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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44화 (120/280)

144화

승부가 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합이 이어졌고. 스킬과 육탄전 세례가 쏟아졌다. 어두운 사위가 치달리는 스파크로 번쩍거리고, 연신 부딪치는 병장기는 불똥을 튕기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비명 같은 기합소리가 대나무 숲을 쩌렁쩌렁 울렸다.

“으아아아!”

“흐하하핫!”

마력검이 전방위에서 날아간다. 적랑의 모습이 사라진다.

적랑의 매서운 주먹이 측면에서 날아든다. 나는 흑익으로 공중을 향해 치솟는다.

따라붙는 적랑에게 수많은 가시촉수가 쏟아진다. 적랑은 포효를 내지르며 그것을 맨손으로 잡아 뜯었다.

틈을 노려 사슬을 쏟아냈다. 적랑은 기합만으로 그것들을 모두 흩어버렸다.

“스팅어!!”

콰아앙! 나는 기탄을 발사했지만. 적랑이 발사한 기탄과 맞붙어 흩어진다.

“과연 대단하구나! 보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흉내낸단 말인가!! 요한의 마음에 들 법도 하구나!!”

적랑은 싸우는 와중에도 눈을 부릅뜨며 나를 칭찬했다.

물론 그와 박터지게 싸우는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조롱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스킬 ‘기공술’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스킬 ‘기폭(氣爆)’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스킬 ‘아머 브레이크’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적랑과 맞붙을 때마다 높은 확률로 프로메테우스 스킬이 발동되면서 시야를 가렸다.

시야를 가리는 건 둘째 치고. ‘너 방금은 이걸로 쳐맞은 거다’라고 놀리는 것 같아서 존나게 짜증났다.

“카하하하!”

“으아아아!”

몇 차례 상처가 오갔다.

내 살이 찢어지면 적랑의 뼈가 부러졌고. 내 오른 다리가 박살나면 적랑의 왼팔이 잘려나갔다.

그는 곱게 살을 내주지 않았지만. 나 역시 곱게 목을 물리지 않는다.

“끄으으!”

하지만 그럴수록 적랑과 나의 차이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상처 입을수록 움직임이 둔해졌고.

적랑은 임계 직전의 야수들이 그러하듯, 점점 더 광포하게 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아수라. 저건 인간이 아니다.

지옥에서 갓 올라와 사람의 살을 탐하는 수라가 분명하다.

“크아아앗!”

결국 사력을 다한 내 마지막 일격이 적랑에게 작렬했지만. 그는 어깨와 등에 무수한 마력검을 꽂은 채, 뱃가죽으로 내 검격을 받아냈다.

푸직. 적랑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헤집혔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번들거렸다.

“흡…!”

최고의 찬스를 놓친 대가는, 곧 최악의 빈틈으로 이어졌다.

콰아앙! 내 안면을 향해 제로거리에서 발사된 파일벙커. 에테르로 가속된 감각 덕에 가까스로 검을 쳐올려 막아냈다. 그러나.

“아.”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들고 있던 베스타크가 저만치 튕겨나간 후였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흐.”

적랑의 짤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골통이 번쩍 울렸다.

콰아아앙! 그가 한 번 막혔던 주먹을 다시 장전하고 내 면상에 꽂아버린 것이다.

“크… 어, 헉…!”

나는 그 자리에 나자빠졌다. 밤하늘이 시야 가득 들어오길 잠시.

곧 피투성이가 된 적랑의 모습이 그런 내 위로 등장했다.

“…….”

부르트고 터져나간 내 가슴을 적랑이 우지직, 발로 밟아 짓이겼다.

철컥! 적랑은 이미 잘려나간 왼팔 대신, 이빨로 건틀릿의 장전기를 물어 파일벙커를 재장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오른팔의 어깨죽지에 갖다 댔다.

“내가 마녀사냥꾼인 건 알고 있어도 무방하다. 오히려 세간의 이목이 내게만 집중되길 바라고 떠벌리는 거니까.”

“…….”

“하지만 어떻게 나 이외의 마녀사냥꾼을 전부 알고 있었나. 그게 궁금하군.”

“…….”

내가 말해준 시공회귀는 그새 다른쪽 귀로 빠져나갔나 보군. X발. 단 한 순간도 그가 내 말을 믿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오기를 부려 입을 꽉 다물었고. 적랑은 잠깐의 침묵도 용서하지 않았다.

“우선 한 발.”

콰아앙! 지축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사정없이 파일벙커가 발사됐다. 오른팔이 갓 낚아올린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시야 한쪽으로 튕겨나갔다.

“아아아아악!!”

고통에 온몸을 몸부림치려 했지만. 적랑이 내 가슴을 단단히 짓밟고 있었기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철컥. 다시금 건틀릿의 장전기가 격철음을 낸다. 적랑은 부러진 이빨조각을 툿, 내뱉으며 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케른에서 우리가 토벌했던 놈들은 이미 빠짐없이 조사해봤다. 모두 명실상부한 불사교도가 맞았다.”

“…….”

“네놈은 배신한 불사교도냐? 아니면 이번 무신제에 숨어든 또 다른 조직의 일원인가?”

“…….”

“두 발.”

퍼어억! 침묵의 보답으로 또 다시 파일벙커가 작렬했고. 내 왼쪽 허벅지를 짓이겼다.

이를 질끈 악물었다. 격통으로 사지가 벌벌 떨려왔다.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끄으으윽!”

“내부분열인가? 아니면 네놈이 속한 조직은 원래부터 불사교와 적대관계에 있나? 무신제에 침입한 목적은 뭐고 내게 접근한 목적은 뭐냐. 왜 마녀사냥꾼을 노리는 게냐.”

철컹!

무수한 질문과 동시에 파일벙커가 다시 장전된다. 이번엔 오른쪽 다리를 겨누고 있었다.

옘병할. 우라질. 이젠 못 참겠다. 아파 죽겠다. 나는 뭐라도 대답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 발.”

콰아앙! 그는 망설임없이 파일벙커를 발사했다. 대답조차 필요 없다는 행색이었다.

묵직한 충격이 오른쪽 허벅지를 타고 등줄기를 후려친다.

“카하아악!”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놈이 바로… 무녀가 마지막으로 예언한 ‘인도하는 까마귀’냐?”

또. 또다.

나보고 뭔 개 족같은 까마귀란다.

X발 그게 대체 뭔데 이 십덕 새끼들아. 지들만 아는 얘기하면서 신났지 아주. 나는 요동치는 시야로 적랑을 간신히 올려다봤다.

“좀… 기다, 리라고…!”

후두둑. 적랑의 뺨을 타고 흐른 새빨간 핏방울이 내 얼굴로 줄줄 떨어진다.

내 피도 있었고, 그의 피도 있었다.

“X… 발…! 뭐, 얘기할… 틈이나… 주고, 질문을… 쿨럭!”

억울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하도 아픈 나머지 힘을 쥐어짜 중얼거렸다. 그러나 직후, 마지막 하나 남은 왼팔에 차가운 건틀릿이 닿았다.

으드득. 적랑은 이빨이 부러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장전기를 후퇴고정 한다.

“대답은 대가리와 아가리만 있으면 충분하지. 우선은 사지를 잘라줄 테니 그 동안 대답을 정리해라.”

“…….”

“네놈이 인도하는 까마귀일 가능성이 있으니 간단히 죽이진 않는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진 좀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군. 말했다시피 나는 거짓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런 X발 옘병.

죽여주지도 않는다니. 내게 있어 저렇게까지 절망적인 선언이 또 있을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득한 공포감에 나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 지랄 마.”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표독스럽게 치켜뜬 눈으로 적랑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아무 것도 못한 채. 그 X같은 악몽을 또 다시 맞을 순 없어.

적랑이 파일벙커를 발사하려 했다. 그의 시선이 내 팔뚝으로 이동하는 짧은 찰나. 나는 스킬을 영창했다.

아직 왼손의 에스파다를 꽉 쥐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세븐 소드 피어스!!”

투두두두! 쏜살 같이 날아가는 7개의 마력검이 적랑의 등 뒤를 매섭게 노리고 들어온다.

그러나 적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요한에 비하면 형편없다.”

콰아앙! 순간적으로 뒤를 돌며 건틀릿을 내지르는 적랑. 내가 뺏은 그 스킬. 스팅어였다.

무형의 충격파가 일어나며 날아오던 마력검 중 4개는 그 자리에서 폭발. 나머지 역시 궤도가 흩어져 버렸다.

“흐.”

하지만 괜찮다. 이런 뻔한 기습을 저 양반이 맞아줄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애초에 내가 노린 건 네 목숨이 아니야 적랑.

“… 난, 죽택.”

적랑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눈을 부릅떴고. 나가 떨어진 마력검들에 시선을 박았지만.

쇄애액! 마력검은 뒤틀린 궤도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내게 쏟아져 내렸다.

“이런…!”

적랑이 다급한 탄성을 내뱉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목에 마력검 세 개가 일제히 쑤셔 박혔다.

퍼버벅!

뭔가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엄습하는 어둠이 순식간에 내 입을 틀어막는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21일, 20시 58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수도 크로스페이드, 무신의 투기장]

“난 거짓말을, 아주 많이 싫어한다네.”

적랑이 나지막이 남긴 한 마디가 멍한 머리로 윙윙 울렸다.

와아아- 하는 우렁찬 함성소리가 그것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렸다.

“…….”

거의 반자동적으로 쪽지부터 준비했다. 망자의 함을 갱신하기 위해 파우치를 뒤적여 그것을 눈앞으로 꺼냈다.

그러자 옘병싸맞을. 망자의 함은 이미 보라색 맛을 무럭무럭 뿜어내고 있었다.

[데스카운트: 死(4)]

그렇게 쓰여 있었다. ‘데스카운트: 1’이라는 메모를 준비한 현생의 나는 무척 머쓱해졌다.

모 하드코어 닌자게임 캐치 프레이즈인줄 알았네. 노리고 한 거면 좀 웃겼다 전생의 박정용. 나는 망연자실하게 웃으며 글자를 대충 고쳐 넣었다.

[데스카운트: 5]

“괜찮은가 자네?”

“예? 아, 예. 뭐… 예. 아마도요. 네.”

적랑의 질문에 황급히 대답하며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적랑의 진회색 눈동자를 마주친 나는, 퍼뜩 시선을 돌렸다.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불같은 적개심과, 서늘한 공포가 동시에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 * *

그 날의 무신제 경기가 끝나고, 나는 곧장 사념 찾기에 돌입했다.

무신의 성전 쪽에서 사념이 느껴졌기에, 당연히 적랑의 저택에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을 깨고 사념은 생뚱맞은 장소에서 발견됐다.

“이런 데가 다 있었네….”

무신의 성전 가장 후미진 곳.

인조적인 느낌이 다분한 대나무 숲이 하나 있었는데. 랜턴은 그쪽을 향해 시커먼 빛을 무럭무럭 토해냈다. 나는 어둠에 잠긴 대나무 숲을 보며 침을 한 덩이 삼켰다.

“…….”

나는 슬금슬금 대나무 숲으로 들어왔다. 랜턴 빛을 따라 천천히 진입하자, 어느 순간 널찍한 광장이 하나 등장했다.

내 시신과 사념은 금세 찾을 수 있었지만. 상태가 좀 충격적이었다.

‘저 자국은….’

왼팔만 빼고 사방으로 토막나 있는 팔다리. 예리하게 잘린 목.

무슨 ‘사장님이 미쳤어요’ 점포정리 가게에 널려있는 부서진 마네킹인줄 알았다.

특히나 나를 굳게 만든 건 상처의 형태였다. 팔다리의 상흔이 너무 낯이 익다.

둥그런 형태로 무식하게 짓이겨버린 듯한 특유의 상처.

적랑의 건틀릿 외에 저런 상흔은 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힘을 0, 민첩을 0, 지능을 0 포인트 수복했다.]

[실전 스킬 - ‘스팅어’ LV. 20을 수복했다.]

[실전 스킬 - ‘기공술’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실전 스킬 - ‘기폭(氣爆)’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실전 스킬 - ‘아머 브레이크’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크으윽!”

나는 곧장 이자나미의 심장을 발동시켰다.

시체가 바스라져 공중으로 흩어지는 와중에, 나는 한동안 고통에 몸부림쳤고.

어느 순간 콰악! 지면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개X바아알!!”

나는 미친놈처럼 고함을 바락바락 질렀다.

전생의 적랑. 멍청한 자신. 개같은 카사스의 사도.

아니 그냥 지금 이 X같은 현실이 전부. 죄다. 싸그리.

“어쩌라는 거야! 개새끼들아아아!!”

깝깝해서 그랬다.

X발. 깝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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