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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23화 (99/280)

123화

“부대 차렷! 기사님들께 경례!!”

중대장 훈련병… 아니. 대표 도전자의 구령에 따라 무신제 도전자들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도열한 도전자들의 앞. 단상 위에 일렬로 정렬한 카발리어들도 그에 따라 일제히 가슴에 손을 얹으며 경례한다.

동작이 절도있고, 50명에 달하는 카발리어들의 동작이 딱딱 맞아서 멋이 폭발한다.

“세상 참… 좋네.”

그리고 그 장면은, 비행요새 레비아탄에서 내려온 거대한 수정 거울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이야 미친. 해상도가 무슨 지구의 전광판보다 좋은 거 같은데.’

용사들의 기술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더니. 어디까지 흡수했길래 저런 오버 테크놀로지가 나오냐? 하긴 세스나처럼 인조인간을 만드는 기술력의 이세계도 있으니, 잘 쓰까면 못할 건 없겠다.

공중에 떠있는 중계용 거울을 볼수록 운터란트라는 나라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 찾았다.’

그 와중에, 나는 개성이 뚝뚝 넘쳐흐르는 카발리어들의 면면을 훑었다.

원래 총원이 100명인 카발리어 중, 경계 업무를 위해 불참한 게 절반. 그래서 열병식에 참여한 건 나머지 50명 정도다. 그 중엔 내가 아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적랑이었다.

―다음 순서는 운터란트의 대공 전투편대와, 용제국 코스크 기룡대의 공중곡예가 있겠습니다!

그 뒤로 나온 건 전장 10미터가 넘는 비룡을 탄, 용의 뿔과 꼬리를 단 여기사들. 그리고 강화외골격과 비행수트를 착용한 운터란트의 병사들이 어우러진 곡예비행 쇼였다.

아찔하고 웅장한 곡예로 사람들의 환호가 절정에 달해가는 순간. 비행 편대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단상 위로 두 사람이 올라왔다.

‘저건….’

나이를 지긋하게 먹어 백발 성성한 할배가 하나. 그리고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묘령의 여인이 하나.

두 사람 다 치렁치렁한 흑백의 로브와 특색있는 고깔모자를 입었는데. 복식을 보고 나는 그들의 정체를 직감했다.

변경백에게 들은 적이 있다. 저 둘은 미텔란트의 귀족들이다.

―미텔란트의 칠마존 베르켈 경과, 그 제자인 칠마존 베라 양의 마법 곡예입니다!

웬걸. 귀족 정도가 아니라 칠마존이었군. 혀를 내둘렀다.

두 사람의 소개가 끝난 직후. 그들의 손에 찬란한 백색광이 모여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하늘로 뻗자 빛으로 만든 새들이 수백, 수천 가지로 뻗어나갔다.

삐이이익―!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새들은 눈부신 빛을 흩날리며 유려하게 활공했다. 온 경기장의 공기가 빛의 새들로 번쩍거리며 빛을 뿜는다.

장관이다. 이것만큼은 나도 감탄사를 참기 힘들었다.

“이야. 멋있긴 하네요.”

“그렇지? 내 말했잖나. 베르켈 경의 천익(千翼)은 언제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니까!”

내 옆에 서있던 프레들 아저씨가 신나가지고 목청을 높였다. 본새가 생일선물로 닌텐도64 받은 외국 꼬맹이 같다.

댁네 나라 사람도 아닌데 뭘 그리 자랑스러워 하슈. 과몰입 장인일세.

“이것으로 무신제의 시작을 엄숙히 선포한다!”

마법 쇼가 끝난 뒤론 가벼운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단상 위 카발리어 중 가장 왼쪽의 떡대 남자가 외쳤다.

“본선까지 진출한 이에겐 차등없이 금화 5천 냥을, 그리고 그 중 상위 100인에겐 추가적으로 5천 냥을 지급할 것이다!”

그 한마디에 도전자들에게서 흐르는 긴장감이 순식간에 2배는 뛴 듯했다.

하기사 금화 5천 냥이면 거의 4인가구 10년치 생활비인데, 좀 탐날만 하지. 프레들도 눈에서 광선이 나갈 기세다.

“또한 최상위 5인에겐 세계 각지에서 입수한 진귀한 보구를! 그리고 1위에겐 용제국에서 지원받은 고대의 유물, 멸룡검(滅龍劍)을 하사한다!”

스르릉. 남자는 단상 가운데 곱게 놓여있던 검 하나를 들어올렸다.

검날이 시리도록 백색으로 빛나고, 가드 부분에 시커먼 용의 형상이 새겨진 장검. 딱 봐도 명품이라는 게 느껴지는 검이었다.

프레들의 입에서 얼빠진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오오… 저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멸룡검….”

그리고 그 순간. 숨을 삼킨 단상의 카발리어가 한껏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런 확성기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쩌렁쩌렁 경기장을 울리는 기백 충만한 목소리였다.

“마지막 거인의 유지를 받들어, 무신의 성전을 개시하겠다!!”

와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전자들은 물론이고, 관중들도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땅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실감했다.

무신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 *

112번 도전자, 피에 젖은 달그림자.

그게 지금 내 타이틀이었다.

“3번 경기장 시합 종료! 다음 제비 뽑아주십시오!”

“7221번 도전자와 1012번 도전자님! 3번 경기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회 진행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총 50개의 사각형 투기장에서 연신 사람들이 들락날락한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둔중한 소음, 그리고 전투의 함성이 끊임없이 울렸다.

“선정된 도전자님들! 빠르게 입장합니다!”

“도전자님들, 밀지 않습니다! 의료반 투입해주십시오!”

진행요원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사제들로 추정되는 흰 로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고함과 분주한 발소리가 경기장의 비명과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에 묻혀 뭉개진다.

“22번 경기장! 95번 도전자가 즉사했습니다!”

“들 것 가져와!”

“사체처리반 투입!”

사망자도 부지기수다.

무신제는 본인이 손에 익은 실전용 무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거나 내장이 터져나와, 경기장이 피바다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 낭자하는 유혈을 보고도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집단광기에 좀 움츠리게 된다.

“흐음.”

나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쉴 새 없이 팽팽 돌아가는 전광판(?)의 대진표와, 선수 무작위 선발표를 가만히 쳐다봤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하긴,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500명으로 줄이는 예선전이다.

그걸 3일 안에 전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이 대회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해도, 이 페이스가 아니면 절대 시간을 맞추지 못하겠지.

나는 실시간으로 각 경기장의 승패가 표기되는 전광판을 가만히 쳐다봤다. 뭔가 보고 있으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전투시간 3분이라….’

제한시간도 빠듯하기 그지없다. 그 안에 결착이 안 나면, 그 뒤로는 데스매치로 들어가 유효타를 한 번이라도 먼저 때리는 쪽이 승리로 친다고 한다.

이렇게 숨쉴 틈도 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해내는 것도 놀랍다.

전통과 근―본이 있는 대축제라 산전수전을 거친 건가. 개최측도 상당히 체계가 잡혀있는 게 느껴진다.

“112번, 그리고 8155번 도전자님! 제49경기장으로 입장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순간. 드디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경기장을 향해 걸어나갔다.

뒤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던 프레들 아저씨가 퍼뜩 손을 흔들었다.

“힘내게 바크! 보, 본선전에서 꼭 보자구!!”

“예. 아저씨도 건투하십쇼.”

나는 피식 웃어주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천천히 경기장을 향해 걸어갔다.

동시에 준비해뒀던 작업을 수행했다.

‘진화의 흑익 변형.’

스르륵. 망토의 깃 쪽이 천천히 꿈틀거린다.

변형된 흑익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내 턱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내 망토의 변형이 완료되고 형태가 고정되자, 눈 아래를 완전히 뒤덮는 시커먼 복면이 그곳에 생겨났다.

“여기에 후드까지 쓰면….”

눈을 제외한 모든 이목구비가 가려졌다. 피에 젖은 달그림자의 탄생이다.

나는 스스로 만족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고. 성큼성큼 지시된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내 반대편에서도 대전 상대가 어슬렁어슬렁 올라오고 있었다.

“청 측, 8155번 도전자! 한 수안구한!”

심판이 내 반대편에서 올라온 남자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친다.

한 수한구한? 이름 참 특이하군. 나는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엥?”

곧장 눈을 부릅떴다. 슬쩍 열린 입에서는 미묘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거….’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익숙한 이목구비의 황인종. 외국인이면 몰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면 단박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김치맨의 기운.

한국인이다. 저 새끼 한국인이 분명했다.

“한성광이라니까. 발음 진짜 오지게 못 알아들어 처먹네….”

머리를 긁적이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데… 너도 이름 때문에 고생하는구나. 마검 누구씨랑 똑같이 한 씨라 그런가 더욱 측은함이 몰려온다.

나는 그의 외모를 유심히 쳐다보던 중,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닫고 탄성을 질렀다.

‘아니. 쟤, 걔잖아…?’

왠지 얼굴이 낯이 익다 싶었는데. 쟤 시험의 장막에서 봤던 걔다.

최후의 16인 중 나 외의 또 다른 한국인. 세 명의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던 그놈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제라 그런가. 이런 인연도 다 있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명칭: 한성광]

[별칭: 163404885번째 정식 용사. 검은머리 현상금 사냥꾼. 지존]

[LV. 163]

[체력: 1500/1500 마력: 560/560 신체상태: 정상]

[힘: 251 민첩: 149 지능: 33 히어로 센스: 7]

혹시나 가명인가 해서 미미르의 눈으로 정보를 확인해봤지만. 이름은 한성광이 맞다.

확실히 기억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커넥션을 해봐야겠다.

‘다른 16인 멤버들도 더 만날 수 있으려나.’

그리 생각하니 앞으로 있을 경기가 좀 기대된다. 타의로 참가한 대회지만, 역시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복면 안에서 히죽 웃었다.

그 순간, 심판이 한성광 소개를 마치고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홍 측, 112번 도전자! 피에 젖은 달그림… 크흡.”

그런데 소개하다 말고 제 혼자 빵 터졌다.

“피… 큽. 에 저흐즌… 크흡… 달… 그림자… 으흐큭…!”

필사적으로 참긴 하는데, 입꼬리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한동안 웃음을 참느라 끅끅거린다고 진행이 멈춰버릴 정도다.

49경기장이 관중석과 가깝다 보니, 관중들 술렁이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세상에 X바. 가명이 피에 젖은 달그림자야?”

“내가 쟤랑 아는 사이였으면 30년은 저걸로 놀렸다.”

“안 쪽팔리나…? 푸훗.”

대부분 패널에 뜬 내 이름에 관심이 지대했다.

뭘 실실 빠개. 피에 젖은 달그림자가 우스워? 네놈들의 그림자도 피로 물.들.여.줄.까?

나는 험악한 눈초리로 심판을 째려봤고. 그제야 진지하게 표정을 굳힌 그는, 엄숙한 목소리로 외쳤다.

“흐흠! 49경기장, 개전!”

그 외침을 기점으로 거짓말 같이 나와 한성광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차아앙! 한성광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았다. 검날의 길이만도 내 키보다 거대해 보이는 대태도. 참마도에 가까운 거병이다.

그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시작부터 웬 중2병 미친놈이 나와주다니 운도 좋아. 한 판 부전승인가? 크큭.”

생각보다 터프한 무기가 등장해서 나는 좀 놀라고 있었다.

몸이 굳은 나를 보더니, 한성광이 더욱 기세가 높아졌다. 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높였다.

“무기 뽑아라! 후딱 끝내자고!”

그래 말 잘했다. 고작 3분이니 후딱 끝내긴 해야지.

옆에서 모래시계를 흘끔거리는 심판을 쳐다본 나는, 곧장 준비해온 무기를 꺼내들었다.

나를 쳐다보던 한성광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 음?”

베스타크도 에스파다도 없다. 적랑의 집에 두고 왔다. 내가 이번에 쓸 무기는… 바로 이거다.

나는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둔 식사용 숟가락 하나를 빼들었고. 한성광의 면전에 그것을 겨누었다.

“뭐냐 그건.”

한성광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해줬다.

“점심 먹을 때 쓴 수저.”

“이 새끼가… 장난하냐?! 무기 꺼내! 뒤지고 싶어?!”

훗.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서 비웃음을 흘렸다.

바로 지금이다. 어젯밤 야심차게 준비해 온 첫 번째 도발대사 장전, 발사.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쓸 필요 있나.”

나는 일부러 한국어로 그렇게 말해줬다.

말을 알아들은 건 분명하지만… 한국어였다는 건 깨닫지 못한 듯했다. 한성광의 반응이 놀람이 아니라 격렬한 분노인 것이 증거다.

“이 개새끼! 뒤지고 나서도 그럴 수 있나 보자!”

한성광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바득 갈더니. 엄청난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

좋아. 놀라울 정도로 내 상상대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역수로 쥐고, 곧장 스킬을 시전했다.

‘흉인 살포.’

쿠구구! 나를 중심으로 무형의 섬뜩한 기운이 경기장을 치달렸다. 그것에 정면으로 얻어맞은 한성광이 순간 몸을 움찔거린다.

기세가 확연히 꺾였다. 꼴에 레벨이 150은 넘어서 그런가, 완전히 멈추지는 못하는군.

‘끝났다.’

하지만 찰나의 움직임 봉쇄.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놈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숨을 들이키고. 지면을 박찼다.

이럴 줄 알고 각종 상황에 맞는 대사들을 어제 연습해놨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느려.”

대사를 쳤을 땐, 이미 내 신형이 한성광의 등 뒤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한성광의 몸에 주르륵, 대각선으로 혈선이 그어졌다.

“어… 헉?”

푸화악! 핏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한성광은 부릅뜬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쳐다보다가. 이내 경기장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마… 말도… 안….”

한성광은 엑스트라답게 엑스트라틱한 대사를 치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200에 달하는 레벨차란 이런 것이다. 일부러 얕게 베었으니 아마 죽진 않을 거다.

나는 엎어진 채 꿈틀거리는 한성광을 보며 수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

“…….”

적막이 강림했다.

심판은 물론이고, 이쪽을 주시하던 주변의 관중들까지도 압도적인 침묵을 함부로 깨부수지 못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어제 세 시간 동안 밤 새가며 선별한 마무리 대사 장전. 발사.

“손속에 자비는 뒀다.”

그리고 펄럭, 흑익의 망토자락을 최대한 격하게 휘날리며 경기장을 내려갔다.

한 템포 늦게 심판이 목청을 높였다.

“49경기장, 스, 승자! 112번 도전자, 피에 젖은 달그림자!!”

내가 선수 대기실 쪽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때늦은 환호성이 우렁차게 울렸다.

투기장의 숨은 고수, ‘피젖달’의 탄생을 축하하는 함성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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