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루트2 ― 계약을 파기한다
솔직히 지쳤다.
이 미친 짓을 그만둘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게 진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1번으로 손을 가져갔다. 사명감은 아니었다.
그냥 쓸데없는 오기다.
“그게 정말 최선일까요?”
그 순간.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나를 저지했다.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똥털이 거기에 있었다.
“… 왜 안 나오나 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방을 둘러보자, 역시나 시간이 멈춰있었다. 쏟아지던 빗방울이 공중에서 멈춘 채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진풍경이 보였다.
퍽이나 장관인지라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넌 왜 여기에 있지?”
징글징글한 눈빛을 보내줬다. 미네르바는 어깨를 으쓱이며 곧장 대꾸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요. 자기 목숨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라고. 좀 남이 생각해서 조언하면 듣는 시늉이나 해요. 아휴. 진짜 드럽게 고집만 세 가지고는.”
“…….”
야유가 신랄하게 꽂혔다.
지금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얌전히 아가리 닥치고 새겨듣기로 했다.
보나마나 똥털이 내 모습을 비웃겠거니 싶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버려진 개새끼 쳐다보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 꼴을 좀 보란 말이에요. 벌써… 몸이고 정신이고. 그렇게 너덜너덜해졌잖아요. 쯧.”
저 말. 분명 전에도 들었던 거 같은데.
언제였더라? 잘 모르겠다. 기억이 어렴풋하다. 지금은 깊게 생각할 기운도 없다.
내가 지친 눈으로 미네르바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어쩔 셈이죠? 계약을 이어나갈 건가요?”
“… 뭐, 그렇겠지.”
“한적한 곳에서 띵가띵가 살다 죽는 게 꿈이라면서요. 지금이 그 꿈을 이룰 적기 아닌가요?”
또 저 소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을 똥털 앞에서 내뱉은 기억은 없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전에 케른에서도 느꼈지만. 생각을 읽히는 것 같아서 심히 불쾌하다.
“당신이 계약을 잇지 않으면 곧바로 회귀점 붕괴가 시작돼요.”
내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미네르바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발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 말하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흉마를 짊어진 채 회귀점만 없앨 수도 있어요. 그러면 기억을 잃지 않는 것도 가능해요. 하지만 이미 미칠대로 미친 지금의 당신을 원치 않는다면, 회귀점과 함께 흉마를 소멸시켜서 모든 기억을 없애는 것도 가능하죠.”
“아예. 그러십니까.”
다 귀찮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도 칠판 긁는 소리처럼 거슬렸다.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직후. 도저히 흘릴 수 없는 말이 마빡으로 쑤셔 박혔다.
“혹시 당신이 여기서의 모든 시간을 버리고 싶다면. 회귀점 붕괴와 함께 최초의 순간으로 당신을 회귀를 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요.”
“… 뭐?”
“그래, 당신이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 완전히 처음으로 시간을 돌리는 거죠.”
나는 듣고도 믿기지가 않아 중얼거렸다.
“… 처음으로?”
“네. 당신이 죽었던 횡단보도 기억해요? 아마 그쯤까지 돌아갈 거예요. 좋겠어요. 당신 나 싫어하잖아요. 나와의 만남도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거예요.”
미네르바가 건조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들었다.
나는 이내 헛웃음을 실실 흘렸다.
“내가 루시한테 듣기론. 흉마가 끝까지 찼을 때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던데….”
“내가 있으면 가능해요. 마녀의 피조물이 사용하는 조악한 시간마법 따위. 제약만 아니면 애들 장난거리예요.”
“…….”
“그러니까 다른 회귀점으로 돌리는 건 불가능해도, 가장 최초의 순간은 가능해요. 거긴 이쪽 세상이 아니라서 제약의 효력이 없거든요.”
아까보다도 단호해진 목소리. 반박하던 나는 합죽이가 되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미네르바를 쳐다봤고. 그녀는 내게 손을 뻗어왔다. 거의 동시였다.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을 해줬어요. 불사의 마왕이 잊고 있었던 원래의 의지를 되찾는 것. 내가 바란 당신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으니까.”
“…….”
“이제 당신은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쉬어도 좋아요. 여기서의 고통스러웠던 모든 기억은 전부 버려요. 내가 허락할게요.”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럽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진심 어린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실 웃었다.
“이세계 왔더니 나 걱정해주는 여자들 많네. 기분 째진다 X발.”
루시에다 똥털까지. 죄다 걱정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해본 사람들이다. 세스나나 설백이 이랬으면 내가 이해라도 하지.
박정용 24년 인생에 유래 없던 의문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가자. 처음으로.”
나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미네르바는 흠칫 뻗었던 손을 물렸다. 그리고 얼떨떨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 어, 예? 뭐라고요?”
본인이 권유해 놓고 막상 받아들이니 당황하는 미네르바.
도를 아십니까 같은 건가. 걔네들이 자기들 개소리 너무 경청해주면 오히려 당황한다 그러던데.
나는 킬킬거리며 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네 말대로 하자고. 포기다. 때려쳐 X발.”
“가, 갑자기… 왜? 왜 그런 선택을….”
“나를 진짜 싫어하는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뭐. 진짜 좋은 일은 없겠다 싶네.”
미네르바는 망연자실힌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뭘 그럴 리가. 내가 귀찮은 거 싫어한다고 했냐 안 했냐. 이 정도면 나치고는 열심히 했잖아.
나는 자책하듯이 실실 빠갰다.
“지쳤어. 힘들다. 네 말대로… 이젠 좀 쉬고 싶다.”
그 말에 미네르바가 입을 다물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씨익 웃는다. 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는 그런 얼굴이다.
“… 그래요.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응.”
차라리 후련하다는 말투다.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뭔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거나… 남길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라. 나는 가만히 땅을 보며 생각하다가, 이내 망자의 함을 꺼내들었다.
뽈칵. 함을 열자 구겨 넣은 종이쪼가리 틈으로 반지가 보였다. 케른에서 타라에게 받았던 투박한 철제 반지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반지를 집어들었다.
“나 이거 하나만 가지고 돌아가게 해줘라.”
“… 네. 그래요. 능력이 붙은 아이템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하죠.”
내가 반지를 까딱거리자, 미네르바는 슬며시 웃었다.
그녀가 곧 고개를 저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 윽!”
키이잉! 연녹색 섬광이 내 몸을 빽빽하게 휘감는다.
익숙한 느낌이 몰려들었다. 게이트를 탈 때와 비슷한… 몸과 정신이 어딘가로 급격하게 빨려드는 느낌.
“모두 잊는 거예요. 그러면 무조건… 적어도 여기 있는 것보단 행복하겠죠.”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알림 ― 계약 파기]
[알 수 없는 힘으로 불사의 계약이 백지화되었다.]
[모든 회귀점이 붕괴한다. 회귀점에 축적된 시간이 소멸한다.]
시야가 새하얗게 명멸한다. 미네르바의 목소리도 형상도 뭉개진다.
눈앞에서 육각형의 작은 통로가 빙글빙글 회전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몸을 허우적거렸다.
“시,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고. 곧바로 정신줄이 날아갔다.
눈이 너무 부셨다.
* * *
빠아아앙!
우렁찬 경적 소리가 코앞에서 울렸다.
눈을 사정없이 찌르는 헤드라이트 불빛에서 퍼뜩 시선을 뗐다.
“야 이 미친 새꺄! 뒤지고 싶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어… 어, 아!”
운전수의 찢어지는 고함이 울린 뒤에야 나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횡단보도의 한복판이었다. 주저앉은 내 앞뒤로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보란 듯이 켜져 있었다.
“죄송함다!!”
에이씨 쪽팔려.
나는 옷을 대충 털며 트럭운전수에게 고개를 바짝 숙였고. 퍼뜩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니 뭐지. 왜 갑자기 빨간불에 횡단보도에 뛰어드냐….”
죽을 때는 바다에 뛰어들기로 약속했잖아 정용아.
너도 니 아빠처럼 교통사고 당해서, 욕 들어 처먹어가며 죽고 싶냐?
“후우. 이세계 갈 뻔했네 X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농담을 주워섬겼다. 방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뛰어든 걸까. 누가 밀었나?
오 그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대체 누가….’
나는 방금 전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했지만.
웬걸. 깜짝 놀랄 정도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순간 죽을 뻔해서 기억이 날아간 건가?
‘아니.’
그뿐만이 아닌데. 뭔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체 뭐지. 이 공허한 느낌.
왜, 방금까지 보고 있었던 주변 풍경들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노망이 났나 X벌.”
최근 조기치매에 걸리는 20대가 많다고 하던데.
요즘 머리를 너무 안 쓰고 살긴 했다. 기숙사 옆방 창봉이형이랑 오랜만에 쩜당백으로 고스톱이나 칠까. 전 주에 5만원 꼴아서 속도 쓰린 참이었다.
‘뭐, 그 전에 할 건 하고.’
그래. 잊었던 게 있긴 했네. 내 목적.
이 황금 같은 주말에 잠 안 자고 뭐하러 나왔는지를 떠올리자.
아버지가 후원하던 고아원에 밀린 후원금을 전달하러 가던 중이었다.
‘예미.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아버지는 생전에 뭔놈의 후원금을 이렇게 많이 쳐박았는지 모르겠다.
고아원 후원할 돈 있었으면 나 좀 맛있는 거나 사주지 X바. 지 새끼는 초등학교 때 돈없어서 우유급식 못 시켜먹 게 아직도 한이구만.
그래도 용서는 해줄게 아버지. 착한 일 하다 그런 거니까. X발.
“아버지 출신 고아원만 아니었어도 바로 손절… 음?”
주머니에 구겨 넣은 돈 봉투를 만지작대던 나는, 문득 손가락에 시선을 뒀다.
약지손가락에 딱딱한 이물감이 들어서였다.
‘반지?’
투박하고 두툼한 철제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뭐지. 내가 악세사리 나부랭이에 돈쓸 사람이 아닌데.
패알못인 내가 봐도 디자인이 개썩어빠진 이런 반지를… 내가 왜 끼우고 있지.
“허어 X발… 오늘 나 상태 많이 안 좋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반지를 뺐다. 대충 투구폼을 취하며 어딘가에 던져버리려 했지만.
이내 관뒀다.
“…….”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버리기 싫어졌다. 그것도 엄청.
씨근거리며 반지에 대충 손가락을 다시 쑤셔 넣었다.
“진짜, 많이 안 좋네. 씁.”
나는 투덜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나는 원인 모를 오한을 느끼며 거리 한복판을 가로질러 고아원으로 향했다.
오늘의 이상한 일은 이쯤이면 충분히 겪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 정용 오빠!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요?!”
고아원에서 알바를 하던 젊은 여자가 아는 사이였다.
“그, 그러게요. 오랜만입니다.”
나는 졸라리 당황했다.
분명히 아는 얼굴이긴 한데 어디서 봤는지를 몰라서다.
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눈 마주친 아기를 보는 듯한, 미묘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저 기억나시죠? 2년 전에요! 샴성 평택 건설현장에서요.”
“아. 아아. 예. 기억할걸요?”
“아하하, 뭐에요 그게!”
어 그래. 웃는 얼굴 보니 기억났다.
막노동짬 1년차 시절. 평택에서 배관조공 노가다할 때. 차량 유도원 알바로 잠깐 일했던 내 또래의 여자다.
우리 팀장이 나이 40개 헛처먹고 성추행하는 거 막아줬더니. 일하다 마주치면 덕담 주고받는 사이는 됐던 것 같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 2년 전인데 어떻게 기억하냐.
그 사건 뒤로 팀장새끼가 오지게 꼽줘서, 한 달쯤 버티다 대판 싸우고 내 발로 나왔다. 덕분에 그리 긴 접점이 있지도 못했다.
오히려 지금 얘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게 더 신기하다. 뭐 대단한 일이 있었다고.
“그 때 제가 까톡하라고 번호 드렸는데… 그 뒤로 연락 한 번도 안하시더라고요? 저랑 말도 섞기 싫었어요? 진짜 너무해요.”
“아. 그거….”
아 그래.
이름은 아직도 기억 안 나는데. 내가 왜 까톡 안 했는지는 대충 알겠다.
그 때 기숙사 룸메 새끼 둘이서 짜고, 내 핸드폰을 훔쳤었다.
‘진짜 X발, 못 배워 처먹은 새끼들 아니랄까봐.’
제갈공명도 울고 갈 계략으로 경찰서 앞에서 자백 받아냈을 때는, 이미 평화나라 중고장터에 30만원에 팔린 상태였다.
반추해보니 사회의 혹독함을 모르던 시절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군. 오열 싼다.
나는 주절주절 사건을 설명해줬다.
“아 뭐야. 그런 거였어요? 난 또… 오빠가 나 싫어하나 해서, 한동안 엄청 시무룩했어요. 무슨 일 생겼나 싶어서 걱정도 됐고.”
“싫어할 리가 있습니까. 미인이신데….”
그녀는 그런 말을 해줬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기분은 좋았다.
이 정도 미인이 내 걱정을 해줬다니. 그런 일은 내 인생 24년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고.
…….
… 아닌가?
있었나? 아닌데. 없었을 텐데.
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
“폰 줘봐요.”
혼자 멍하니 있는데, 별안간 그녀가 손을 내민다.
내가 고개를 모로 꺾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시 알려줄 테니까… 이번엔 잊어먹지 마요?”
* * *
결혼했다.
중간과정 너무 생략했나?
그 뒤로 친해져서 몇 번 만나다가,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그녀가 고백했다.
난 당연히 받아줬고, 한 3년 사귀다 결혼까지 골인했다.
“오빠.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결혼식에서 그녀가 그렇게 말해줬다.
나는 말할 것도 없지. 원래 팔자에도 없는 결혼이라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랑 부전자전으로 병신 호구짓하며 살다가, 유일하게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결혼식은 고아원 앞의, 그녀가 다니던 작은 교회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부모도 둘 다 죽은데다, 빚 갚느라 교우관계도 개박살난 터라. 내쪽 하객이 심각할 정도로 없어서 좀 머쓱했다. 다행히 장모님과 그녀는 오히려 내 기분을 걱정해줬다.
진짜 좋은 사람들이다. 나한텐 솔직히 아깝다. 응.
그 와중에 한 가지 이상한 점.
내 앞으로 신원불명의 축의금이 온 게 하나 있었다.
[행복하신가요? ― 미네르바]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짤막한 쪽지와 함께. 무려 100만원이나 와 있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남은 불알친구들도 끽해야 20. 30이었는데. 누군지는 아직도 모른다.
… 내가 아는 미네르바는 2009년쯤 인터넷에 경제댓글 달아서 유명했던 박모씨인데.
영문을 모르겠다.
어쨌든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가서,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의 펜션을 잡았다.
나의 초이스였다. 그녀도 뷰가 정말 좋다며 나를 칭찬해줬다.
“오빠. 오빠도 행복해요?”
창문 너머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물어온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왠지 이 행복이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하고.
계속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드는 건. 아마 그래서일 거다.
“…….”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홀린 듯이 투박한 철제 반지를 쳐다본다. 그러면 뭔가 안심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이제 내 약지에는 결혼반지가 채워졌다.
더 이상 이 철제반지가 비빌 구석이 없다.
“흡!”
나는 전력을 다해 반지를 바다 쪽으로 던져버렸다.
철썩. 팬션 아래 절벽으로 파도가 일렁이며 반지를 집어삼켰다. 나는 하염없이 반지가 사라진 그곳을 응시했다.
반지가 손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이유 없는 미련이 사무쳐왔기 때문이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 독수리 부리는 왜 노랄까.”
“하하하. 뭐에요 그게.”
뭐긴. 그냥 아무 말이나 주워섬긴 거다.
사실 나는 반지가 가라앉은 바다 밑바닥을 상상하고 있었다.
죽은 듯이 춥고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엔딩(1) ― 침잠(沈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