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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42화 (118/280)

142화

“자네. 정말로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하는 겐가? 과거의 예언자들처럼?”

헥터의 변조된 목소리가 날아와 귓구멍에 박혔다. 농담기가 없는 진지한 질문이다.

나는 미친놈처럼 실실 쪼갰다.

“흐하하하.”

그렇잖아. 정작 내가 믿어줬으면 했던 이들은 내 말을 못 믿었는데. 나를 집요하게 죽이려고 따라붙는 새끼는 오히려 진실에 가장 근접했다.

이 X같은 상황이 웃기지 않으면. 뭐 어떤 게 웃기냐. X발.

“그래. 나는 14만가지 미래를 보고 왔다. 그 미래에서 네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나는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스르릉! 에스파다를 신속하게 뽑아 헥터에게 겨누었다.

“나한테 배때지를 헤집혀서 곱창 줄줄 내놓고, 생간을 으득으득 씹어 먹히더라.”

물론 그런 미래는 아직 겪은 적 없다. 이제부터 그 예언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암시장의 그레이에게 그랬듯이.

쿠구구구! 한계를 넘은 살기가 저절로 흘러나오며 ‘흉인 살포’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러나 기세에 아랑곳 않고 헥터는 코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떠벌릴 시간에 내 목을 쳤어야 했네. 그 찰나의 틈이라면 아무리 나라도 한 방에 갔을지도 모르지. 내가 육탄전엔 좀 약하거든.”

“오호. 지금은 다르다?”

“다르다네. 자네가 본격적으로 적의를 드러냈으니. 우리도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으니까.”

“… 우리?”

직후 투두두두! 무언가 나를 향해 사방에서 쏟아졌다.

나는 진작에 그것을 간파하고 허공으로 펄쩍 뛰어오른 상태였다. 털썩.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 위에 안착한 나는 사방을 휘 둘러봤다.

날아온 것은 작은 단도나 화살, 그리고 무수한 총알 세례였다.

“… 하. X발.”

기가 차서 웃음이 터졌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래. 이럴 거 같긴 했어.”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다.

술집 안의 누구 한 놈도 빠지지 않고, 모든 이가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런 뜨거운 군중의 살기를 실감하는 건 불사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나는 미미르의 눈을 발동해 찬찬히 그들을 살폈다.

[명칭: 세레나 가넷]

[별칭: 154493752번째 정식 용사, 카사스의 사도]

[명칭: 로만 미콜라스]

[별칭: 카사스의 사도]

그만. 더 볼 것도 없다. 나는 짜증 섞인 몸짓으로 상태창을 쫓아내 버렸다.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갔다. 오른손이 허전하게 허공을 헤집는다. 혀를 찼다. 베스타크의 빈자리가 유난히 뼈아프게 다가왔다.

“말했잖나. 나는 자네처럼 허술하게 살지 않네.”

그렇게 말하는 헥터 카사스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공에서 시커먼 기운을 흩뿌리며 은색 스태프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겨누었다.

무시무시한 검은 안개가 스태프 끄트머리로 몰려들었다. 나는 저것을 본 적이 있다.

‘흑마법.’

할센베르크에서 엘더리치와 데스비숍들이 사용하던 마법과 정확히 같은 기운이다. 케른에서 수호 형님이 해줬던 말들이 떠오른다.

흑마법은 마녀 디아나가 사용하던 마법. 그리고 디아나와 친했던 ‘헥터 카사스’라는 인물은, 그 마법을 쓸 줄 안다고도 했었다.

“자비를 베풀 겸 자네에게 제안하지.”

수다를 싫어하는 새끼는 그 사이 어디 갔는지, 헥터가 떠벌대기 시작했다.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를 내게 넘기게. 그리고 자네는 카사스의 사도 일원이 되어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게야.”

“… 하.”

다들 아주, 루시를 못 잡아 처먹어서 안달이다.

나는 실실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필요한 건 불사의 마왕 아니었냐? 나까지 챙겨주다니 고맙기도 하지.”

“당연한 조치일세. 죽일 게 아니면 평생을 감시해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자네가 마음에 든단 말이지. 무려 전설 속 한 구절의 인도하는 까마귀니까.”

“… 무슨 까마귀?”

나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저 말. 아까 분명, 소환된 마왕도 비슷한 소리를 지껄이지 않았어?

썩은 입술로 웅얼거리던 잔챙이 마왕의 목소리가 헥터의 말과 겹치는 한 편. 나는 곧 코웃음을 치며 망토를 변형시켰다.

‘페이탈 쏜즈.’

파바바박! 30가닥으로 나누어진 가시촉수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대부분 나를 둘러싼 카사스의 사도들을 향해 날아갔고. 그 중 일부는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콰지직! 몇 개는 놈들의 살갖을 그대로 파고들었고. 몇 개는 막혔으며. 천장을 향했던 가시들은 그대로 천장을 박살내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X까 X발아. 네 밑에 들어갈 바에는 평생 루시 종살이 한다.”

나는 헥터 카사스에게 가운데손가락을 힘차게 까딱거렸다.

헥터는 전혀 아쉽다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뒤틀린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손짓. 마녀의 기사도 항상 내게 그런 손짓을 했지. 대체 무슨 의미지?”

“그랬겠지. 너 아가리 놀리는 꼬라지 보면 수호 형님이 욕했을 법도 하다.”

“… 그놈 얘기는 조심해줬으면 좋겠군.”

“왜. 숨도 못 쉬게 쳐맞은 담당일진이었냐?”

나는 말하다 말고 흑익을 발동시켰다.

피피피핑! 헥터가 발사한 어둠의 광탄과, 사도들의 다양한 무기가 내가 있던 자리로 미친 듯이 쏟아진 것이다.

“… 크윽!”

치솟은 신형이 아까 뚫어놨던 구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검게 물든 밤하늘 속으로 탈출함과 동시에 신음이 터졌다.

배를 부여잡았다. 핏줄기가 찔끔거리며 새어 나왔다. 나의 도주까지 예측한 몇 개 공격들이 적중했다. 흑익의 방어도 따윈, 압도적 물량 앞에서 종잇장에 불과했다.

“절대 놓치지 마라! 인도하는 까마귀는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다급한 헥터 카사스의 일갈이 울렸다. 그러자 내가 빠져나온 구멍을 타고 카사스 따까리 몇 명이 기어올라온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 곧장 날개짓에 박차를 가했다.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했다. 거기에는 어디에서 봐도 뚜렷하게 보이는 거대한 경기장, 무신의 투기장이 있었다.

‘… 죽여버린다.’

지붕을 펄쩍펄쩍 넘나들며 내게 추격타를 날리는 카사스의 사도들.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끓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은 잠잠했다. 오히려 점점 선명해지는 감정 하나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전부. 한 새끼도 남김없이.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그건 이번 생이 아니다.

나에겐 현재 베스타크도 없었고. 놈들의 계략에 말려들어 포위된 시점에서 패배는 확정이다.

카사스의 사도들은 불사교보다 평균 레벨이 훨씬 높다. 기껏해야 잔챙이 몇 십 명 죽이고 생을 마감하겠지.

모두 몰살시킬 것이다. 일부만 죽이는 건 의미가 없다.

‘제나… 조금만, 기다려.’

이번 생은 글렀다. 다음 생에서, 모두 구하고 전부 죽여버리겠다.

“으… 으아아아!!”

비수에 다리를 격추당하고. 마력이 담긴 화살에 팔이 꿰뚫리고. 총구를 뛰쳐나온 마력탄에 흑익이 찢어져 나갔지만.

나는 결국 놈들의 추격을 피해 투기장에 숨어드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허억.”

오늘자 경기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른 상태였다. 나는 기억 속의 그 장소를 공중에 뜬 채로 빠르게 훑었다.

‘찾았다.’

내가 세 번이나 회귀했던 관객석의 명당. 카르할라스와 세스나, 그리고 루시까지.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무신제를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아앙! 나는 세 사람의 앞으로 착지했다. 사실상 추락에 가까웠다. 나는 바닥을 처절하게 구르다 그대로 엎어졌다.

‘이런. 몸이….’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그제야 내 몸상태를 살폈다.

걸레짝이 다 돼 있었다. 전신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셀 수 없이 뚫려 있었고. 거기서 나온 피로 온몸이 벌겋게 물들었다. 여기까지 날아온 게 용할 정도다.

‘빨리 갱신을…!’

점점 혼미해지는 정신으로 빠르게 메모를 휘갈겼다. 그것을 망자의 함에 넣었다. 손이 피범벅이라 메모에도 피가 묻어났다.

우우웅, 보라색 빛과 함께 진동하는 망자의 함을 보자, 안도한 나머지 몸에서 힘이 빠졌다.

“…… 용사?”

가장 먼저 나를 알아본 루시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녀에게 히죽 웃어주는 한 편. 기겁한 얼굴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세스나를 마지막 시야에 담았다.

“정용님! 왜, 왜 이러세요! 세상에 온몸에 피가…!”

“… 세스나….”

“안 돼요! 죽으면 안 돼요 정용님! 이렇게 죽어버리시면 전… 전…!”

세스나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나를 뒤흔드는 게 느껴졌다.

모든 소리가 먹먹하게 뭉개지는 가운데. 문득 내 볼을 타고 물기가 흘러내렸다.

누가 물을 뿌리나. 나는 가까스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나라 잃은 표정으로 오열하는 세스나를 목격했다.

“…….”

세스나가 우는 모습은 처음봤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끝내 내뱉지 못했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21일, 20시 58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수도 크로스페이드, 무신의 투기장]

“난 거짓말을, 아주 많이 싫어한다네.”

적랑이 나지막이 남긴 한 마디가 멍한 머리로 윙윙 울렸다.

와아아- 하는 우렁찬 함성소리가 그것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렸다.

“…….”

이내 나는 망자의 함 갱신에 생각이 미쳤고. 허겁지겁 메모를 하나 준비해 망자의 함을 꺼냈다.

그러자 짜잔? 어김없이 보랏빛을 예쁘게 발산하는 망자의 함!

… X발. 나는 잡생각할 기운도 없어진 나머지, 후딱 함을 열었다.

[데스카운트: 3]

그렇게 쓰여 있었다.

참고로 내가 방금 준비한 쪽지는 ‘데스카운트: 1’이었다.

[데스카운트: 死(4)]

가벼운 조크 삼아서 그렇게 메모를 수정했는데. 이 문구를 볼 일은 제발 없길 바랐다.

‘박정용은 네 번째 죽는다’라니. 무슨 고난도 닌자 게임 캐치 프레이즈도 아니고.

“… 음?”

메모를 교체하려고 자세히 보니, 함에 들어있던 메모는 한 개가 아니었다.

데스카운트 뒤에 포개져 있던 메모 하나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새빨간 핏자국과 지문으로 얼룩진 섬뜩한 메모였다.

[옆을 봐라.]

‘옆?’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관중석의 양옆을 살폈다. 금세 벌집이 된 채 뻗어있는 내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정용 군. 왜 그러나.”

적랑이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화들짝 적랑을 쳐다봤다. 이내 최대한 평정을 가장한 채, 천천히 내 시체로 다가갔다.

이제 보니 시체는 세스나의 자리 바로 옆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연적으로 랜턴을 만지작거리는 와중에 세스나의 관심이 내게 쏠렸다.

“정용님? 갑자기 뭐 하세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같이 가드려요?”

“뭔 소리냐. 내가 무슨 애새끼여?”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배실거리는 세스나.

쟤는 진짜 잘 웃는구나. 이젠 저 얼굴이 찡그려지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 될 정도야.

‘처음 만났을 땐 저렇게 잘 웃지 않았는데.’

대체 이쪽 세상의 무슨 요소가 그녀를 저렇게 만든 걸까. 나로선 도저히 모르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랜턴을 시신에 가져갔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힘을 0, 민첩을 0, 지능을 0 포인트 수복했다.]

[실전스킬 - ‘스팅어’ LV. 20을 수복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아… 윽… 으…!”

나는 억누른 신음을 흘렸고.그러는 와중에도 몸이 먼저 흑익을 발동시켰다. 푸화악! 등에서 솟아난 날개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 어? 정용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세스나를 비롯한 일행이 놀라서 뭐라 소리쳤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곧장 거주지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았다.

‘지금… 지금이면 아직!’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거인의 발자취’ 여관에 도착했다.

노인장과 실랑이 벌일 시간도 아깝다. 나는 곧바로 제나의 방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

콰지직! 날아가던 속도 덕분에 나무 창틀이 속절없이 부서졌다. 머리가 좀 얼얼했지만 문제는 없다. 나는 황급히 방의 상태를 살폈고.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여전히 피칠갑이 된 방 안에, 산산조각난 제나의 시신을 눈에 담아야 했다.

“아.”

…….

….

… 이걸로 확정되었다.

제나의 죽음은… 내가 몇 번을 죽어도 돌이킬 수 없다.

“으. 으욱….”

나는 흘러나오는 신음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지옥’이라는 단어를 너무 가볍게 사용했던 게 아닐까.

나는 오늘 처음으로 지옥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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