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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66화 (142/280)

166화 죽이고 싶은 박정용과 10선

“와, 씨… 이, 이게 뭐야!! 뭐 왜 또 이러는데!”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전생에서 깨어난 나는, 눈앞에 널려있는 박정용 모듬편육 스페셜을 보며 식겁했다.

그리고 몇 번째인지도 모를 잔류사념 회복을 실시했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힘을 0, 민첩을 0, 지능을 0 포인트 수복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스킬이 없어, 스킬을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크윽….”

수없이 거듭된 전생의 자살쇼가 머리를 스친다.

루시가 한 번 사망해서 그런 걸까. 기억을 수복할 때마다 노도같이 밀어닥치던 고통이 전보다 많이 덜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기가 막힌 나머지 허겁지겁 망자의 함을 꺼냈다. 안에는 전생의 내가 남긴 유언이 하나 있었다.

“와 나 X발 X망겜 수준 진짜… 이거 조작 아니야 X발?”

나는 숨 쉬듯이 욕을 싸박으며, 메모에 적힌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응시했다.

[현재 도전 ― 13회째]

[스택 다 쌓았다. 문 밖에서 물의 신이 노크하고 있다. 이번엔 진짜 나온다.]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정용아. X발.]

물의 에테르 뽑자고 13번 죽었다. 이번이 14번째다.

이게 게임이냐 X발. 게임 아니지 참. X발.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런 미신적인 댓글(?)까지 끼적여놨냐. 장렬히 폭사한 13명의 내 심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새삼 전율했다.

하늘도 무심하지. X발 목숨 10연차에, 단차를 3번이나 더 돌렸다.

25% 확률이라며. 물의 에테르가 왜 아직도 안 나와. 미친 거 아니냐.

“형님 이거 좀 심하지 않습니까? 이거 에테르 확률 백타 주작인 거 같은데?”

―아, 글쎄요우? 저는 시스템UI 담당이라 모르겟소요우. 아신들한테 문의하세욥.

“X발 불매운동을 하든가 해야지. 일단 형님은 하루라도 빨리 나가 뒤지십쇼.”

―힝 너무행.

나는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직도 그치지 않는 굵직한 빗줄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에테르는 자동으로 생성되고. 굳이 에테르를 확인하기 전에 창고로 찾아가 일행들과 안면을 마주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회귀 지점에서 기다리는 게 속 편하다.

‘괜히 또 세스나가 보는 앞에서 자살쇼를 벌여야 하니까.’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라도. 세스나의 정서를 보호해주고 싶다.

애초에 나를 보며 비명지르는 세스나의 얼굴이 내 기억에 남는다. 그게 싫다.

‘곧 나올 때 됐는데….’

초조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무릎을 후달달 떨었다. 손톱을 깨물고, 괜히 젖은 머리를 털어내길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띠링. 지긋지긋한 효과음과 함께, 패널이 떠올랐다.

[스킬 성공 ― 에테르 수집(패시브)]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물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다음 에테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3시간]

“예에에에에스 컴온!!!”

‘물’ 한 글자가 보이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말초신경을 뒤흔드는 마약 같은 희열에 몸이 떨린다.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댔다.

왜 사람들이 가챠 게임에 열광하는지를 새삼 통감했다.

“나왔어 얘들아! 나왔다고 X발!”

“히이익! 저, 정용님?!”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친놈처럼 외치며 창고 건물로 들어갔다.

후에 세스나의 증언에 의하면, ‘이 때의 정용님은 붉은 칼을 들었을 때보다 더 미친놈 같았어요.’라고 한다.

그리고 미친놈 전과가 있는 나였다 보니. 나이트레아가 실사격을 곧장 쏟아 부었다.

“그 하얀 머리 마족이 실패한 모양이군.”

“엉?”

탕탕, 타탕! 리볼버가 번개줄기를 내뿜었다.

초인적인 감각으로 피해내지 않았으면, 기껏 뽑은 물의 에테르 내가 쓸 뻔했다.

* * *

한동안 의심과 불신에 찬 나이트레아와 세스나의 눈초리에 변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결국 ‘위중한 적랑을 빨리 살려야 하지 않느냐’라는 가불기로 그들의 입을 다물렸다.

나는 투덜거리며 적랑에게 에테르를 먹였다.

“적랑님. 아 하세요. 몸에 좋은 거니까 쭉 들이키십쇼 쭉.”

“크욱….”

노모한테 홍삼액 먹이는 아들 같은 멘트를 주워섬겼다.

적랑은 사경을 헤매면서도 내가 내미는 에테르 병에 입을 가져갔다.

“제발… 제발… 제발 아빠…!”

카르할라스가 숨쉬는 것도 잊은 채 옆에서 나를 지켜본다.

내가 적랑의 입에 에테르 병을 넣고 의지를 불어넣자, 에테르 효과가 적랑의 온몸을 치달리며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좋아. 아직 늦지 않았어!’

시커멓게 숯덩이가 됐던 부분도 아물었고. 배에 났던 대문짝만한 구멍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적랑의 얼굴에 한층 편안한 기운이 감돌더니, 이내 눈을 감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긴장이 풀리고 잠에 빠진 것이다.

“아아… 다, 다행이야… 아빠…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카르할라스가 적랑을 끌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시종일관 얼음장 같던 나이트레아도 그 순간만큼은 훈훈한 시선으로 카르할라스를 내려다봤다. 세스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

죽은 아버지와 적랑을 겹쳐봐서, 인디언 기우제식 자살까지 했던 나였지만.

막상 적랑이 살아나서 카르할라스가 기뻐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기분이 오묘했다.

‘… 부러움?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른데.’

굳이 따지자면 안타까움이었다.

‘저게 내 아버지였다면….’ 하는 아무 짝에 의미도 없는 안타까움.

궁상에 빠지는 게 싫어서, 나는 기뻐하는 여인 3인방을 놔둔 채 창고 밖으로 나왔다.

솨아아아―.

비는 아직도 굵직하게 내리고 있었다.

적랑의 저택을 집어삼키던 화마들이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있는 것이 보였다.

“불이다! 어, 언제 불이 붙은 거야?!”

“적랑의 기사님 저택 방향이다!”

“소방대를 불러!!”

그제서야 바깥에서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기색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소리가 들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흑마법 특유의 끈적하고 희미한 장막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드디어 헥터 카사스가 걸어놨던 침묵마법이 풀린 것이다.

“오래도 걸렸다. X발.”

나는 괜히 파우치를 툭 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파우치 안에서 알이 반응하며 꿈틀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 걸린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말이다.

* * *

헥터와 카사스 일당의 습격 사건이 일어나고. 하루가 지나갔다.

적랑은 그 뒤로도 한동안 저택에 칩거하며 절대안정을 취했다.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치료를 위한 사제들, 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수사대조차도. 가림막 너머로만 멀찍이 접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적랑이 직접 밝힌 화재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손님들과 술판을 벌이던 중 화재가 났다. 인사불성이 된 나의 부주의로 인해 화마가 커질 때까지 방치하고 말았다.

―지금은 무신제로 어수선하니, 무신제가 끝나고 나면 스스로 저택을 수습하고 물의를 일으킨 문책을 받겠다. 카발리어는 사임하겠다.

―그동안 자숙의 의미로 저택에 칩거하겠다. 가족과 귀빈 외 모든 이의 출입을 금한다.

따라서 적랑이 외팔 척랑(隻狼)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날 같이 헥터와 맞서 싸웠던 극히 일부 빼고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에게도 철저한 함구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뒤늦게 검림의 기사, 백은의 기사, 그리고 황금의 기사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무신의 성전에 암암리에 돌았다.

수사대가 구성되어 그들의 행적을 황급히 쫓았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 시신들은 전부 엘프리데가 키우는 시커먼 애완여자(?) 먹잇감이 됐으니까.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을 거다.

당연히 가장 먼저 적랑이 의심받았다. 시기적절하게 일어난 화재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랑은 거기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거짓말까지 시켰으니. 자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겠네.”

적랑은 잘린 팔의 단면을 매만지며 내게 말했다.

가림막 너머라 무슨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투로 봤을 때는 적잖은 의문이 들어 있었다. 내 의도가 궁금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조아려 얼버무렸다.

“예. 감사합니다.”

권력과 폭력이 이래서 좋다.

적랑이 ‘그렇다’라고 말하면.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국가수사단이라도 ‘그런갑다’ 하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들이 뭘 어쩔 건가. 그냥 그런 줄 알아야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

실제로 조사단이 저택을 조사했을 땐, 이미 엘프리데의 흑마법으로 카사스 따까리들의 시체들도 전부 먹어치운 상태였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카사스의 사도라는 비밀조직을 은폐시켜줬다는 소리다.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야….’

내 계획의 대단원을 위해서. 놈들은 세간에 드러나면 안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랑이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해줘야 했다. 내가 그러라고 시켰다.

내 복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지.

나는 음험하게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일거에 몰아쳐 주겠다.’

헥터 카사스. 치밀한 네놈조차 도저히 반응할 틈도 나지 않도록.

죽음을 반복하며 얻은 모든 정보와 수단을 사용해서.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모든 걸 망쳐버린다.”

중얼거린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려퍼지는 무신제 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무신제 4일차. 우승 상품 ‘멸룡검’이 걸린 본선전이 시작되는 날이니까.

―정용아. 그 칼 꼭 가지고 있어야 되냐? 나 팔에 소름 돋는다.

도전자 대기실에 도착해 허공을 응시하자니.

팔도 없는 수호 형님이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등 뒤로 메고 있던 새빨간 곡도… 멸흉검을 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곧장 대꾸했다.

“… 나도 싫어요 이거. 그렇다고 이렇게 위험천만한 물건을 어디 두고 올 순 없잖습니까.”

―스읍. 그건 뭐… 그렇긴 하지.

나는 멸흉검의 검집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봤다. 행여나 검집에서 뽑히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멸룡검을 얻으면….’

이 멸흉검에 분명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까 헥터 카사스는 위험을 감수하고 무신제에 사람들을 잠입시킨 거다.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은 얻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주변에서 몸을 푸는 도전자들의 면면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얻는 건 어려울 것도 없지.’

본선전의 룰은 무작위 상대 10전 매치.

카사스의 따까리들도 전부 제거했겠다. 까짓 거 상대가 누구든 전부 대가리 박살내면 그만이다.

10연승 하면 무조건 1등하겠지 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온 500명의 전사들이여! 지금부터 본선전을 시작한다!!”

개회식 때도 개최선언을 했던 중년 카발리어가 본선의 시작을 장중하게 선포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함성 속에서 조용한 투기가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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