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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55화 (131/280)

155화 백령 OFF

무신제 침투조를 전부 제거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놈들의 위치는 모두 확보하고 있고. 아무런 소음도 없이 그들에게 침입할 수 있었으니까.

“누, 누구냐… 커억!”

헥터의 직속 따까리들은 불사교도와 달리, 의식 자체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기습을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놈들이 깨어있든 자고 있든 상관없다. 내가 잠입 스킬로 다가가 뒷목에 베스타크 한 방 쑤시면, 대부분 주님 곁으로 나빌레라 훌훌 떠났다.

‘솔직히 김이 샐 정도군.’

아무렴. 카사스의 사도 놈들이 날고 기어도. 지금은 칠마존의 침묵마법이 깔린 상태다.

나조차 직접 눈으로 안 보면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인데. 제까짓 것들이 뭐 어쩔 거야. 꼬우면 너희들도 칠마존 되시든가.

… 아니. 실제로 카발리어는 됐었구나. 방금 하나 죽이고 오는 길이지.

생각이라도 씨가 될라. 조심해야겠다.

“큭… 우우욱!”

말씀드리는 순간. 내 칼침을 맞은 카사스 따까리 놈이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이런. 목을 찌른다는 게 명치를 찔러버렸다. 에임이 삐끗한 것이다. 딴생각이 이렇게나 위험하다.

“쓰읍. 귀찮게.”

촤르르륵! 나는 침대 위에서 발악하는 그놈에게 그림자사슬을 걸었다. 수십 개의 사슬이 튀어나와 그의 사지를 휘감았고. 목에도 빠짐없이 사슬이 감겼다.

숨이 막히는지, 카사스의 사도가 사지를 바동거렸다.

“쿠… 헉, 커헉!”

너무 괴로워 보이길래 빨리 편하게 해주기로 했다.

서걱. 서늘한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에스파다가 수평으로 움직였다. 허연 궤적을 따라 머리통이 장난감처럼 날아갔다.

“…….”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을까.

사람 목을 레고 마냥 분리시켜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닭고기 한 번 썰어본 적도 없는 나였는데. 지금 드는 감상이라곤.

‘아 X발. 피 묻으면 잘 안 지워지는데.’

그 정도였다. 상의에 튄 대량의 피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놈의 몸이 완전히 추욱 늘어지는 걸 눈에 담고서야 사슬을 풀었다.

“오케이. 이걸로 끝입니다.”

“으응. 고생했어 정용 씨이….”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구경하던 엘프리데가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죽은 카사스 따까리의 시체를 향해 주문을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블랙 메이든. 먹어치워 버려어.”

아니. 이제 보니 주문이라기보단, 진짜 살아있는 생물체에게 말을 거는 뉘앙스였다.

그리고 그녀의 명령에 따라 예의 시커먼 무정형의 여인이 나무 바닥 아래에서 모여들더니, 이내 널브러진 시신을 꿀렁꿀렁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오오오오….

검은 여인은 시체를 핏방울 하나 안 남기고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다.

시신의 흔적 하나조차 남기지 않은 검은 실루엣의 괴물. 이내 등장할 때처럼 바닥으로 흩어지며 말끔하게 사라진다.

‘이걸로… 시체가 조종당할 염려는 없다.’

이건 헥터 카사스가 또 시체 가지고 장난질 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적랑 쪽에는 케른에서 했던 것처럼 시신을 잘근잘근 분쇄시켜놓으라고 해놨다.

그제야 엘프리데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쪽은 완전히 끝났네에… 침묵 마법으은… 슬슬 해제해도 될까아…? 솔직히 좀 힘들어서어….”

“아.”

이제 보니 엘프리데는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더 창백해져 있었다. 온통 땀으로 젖었고 숨도 거칠게 쉬고 있다.

아무래도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광역 침묵 마법을 유지하는 게 꽤 힘에 부쳤나 보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저희가 끝났을 정도니 적랑님은 진작에 끝냈을 겁니다. 해제해도 돼요.”

“아하하. 정용 씨느은… 늑대 오빠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구나아….”

너도 그 양반한테 오체분시 당해봐라. 고평가 안 하곤 못 배길걸.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니까요.”

“흐헤헤. 그러엄… 늑대 오빠는 정마알… 대단한 사람이야아….”

엘프리데는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손을 하늘로 뻗어 시커먼 기운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다시 세상에 소리가 가득찼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가 가장 먼저 귀를 간질였다.

“아… 하아.”

그리고 엘프리데가 휘청이더니,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에 손을 뻗어 잡아줬다.

엘프리데는 슬며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기운 빠진 미소를 머금었다.

“미아안… 마력을 너무 쓴 거 같네에… 쉬며언… 나아질 거야아….”

역시. 너무 무리를 시킨 것 같다.

여기에 두고 가기엔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줄 시간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작은 몸을 번쩍 들쳐 업었다.

어어, 엘프리데의 입에서 당황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 정용 씨이…? 이러면 내가아… 조금 부끄러운데에….”

“시간이 없어서요. 좀 참아주십쇼.”

“으응… 알았어어.”

엘프리데는 잠깐 온몸을 꼼지락거리더니, 점점 숨을 고르게 쉬었다. 이내 내 등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그녀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 역시이… 좋은 냄새… 난다아….”

그리고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나는 고작 10분만에 엘프리데를 업어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킁카킁카… 정말 탐스러우운… 핥고 싶어지는 냄새애… 응하악…! 정용 씨이… 호, 혹시 조금만, 한 입만 핥아봐도 돼애…?”

이 미친년이 내 등을 어루만지며 개발광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온 나머지 전력질주로 달려갔다.

* * *

“… 그래. 왔군.”

“네.”

저택에 도착했다.

적랑을 비롯한 카르할라스, 세스나, 나이트레아, 그리고 루시까지. 짜투리 시스터즈가 우리를 맞아줬다.

“정용 군. 놀라울 정도로 자네 말대로 움직였다. 백은과 황금은… 거침없이 내게 무기를 겨누더군.”

“…… 뭐, 이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생했네. 그리고 고맙네.”

“고생은 적랑님이 하셨죠.”

적랑은 무거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들겨주는 한 편. 내가 투석기마냥 냅다 내팽개친 엘프리데를 슬쩍 쳐다봤다.

무서운 표정을 유지하던 적랑이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네 마법 덕분에 일처리가 아주 수월했다. 잘해줬다 엘프리데.”

“어어…?”

엘프리데가 멍청하게 탄성을 흘렸다. 자기가 적랑에게 칭찬받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하다.

이내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꿈틀거렸다.

“세, 세상에… 이거 꿈 아니지이… 나 기절할 것 같아아….”

바닥에 드러누운 채 발광하던 그녀는, 곧 진짜로 축 늘어지며 기절해 버렸다.

물론 진짜 기뻐서 기절한 건 아니고. 애초에 체력이 한계였던 모양이다.

지켜보던 나와 적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남은 건 야습을 대비하는 것뿐인가.”

“… 그렇게 되겠군요.”

“정용 군. 카사스의 사도들이 습격해오는 시간은 알고 있나?”

“그게… 아뇨. 모릅니다.”

고개를 저으면서도 낭패감에 혀를 찼다. 전생에서 습격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게 영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 이런 거에 집착할 때는 아니지. 나는 황급히 잡념을 물리고, 곧장 적랑에게 되물었다.

“적랑님. 그놈들이 루시… 불사의 마왕을 죽이지 않고 생포할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전생 때부터 나를 괴롭혔던 의문이었다.

왜 놈들은 루시를 곧장 죽이지 않았을까.

놈들이 수호자 계약에 대해 잘 모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변수를 없애기 위해 즉각 사살하는 게 맞지 않나?

“나 같아도 가능하다면 생포할 걸세. 불사의 마왕이 약체화된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의외로 적랑은 내 얘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다.

당연히 나는 고개를 모로 꺾으며 곧장 따지고 들었다.

“아니, 왜요?”

“죽여도 언젠가는 부활하잖나.”

“아.”

“놈들의 목적이 용사와 마왕 간 세력 균형을 맞추는 거라면. 변수가 많은 궁여지책보단, 생포하여 직접 관리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

변수를 줄인다.

죽음을 반복할 때마다 나도 항상 했던 행동이다.

‘결국, 놈들도 똑같구나.’

불사의 마왕을 통제하고. 나를 죽이고. 또 마녀사냥꾼을 죽인다. 세상의 균형을 맞춘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놈들은 지금 변수를 줄이고 있는 거다.

나는 괜히 이를 한 번 악물었다가, 적랑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다른 카발리어의 지원을 받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죠?”

“카발리어는 이래봬도 일국의 장군이자 정치인일세. 명분이 없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자리지. 증거라곤 자네의 예측뿐이니 움직여줄 턱이 없네.”

역시 그건 그렇겠지.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내가 직접 겪은 진실임에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지금의 적랑조차 사실 100퍼센트로 나를 믿지는 않는다. 속을 박박 긁는 답답함이 새삼 목까지 차올랐다.

“혹시 대회를… 무신제를 중단할 수는 없겠습니까?”

“중단이라.”

내 말에 적랑은 피식 웃었다. 지나가다 웃긴 소리라도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그 반응에 발끈한 나머지 조금 목소리를 높여 따졌다.

“일단 대회를 중단시키고, 습격한 놈들을 싹 조져서 뒤를 캔 다음! 그 다음에 대회를 재개해도 늦지 않을…!”

“미안하게 됐군. 나는 왕이 아닐뿐더러. 독재자는 더더욱 아닐세.”

적랑이 내 말을 잘라먹고 한 마딘 내뱉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멍청하게 탄성을 질렀다.

“그게 무슨….”

“무신제가 긴급 중단되려면 3분의 2 이상의 카발리어가 승인해야 하네. 자네는 존재조차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조직만을 근거로, 70인의 카발리어를 설득시킬 재간이 있나?”

“…….”

“내가 정치에는 재능이 없어. 정치하기 싫어서 지방 파견을 자진할 정도일세. 평소 행실이 개차반이니, 카발리어 측엔 내 편조차 많지 않다.”

그래. 당신 국빈회의 참여하는 꼬라지는 직접 봐서, 정치 못하는 건 안다.

적랑은 자조적으로 웃었고. 몸을 빳빳하게 굳힌 나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예?”

“자네 말대로 내 저택이 불바다가 된다면. 그리고… 나 정도 되는 카발리어가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아무리 카발리어들의 엉덩이가 무거워도 무신제를 중단할 수도 있지 않겠나.”

“… 그 말은….”

본인의 죽음을 각오한 말이다. 나는 부릅뜬 눈으로 적랑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적랑은 내 시선을 피해 하늘을 흘끔 쳐다봤다. 한 마디 툭, 던진다.

“한바탕 쏟아지겠군. 서로 무운이나 빌도록 하지. 예비 마녀사냥꾼.”

나는 또 언제 예비사냥꾼이 됐대.

적랑을 따라 하늘을 쳐다봤다. 정말이다. 전생과 달리, 이번 생에는 하늘이 심상치가 않았다. 빽빽하게 뒤덮인 구름 속에서 우르릉, 하고 번갯불이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 무운을 빕니다.”

나는 유유히 걸어가는 적랑의 등에 대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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