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나는 이번에도 꿈을 꿨다.
관짝소년단이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익숙한 EDM이 흘러나오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흥겹게 빵뎅이를 흔들어댔다.
“와아아아!”
이상하게 이번 꿈에서는 비가 오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고? 지금까지 꿨던 어떤 꿈보다도 최고로 기분이 좋았으니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신나는 노래에 맞춰 관짝 댄스나 추고 싶었다.
“… 응?”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관짝을 메고 있는 건 상복을 차려 입은 흑인 형아들이 아니었다.
복면을 쓰고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들이다.
“어, 어…?”
그들이 스텝을 질서있게 밟으며, 천천히 내쪽으로… 그리고 환호하는 내 일행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마음은 한없이 즐거운 와중에,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들에게서 거부감을 느꼈다.
다가오는 그들에 맞춰 뒷걸음질을 쳤다.
“스으… 스으으….”
그리고 그들이 들쳐 멘 관짝 안에선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일순간에 곤두박질쳤다. 나는 연신 덜컹거리는 거대한 관쪽으로 시선을 박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 봤다. 저 관짝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스으으….”
아니나 다를까. 관짝의 뚜껑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을 쓰고 쇳소리를 내며, 한 손에는 멸흉검을 든 괴한이었다.
놈이 천천히 일어나서, 꿈틀꿈틀 관짝을 기어나와, 우리들 앞에 흐느적거리며 다가온다.
“오, 오지 마….”
EDM이 점점 이지러진다. 신나는 베이스 울림은 심장의 고동소리가 되었다.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로 크게 뛰는 심장소리에 맞춰 괴한이 점점 다가온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괴한에게 다가가려 했다.
“히히히하하하!!”
지인들이 찢어지도록 입을 벌리고 웃었다. 왜 웃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웃음소리가 왠지 귀에 익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모두 저놈에게 살해당할 거야! 그들에게 위험을 경고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 뭐야.”
사방은 어느새 피바다가 돼 있었고. 사람들은 온몸이 분해되어 흩뿌려져 있었다.
조각난 팔과 다리가 여기저기 어질러져서 뭐가 누구의 신체 조각인지도 모르겠다.
“으.. 으흑… 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슬퍼서? 토할 것 같아서? 아니다.
“으흐… 흐히. 흐히히히. 히히하하하!”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찢어지는 웃음소리는 지인들의 것이 아니었다.
나다. 내가 웃고 있던 것이다.
나는 웃다 말고 지인들의 시신에 눈길을 줬다.
적랑과 카르할라스. 크라네이드. 세스나. 설백. 그리고 제나와 제논까지.
모두 죽어있었다.
… 잠깐만. 제논?
제논이 왜 저기 누워있어.
그러면. 지금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멸흉검의 괴한은… 누구야?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냐. 박정용.”
그리고 스멀스멀 다가온 남자는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나였다. 불거진 혈관과 징그럽게 일그러진 얼굴. 온몸에 일렁거리는 화염을 두른 내가 실실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니까?”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내가 일순간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도망치려 했지만 몸은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그리고 푸직, 질펀한 파육음이 울렸다.
“…….”
나는 한동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후두둑. 얼굴로 튄 피를 손끝으로 쓸어냈다.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그녀의 피도 나와 같은 색이다. 그런 당연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느냐.”
내 앞에는 어느새 루시가 등장해 있었다.
그녀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웃으려 한 모양이지만 쿨럭, 격한 기침과 함께 입에선 피가 쏟아졌다.
“…… 루시.”
나는 멍청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루시의 배에는 멸흉검이 박혀 있었다. 저쪽의 내가 이쪽 나를 죽이기 위해 찔렀던 것이다.
나는 멍청한 탄성만 내지르고 있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라. 이… 멍청한 용사 같으니.”
루시의 꺼질 듯한 목소리가 나를 질책했다. 나는 다시 퍼뜩 눈을 떴다.
우르르릉. 세상이 천장부터 무너져 내렸다. 관짝도 없어지고, 즐비했던 시체들도 없어진다.
루시를 찔렀던 또 다른 나도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진다.
눈앞에 남은 건.
피흘리며 슬프게 웃고 있는 루시뿐이다.
* * *
“커헉!!”
꿈에서 깨어났다.
선 채로 정신을 잃었던 듯하다. 격한 숨을 몰아쉬었다. 사위를 둘러봤다. 적랑의 저택 정원이었다.
현실인가? 아마도 맞다. 나는 정원의 용태를 살펴보다 눈을 부릅떴다.
“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정신을 잃기 전보다 정원의 상태가 심각해졌다.
넓은 정원에 온통 한 가득. 거대한 야수가 긁어놓은 것처럼 균열이 가 있다. 그 사이로 새빨간 불꽃이 날름거린다.
지옥도였다. 이미 저택의 정원은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크라네이드의 브레스 따윈 비교도 안 되는 초토화의 현장이었다.
‘사, 사람들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안 보인다.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된 카사스 따까리들 외엔 아무도.
“뭐야… 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직전에 꿨던 의미불명의 꿈이 떠올랐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일행들을 찾기 위해 유령처럼 손을 휘적이다가, 문득 내 품에 따듯한 무언가가 안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느냐. 괘씸한… 커흑.”
루시였다.
나를 올려다보며 힘겹게 웃고 있는 루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배에 멸흉검이 박힌 채 피를 철철 쏟는 루시가… 내게 기대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 뭐야.”
꿈에서 깬 게 아니었나?
왜 저러고 있냐. 왜 루시의 배에 칼침이 박혀 있냐고.
이거 꿈인가? 너무 생생해서 현실 같지만 사실 전부 꿈인 건가?
…….
….
… 아니. X발.
무슨 X발 말 같지도 않은 현실 도피를 하고 지랄이냐.
틀림없는 현실이다. 도망칠 곳 없는… 순도 100퍼센트 현실.
‘대체 무슨 일이.’
잠깐 정신을 잃은 동안, 대체. 나는 무슨 짓을 했지?
사실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스스로 되물었다.
문득 뺨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루시가 피투성이 손으로 내 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약속. 지키거라. 내… 허락도 없이… 죽으면 안 된다. 절대로.”
루시는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울음보다 처절한 웃음이었다.
“나도… 이렇게, 약속… 지켰으니까 말이다.”
루시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툭. 두 손을 늘어뜨렸다.
루시의 몸이 한층 내게 밀착했다. 힘이 빠져서인지 그녀의 무게감이 훨씬 묵직해졌다.
멍한 정신 안으로 루시가 내뱉었던 말들이 맴돌았다.
―그럼 약속해라. 무조건 네가 살아남아라. 흉마에 먹히지도 말아라! 지금 빨리, 나랑 약속해!
이번 생의 부활 직후. 미치기 직전이었던 나를 붙들어준 루시의 말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말한 약속은 바로 그것이다.
나보고 지키라는 약속이 그거라면, 루시가 지켰다는 약속은…?
―내가 흉마에 먹혀서 미친놈이 되면… 어떻게든 날 정신 차리게 만들어.
이번엔 내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건지. 내가 어떻게 흉마에 먹히고도 다시 돌아온 건지.
대체 누가 그녀의 배에 검을 쑤셔 박았는지도. 아주 잘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나는 피와 화상으로 시뻘개진 손을 내려다봤다.
루시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 거, 걱정도 팔자로고. 내가 남은 흉마를 쏟아부어서… 네놈을 막았다. 다른 놈들은… 내가 전부 피신시켰다.”
“…….”
“내가, 본심만 발휘하면… 이 정도다. 나를… 짐짝 취급하지 말라고… 우, 후후… 커흑!”
루시가 짓궂은 웃음을 흘리다 피를 울컥 쏟아냈다.
온몸의 피가 식는 느낌 속에서. 나는 문득 에테르에 생각이 미쳐 파우치를 뒤적거렸다.
아차 싶었다.
‘… 없어.’
남은 물의 에테르가 하나도 없다.
나와 적랑, 그리고 크라네이드와 세스나. 넷이서 나눠 마셨던 기억이 뒤늦게 떠오른다.
‘자살… 얼른 자살을! 빨리!!’
나는 허겁지겁 베스타크를 찾았다.
저만치 멀리 땅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검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엉겨붙은 루시가 방해됐다. 떼어놓으려 했다.
“약속… 어길 셈이냐?”
하지만 그 전에 덥석, 그녀가 나를 힘껏 껴안아서 내 행동을 틀어막았다.
이상한 헛소리를 하고 있다. 나는 미친놈처럼 발광하며 그녀에게 소리질렀다.
“X발 자살해야 돼! 이거 놔 X발! 야! 너 뒤져 그러다!!”
반쯤 넋이 나간 채 횡설수설했다. 군대 전역 일주일 남기고 아버지 사망소식 들었을 때도 이렇게 당황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루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슬슬 저었다.
“돌아가도 똑같다. 지금도… 간신히, 잠깐 억눌렀을 뿐이니까.”
“무슨 개소리야 대체!”
“용사. 네 흉마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어. 이대로 돌아가면… 마지막 흉마가 쌓여서 아까처럼 미쳐 날뛰게 될 거다. 그 때는… 이제 나도 힘이 다해서, 막아주지 못한다.”
“… 그…!”
“그러니까… 이게 맞는 게야. 너도, 나도… 이러면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완벽한 외통수다.
베스타크를 향해 뻗었던 손이 맥아리없이 떨어졌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루시를 쳐다봤고. 루시도 때마침 나를 올려다봤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붉은 눈동자가 날 보며 필사적으로 웃고 있었다.
“어둡고. 춥구나. 익숙하다. 약해진 상태라 그런가… 전보다, 죽음이 절절히 느껴지는구로.”
루시는 말하다 말고 콜록, 기침과 함께 피를 쏟아냈다.
루시의 숨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해진다. 밀착된 몸을 통해 느껴지는 심장 고동 소리도 점점 사그라든다.
“있잖아. 용사. 이번 생은 말이다. 역대 최악이었느니라.”
한참을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기침을 하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온 얼굴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 끝을 슬쩍 비틀어 올렸다.
“네놈 같은 정신 나간 용사가 수호자가 되질 않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세계정복은 물건너 갔고. 이렇게 대신 죽어주기까지 하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후후.”
기침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루시는 웃고 있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진다.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넋두리는 계속 이어졌다.
“네놈 때문에, 겪어본 적 없는 일만 잔뜩 일어났다. 지겨운 140년 인생을 전부 합쳐도 이번 생보다 짧게 느껴질 정도이니라.”
“…….”
“… 그래서, 도저히 잊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루시가 유언을 떠벌대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무력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스스스.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루시의 몸이 서서히 회백색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소리였다.
나는 숨을 삼킨 채 눈을 부릅떴다.
“아아.”
루시도 홀린 듯이 그것을 쳐다보더니, 이내 탄식을 흘렸다.
그녀가 반쯤 잿더미가 된 팔을 내 등 뒤로 힘껏 둘렀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나… 이렇게 죽기 싫어진 적은 처음이야.”
“…….”
“용사.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도. 나를 기억하….”
루시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신체말단부터 시작된 풍화는 순식간에 루시를 먹어치웠고. 결국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녀의 얼굴을 회색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
나는 허망하게 뻗은 손을 꿈틀거렸다.
까끌거리는 잿더미만 손아귀에 가득하다. 방금까지 느껴지던 식어가던 체온도 온데간데없다. 나는 털썩.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불사의 계약이 파기되었다.]
두둥. 눈앞으로 시커먼 패널 하나가 등장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23일, 04시 20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수도 크로스페이드, 무신의 성전]
[상세: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가 사망했다. 생존한 수호자가 재계약을 이행할시, 수호자에게 알이 재생성 된다. 부화 시기는 수호자가 쌓은 흉마의 총량에 영향을 받는다.]
루시의 사망선고였다.
멍한 머리로 하염없이 글자들을 머리에 입력하는 와중. 또 다른 패널이 곧장 뒤를 이었다.
[불사의 계약 - 분기 선택]
[1. 수호자의 재계약을 이행하고, 불사의 마왕의 알을 받아들인다.]
[2. 수호자의 계약을 파기하고, 흉마와 회귀점의 소멸을 속행한다.]
불사의 마왕 수호자… 아니, 전 수호자인 내게 선택이 강요되었다.
루시의 옆에서 계속 이 지옥도를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루시를 버리고, 모두 없었던 일로 해버릴 것인가.
내 선택에 따라 그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
망설임은 거의 없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