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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71화 (147/280)

171화 하트 오브 위치

“정용님! 정용님 듣고 계세요?”

나는 설백의 외침에 상념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위를 둘러봤다.

설백이 내 눈앞에서 손을 휙휙 흔들고 있었다.

“아까부터 엄청 멍하시네요. 저 없는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니. 일은 무슨… 경기 보고 있었어. 경기.”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괜히 무신제에 관심 있는 척, 경기장에 시선을 돌렸다.

“와아아아! 죽여버려! 아니 죽이진 마!”

“잘한다! 질풍의 기사!!”

“당신까지 패배하면 카발리어 이름이 운다고!!”

오늘은 무신제 마지막 날.

나는 세스나, 루시, 카르할라스, 그리고 전날 청염의 동굴에서 복귀한 설백을 데리고 무신제에 왔다.

경기도 관람할 겸, 무신제 명물이자 피날레라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수준이 굉장하네요.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요.”

설백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린다.

“저는 차라리 본선전까지가 더 재밌었던 거 같아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네요! 히히.”

내 왼편에 앉은 세스나도 격하게 동의하며 한 마디 얹었다. 그 옆에 앉은 카르할라스도 멋쩍은 동의의 웃음을 흘렸다.

설백이 배시시 웃으며 한 마디 추가했다.

“나름 동굴에서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하하. 아직 멀었나 봐요.”

야무치 1, 2, 3의 눈으로 본 카발리어 쟁탈전은 저렇단다.

참고로 나는 지루해 죽겠다. 나한테 한 번씩 개발렸던 놈들이라 그런가. 현직 카발리어들이랑 아옹다옹하는데 왜 이리 소꿉장난 같냐.

“올해는 예비 카발리어 수준이 높네.”

카르할라스가 그런 말을 하며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내가 눈을 가만히 마주치자 슬쩍 눈웃음을 친다.

“벌써 15명이나 자리를 쟁탈했어. 쟁탈전 당일에 이렇게 많이 이긴 건 처음이야.”

“그러냐.”

“응. 원래는 4년 동안 실력을 쌓아서 천천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거든. 그대로 예비에서 머물다가 교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야.”

“그렇구만.”

카르할라스는 내게 설명해주다가,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밝게 웃었다.

“영 시큰둥하네. 하긴 네 눈에는 좀 지루해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 아버님만큼이나 강하니까.”

“아냐. 그렇진 않고.”

“뭐 먹을 거라도 사올까? 아까 보니까 노점에 맛있는 거 많이 팔더라. 어떤 거 좋아해? 응?”

얘는 내가 적랑을 살려낸 뒤부터 나한테 굉장히 호의적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고. 어제부터 가끔씩 눈 마주치면 수줍게 웃거나, 괜히 말을 걸어오더라.

전에는 안 이랬다. 오히려 좀 질색하는 경향이 있었지.

‘어떻게, 제주도 신혼여행 비행기 다시 이륙시켜?’

망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라 그렇다.

나는 카르할라스에게서 고개를 돌려 설백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상태창을 보기 위해서였다.

[명칭: 설백]

[별칭: 154829771번째 용사, 눈(雪)의 기공사]

[LV. 217]

[체력: 510/510 ?마력: 2100/2100 ?신체상태: 정상]

[힘: 23 ?민첩: 40 ?지능: 412 ?히어로 센스: 8]

못 본 사이, 레벨이 100 이상이 올랐다.

괄목상대가 딱 이 짝이다. 일주일만에 100레벨 업? 할센베르크에서 나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청염의 동굴 평균레벨이 높다지만….’

물론 설백이 청염의 동굴 몬스터보다 현저하게 레벨이 낮았긴 하다.

게다가 용사지원 시스템 상, 힐러들은 몬스터 토벌 시 동료를 한 번씩만 치료해둬도 모든 파티원에게서 경험치를 빨아간다. 많은 AOS 게임의 어시스트 개념처럼.

‘… 그렇다고 쉬운 건 절대 아니지.’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작용했긴 하지만. 이 정도로 속도를 내려면, 진짜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사람들을 도와줬다는 말이 된다.

설백답구만. 장해. 나도 모르게 김빠진 웃음이 나왔다.

“저, 정용님. 왜 갑자기 웃으세요….”

설백이 부담스러웠는지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붉힌다.

저건 좋아하는 건가 싫어하는 건가. 전부터 느꼈지만 난 얘의 반응이 제일 어렵다.

대충 말을 얼버무려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세스나랑은 좀 친해졌어?”

“네? 아… 네. 그냥 케른에서처럼 서먹하진 않아요. 좀… 휴전상태라고 할까요.”

“… 휴전? 무슨 전쟁을 했길래. 세스나가 시애미 마냥 꼽줘?”

“아뇨. 그건 아닌데… 그, 정용님한테는 좀 말하기가 그래요.”

이건 또 뭔 소리냐. 돌겠군.

한 치 앞을 몰라서 내가 두렵다던 헥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그, 그래. 알겠다. 경기나 계속 구경하자.”

“네. 그래요.”

내가 남중, 남고, 군대, 노가다 테크를 타서 여자랑 연이 없는 것도 있는데. 얘는 세스나에 비하면 특히 모르겠다.

세스나는 로봇이라 그런가 반응이 좀 더 알기 쉽다. 애초에 맛있는 거 입에 넣어주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 진짜 모르겠다….’

그래서 고민된다.

내가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설백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저히 가늠이 안 돼서 그렇다.

“… 밤에 있을 불꽃놀이, 기대되네요.”

설백이 내 쪽으로 슬쩍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한다.

붉어진 뺨 위로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인다. 진짜 오지게 기대하나 보다.

“저,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아, 그래?”

“계속 미뤄왔던 건데, 역시 이젠 말하려고요.”

“어. 그래… 응. 그래라.”

나는 애매한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여자의 감인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인데, 지금 타이밍에 그 얘기가 나올 줄이야.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에효.’

나는 짤막하게 한숨을 흘렸다. 머릿속에는 어제 이른 아침의 상황이 떠올랐다.

마녀의 심장을 도려냈을 때, 적랑과 나눴던 말들이… 뇌리를 헤집는다.

* * *

하루 전, 이른 새벽. 청염의 동굴.

마녀의 심장이라는 아스타르트의 유해 앞에서 바싹 굳어있던 우리들.

“방법을, 알고 있나?”

적랑은 밑도 끝도 없이 해병대 캠프 조교마냥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왔고.

“… 예. 대충 알 거 같네요.”

나는 캠프 끌려온 112번 올빼미 마냥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잠깐 주저했다가, 이내 등에 멘 두 자루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멸흉검을 쥔 순간 몸이 저절로 굳었지만. 조심스럽게 멸룡검과 함께 검집에서 빼냈다.

키이잉―!

다행히 저택의 전투 때처럼 발광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두 자루 검이 내 양손에서 끊임없이 공명했다. 또한 눈부신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빛이라곤 아스타르트의 유해가 내뿜는 불길한 핏빛 밖에 없는데도. 마치 자체발광하는 것처럼 시린 예광이 빛났다.

“오오. 멸룡검이 빛을?”

적랑은 그 영롱함에 취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나를 쳐다보는 적랑의 표정엔 약간의 경외와, 적지 않은 달성감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정용 코인 떡상할 줄 알았다. 그런 얼굴이다.

“좀 물러나 계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도 모르니까.”

나는 적랑에게 짧게 통보하고 아스타르트의 유해에 다가갔다.

철걱. 쌍검을 고쳐쥐고 유해의 코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크기가 나보다도 훨씬 크다.

반투명한 피막의 고치에 감싸인 루시… 아니, 아스타르트의 모습이 한층 잘 보인다.

“욱!”

일단 다른 것보다도, 피비린내와 단백질 썩은내가 진동을 했다.

나는 황급히 코를 틀어막고 유해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건 꼭….”

이제 보니 죽은 미이라의 심장 같았다.

거무죽죽하게 죽은 모세혈관들. 하얗게 곰팡이와 먼지가 내려앉은 육벽. 그것이 어거지로 펄떡거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아무려면 어때.’

나는 고개를 휘젓고 쌍검을 심장에 겨누었다.

키이이잉! 검의 울림이 최고조에 달했다. 유해의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마치 서로에게 이끌리듯이 점점 격렬해진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정확히 아스타르트의 목과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두근!

파육음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충격파에 가까운 거대한 심장박동이 터져나왔다.

심장소리의 충격에 머리가 울린다. 나는 인상을 바짝 찌푸리고 유해를 주시했다.

―…… 아아.

그리고, 죽은 듯이 미동도 없던 아스타르트가 천천히 눈을 뜬다.

시선이 스윽, 우리를 한 번 훑었다. 나와 루시를 눈에 담은 아스타르트는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익숙한 목소리여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이제… 더는, 배고프지 않아도. 되겠네…?

장난꾸러기처럼 웃던 그녀의 육체가 천천히 사방으로 흩어진다.

루시가 죽었을 때와 똑같다. 회백색의 잿더미가 되어, 심장의 굵직한 혈관을 타고 흘러든다.

꾸드드득. 재를 흡입한 혈관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심장이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르륵. 새파란 불꽃이 표면에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련한, 계집애… 쿠쿠쿡. 열심히… 버텨보렴?

아스타르트는 사라지기 직전까지 그런 말을 내뱉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루시였다.

루시는 듣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한없이 불쾌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들을 건 다 들은 모양이다.

“크… 윽…!”

아니. 이제 보니 그냥 불쾌해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루시가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이더니, 그대로 자리에 쓰러진 것이다.

“뭐야, 왜 그래?!”

나는 황급히 루시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우으으. 용… 사아.”

루시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

은은한 붉은 빛이 몸 주변에서 감돌았다. 아스타르트의 유해가 내뿜던 그 빛과 놀랍도록 유사한 느낌이었다.

‘일단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안도하는 순간, 띠링!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온다.

거대한 심장이 완전히 타올라 숯덩이가 되고. 아스타르트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패널이 튀어나왔다.

[퀘스트 완료!]

[명칭: 마녀를 죽여라 ― 첫 번째 의식]

[난이도: 전설]

[상세: 인도하는 까마귀가 마녀의 심장을 도려내었다. 하얀 그릇에는 마녀의 간절한 마음이 채워졌다. 마녀가 염원하던 안식은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

[보상: 멸망의 신기 ― 멸망의 대검. 모든 능력치 +50. 히어로 센스 +10]

파아앙! 오색 빛이 내 몸을 감돈다.

능력치가 강화되는 신기한 감각이 몰려들었다. 전 스탯이 무려 50씩 강화되다 보니, 그 차이가 즉석에서 실감이 날 정도였다.

‘멸망의 대검이라는 건 어디?’

나는 심장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문득 깜짝 놀랐다.

어느새 멸룡검과 멸흉검은 심장에 동화돼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심장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건….”

그 대신이라 해야 하나.

검을 찔러넣은 심장의 틈새에서 핏줄기가 철철 새나오더니. 꾸덕꾸덕 뭉치며 날붙이의 형태로 굳어갔다.

내 신장만큼이나 거대하고, 외관은 거칠고 투박하다. 검신부터 가드, 손잡이와 폼멜까지 전부 새빨간 대검이었다.

―오오. 이거지. 이제 좀 익숙하네. 전에는 왜 분열해 있었던 거지? 사람 헷갈리게. 참내.

내가 홀린 듯이 대검으로 손을 가져가자, 수호 형님이 퍼뜩 말했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멈췄다. 베스타크에 시선을 박았다. 수호 형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게 그거야. 멸망의 화염을 일으키는… 내가 쓰던 대검. 좀 낡긴 했지만, 간지나지 않냐?

“이게… 멸망의 대검이요?”

―멸망의 대검? 어, 이름은 까먹었고. 어쨌든 정용아. 이거 네가 가질 거지?

수호 형님이 물어온다.

그 어조가 좀 의미심장했다. 나는 즉시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선택 잘 해. 잡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 그 순간부터 너는 본격적으로 마녀를 죽이는 까마귀가 되는 거니까. 도망치려면 지금뿐이다.

마녀를 죽이는 까마귀.

그 말에 나는 대검을 빤히 쳐다봤고. 이내 착잡한 시선을 베스타크로 돌렸다.

“제가 마녀를 죽이려 하면… 형님은, 이제 저랑 말도 안 섞겠네요?”

―아냐. 달라질 건 없어. 나는 여전히 너를 도울 거다.

“예?”

―애초에 난 말이다. 처음부터 네가 인도하는 까마귀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나는 지금껏 너를 도왔잖아. 안 그래?

“… 아니. 그건 그렇지만.”

수호 형님의 태도 때문에 혼란스럽다.

마녀 디아나를 위해 뭐든지 했다면서. 지금도 뭐든 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마녀를 죽이는 나를 돕겠다고?

이 양반은 뭐가 진심이야 대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도 그렇게 사니까. 하핫.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마지막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분명히 숨은 의도는 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다. 처음으로 허리춤의 시커먼 마검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껏 고무된 얼굴로 적랑이 다가왔다.

“이로서 예언의 첫 번째 구절은 완성되었다. 역시 자네가 인도하는 까마귀였군.”

그의 시선이 마녀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멸망의 대검에 가있었다. 적랑은 흥미 어린 눈길을 빛내며 대검으로 손을 뻗어왔다.

나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 적랑이 대번 눈살을 찌푸린다.

“… 무슨 짓인가.”

“별 건 아니고요. 약속했던 보상을 좀 받아야겠다 싶어서요.”

“약속?”

“예. 알려주신다면서요. 마녀사냥의 비밀 같은 거.”

적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또박또박 물었다.

“이제 말해주십쇼. 대체 마녀는 뭐고. 마왕은 뭐고. 용사는, 왜 이렇게 바글바글 소환된 겁니까.”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겪은 천방지축 좌충우돌 다사다난이 생각나서 나름 진지하게 물어봤건만. 적랑은 딱히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대검을 한 번 쳐다보고. 내 눈을 쳐다보고. 이내 무덤덤하게 주워섬긴다.

“그래. 약속이 그랬으니, 자네에겐 말해주지. 마녀사냥의 내막을 물었던가.”

눈은 여전히 무표정한 채, 히죽.

적랑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마녀를 죽이면. 그 순간 파라이소 대륙은 멸망한다.”

나는 적랑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듣고도 이해를 못한 나머지 되물었다.

“… 예?”

“물론 죽이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은 수십 년 안에 반드시 멸망할 걸세. 이건 500년 전부터 이미 예견됐던 필연이다.”

적랑은 이해 못하는 나 따위 아랑곳 않고 자기 말을 밀어붙였다.

턱. 어느새 다가온 그는 반쯤 강제적으로 내 손을 잡아 끌었고. 대검의 손잡이로 가져갔다.

손이 대검에 닿았다. 우우웅, 낮은 공명음과 함께 검이 핏빛을 사방으로 쏘아보냈다.

[스킬 습득 ― 고유스킬: 멸망의 화염]

[스킬 정보]

[명칭: 멸망의 화염 (액티브)]

[효과: 흉마의 지속적 소모. 멸망의 겁화를 무기에 두른다.]

[상세: 신기 ‘멸망의 대검’ 소유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스킬. 사멸을 거부하는 힘, 흉마를 연료 삼아 멸망의 화염을 휘두른다. 검주(劍主)의 감정을 눌러 담은 지옥의 겁화는 거세고, 난폭하며, 인간을 태울 때 특히 집요하다.]

스킬 습득 창이 하나 떠올랐다.

멸망의 화염. 수호 형님이 말해줬던… 드럽게 꺼지지 않는 불꽃을 일으키는 힘.

“예언을 연구하다 보니 많은 비밀을 알게 됐지. 원래 파라이소 대륙은, 최초의 용사가 소환되기도 전부터 이미 수명이 다했고. 모든 생명과 함께 파멸할 운명이었네.”

대검의 손잡이가 꾸덕하게 손바닥에 달라붙는 느낌. 동시에 적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작에 붕괴했어야 할 이 세상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기둥. 그것이 공포의 마녀 디아나 에스파다일세.”

내가 홀린 듯이 대검과 적랑을 번갈아 쳐다보는 가운데.

적랑은 덤덤하게 이 세상의 내막을 털어놓았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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