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싸움은 갈수록 난전의 양상이 되었다.
내 주변으로 들러붙은 괴한이 열명 남짓. 나는 전투력이 거의 없는 나이트레아와 루시를 지키며 싸우고 있었고. 나머지 인원들도 정원의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교전을 벌이고 있다.
나는 전생에서 배운 기술들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었다.
“스팅어!”
우우웅, 베스타크로 새파란 마력이 모여들어 단단하게 응축된다. 나는 그것을 눈앞의 괴한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앙! 단순한 충격파라기엔 예리하고, 검기라기엔 흉폭한 파동형 기탄(氣彈)이 괴한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크훅…!”
파동에 얻어맞은 괴한이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다른 괴한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몸을 좀 움츠린다. 나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올라간 모습이다.
‘반응 좋고.’
이런 말하면 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런 인간적인 반응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불사교 놈들은 옆에서 동료가 뒤져나가든 터져나가든 ‘미쳤습니까 휴먼?’ 같은 대사 칠 것 같은 살인기계들이었으니까. 차라리 저게 낫다.
“하아압!”
게다가 공격할 때 기합도 내질러 준다. 얼마나 사람 냄새 나고 좋냐.
물론 맞아준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흡!”
나는 달려드는 괴한을 향해 에스파다를 냉큼 던져버렸다.
쇄애액!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에스파다가 놈의 공격을 저지한다.
“어딜!”
가뿐하게 변칙공격을 막아낸 괴한이 의기양양한 눈빛을 빛냈다.
이내 그는 다시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아마 경솔하게 무기를 내던진 나를 비웃는 듯하지만.
‘어검술.’
튕겨나간 에스파다가 공중에 우뚝 멈추더니. 유령처럼 괴한의 뒷목을 향해 재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검림의 기사. 가트렉 로난에게서 빼앗아온 스킬 어검술.
작동원리가 세븐 소드 피어스나 페이탈 쏜즈와 똑같았기에, 에스파다는 숙련자의 참격 궤적을 그렸다.
“… 크, 아악!”
서걱! 괴한이 뒤늦게 반응했지만. 급소를 보호하는 대신 등을 깊게 베였다. 놈에게 일찌감치 찍어놓은 사냥표식 덕분에 굉장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멀찍이 떨어진 에스파다를 통해 세세한 손맛이 전해지는 게 퍽이나 신기한 느낌이다.
“이놈이!”
다른 괴한들이 일제히 내쪽을 향해 덤벼들었다.
전후좌우, 물샐 틈 없는 완전한 포위공격. 인간사냥을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나는 혀를 짧게 차고는 지면을 박차서 하늘로 치솟았다.
‘조금 리스크는 따르지만…!’
나는 쥐고 있던 베스타크 한 자루도 공중에 띄우고는, 두 자루의 검을 괴한이 몰린 곳을 향해 쏟아냈다.
“으갸악! 요, 용사아앗! 여, 여기 위험하다! 도움!”
그리고 그 순간. 루시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퍼뜩 고개를 돌렸다. 괴한 중 일부가 나를 무시한 채 루시와 나이트레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나는 씨근거리며 쌍검의 궤도를 즉각 변경시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림의 칼 중에 상태 좋은 걸로 몇 개 챙겨놓을 걸 그랬다. 검이 두 자루 밖에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세븐 소드 피어스!’
어검술은 신검합일. 말 그대로 검을 신체의 연장선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술.
어검술을 발동시키면, 검이 몸에서 떨어진 상태에서도 세븐 소드 피어스가 사용이 가능하다.
피피피핑! 가볍게 현기증이 일어나며 마력검이 쏟아졌다.
이렇게 마력이 오지게 빨리고 집중력을 제곱으로 소모한다는 단점도 있다만.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크욱!”
“아아악!”
변화무쌍한 궤도로 날아다니는 에스파다와 베스타크.
그리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칙적인 마력검들의 향연에, 괴한들이 좋아 죽는 소리가 연신 울려퍼졌다.
나는 슬쩍 다른 교전장소들로 시선을 옮겼다.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콰앙, 콰과광!
연신 건틀릿에서 기탄을 날려대며 야수처럼 상대에게 달려드는 적랑이 보인다.
“쿠하아악!”
내가 살짝 훔쳐본 그 짧은 사이에도 카사스의 사도 한 놈의 뚝배기가 박살나고 있었다. 적랑은 얼굴에 튄 피를 슬쩍 닦으며 곧장 다른 놈들을 향해 달려든다.
내가 어리석었군. 저기는 볼 필요가 없다.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리 와라 이 비실이들아! 쥐새끼 비실이 같으니!”
연신 ‘비실이’를 연호하며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는 크라네이드가 보인다.
뒤뚱뒤뚱 느리적하게 다가가 애꿎은 바닥을 후려치거나 헛방을 치는데. 꼴은 우스워도 그 결과는 절대 우습지 않았다.
“위, 위험하다!”
“중심 잡아! 균열로 떨어진다!”
“으아아악!”
콰앙, 콰아앙! 지축이 뒤흔들린다.
정원의 지형지물이 실시간으로 개변된다. 크라네이드의 주먹에 조금이라도 빗맞은 조무래기들은 눈을 부릅뜨며 허공을 날아다녔고. 맞은 부위가 분쇄기에 맞은 것처럼 찌그러졌다.
그런 압도적인 힘의 쇄도 덕에, 카사스 따까리들은 좀처럼 다시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배제! 말살! 제거!”
그 옆에서 무시무시한 기합을 내뱉으며, 연신 전기톱을 휘둘러대는 세스나. 몸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가 꽤 많았지만. 아직 할만은 해보인다.
“아아, 이거 정말 끝도 없이 나오시네요?!”
투두두두! 쪽수로 인해 밀린다 싶을 때마다 미사일을 발사해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역시 로봇답게, 낮은 전투력을 극한의 효율로 커버하고 있다. 알파고님 충성충성이다.
“하악… 하아….”
그런 반면, 카르할라스는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배틀드레스 자락이 거칠게 찢어져 허벅지가 깊게 드러났고. 온통 피로 얼룩져있다. 숨은 턱까지 찼고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다.
정리가 끝나면 곧장 카르할라스를 도와주러 가야겠군. 대충 견적을 마치고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저 놈은 왜 아무것도 안 하지…?’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괴한 하나를 주시했다.
스태프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가만히 서 있는 남자. 헥터 카사스. 그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아까부터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냐. X발.”
가끔씩 적랑이 그를 포착해서 달려들면, 그 때만 견제용 암흑탄을 몇 개 날리며 슬슬 뒤로 빠진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더 이상의 추가타는 날리지 않는다.
시선은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행색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더럽게 찜찜한 부분이 하나. 제논이 없다.
전생에서 기습당했던 시점에는 이미 모든 카사스의 사도들이 죽어 있었다.
단 한 명. 제논만이 피와 화염으로 물든 정원 한 가운데 서 있었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제논…!’
나는 다가오는 초조함과 싸우며, 연신 두 개의 검을 조종해 헥터의 쫄따구들을 유린했다.
조무래기와의 다대일 전투는 케른에서 이갈리게 반복했다. 거기에 새로운 스킬들까지 첨가되니, 오히려 지금 하는 건 간단한 작업 축에 속했다.
“아아악!”
“크아아악!”
놈들의 비명소리를 들을 때마다 입꼬리가 들썩들썩 움찔댄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비상식적으로 들끓는 희열을 억누르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 * *
푸직. 내 앞에 서 있던 괴한이 등 뒤를 베스타크로 꿰뚫린다.
“크악!”
놈이 비명과 함께 핏줄기를 흩뿌렸다. 곧 흐느적거리던 육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걸로 내 주변에 있던 놈들은 모두 정리됐다. 나는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곧장 뒤를 돌아봤다.
루시와 나이트레아가 난리통을 피해 숨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정보누출을 감수해서라도 잭을 데려왔어야 했나. 너무 무방비했군.”
나이트레아가 중얼거린다.
한 손에는 별 도움 안 돼 보이는 리볼버를 하나 쥐고 있다. 급박한 상황과 다르게 이렇다 할 감정이 없는 얼굴이다.
반면 루시는 나무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연신 소리치고 있었다.
“용사! 어, 얼른 가까이 와서 날 지켜라! 아까부터 이놈들 나한테만 집요하게 달려들지 않느냐! 뭐야 대체! 내, 내 몸에 꿀이라도 발려 있나?!”
아까부터 꺅꺅 존내 시끄럽다.
일단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다행이긴 한데. 저 주둥아리는 일 끝나고 나면 꼭 한 번 손봐주도록 하자.
‘혹시 모르니까.’
나는 에스파다를 둥둥 띄워 그녀들 주변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카르할라스가 있는 곳으로 냉큼 달려갔다.
자동 방범 모드… 라고 말하면 좀 어검술의 이미지가 깨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렇게 마력을 주입한 채 띄워놓고 방치하면, 적의나 살기에 알아서 반응하는 상태가 된다.
검림이 이것 때문에 내 연화를 막아낼 수 있었지.
“카르! 도와주러 왔다!”
나는 카르할라스를 둘러싼 괴한들의 한 지점을 거칠게 돌파했다. 카르의 앞을 막아서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아… 저, 정용.”
카르할라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힘겨운 목소리를 뽑아냈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 전신이 후들거리고 눈은 당장이라도 감길 것처럼 깜빡거린다. 척 봐도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인 상태였다.
“아니, 딸내미가 이 지경이 됐는데 애비라는 작자는…!”
나는 퍼뜩 적랑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정원에 빽빽했던 카사스의 사도들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저, 적랑…!”
무수히 쌓인 따까리들의 시체 위.
건틀릿과 함께 적랑의 팔이 장난감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크… 허억…!”
적랑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다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생에서 나와 싸울 때조차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은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스으… 스으….”
적랑의 앞으로 새빨간 곡도의 화염이 일렁인다. 익숙한 쇠긁는 숨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나는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 늦게도 나오는군.”
드디어 선수 입장.
우리가 따까리들을 상대하는 사이, 제논이 헥터 카사스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