 오랫동안 떠돌았다.

그리고 드디어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을 접했다.

마왕 자드키엘을 신으로 섬기는 구원천사교에서는, 흑혈병으로 괴충화(怪蟲化)가 진행된 몸을 재림성녀님이 낫게 해준다 카더라.

나는 구원천사교 재림성녀랍시고 소개된 여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저게 그 성녀라 이거지.’

일단 복장은 아주 훌륭하다.

전체적으로 하얀 색조의 수녀복. 검은 스타킹과 가터벨트. 군데군데 노출이 많은데, 하늘거리는 옷감이 아슬아슬하게 신체의 곡선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교주인 시미언이 꼴잘알인 건 확실하다.

‘… 아니. 이게 아니고 X발.’

그 외 특징으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외관. 슬림한 체형. 검은 단발.

그리고 특이하게도 동양인 혼혈 특유의 황백색 피부에, 눈동자는 은백색이라는 점이다.

‘저거다.’

동양인 혼혈. 게다가 검은 머리칼과 은백색 눈. 수호 형님이 말한 고대 성녀의 특징과 일치한다.

저게 내가 찾던 수호 형님의 먼 자손. 진짜 성녀의 후예다.

… 왜 사이비 종교에서 이용당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허. 안타깝네. 어쩌다 저 지랄을 하고 있누. 애 우려고 하는 것 좀 봐라. 쯧. 밥은 제대로 멕이나 몰라.

허리춤에서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비슷한 이유였다. 자기 먼 후손의 안타까운 말로를 목도한 수호 형님의 탄식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깡마른 성녀의 몸을 보아 밥 제대로 멕이는 것 같지는 않다.

“친애하는 우리 운터란트의 병자 동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무대 위의 시미언이 집회를 속행시켰다.

“지금부터 자드키엘님의 은혜를 받은, 재림성녀님의 기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미언이 우두커니 서 있던 유리아에게 턱짓했다.

유리아는 퍼뜩 고개를 들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의자에 묶인 반 괴물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 으, 으우…!”

두려움과 죄책감에 찬 눈빛으로 그것을 쳐다보던 유리아.

묶인 병자에게 향한 손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한다. 사시나무처럼 떨리고만 있다.

나는 이내 깨달았다. 그녀의 두려움은 묶인 병자를 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미언을 향해 있었다.

“자, 성녀님. 어서! 어서 기적을!!”

망설이는 유리아를 재촉하듯이 시미언이 외쳤다. 유리아는 불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남자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떨어진다.

“자, 우리 의자에 묶인 병자 동지를 주목해주십시오!”

파아아아!

유리아가 손댄 곳을 중심으로 휘양찬란한 빛무리가 휩싸이더니. 곧 어두웠던 천막이 온통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스르륵. 거짓말처럼 남자의 온몸에 붙어있던 곤충의 갑피들이 찐득하게 떨어져나갔다.

“오오오오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두 손을 모으고 감격에 겨워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물을 펑펑 쏟는 이도 부지기수다. 저러다 탈수로 뒤지지 싶다.

“여러분, 님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모하고 눈물 흘리며! 오랜 세월 목말라 해온 이름입니다.”

감동의 도가니가 팔팔 끓는 와중. 타이밍 좋게 시미언은 두 손을 번쩍 들며 목청을 최대한 높였다.

압도적인 침묵 속, 청중의 집중도는 당연히 최고조에 달했다.

“그것이 입으로만 구원자를 참칭하는 용사였습니까? 아닙니다! 고통스럽고 질긴 역병을 그저 관망하고! 고된 노역을 부과하는 레비아탄과 운터란트 위정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시미언은 거기에서 유리아의 손까지 부여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유리아의 손등에 새겨진 희미한 문신이 투광등 빛을 받아 선명하게 비친다.

‘잠깐. 저 문장?’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내 파우치를 뒤져 성녀의 문장을 꺼냈다.

역시나. 똑같은 문장이 그곳에도 새겨져 있었다.

“님이란 바로, 자드키엘님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미언이 일장연설을 끝내고, 의자에 묶여있던 남자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곤충 갑피를 벗어던진 남자는 오열하며 시미언을 부둥켜안았다.

감동에 젖은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시미언! 시미언! 시미언!”

사람들이 최고조로 열광하기 시작했다.

천막 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 정도 광기는 이제 나도 무서워질 정도다.

“힉, 우… 으우우… 흐흑…!”

무대 위의 유리아도 그 광기에 식겁했는지, 연신 몸을 움찔거리고 있다.

이젠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지금이다.’

이제 슬슬 저 사이비 교주놈의 트릭쇼를 파훼하고. 이 같잖은 연극을 폐막시킬 시간이다.

콰아앙! 나는 바닥을 힘껏 굴렀다. 지축이 요동치는 진동이 퍼져나갔다.

“개소리 집어쳐!”

분위기가 일순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모두의 이목이 한순간에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천천히 군중들 사이를 뚫고 걸어나갔다. 흉인 살포를 사용했기에, 나를 중심으로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우수수 갈라졌다.

“님은 무슨 님이냐. 니미 X까는 소리 하고 있네.”

차갑게 한 마디 뱉은 직후. 그림자 사슬이 발사되어 무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촤르르륵! 문어처럼 꿈틀거리는 어둠의 사슬이 의자 위의 남자와, 남자가 벗어낸 곤충의 갑피를 꽁꽁 싸맸다.

그리고 한 놈 더.

“… 으헉?! 어, 어떻게…!”

무대 뒤에서 투명화 마법으로 숨어있던 쪼렙 마법사까지 잽싸게 낚아챘다.

어떻게는 X발놈아. 관심법으로 알아냈다 새꺄. 짐은 곧 미륵이자 김두한이니라.

“크허억!”

온몸의 관절을 단단히 옥죄는 사슬에, 마법사가 숨넘어가는 신음을 냈다.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마법사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 시미언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야. 이 새끼가 님이냐? 도둑놈 새끼마냥 투명화로 숨어서 빛마법 쓰고, 짝퉁 곤충 껍데기나 벗겨내는 게 자드키엘님이냐고.”

여기 모인 이들은 전부 레벨이 10을 넘지 못하는 그야말로 일반인들. 쪼렙 마법사의 허접한 마법조차 간파하지 못하는 내츄럴 본 원주민들이다.

그러니까 저 배불뚝이 교주새끼가 이런 장난질을 칠 수도 있는 거고. 하루가 절박한 병자들은 하릴없이 속아 넘어가는 게다.

“으… 꺼억…!”

나는 마법사를 노려보며 사슬을 조종했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저렙 마법사의 모가지가 우드득, 장난감처럼 비틀어졌다.

“넌 빨리 님이나 만나러 가라. 내가 보내줄라니까.”

사슬이 사라지자 마법사의 시신이 바닥에 철푸덕 처박혔다.

철철철. 마법사의 뒤틀린 목에서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피가 쏟아졌고. 바닥에 천천히 퍼져간다.

“으,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사람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곧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비명 속에서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여전히 일직선으로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거짓으로 병자들과 시민들을 우롱해온 너희들을, 오늘 단죄하러 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나 같은 호구새끼고. 하나는 쟤 같이 호구들 등쳐먹는 새끼다.

“나 박정용이다.”

사실 내가 필요한 건 성녀의 후예뿐이다. 이런 짓은 이목만 끌지, 해서 좋을 게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처먹고. 뱃살 디룩디룩 찌운 호로 썅놈의 새끼를 그냥 놔두고 가라고?

조까 X발. 내 지구의 호구 대표로서 그렇게는 못하겠다.

“저, 전위대! 전위대!! 어서 나를 지켜주시오!”

시미언이 외치자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무장병력이 우루루 내게 쏟아졌다.

기껏해야 레벨100도 못 넘긴 동네 깡패들. 가소로워서 웃음이 절로 났다.

“흐.”

펄럭! 거칠게 펄럭인 망토가 거대한 까마귀의 날개로 화했다.

나는 공중을 섬광처럼 날아 시미언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소리에게도오오온!!”

* * *

구원천사교를 아작내는 데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거사를 대충 마치고. 얼이 빠진 유리아를 대동해 천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마침 그제야 천막에 들어오려던 한 아줌마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앗.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부딪치자마자 머리가 닳도록 사과를 해왔다.

가이서스 할렘가의 흔한 여성이었다. 남루한 차림에서 짙은 분냄새가 났고, 전체적으로 앙상하다.

본인은 멀쩡했지만. 품에 안고 있는 아기의 왼쪽 눈이 곤충처럼 시푸르뎅뎅한 겹눈이었다.

흑혈병 감염자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 그… 아, 안녕하세요.”

아줌마가 어리숙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비굴한 행색을 보아하니, 나를 무슨 구원천사교 고위 관계자로 오해한 모양이다.

그녀는 연신 내 어깨 너머로 천막 안을 기웃거리며 띄엄띄엄 말했다.

“그, 저희 아기가. 일주일 전부터… 누, 눈이 이상해져서. 그, 여, 여기서 구원천사교의 무슨 기적 축제를 한다고 들었는데… 무, 무슨 축제인가요?”

절박한 희망이 담긴 눈초리였다. 타이밍 좋게 아기가 옹알이를 흘렸다.

사기친 건 시미언인지 심영인지 그 새낀데. 왜 이런 X같은 현실을 말해주는 건 내 몫이냐.

내 인상은 자연스럽게 더욱 찌푸려졌다.

“축제 아니고 장례식입니다.”

나는 들고 있던 것을 툭. 아줌마 옆에 내던졌다. 사이비 교주 시미언의 목이었다.

시미언 공. 어찌 목만 돌아오셨소.

“흐, 히익?!”

아줌마가 대경실색하며 그 자리에서 자빠졌다. 아기를 부둥켜안고 공포에 떤다.

나는 고개나 한 번 슬쩍 숙여줬고. 멀찍이 따라오던 유리아의 손목을 붙잡고 빠르게 그 자리를 이탈했다.

“아, 우. 아으!”

유리아는 허둥지둥하며 연신 팔을 빼내려 했다. 물론 나는 놔주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걷자니 집회의 천막에서 벗어날 만큼 벗어났다. 나는 원하는 대로 그녀를 놔줬다.

“어엑?”

털퍼덕.

유리아가 저항하던 자기 힘을 못 이기고 바닥에 자빠졌다.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나던 그녀의 배에서 꼬르르륵, 하는 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퍼뜩, 유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부여잡았다.

“일단 뭐 좀 먹자?”

나는 던지듯이 툭 말했고. 유리아가 굉장한 기세로 고개를 쳐들었다.

말은 안 했지만 동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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