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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43화 (119/280)

143화 오발탄

“갑자기 어딜 갔다 온 겐가. 세스나 양도 아주 놀랐다네.”

“…….”

“… 꼴은 또 왜 그런가.”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저택에 돌아오자, 입구에서부터 나를 반겨주는 이가 있었다.

적랑이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적랑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조가 희박한 목소리를 냈다.

적랑은 나를 슬쩍 돌아봤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썹을 슬쩍 틀어 올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정용 군. 사람 하나 찢어죽일 기세군.”

“… 아.”

나는 그제야 내가 너무 흥분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분한 적랑의 눈동자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 분노는 전생에서 봤던 화마처럼 소리없이, 하지만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져갈 뿐이다. 이젠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하다.

나는 히죽, 헥터 카사스가 지을 법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 * *

“흐음.”

적랑은 나와 함께 정원을 거닐다가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잠깐 걷자는 적랑의 제안에 따라 정원에 나왔고. 그와 함께 저택 안을 돌아다니며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낱낱이 털어놨다.

낱낱이. 시공회귀에 대한 것까지 전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말이다.

“상당히 흥미롭군.”

적랑은 어느 순간, 그런 말과 함께 저택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황급히 따라붙었다. 그러자 적랑은 걸음을 더욱 빨리 하며 무신의 성전을 가로질렀다.

“무신제에 잠입한 조직은 카사스의 사도. 그놈들이 불사교를 조종하고 있다. 그들이 나와 포티아 양을 노리고 있고, 내일 밤에 놈들이 이곳을 일제히 습격한다. 여기까지 맞나?”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면… 자네가 불사의 마왕의 계약자라서 그들에게 죽었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찰떡같은 요약에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고. 적랑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나는 이때다 싶어 떠벌떠벌 입을 놀렸다.

“수장의 이름은 헥터 카사스. 이 새끼를 죽여야 합니다. 살려둘 가치가 없습니다. 죽여버려야 합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잡아서 사지의 뼈를 발라버려야…!”

말을 하다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헛기침을 하고 입을 콱 다물었다.

슬쩍 적랑을 올려다봤지만. 그의 얼굴엔 이렇다 할 표정이 떠있지 않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고요한 감정만이 느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름 없는 기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군.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가세나. 그녀의 사택으로 안내하지.”

“아, 예!!”

다행이다. 내 말을 바로 알아듣고 행동으로 나서주는구나!

지끈거리던 머리가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적랑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우리는 구불구불한 무신의 성전 가도를 빠르게 질러나갔다.

“… 적랑님.”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여기… 이름 없는 기사의 저택 방향이 아닌데요.”

나는 이름 없는 기사… 포티아의 저택 위치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처음 여기를 들렀을 때 스쳐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적랑은 오히려 점점 그녀의 저택과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야.’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갈수록 주변의 인적은 뜸해지고 불빛도 적어졌다.

이윽고 사방이 대나무로 수북하게 막혀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되었다. 이런 울창한 대나무숲이 무신의 성전에 있었던가? 적어도 눈에 띄는 곳에는 없었던 게 확실하다.

바싹 마른 침 한 덩이가 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정용 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빽빽한 대나무로 둘러싸인 널찍한 광장이 나왔다. 적랑은 광장 한 가운데서 걸음을 멈추더니 내쪽을 돌아봤다.

“용사의 히어로 센스는 만능 같아 보여도 확연한 약점이 있네. 혹시 아나?”

솨아아-. 대나무다발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의 덥수룩한 하얀 머리칼이 흩날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베스타크 손잡이를 힘껏 쥐었다.

“… 뭡니까.”

“말의 진위(眞僞)는 파악해주지만 정확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하고. 공격에 동행하는 살기는 포착해주지만, 살기가 없으면 어떤 움직임도 포착할 수 없지.”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목석처럼 무표정한 적랑의 얼굴은 이미 내 코앞으로 치달아 있었다.

뒤늦게 반응했지만 늦었다.

“크욱!”

퍼어억!

오른쪽 어깨를 허용했다. 파육음이 울리며 근육이 찢어져 나간다. 아찔한 고통을 느끼길 잠시. 유령처럼 어둠 속을 일렁거리는 적랑의 신형을 간신히 포착했다.

‘뭐야…!’

나는 눈을 부릅뜨고, 몇 번이나 그의 모습을 재차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초인의 감각을 속이는 법. 자네가 케른에서 말한대로 정말 내 제자가 됐다면. 가장 먼저 가르칠 것이었네.”

적랑에게서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살기뿐인가. 그야말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아주 원초적인 존재감마저 교란시키고 있다.

“히어로 센스가 좀 더 만능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잠입 같은 비가시화 스킬과는 다르다.

오히려 육안으로는 확실히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을 의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 대가리는 지금도, 적랑이 있는 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라며 확신하고 있으니까.

“야차 같이 번들거리는 자네의 눈에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니. 야만적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잖나.”

정신차려 보니 귓가에 속삭이듯이 적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였다.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어조였다. 그래서 더욱 섬짓했다.

“크으!”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등 뒤로 검을 휘둘렀고. 적랑은 고개만 까딱 숙여 가볍게 피해냈다.

아니. 피한 게 아니다. 내 조준이 빗나간 거다. 망연자실함에 검을 놓칠 뻔했다.

‘위험…!’

공격이 빗나가자 당연히 엄청난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는 적랑의 건틀릿이 재빠르게 치달렸다.

퍼어억!

질펀한 파육음이 터졌다. 내 갈비뼈에 명중한 적랑의 건틀릿이 찌르르 울린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나는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크… 으아아!”

반대 손에 들고 있던 에스파다를 내리찍었다.

적랑의 팔을 향해 하얀 골검이 단두대처럼 날아간다. 적랑은 결국 파일벙커를 작동시키지 못한 채 주먹을 뗐고. 훌쩍 거리를 벌렸다.

“역시 내가 인정한 사내다. 이 정돈 해줘야지.”

적랑이 야수 같은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적랑의 왼쪽 다리에는 어느새 푸른 스파크를 튕기는 마력검이 두어 개 꽂혀 있었다.

내가 에스파다를 내려치며 영창한 스킬이 빈틈을 찌른 것이다.

“크… 으…!”

단 한 방. 그럼에도 으스러질 듯 욱신거리는 가슴팍을 움켜잡고, 나는 적랑을 노려봤다.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전생에서 들었던 적랑의 무감각한 한 마디가 떠오른다.

―자네와 겪었던 오늘 일들이 없었다면. 방금 전 침묵에 주먹으로 대답했을 지도 모르네.

‘이런… 우라질.’

너무 성급했다. 전생에 적랑이 해준 그 말을 조금 더 새겨들었어야 했다.

요즘 들어 내 풍둔 아가리술에 넘어가주는 사람이 많아서, 자만했던 걸지도 모른다.

‘너무 안일했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성급하게 나불대서는 안 됐다.

나를 완전히 믿지도 않는 그에게. 의심의 불씨가 될만한 말을, 내 쪽에서 먼저 씨부리다니.

아무리 절박했다곤 해도. 발전이 없구나 박정용.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더니, X발.

“너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거냐?”

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질질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 새끼는 믿었다고. 오히려 나한테 물어봤다고. 나보고 예언자냐 그러더라. X발.”

“…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근데 왜 당신들은 나를 안 믿어. 왜 내가 믿어줬으면 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도통 X발 믿어주질 않느냔 말이다. 개… X발. X같은 세상 같으니.”

참아왔던 넋두리를 줄줄 쏟아냈다.

그러자 가만히 쳐다보던 적랑이 차갑게 한 마디 쏘아붙인다.

“나는 지금도 자네가 진심이라고 믿네.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는 걸세.”

“… 뭐라고?”

“나는 알 수 있다. 자네가 보여준 그 눈빛. 거기에 담긴 숨막히는 살의는 절대 거짓말이 아니지. 나는 자네가 그 짧은 사이 돌변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이러는 걸세.”

“…….”

“내 듣고 싶은 게 아주 많아. 이젠 자네 안에 숨은 수라에 대고 직접 물어보겠네.”

쿠구구구구!

적랑의 분위기가 변했다. 방금까지가 존재도 희박한 유령 같았다면. 지금의 적랑은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오금이 바싹 저려오는 감각에 흠칫 발을 물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왜지?’

나는 진심으로 의문에 빠졌다.

물론 내 깡 스탯은 적랑보다 약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다. 성녀의 문장으로 강화된 내 스탯은, 적랑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을 터였다.

‘이 X발. 근데 대체 왜냐고!’

나는 왜 눈앞의 저 늙은이를 두려워하고 있냔 말이다.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히어로센스가 말하고 있다. 그는 뭔가 다르다. 상식 밖의 무언가다. 내가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열띤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개X까는 소리…!”

나는 본능을 부정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베스타크 손잡이를 고쳐쥐었다.

압도적인 살기와 패기. 공기마저 두려움에 떠는 듯한 엄청난 존재감과 함께, 적랑은 야수 같이 웃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마녀에 관한 건 모두 처단한다. 마녀사냥꾼 적랑의 이름에 걸고.”

익숙한 멘트가 들려온다.

나도 에테르를 있는대로 집어삼킨 뒤, 이를 악물고 지면을 박찼다.

폭풍 속으로 뛰어드는 생쥐가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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