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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61화 (137/280)

161화

“크오오오오!!”

맹수의 포효 같은 굉음이 터져나왔다.

나와 헥터는 물론이고, 제논과 적랑까지 시선을 돌렸다.

“준비 끝났다. 비실이.”

굉음의 주인은 크라네이드였다. 크라네이드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런 말을 지껄였다.

나는 크라네이드의 행색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는 두 다리와 양손을 땅에 깊숙이 고정한 채, 이쪽을 향해 이글거리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거 비유가 아니다.

진짜 눈깔에서 광선이라도 나갈 것처럼 빛이 나고 있다.

“피해라! 비실이!!”

크라네이드는 내게 짤막하게 한 마디 했다. 그리고 스읍, 숨을 잔뜩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하고 불길한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한다. 크라네이드의 다물린 이빨 사이로 찬란한 빛 덩어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크라네이드가 지금 정확히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빈약한 상상력과 히어로 센스가 말해준다. 뭔가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그래서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크라네이드의 시야 바깥으로 피신했다.

‘아.’

그 순간. 지면에 고정된 대포를 연상시키는 크라네이드의 행색에서 직감했다.

그래.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드래곤 하면 그거 아닌가.

브레스. 그는 지금 브레스를 준비하고 있다.

“비실이 학살의 숨결!!”

크라네이드는 악의가 다분한 기술명을 외치며 입을 쩍 벌렸다.

굉음보다 한 박자 빠르게, 눈이 멀듯한 섬광이 시야를 하얗게 메웠다.

콰과과과과!!

압도적인 힘의 격류에 나는 숨을 삼켰다.

브레스보다는 차라리 레이저 빔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새하얗고 거대한 빛기둥이 크라네이드의 입에서 쏟아져 정원을 온통 새하얗게 물들였다.

“하찮은 딱총알! 모두 없애버리겠다!”

콰콰쾅! 크라네이드의 브레스가 시커먼 광탄에 닿을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흑색 광탄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네놈이 대장 비실이구나!!”

크라네이드의 희번득한 눈에 헥터 카사스가 포착되었다. 워낙 기세가 흉흉해서인지, 날고 기는 헥터 카사스조차 눈이 마주치자 몸을 흠칫 떨었다.

크라네이드가 입을 한층 크게 벌리며 놈을 향해 일갈했다.

“우리 비실이 건드리지 말고 사라져라!!”

연신 몰아닥치는 돌풍과 눈부신 빛. 사방으로 빗방울이 비산한다.

새하얀 빛의 직선이 헥터를 향해 올곧게 날아갔다.

“여신이여, 이런 터무니없는…!”

헥터는 당황한 듯이 눈을 부릅뜨더니, 황급히 자신을 시커먼 보호막으로 감쌌다.

쩌어어엉! 빛기둥이 어둠의 장막과 맞닿으며 거센 충격파를 내뿜었다. 사위가 온통 흑백으로 번쩍거렸다.

“무식하도록 순수한 힘의 격류…! 이, 이건 파라이소의 기술이 아니로군…!”

헥터는 힘에 부치는 목소리를 뽑아냈다.

헥터와 크라네이드를 중심으로 빛과 어둠의 충돌이 점점 더 격렬해진다. 찢어지는 굉음과 섬광이 연신 쏟아졌다.

“그롸롸롸롸!”

“하아아앗!”

그 끝을 눈에 담아내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견디지 못했다.

몸을 움츠리고 소매로 눈을 가렸다. 날아가지 않도록 몸을 고정하는 게 고작이었다.

“크으…!”

얼마나 지났을까. 눈꺼풀 너머가 다시 어두워졌다. 귀가 먹먹하던 폭음은 사라졌고 빗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런 미친…!’

사방이 초토화 돼있었다.

헥터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순간 죽은 건가 싶어서 화색이 됐지만. 시신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걸 보면, 틈을 봐서 도망간 듯했다.

“장난없네 진짜….”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나나, 다른 카사스의 따까리들. 심지어 세스나가 있던 곳까지 폭발의 여파가 닿아 있었다.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날아갔고. 땅가죽이 완전히 뒤집혔다.

‘다른 애들은….’

나는 멀찍이 정원의 구석에 시선을 돌렸다.

기절해버린 세스나와 나이트레아, 그리고 루시까지. 세 사람이 시신들 사이에 파묻혀 나뒹굴고 있다.

“아이고오. 힘들어 죽겠구만… 켈켈.”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연출해낸 크라네이드가 중얼거렸다. 다리를 땅에 박은 채 풀썩,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위력이 강력한 만큼, 사용 후에 탈진이 오는 모양이었다.

“… 아.”

나는 낮은 탄성을 흘리며 정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검을 고쳐 쥐었다.

솨아아아―.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스으으….”

모두 시체가 되거나 기절해 쓰러진 와중. 아직까지 서 있는 것은 세 사람뿐이다.

하나는 나고. 하나는 핏발선 눈을 번들거리는 적랑.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적랑의 앞에서 멸흉검을 꼬나쥔 채 비틀거리는 제논이었다.

“끄… 윽…!”

적랑의 눈이 뒤집어졌다. 제논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점점 힘이 풀려간다.

아무렴 내장이 내부부터 타오르는 고통이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게 대단한 거다.

“적당히 하고 뒤져 새꺄!!”

나는 징글징글한 마음에 고함을 쳤다.

방해하던 헥터는 사라졌다. 제논의 목을 치려면 지금 밖에는 없다!

회수했던 검 두 자루를 제논을 향해 날렸다. 검이 각기 다른 궤도로 놈을 향해 날아간다. 하나는 전방, 그리고 하나는 측면이다.

“스으… 스으…!”

그리고 마침내 에스파다가 먼저 제논의 목을 향해 하얀 칼날을 들이밀었다.

카아앙! 제논은 어쩔 수 없이 적랑을 찔렀던 멸흉검을 빼내 에스파다를 막아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나는 측면으로 날린 베스타크에 마력을 미친 듯이 쏟아 부었다.

투콰앙! 검이 순간적으로 총알보다도 빠르게 제논을 향해 날아간다. 제논은 본능적으로 멸흉검을 들어올려 급소를 보호했다.

“스으…!”

키이잉! 검과 검이 부딪친다. 검신 주위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이 빗줄기를 증발시킨다.

멸흉검이 베스타크와 맞닿는 그 짧은 찰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팅어!!”

콰아아앙! 베스타크에 과충전됐던 마력이 기탄으로 화했고. 기탄이 제논의 면상 제로거리에서 폭발한다.

가공할 충격파가 온 정원을 뒤흔들었다.

“스으으…!”

제논은 온몸의 살이 부르터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짧은 사이에 멸흉검을 땅에 박고 버텨낸 것이다.

‘도박이다!’

그래 니 똥 굵다 새꺄.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 보자.

지금껏 이걸 사전에 간파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적랑과 변경백 둘 뿐이다. 과연 네가 세 번째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사냥 표식!’

나는 비틀거리는 제논을 향해 스킬을 발사했다. 어두운 기운이 쏜살같이 날아가 제논의 이마 언저리에 해골 표식을 띄운다.

그것을 포착하기 무섭게 나는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연화!’

연화는 원래 검을 장비했을 때만 가능한 스킬이다.

하지만 어검술은 신검합일의 스킬. 어검술만 유지하고 있으면, 검을 쥐지 않아도 연화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용한 스킬이었고.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됐다…!”

스슥. 시야가 명멸한다. 내 앞에는 비틀거리는 제논의 뒷모습이 있었다.

덥석. 첫 합에서 제논에게 튕겨나갔던 에스파다가 정확히 내 손 안에 안착했다.

“뒤져어어어!!”

섬전 같은 찌르기가 작렬했다.

제논의 이마에 떠있던 해골 문양이 번쩍, 음울한 핏빛을 뿜었다. 치명타의 표식이다.

퍼걱! 새빨갛게 물든 칼끝이 제논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스, 으… 윽…!”

제논의 쇳소리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고통에 떠는 듯하다.

순간 놈의 어깨근육이 움찔거린다. 반격하려 한다. 마무리 일격을 먹여야 한다!

나는 미친 듯이 맥동하는 제논의 심장박동을 칼끝으로 느끼며, 영혼을 토해냈다.

“으아아하하하!!”

웃는 건지 절규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잔존 마력을 전부 끌어 모았고. 망설임 없이 스팅어를 발동시켰다.

제논의 뒤틀린 얼굴이 일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스…!”

퍼어억!

질펀한 파육음과 함께 제논의 육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두두둑. 폭우 속으로 갈기갈기 찢긴 제논의 살점이 섞여 내린다. 차가운 빗물과 불꽃처럼 뜨거운 핏방울이 동시에 뺨을 때렸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 아….”

끝났다. 제논의 상반신이 완전히 분해되었다.

철퍽. 제논의 하체가 바닥에 엎어졌다. 빗물과 피가 섞이며 지면이 붉게 물들어간다.

“.. 하… 개… 새, 끼.”

나는 그것을 홀린 듯이 쳐다보다가, 욕지기를 힘겹게 씨근거렸다.

이내 욱신거리는 뱃가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곱게… 갈… 것이지…! X발…!”

멸흉검이 거기에 꽂혀있었다.

불의의 기습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스팅어가 폭발하기 직전에 반격한 듯하다.

징한 새끼가 끝까지 진상을 부리는구나.

“아… 크… 윽!”

새빨간 불꽃이 아랫배에서 이글거린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멸흉검을 뽑아냈다.

우지직. 내장이 딸려나오는 고통과 온몸을 인두로 지지는 감각이 동시에 몰려온다.

격통을 밀어낸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 스으…. 스으으….”

입에서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났다.

나는 덜컥 입을 다물었다.

“스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빗소리를 심장소리가 잡아먹는다. 먹먹해진다.

심장의 고동에 맞춰 세상이 요동친다. 허물어진다. 온통 새빨갛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빨강. 온통 빨강만이 남았다. 제논이 일으켰던 그 불꽃처럼.

“흐. 흐하. 으히… 히히히하하하하!!”

웃었다. 왜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웃겼다. 미친놈처럼.

뽕을 빨면 이런 기분일까. 이게 미친놈이 된 상태라면. 좀 더 빨리 미칠 걸 그랬다.

“흐하하하하하하!!”

이렇게 기분이 끝내주다니.

인생의 절반 손해봤잖아?

“…!…!!”

온통 새빨간 와중에 딱 하나. 누군가의 신형이 내게 달려오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순백의 실루엣이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 새하얗게 찰랑거리는 머리칼 위로 세 개의 검은색 뿔이 돋아 있었다.

“야… 왜 와.”

안 돼. 오지 마. 위험해. 도망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가라고. 빨리.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그녀에게 말했다.

“도… 망… 흐. 흐흐흐.”

훅, 모든 감각이 차단됐다.

까마득한 어둠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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