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이 정도면 개혜잔데
파우치에 알을 집어넣은 나는 곧장 일행들을 찾기 시작했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택 부지 후미진 곳의 창고 건물. 언젠가 들렀던 기억이 있는 그곳에, 루시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아. 저, 정용님…!”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세스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무심결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얼굴을 굳혔다.
“… 세스나. 꼬라지가 왜….”
온통 피투성이에, 상처투성이였다.
팔 하나가 절단된 건 그렇다 치고. 전에 없던 깊은 상처나 그을린 상처가 가득하다. 거기서 나온 피로 메이드복이 다 젖어 있었다.
그 옷조차도 넝마가 되어 너덜너덜한 것이, 사실상 반라에 가까웠다.
“아… 이, 이거요? 그, 별 거 아니에요. 신경쓰실 거 없어요!”
세스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떠벌거렸다. 그리고 슬쩍 자기 상처를 가렸다.
“별 거가 아니긴! 주, 죽는 거 아니지?!”
“에이 죽긴요. 호들갑이에요! 작은 상처들은 곧 수복될 거예요. 팔은 일단 챙겨놨으니까 나중에 접합하면 돼요!”
세스나는 필사적으로 상처를 숨기려 했다.
하지만 상처의 양이 가린다고 가려질 사이즈가 아니었다. 오히려 팔에 난 자상과 그을림이 부각되었다.
자상. 그 주변을 태운 그을림. 익숙한 상처의 형태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 야. 설마 나 때문에….”
그 순간 철컥. 격철음과 함께 관자놀이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올리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새파랗게 찰랑거리는 단발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지 마라. 박정용.”
나이트레아다.
새파랗게 번쩍거리는 리볼버를 겨눈 채,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에테르 코어탄을 장전한 리볼버다. 일개 호신용이지만 이 거리라면… 아무리 고레벨 용사라도 뇌를 박살낼 위력은 나온다.”
철커덕. 그녀가 엄지손가락으로 장전 레버를 당겼다. 탄창이 휘릭 돌아가며 총알이 장전된다.
치지직. 리볼버 표면을 치달리는 스파크.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일단 물어나 보지. 지금은 제정신이냐?”
나이트레아는 건조하게 툭 내뱉었다. 나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 예. 멀쩡합니다. 아마도요.”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기억하나?”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알 거 같긴 합니다.”
“흐음.”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도 있고. 온몸에서 누님 포스가 풍겨서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나이트레아는 비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처럼 대화도 안 통하는 상태는 아니군. 그 하얀 머리 마족이 어떻게든 제정신으로 돌려놓는다더니, 성공한 모양이지?”
“하얀 머리 마족…?”
나는 그 말에 흠칫 나이트레아를 쳐다봤고. 그녀는 눈썹을 튕기며 곧장 해명했다.
“너와 함께있던 그 하얀 여자. 그녀가 우릴 여기에 가뒀다. 꼼짝 말고 있으라 으름장을 놓더군. 우리가 죽기라도 하면 네가 또 발광할 거라면서.”
“아.”
“뭐… 지금까지 마족과 왜 동행했던 건지는 차차 알아가도록 하지.”
루시가 틀림없다.
아까 분명 흉마를 개방해서 나를 막았다고 했으니… 그 변신한 모습을 다른 이들한테도 들킨 듯하다.
다행히 나이트레아는 젊은 세대라 그런가. 그게 설마 불사의 마왕일 본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새다.
“그, 죄송해요. 저도 정용님을 막아보려다가 그만… 제가 역부족이라서.”
세스나가 그제야 한숨과 함께 상처의 원인을 실토했다.
머리를 긁적이는 세스나를 보며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니. 고맙다. 막아주지 않았으면… 내가 더 미쳐 날뛰었을지도 모르지.”
“고맙긴요… 아! 그, 맛이 간 정용님도 나름 색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정말 잘 웃어서 보는 사람까지 긍정에너지가 전해진달까…?”
억지 포장을 시전하는 세스나. 긍정에너지 이지랄 하고 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그러지 마. 비참해진다.”
“아하하… 넵.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고개를 돌리며 개소리를 중단하는 세스나였다.
어떻게든 태연한 척하는 세스나를 쳐다보니 마음이 한층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침음을 흘렸다.
“뭐 어쨌든, 박정용. 당신에게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이트레아는 그제야 내게서 총구를 물렸다. 능숙하게 리볼버를 허벅지의 홀스터에 끼워넣고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의 동시에 나이트레아가 툭 물었다.
“저쪽의 메이드 아가씨한테 들어보니, 효과가 끝내주는 포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저거 살릴 수 있나?”
나도 모르게 눈이 부릅뜨였다.
나이트레아가 가리킨 곳에는 적랑이 참혹한 몰골로 죽어가고 있었다.
“커… 허억… 크윽…!”
한쪽 팔은 날아갔고. 뱃가죽에 구멍이 뻥 뚫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오듯 흘렀다. 뚫린 구멍에서는 핏줄기 대신 시커먼 연기가 아직도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다.
주변 살들은 시커멓게 타서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았다. 숨을 간헐적으로 헐떡인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일반인이었으면 이미 진작에 요단강 건넜다.
저건 적랑이 상식을 벗어나는 초인이기 때문에. 준 크라네이드급으로 높은 체력치 덕분에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거다.
‘아니. 덕분이 아니지.’
저 몰골로 꾸역꾸역 살아있으면 그건 저주다.
죽지 못하는 질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안 돼요 아빠. 제발… 제발 눈 좀 떠봐요… 가지 마요 제발! 또, 엄마처럼 나만 두고… 또 나만 두고…! 으아아! 아아아아앙…!”
옆에서는 만만찮게 만신창이가 된 카르할라스가 오열하고 있다.
하얗게 질린 아버지 손을 잡고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말소리도 점점 뭉개진다.
사람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작은 짐승 같이 울부짖고 있었다.
“…….”
카르할라스의 찢어지는 오열을 들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울었던가?
―아버지 웃는 면상 오랜만에 봅니다?
영정 사진을 보면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기억은 있다.
아버지나 나나 빚 갚느라 대인관계가 어찌나 곱창났는지. 조문객이 씨가 말라서 존나게 한산했던 기억도 있다. 장례식장 벽지 무늬를 의미없이 눈으로 쫓았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내가 울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말해봐라. 박정용. 살릴 수 있어 없어?”
나이트레아가 팔뚝을 툭툭 치며 채근해왔다.
나는 불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저건….”
살릴 수 없다.
에테르는 이미 다 소진했다. 그래서 루시도 못 살리고 온 마당인데. 적랑을 살릴 에테르가 남아 있겠냐.
그렇게 말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힘 빠진 목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스킬 성공 ― 에테르 수집(패시브)]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바람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다음 에테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3시간]
때마침 에테르 병을 마신지 딱 세 시간이 지난 듯했다. 양반은 못 되는갑다.
그 와중에 바람의 에테르가 나온 게 코미디라면 코미디다.
X발 희망고문도 아니고. 누구 놀리냐 지금.
“흐. 흐흐.”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나이트레아가 ‘저 새끼 또 미쳐가나’ 싶은 얼굴로 리볼버에 손을 가져간다. 나는 퍼뜩 변명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고.
‘… 잠깐.’
어느 순간. 머리맡에 내리치는 벼락 한 줄기에 온몸을 떨었다.
‘랜덤 요소?’
맞다. 에테르 생성은 랜덤이다.
불확실한 변수. 확정되지 않은 미래.
회귀하면 몇 번이든 제멋대로 바뀌지. 무신제 예선전의 대전 상대처럼.
“죽으라는 법은 없네요. 흐하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이트레아는 당연히 의문스러운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부상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돌파구를 찾았으면 빠르게 실행에 옮길 뿐이다.
‘남은 부상자들은….’
아직도 탈진해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엘프리데. 만신창이가 된 카르할라스.
그리고 세스나처럼 자잘한 화상과 검상이 남은 크라네이드.
‘치명상 입은 사람이 또 있으면 끝장이다.’
엘프리데는 눈에 띄는 외상이 없으니 괜찮고. 카르할라스는 저렇게 우는 거 보면 아직 체력이 있다는 뜻이니 당장 죽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크라네이드. 버틸만 합니까.”
나는 천천히 크라네이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크라네이드는 눈을 감고 있다가, 인기척에 슬쩍 눈을 떴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특유의 웃음소리를 흘렸다.
“켈켈. 비실이냐.”
“예.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그 상처 제가 낸 거죠?”
“켈켈. 오냐. 너 좀 강하더구나. 앞으론 좀 센 비실이라 불러주마.”
“… 하. 고맙네요.”
농담할 힘이 있는 걸 보면 죽을 정도의 중상은 아닌 듯하다.
그걸 알았으면 됐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크라네이드를 뒤로했다. 다시 나이트레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물의 에테르.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여기 있는 모두가 살 수 있다.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촤아앙! 쌍검을 힘차게 뽑아 들었다.
“저, 정용님?!”
세스나가 설마 싶은 표정으로 퍼뜩 상체를 일으켰다. 내가 다시 미쳐버린 게 아닌가 걱정하는 거겠지.
나는 곧장 메모를 하나 끼적였다. 그것을 망자의 함에 넣은 뒤, 세스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아직 안 미쳤어.”
흘깃 세스나와 나이트레아를 쳐다봤다.
두 사람 다 내 행동 때문에 인지부조화가 온 얼굴이었다.
‘…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 하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미친 걸지도 모르겠군.
히죽 웃으며 세븐 소드 피어스를 허공에 전개했고. 동시에 망토를 변형시켜 가시촉수를 생성했다.
“확률 4분의 1. 한 번 뽑는데 목숨 하나!”
나는 짐짓 유쾌하게 외쳤다.
들고 있던 쌍검까지 어검술로 공중에 띄웠다. 내 주위로 수십 개의 칼날들이 예광을 토해내며 허공에 둥둥 떠있다.
나는 그것들을 한 번씩 눈으로 쓸어본 뒤. 마른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고함을 질렀다.
“이 정도면 개혜자네 X발!!!”
에라 모르겠다.
나는 주먹을 힘껏 틀어쥐며 모든 스킬들을 일거에 조작했다. 스킬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겨누는 목표 지점은 하나였다.
내 몸뚱이다.
“꺄아아악! 저, 정용님! 안 돼요!!”
세스나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우직! 빠득! 와득! 푸콰샹 나마스떼!
사방팔방에서 날아온 강력한 스킬들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워낙 압도적인 포화여서 그런가. 나는 순식간에 의식이 사그러드는 것을 느꼈다.
“SSR 에테르, 가챠쇼… 시작합…!”
푸직. 마무리 일격으로 베스타크가 날아와 내 목을 뎅겅 잘라버린다.
나는 이번에도 말을 마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 * *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땅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불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아니, 이건 좀…!”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불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땅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일정 시간을 충족하여, 바람의 에테르를 에테르 응결병에 수집하였다.]
…….
….
이 정신나간 인디언 기우제에, 열 목숨을 넘게 꼴아박게 될 줄이야.
“작작하고 좀 쳐나와 X바알!!”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확률성 뽑기를 돌리는 여러분. 시스템에 명시된 확률 믿지 마라. 다 지랄이다.
선현들이 남긴 명언을 기억하자. 뽑기에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언제나 2분의 1이다.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 그리고 대부분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