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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60화 (136/280)

160화 백일몽

안 돼 박정용! 일단 거리를 벌려! 저 칼은 너랑 상성이 너무 안 맞아!!

카앙, 카카캉!

새빨간 불꽃을 두른 검격이 정원을 종횡하는 가운데. 수호 형님의 외침이 연신 귓가를 울렸다. 그래. 전부터 계속 저 말을 했었지.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대체 상성이 안 맞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제대로 알려줘야 경각심이 들죠!”

그 와중에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제논의 공격. 그것을 가까스로 막던 나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씨근거렸다.

그리고 수호 형님은 제법 충격적인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저 칼에는 흉마를 폭주시키는 힘이 있다! 저 빨갱이 엘프는 지금 칼에 쌓여 있던 흉마에 잠식된 거라고!

“… 뭐요?!”

―살짝 닿기만 해도 네 몸에 쌓인 흉마가 폭발할 거야. 저놈 이상의 괴물이 된다! 절대 맨살이 닿으면 안 돼!!

그 말에 칼놀림이 순간 우뚝 멎었다. 멍한 정신으로 제논의 흉한 몰골이 각인된다.

저게… 지금 제논의 모습이, 흉마가 폭주한 자의 말로라고?

‘그냥 미친놈이 되고 끝이 아니었어?’

내가 한눈 파는 틈을 놓치지 않은 제논이 검을 휘두른다.

“스으으…!”

서걱. 티끌 차이로 제논의 검은 내 흑익의 자락을 자르고 지나갔다.

화르륵! 흑익의 옷자락에 살짝 붙은 불꽃이 꺼질 생각을 않고 활활 타오른다.

“아뜨거 X발!”

나는 그것을 황급히 털어내며 욕을 주워섬겼다.

하다하다 저런 괴물 새끼를 노히트 클리어 하라고? 진짜 이 X같은 이세계야. 나한테 무슨 원수를 졌길래 못 잡아 처먹어서 안달이냐.

나는 억울하고 치사한 나머지 퍼뜩 목청을 높였다.

“아니 그런 중요한 걸 왜 이제야 말해줍니까 행님!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처음엔 왜 못 알아본 건데요!!”

―아니 X발! 내가 알던 거랑 생긴 게 전혀 다른데 어떡하냐!

“생긴 게 달라요?!”

―그렇다고! 원래는 무턱대고 흉마를 폭주시키는 게 아니야! 기능이 좀 불완전해! 외형이야 바뀔 수도 있다고 치자. 근데 저건 뭔가 좀 이상하다니깐!

“불완전…?”

그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무신제의 1등 상품. 멸룡검이었다.

비슷한 생김새의 두 검.

이미 암시장을 통해 멸흉검을 사들였던 헥터 카사스.

기능이 불완전하다는 멸흉검.

그리고 멸룡검을 노리던 카사스의 사도들.

‘이 정도면 관련없는 게 더 이상할 정도잖아!’

확실해졌다. 놈들이 무신제에서 노리는 건 멸룡검이다.

방금 수호 형님의 말로 이유도 대충 짐작되었다. 아마도 불완전하다는 저 멸흉검의 기능을 완전하게 고치는 거겠지.

왜지? 그렇게 해서, 대체 헥터 카사스가 노리는 게 뭐지?

“형님! 그럼 완전해지면요! 완전해진 검의 기능이 뭡니까?!”

―흉마를 연료삼아서 멸망의 화염을 일으키는 게 기능이다!

“… 멸망의 뭐요? 그게 뭔데요!”

―원래 내 거야 저거! 디아나가 나 쓰라고 만들어준 불사신 전용템이라고!

“뭐요 X발?!”

연신 당혹성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화르륵, 불꽃을 휘감은 횡베기가 내게 쏟아졌다. 그 사이 거리를 좁혀온 제논이 쇄도해온 것이다.

나름 멀찍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괴물은 괴물이다. 순간적인 쇄도 속도는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다.

“윽!”

나는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꺾어 간신히 검격을 피해냈다.

머리카락 일부가 불꽃에 스친다. 순식간에 홀라당 타들어간다. 나는 대경실색하며 불붙은 부분을 에스파다로 잘라버렸다.

‘이런 망할. 흑익은 최후까지 아껴야 하는데…!’

공중을 지배하는 자가 전투를 지배하는 법이다.

자유자재의 비행기능은 내가 가진 최고의 조커이자 히든카드다.

‘쿨타임이 무려 30분이다.’

불사교 때처럼 전쟁 급이 아니고서야, 한 번의 전투가 30분을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헥터는 무신의 성전에 침묵마법을 두르고, 대놓고 카발리어의 저택에 야습을 감행해왔다. 원래는 속공으로 끝장을 볼 생각이었던 것일 테다.

언제 어떻게 필요해질지 모른다. 최후의 최후까지 흑익은 아껴놓아야 한다.

‘일단 거리를 벌린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백스텝을 밟았다.

카앙, 카카앙! 몇 번의 합을 주고받았다. 육안이 쫓지 못하는 속도로 검끼리 부딪칠 때마다, 폭발과 함께 멸흉검의 불꽃이 폭죽처럼 펑펑 튀었다.

“난리도 아니네 X발…!”

검을 쳐내랴, 불똥을 피하랴 정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날아간 불똥이 정원의 여기저기를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움직임에도 갈수록 제약이 생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키이잉!

멸흉검과 내 쌍검이 맞붙은 어느 순간. 나는 돌발적으로 몸의 진행 방향을 바꿔 놈에게 쇄도했다.

얼굴 가죽을 녹여버릴 듯한 열기가 들이닥쳤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으아아!”

나는 검격을 유려하게 흘려내며 제논의 품을 파고들었다.

찰나였다. 순식간에 공세가 뒤집혔다. 놈의 일그러진 얼굴에 놀란 빛이 스쳤다.

놀랍냐? 그래. 나도 적랑한테 이거 당했을 땐 너처럼 놀랐다.

퍼어억! 온 힘을 다해 지면을 박찼고. 놈의 명치에 이단옆차기를 때려 박았다.

“스…!”

짤막한 쇳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콰아앙! 제논의 신형은 총알 같이 날아가 헥터의 옆쪽으로 굴러갔다. 제논은 저택 정원의 담장에 처박히고 나서야 가까스로 제동이 걸렸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다시금 수호 형님에게 질문을 속행했다.

“형님. 대화 마저 합시다! 흉마를 연료로 저 불을 일으킨다고요?!”

―내가 알던 건 그렇지. 근데 저건 뭐랄까… 단단히 고장났어. 엑셀은 밟힌 채 안 빠지고, 브레이크가 없잖아. 일단 한 번 사용하면 죽을 때까지 날뛰게 만드는 상태라고!

신박한 소리가 나와서 좀 더 캐묻고 싶었지만.

불쑥 나타난 제논이 우리 대화를 갈라버렸다.

“스으으.”

놈의 소름끼치는 숨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화르륵! 새빨간 불꽃의 궤적이 눈앞을 훑고 지나갔다. 눈이 멀 것 같은 광량에 두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순간 피하는 것도 잊고 경악했다.

‘이런 미친! 어느 틈에…!’

푸화악! 새빨간 불꽃의 뱀이 눈앞 수 센치를 스친다.

쏟아지던 빗물이 공중에서 증발해 수증기가 온통 시야를 뒤덮었다.

한 템포 늦게, 모든 수분이 빨려드는 것 같은 엄청난 열기가 안구로 쏟아졌다.

“끄으윽!”

눌러 죽인 신음이 흘러나온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가 하얗게 차단됐다.

나는 황급히 눈을 가리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즉시 흑익을 사용해 공중으로 치솟았다.

‘위험했다!!’

역시, 흑익을 아껴놓길 잘했다.

제논에겐 공중을 공격할만한 기술이 없다. 순간이동도 지금 이성을 잃은 상태론 사용하지 못한다. 헥터 카사스가 전생에서 보증해준 사실이니 확실하다.

“어딜. 비겁하게 내빼게 둘 것 같나.”

피피핑! 헥터의 기분나쁜 목소리와 소리와 함께 어깨죽지에 화끈한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신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어깨가 관통돼 있었고. 흐릿한 시야 너머로 헥터 주변에 잔뜩 떠있는 시커먼 광탄들이 보였다.

“이 개새끼가!”

욕을 하는 와중에도 몸이 기우뚱, 기울더니 그대로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아뿔사. 날개가 광탄으로 찢어져 부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쿠당탕! 낙법으로 충격을 줄여보려 했지만, 애초에 야매 낙법이다 보니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왔다. 오장육부가 진탕하는 충격에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크윽!”

나는 신음을 흘리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러나 이미 제논은 공격 준비를 마쳤고, 당장이라도 내게 뛰어들 태세였다.

“스으으….”

늦었다.

반으로 갈라져 타들어가는 내 모습이 뇌리에 번득이는 순간.

“하아압!”

콰아앙! 포효와 함께 제논의 신형이 측면으로 곤두박질쳤다.

어느새 옆에서 전차처럼 돌진한 적랑이 제논의 면상에 무릎을 꽂은 것이다.

“스으으…!”

제논의 숨소리가 격해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카멜레온처럼 뒤룩거리는 눈을 적랑에게 고정했다.

키이잉! 곡도가 유난히 불길한 적광을 토해낸다. 수평으로 늘어진 곡도가 부르르 떨리며 소름끼치는 금속음을 냈다.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나는 그것이 무엇의 전조인지 알고 있다.

“적랑님! 저거 절대 반응 못합니다! 도망가십쇼!!”

히어로 센스로도 도무지 포착하지 못하는 필살의 돌진일섬. 그것의 준비동작이다. 적랑도 이미 당해봐서 알고 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적랑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알고 있네. 그러니 뒤는 부탁하지.”

… 그게 무슨 소리야, 적랑.

적랑이 나지막이 한 마디 남기더니, 오히려 제논 쪽으로 저돌맹진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사위를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달려드는 적랑.

내가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해서 얼빠진 탄성만 내지르는 찰나. 제논이 길었던 준비 동작을 마치고 지면을 박찼다.

“스으…!”

키이잉!

뇌를 찌르는 듯한 금속음. 일순간에 적랑과 제논의 신형이 교차했다.

‘아니…?’

아니다. 완전히 맑아진 시야로 두 사람을 다시 쳐다봤다.

둘은 교차하지 못했다. 제논과 적랑은 중간지점에서 부딪친 채 멈춰있었다.

푸화아악!

뒤늦게 검의 궤적을 따라 지옥염이 쏟아진다. 뒤엉킨 두 사람이 불꽃에 비쳤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빗물 고인 땅 위로 괴물처럼 일렁거렸다.

“스으…?”

제논은 의문 섞인 숨소리와 함께 연신 멸흉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하지만 그 손은 적랑의 하나 남은 팔에 단단히 얽혀 있었다.

클클클. 매캐한 연기와 함께 적랑의 입에서 피섞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 이다. 정용… 쿨럭!”

제논이 내지른 멸흉검은 적랑의 복부 한 가운데를 관통해 있었다. 몸을 던져 제논의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치지직. 살갗을 산채로 굽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적랑의 몸은 내부부터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정용… 군! 어서! 시간이 없네!!”

“아, 아아!”

고통을 눌러삼킨 적랑의 고함. 나는 냅다 양손의 쌍검을 제논에게 던져버렸다.

쇄애액! 어검술을 사용했다. 검은 정확한 직선을 그리며 제논에게 날아갔다.

“이런…!!”

헥터가 다급히 흑색 광탄을 우박처럼 날려댔지만, 나도 가만히 쌍검이 격추되게 놔두는 건 아니다.

이를 악물고 페이탈 쏜즈와 세븐 소드 피어스를 사용해 대응했다. 시커먼 가시촉수와 광탄, 그리고 짙푸른 마력검이 허공에서 마구 뒤엉키며 스파크와 굉음을 토해냈다.

“으아아!”

파바박, 촤자작!

온 신경을 어검술과 투사체 조종에 쏟아부었다. 순조롭게 마력검과 가시들이 광탄을 견제해냈다.

결국 헥터는 나를 보며 초조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는 제논 군을 풀어놓고 후퇴할 생각이었다만… 계획을 변경하지. 역시 자네는, 나조차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분명하다!”

헥터가 고함을 치며 스태프를 내질렀다.

푸화악! 놈의 눈가에서 검은 눈물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나를 향해 날아오던 광탄이 꾸역꾸역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다.

“인도하는 까마귀여. 너의 죽음을 반드시 내 눈에 담고 돌아가리라!!”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

정원의 하늘이 온통 검은 유성으로 빽빽했다. 전에 비해 족히 10배는 늘어난 듯했다.

나는 굵직한 빗줄기를 뚫고 날아오는 그것들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미친!’

페이탈 쏜즈는 쿨타임이 있다. 지금 당장 다시 쓰지 못한다.

세븐 소드 피어스도 영창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저 많은 걸 단박에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몸으로 맞아가며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몸을 최대한 움츠려 충격에 대비하는 그 순간.

“크오오오오!!”

공기를 진동시키고, 쏟아지는 빗줄기까지 사방으로 흩어버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격노한 맹수의 포효처럼 우렁찬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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