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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31화 (107/280)

131화 그게 뭔데 십덕들아

난데없는 카사스의 습격을 격퇴한 뒤. 적랑이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적랑의 저택이었다.

단박에 대문을 열고 들어간 적랑이 망설임 없이 안채의 가장 넓은 방으로 진입했다.

“… 왔군. 적랑.”

“오호. 아까 회의에 참여했던 청년도 같이 있네?”

방 안의 원탁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한 켠에는 아까 회의에서 봤던 황금의 기사와 백은의 기사.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돼 있다.

‘저 사람은…?’

허리춤과 등, 팔다리까지. 각양각색의 검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청회색 머리칼의 선이 굵은 남자.

적랑과 똑같은 예장복을 입은 걸 보아하니 카발리어 같다.

“늑대 오빠가… 구해줘서 고맙대애… 흐흐… 으히히… 이제 결혼도 머지 않았어어….”

그리고 적랑이 뚝배기 깬다고 벼르고 있던 엘프리데도 버젓이 앉아 있다.

혼자 히죽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좀 무섭다. 최대한 신경쓰지 말기로 했다.

“…….”

그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회의에서 입 한 번 뻥긋도 안한 운터란트의 귀빈… 나이트레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적랑님. 이게 대체?”

나는 묻는 눈빛을 강렬하게 쏘아 보냈다.

하지만 적랑은 대답해주는 대신 방 중앙의 원탁으로 걸어가 대충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툭. 한 마디 내뱉는다.

“이름 없는 기사… 포티아 양이 죽었다.”

장내에 모든 소음이 일순 끊어졌다. 시간이 멈췄다 싶을 정도로 적막이 흘렀다.

시간을 다시 움직인 것은, 어조가 희박한 적랑의 목소리였다.

“방금 오늘자 예선전의 최종결과를 딸에게 전해 들었다. 마녀사냥꾼을 노리고 무신제에 침입했다던 자객들이 행한 짓이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따각, 따각. 백은의 기사… 에오스 폴이 원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연신 울려퍼졌다.

이내 그는 허파에 바람 빠지는 탄성을 흘렸다.

“… 허어. 그렇다는 증거는?”

“나 역시 그자에게 방금 습격을 받았다.”

“…….”

“배를 얕게 찔렸지만, 엘프리데와 함께 격퇴했다. 놈의 신병을 확보했으나. 방심한 틈에 독을 물고 자살했지.”

“그, 그렇군.”

“이후에 2차 습격을 받았지만, 여기 정용 군이 함께 있어서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사살했다.”

무덤덤하게 이어진 적랑의 말. 백은은 시선을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히도 비통한 표정이었다.

“더 질문 있나.”

적랑이 짧은 말과 함께 흘깃 쳐다봤지만. 백은은 침묵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적랑은 원탁의 어느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번에도 툭 내뱉었다.

“우선 죽은 동포를 위해 잠시 묵념한다.”

하나, 둘, 셋.

약 3초. 짧은 시간 동안 모두가 눈을 감았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잠시 흐른다.

그 광경을 어리둥절하게 지켜보고 있는 내게, 적랑의 한 마디가 쑤셔 박혔다.

“이제 마녀사냥꾼 긴급회의를 시작하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해졌다.

이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숨을 삼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카사스의 사도들이 노리고 있는 문제의 집단. 마녀사냥꾼들이라는 소리다.

나는 모여 있는 여섯 명의 면면을 둘러보다가, 이내 목소리를 좀 깔았다.

“… 적랑님.”

이제 휘둘리는 것도 좀 작작 해야지. 적랑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콰앙. 원탁을 후려치며 진중하게 물었다.

“마녀사냥꾼. 그거 말인데요. 대체 뭡니까?”

카르할라스도 그랬지. 마녀사냥꾼에 대해 들으려면 적랑한테 직접 물어야 한다고. 니들끼리 신나서 재잘대지 말고 나도 좀 알려달라고.

노빠꾸 노퓨쳐. 단도직입니다. 수틀리면 한 대 맞을 각오까지 하고 당돌하게 물어봤다.

“아. 그렇군. 자네에게 설명한 적이 없었던가?”

눈을 끔벅거리던 적랑은 의외로 대수롭잖게 입을 열었다.

“마녀 디아나를 사냥하려는 소규모 정예 집단일세.”

“… ? 어, 아… 예에.”

뭐지. 무슨 비밀결사 같길래 비싸게 굴 줄 알았더니. 술술 불어주네.

하긴 평소에도 자기 입으로 떠벌떠벌 밝히고 다녔으니까. 요원 구성은 적랑 외엔 극비라도, 조직 자체는 비밀이 아니라는 건가.

국정원이야 X발?

“산발적인 마왕 토벌을 뛰어넘어서. 원흉인 마녀를 죽여 마왕의 출현 자체를 멈추려는 자들. 그게 우리들일세.”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풀지 않자 적랑이 재차 자세하게 설명해줬고. 나는 그제야 모인 면면들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봤다.

소속을 듣고 난 뒤라 그런가. 그들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내가 상황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한 편. 엘프리데가 번쩍 손을 든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녀는 서두를 뗐다.

“근데 대책회의를 한다 해도오… 사, 상대를 모르는 데에… 뭘 대비하면 좋을까 오빠아…?”

적랑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놈들의 정체를 알아낼 방안도 모색할 예정이다.”

“역시이. 늑대 오빠는 계획이 다 있구나아… 하아앙… 지적인 모습도 너무 멋져어…!”

엘프리데가 황홀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 타이밍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이름 모를 카발리어가 손을 슬쩍 들었다.

적랑은 잘 됐다는 양 퍼뜩 쳐다봤다.

“말해봐라. 검림.”

검림. 검림의 기사.

본 기억이 있다. 적랑의 저택을 처음 찾으러 갈 때 지나친 명패에서 봤다.

‘본명은 분명…’

그래. 가트렉 로난.

요즘 사람 이름 기억할 일이 많아서 뇌가 단련된 건지, 확실히 기억한다.

“적랑. 들어가기 앞서, 저 남자는 누구요.”

철그럭. 검림이 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매달린 검들이 부딪치며 금속음을 냈다.

그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머쓱하게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데헷.”

그러게요. 나는 어디고, 여긴 누구일까요.

다들 심각하고 바빠 보이시는데. 왜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여기에 앉혔을까요. 뒷담화 같이 할 사람이 또 필요했나?

나도 궁금해진 나머지 적랑을 뚫어지게 쳐다봤고. 적랑은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딸아이의 독단으로 무신제에 참가한 내 손님이다. 마녀사냥꾼 일원으로 오해 받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신변보호를 위해 데려왔다.”

“… 아무리 그렇다지만. 나는 리더인 당신과 달리 마녀사냥꾼 소속을 숨기고 있소. 이런 식으로 밝혀지는 것은 좀 예상외인데.”

그렇게 반박하는 검림의 얼굴엔 짙은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을 읽어냈는지, 적랑은 히죽 웃었다. 반대로 그의 얼굴엔 단단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다.

“그는 습격자들의 정체를 해명해줄 열쇠다.”

“열쇠…?”

검림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영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는데, 적랑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빈회의에 없었으니 모를 법도 하지. 오늘 그의 발언은 우리 마녀사냥꾼에게 큰 의미를 지닌 한 발자국이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술렁거렸다. 적랑은 연신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특유의 야성적인 미소가 그 입가에 어렸다.

“마녀사냥꾼을 압박해오던 안개 속의 조직. 그 실체에 대해 정용 군이 증언했다.”

“그 남자가 말했던 ‘카사스의 사도’ 말인가?”

적랑의 말에 대꾸한 것은 푸른 단발의 이지적인 여인. 운터란트의 귀빈 나이트레아였다.

와우. 오늘 하루종일 회의를 같이 했음에도 목소리는 지금 처음 들어봤다. 생긴 것 그대로 쌀쌀맞은 느낌이 묻어나는 말투와 목소리다.

“문제 있나?”

적랑이 나이트레아의 물음에 눈썹을 치켜들었고. 나이트레아는 내쪽을 슬며시 노려보며 곧장 말을 이었다.

“있지. 증언이 진실인가에 대한 문제. 자잘한 건 차치해도 그건 확실히 해야겠는데.”

그러자 아까 국빈회의에 참여했던 백은, 황금, 그리고 엘프리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회의 때와 대충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 술 더 떠 엘프리데가 말을 덧붙였다.

“늑대 오빠아… 흑마법으론 세계 정상급인 나라도오… 그 수많은 불사교도를 한 번에 조종하는 흑마법 같은 거언… 무리라구….”

“실전(失傳)된 군체제어 흑마법이라면 가능하잖나.”

적랑이 곧바로 치고 들어오자, 엘프리데는 몸을 움츠리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 얼굴은 왜 붉히는데.

“그, 그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마안… 실전 마법이 괜히 실전된 마법이 아니잖아아. 무슨 수로 복원했다는 거야아….”

흑마법의 권위자가 그런 말을 하니, 내가 한층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분위기로 느껴졌다.

하지만 적랑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한 확신을 담아 나이트레아에게 시선을 겨눴다.

“불사교가 날뛰었던 케른의 현장엔 나도 있었다. 정용 군의 증언대로, 실전된 흑마법의 산물로 보이는 키메라 생명체가 다수 있었고. 불사교의 비정상적인 결속력 역시 흑마법이면 설명이 된다.”

“어… 그럴 수가아….”

“반대로 묻지. 그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그, 그건 그렇네에… 논리적인 늑대 오빠도 너무 멋져어….”

저건 불사교와 직접 싸워본 내가 격하게 공감했다.

입 한 번 뻥긋 않고 행해지는 칼 같은 단체행동. 훈련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이쪽 세계관에 신경삭으로 이어진 외계종족이 없는 이상. 무슨 사술을 부린 건 틀림이 없다.

“몇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불사교의 행보에 대해서도, 타 조직의 개입을 가정하면 맞아떨어진다. 우리를 방해하는 이유 또한 설명되지. 우리는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조직이니까.”

“그렇군….”

나이트레아는 파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고민하다가. 이내 슬쩍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았어. 일단은 납득하지.”

“그 정도면 됐다. 덜미는 지금부터 잡을 거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 적랑은, 이내 좌중을 둘러보며 장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나는 카사스의 사도라는 조직이 실존하며, 나를 습격한 자 또한 그 조직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삼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오해가 없도록.”

“…….”

“포티아를 죽인 자이자, 나를 습격한 카사스의 사도의 정보를 말해주겠다.”

반박은 나오지 않았다.

적랑이 품을 뒤져 종이뭉치를 꺼냈고. 그것을 살펴보며 곧장 말을 이었다.

“가명은 셀피 헬만. 등급심사는 달인급을 간신히 받았지만, 실제 무력은 부딪쳐본 결과 300 레벨 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된다. 붉은 단발에 녹색 눈. 나와 비슷한 정도의 나이에, 키와 덩치는 아주 컸다.”

거기까지 말한 적랑이 종이에서 눈을 떼고, 좌중을 둘러봤다.

“짐작 가는 이가 있나?”

“……”

“……”

하지만 회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짐작 가는 이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적랑도 사실상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것인지, 짤막한 한숨을 흘렸다.

“크로스페이드 뒷골목 최고의 정보상에도 쓸만한 정보는 없더군. 불사교조차도 신병을 확보하면 신원은 파악됐건만. 이렇게까지 안개 속을 헤집는 느낌은 처음이다.”

“…….”

“…….”

다른 이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다만 격렬하게 동의한다는 분위기만은 확실히 감돌았다.

나는 근질근질한 입을 놀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적랑님. 습격했다는 놈의 시체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모두의 이목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다.

그러다 뚫어지겠다 야. 이글거리는 눈빛세례에 식겁한 나머지 한 발짝 뒤로 물렸고. 적랑이 모두를 대신해 내게 물어왔다.

“시체라면… 셀피 헬만의 시신 말인가?”

“네. 그거요.”

“일단 임시로 내 사택 창고에 안치중이다만… 왜 그런 건 묻는 겐가?”

“그 새끼 본명 정도는 제가 알아낼 수 있거든요.”

내 말에 다시금 회장은 압도적인 침묵에 휩싸였다.

제발 내 행동 하나하나에 과민반응하고 그러지 마. 어떻게 리액션 해줘야 할지 모르겠잖아.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자니. 적랑이 가까스로 목소리를 뽑아냈다.

“… 정말인가?”

“거짓말해서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습니까 제가.”

“그, 그럼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시신을 찾으러 가지!”

적랑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굉장히 고무적인 표정이 떠 있었다. 습격자들의 정체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 정말 기쁜 모양이다.

나는 그쯤에서 슬쩍,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근데 저도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순간 적랑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부탁?”

“네. 별 건 아니고, 잠깐 무신제 경기장에 좀 들어가고 싶어서요.”

적랑의 밝았던 얼굴에 슬쩍 음영이 졌다.

“흐음. 시합 목적 외에 경기장 진입은 도전자라도 엄중히 금지되어 있네만….”

“적랑님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계셔도 됩니다. 그냥 잠깐만 갔다 오면 되거든요.”

“흠….”

적랑이 연신 탄성을 내뱉는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의심보다는… 그래. 의문이 깃들어있었다. 상관은 없는데, 의도가 가늠이 안 된다 이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를 안심시킬만한 멘트를 주워섬겼다.

“카사스의 사도들 꼬리를 잡는 데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좋다. 그렇게 하지.”

그걸 말하자마자 칼 같은 허락이 떨어졌다. 역시 적랑. 결정도 시원시원하군.

이제야 나도 좀 숨이 튼다. 잔류사념을 수복하고 나면 뭐라도 더 알 수 있을 테니까.

‘최소한 나를 죽인 놈이 누군지는 알게 되겠지.’

나는 비틀린 웃음을 잠깐 띄웠다가. 적랑의 시선이 닿을세라 황급히 지웠다.

그리고 앞장서서 회의장을 나갔다.

“가시죠.”

“알겠네.”

적랑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내 뒤를 부리나케 쫓아온다.

우리는 그렇게 적랑의 방을 나와 부지 구석의 창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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