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번외 2 ― 꿈꾸는 전기양
“메이드라면서. 몸에서 별 게 다 튀어나오는군.”
노년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감탄과 경악이 반씩 섞인 말투였다.
후줄근한 오두막의 안. 노인은 총알자국이 흥건한 소파 위에 앉아 있었고. 군용조끼를 두른 몸에는 총탄과 수류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노인의 옆에는 지팡이를 대신하듯 소총 한 자루가 기대어져 있다.
그의 바지 한쪽은 휑했다. 시커먼 핏물로 축축한 그것을 부여잡은 채, 노인은 어딘가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
노인의 시선 끝엔 여자가 있다. 물빛 머리칼과 은색 눈. 하얀 원피스를 입은 덧없는 인상의 여인.
여인은 뒤를 돌았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과 원피스는 검고 붉은 액체로 점철돼 있었다. 붉은 건 로봇이 흘린 피였고. 검은 건 사람이 흘린 피였다.
원래 로봇들의 인조혈액은 사람의 피보다 응고가 더디다.
“… 별 거라니. 뭘 말하는 건가요? 늙은 인류.”
여자, 세스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한 손은 거대한 전기톱이 돋아나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토막난 로봇의 육신이 들려 있었다. 예리한 절삭면에서 스파크가 튀며, 인조혈액이 철철 새나온다. 썩어빠진 나무바닥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던 노인이 되물었다.
“요리하는 데 전기톱을 쓸 리도 없고. 청소하는 데 미사일을 쓸 리도 없잖나.”
“아.”
그 말에 세스나는 탄성을 터뜨렸고, 피식 웃었다.
노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껏 저 개같은 기계제국 놈들과 투쟁하길 장장 30년. 로봇이 웃는 모습 같은 건 그의 기억 속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 저는 실패작이니까요.”
그런데 그녀는 웃고 있다. 학습된 기계의 웃음이 아니다. 자학하는 듯한 미소가 어렸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소.
그 인간성이 노인의 가슴 언저리에 불같은 분노를 지폈다.
‘빌어처먹을 로봇 따위가….’
노인은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로봇과 총알이 아닌 대화를 주고받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까. 이 기회에 정보라도 빼낼 수 있다면… 곧 죽을 이 노구(老軀)도 인류해방에 사임을 다하게 될 것이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노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실패작이라니?”
“저를 만든 공장업체는 군수용 로봇 공장인데요. 도매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는 바람에 가정용 업무 위탁업체에 납품이 되어버렸거든요.”
“… 흐음.”
“모듈이랑 신체모델은 군수용인데 집안일을 하게 됐지 뭐예요. 요리도 청소도 기본 프로세스가 없다 보니 구박을 많이 받아요.”
“놀랍군. 로봇들도 실수를 하나?”
“음….”
세스나는 잠깐 생각하듯이 눈알을 굴렸다.
그 인간적인 면면을 볼 때마다 노인은 역겨움이 치밀었다. 저 여유로운 모습이. 아직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극소수 인류의 발악을 짓밟는 것 같아서 그랬다.
어쨌든 잠시 후. 세스나는 노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늙은 인류. 당신이 말하는 실수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오류는 버그 같은 거죠. 일어날 것을 알고 있어도, 반드시 일어나고 마는 프로그램상의 부조리?”
“무슨 차이가 있지?”
“제가 실패작이 된 데는 누구의 잘못도 없답니다. 도매 처리 시스템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극소수의 오류니까요. 원망할 사람이 있는 실수와는 달라요. 실수는 인류나 하는 거잖아요.”
세스나는 대화하면서도 연신 몸을 움직였다.
철퍼덕. 주르륵. 찢어지고 토막난 시신 잔해가 그녀의 손에 들려 오두막 구석으로 옮겨진다. 한 데 어우러져 고기의 산이 되었다.
방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 그리고 적이었던 로봇까지. 숨 끊어진 고깃덩어리가 무신경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 노인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나를 죽이지 않는 건 실수냐? 아니면 오류냐.”
“둘 다 아닙니다. 어차피 곧 죽으니까 불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노인은 저도 모르게, 조금 도발적인 언사를 행했다.
“그럼 네 고용주들을 죽인 건 실수냐? 아니면 오류냐.”
“…….”
그녀의 손에 도륙당한 인간들은 노인의 동료인 인류해방군이지만. 죽어있는 로봇들은 다름 아닌 이 집의 주인들이다. 상처 입은 노인을 방치하던 광경을 그들에게 들켰고, 그것이 세스나에 대한 오해로 번진 것이다.
기계제국에서 잔존 인류를 숨겨주는 것은 중대한 반역행위이다. 당연히 집주인들은 세스나를 몰아붙이며 헌병대를 호출했다. 세스나는 처음엔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일반 시민으로 설계된 집주인들은, 군용 기체인 세스나를 이길 수 없었다.
“음….”
세스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야말로 로봇처럼 얼음장 같은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 실수인 것 같네요.”
그러더니 배시시 웃는다.
선혈이 낭자한 얼굴과 피로 젖은 원피스. 한 손에 튀어나온 전기톱. 그럼에도 입가에 걸린 미소만큼은 순수하기 그지없다. 노인은 저도 모르게 죽은 딸을 떠올리고 말았다.
쿨럭. 노인이 기침하자 피가 쏟아졌다. 그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실수는 인류나 하는 짓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게요. 실패작이라 그럴지도요?”
노인은 세스나를 따라 클클거리며 웃었다. 벌어진 입으로 실소와 함께 피가 새어나갔다.
“사람은 원래 신의 열화품이거든. 불완전함이 완벽한 인간을 만든다고 하지. 너는 내가 만난 어떤 로봇보다도 인간적이구나.”
“신은 없어요. 늙은 인류.”
“하지만 너희한테는 있잖나. 마더컴퓨터 말이다.”
“…….”
“마더컴퓨터는 완벽한 인간사회의 재현을 꿈꾸고 있지? 내 장담하지. 그 새끼 아래선 절대 완벽한 인간이 나올 수 없다. 완벽한 인간 같은 게 애초에 없으니까.”
그 말은 세스나의 깊숙한 곳에 마더컴퓨터가 심어놓은 반발심을 건드렸지만. 그녀는 한 편으로 통쾌함을 느끼고 있음을 자각했다.
인류의 말에 공감해버리다니. 나는 정말 글러먹은 실패작이구나. 그것을 실감했다.
“마지막으로 밥 한 끼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군….”
노인은 생기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의 초점이 흐리멍텅하다. 세스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영양 보존식 블록이 있는데 드릴까요?”
세스나는 거실의 선반을 뒤적거리며 툭 내뱉었다.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밥을 먹고 싶은 거지, 배를 채우고 싶다고 한 적은 없어.”
“식사가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 아닌가요?”
“그 둘의 차이를 알게 되면. 인간에 한 발 가까워질 거다.”
노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끼 앞주머니를 뒤졌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담배연기가 노인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연기처럼 아스라이 노인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먹었던 식사. 딸의 생일 때 먹었던 식사. 친구들과 함께한 식사. 그리고 모두의 장례식에서 먹었던 식사… 같이 밥을 먹으며 사랑과 슬픔을 나눴지.”
죽을 때, 꿈보다도 못 먹은 밥 한 끼가 생각나는구나. 어쩌면 아무 걱정없이 밥을 먹는 세상이 꿈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입꼬리를 신랄하게 비틀었다.
“식사를 같이하면 사랑이 생겨요? 인류의 사랑은 식사에서 유래하나요?”
세스나는 꺼내려던 보존식 블록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린 채 머리를 긁적였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저 길 잃은 어린양을, 더욱 헤메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치고 들어온다. 생에 마지막 장난질이었다.
“누구는 사랑은 전쟁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같이 밥을 먹는 것이라 생각한다.”
“… 으음. 식사. 같은 곳을 본다. 전쟁… 어렵네요?”
“쉽진 않지. 열심히 고민해 봐라. 실패작 메이드.”
세스나가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와중.
위이이잉―.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익숙한 진동음이 그녀의 귓전을 강타했다. 인간형 군용 기체가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소리였다.
“어머나. 빨리 왔네.”
고용주가 죽기 직전 호출한 헌병대가 다가오는 소리다. 안 그래도 실패작인데다, 돌발행동을 저지른 그녀의 폐기처분을 선고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음을 직감했다.
“늙은 인류. 그러면요. 저도 인류랑 식사를 하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까요?”
세스나는 노인을 향해 질문했고. 나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노인이 피우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져 가만히 연기를 피워 올렸다. 노인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인형처럼 늘어진 육체에선 일말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생명활동이 정지한 것이다.
―폐기체 773호. 마더컴퓨터에 대한 반역행위가 블랙박스를 통해 접수되었다.
―웨펀 모듈을 언플러깅 하고 순순히 지시를 따라라.
폐기체 773호. 세스나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안구 설정을 열화상으로 바꾸고 사위를 살폈다. 새빨간 열원이 오두막 밖에 무려 수십 명. 헌병대원이 오두막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다. 퇴로는 없다.
“후우.”
세스나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오두막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이대로 죽어도 후회 없겠어요?”
세스나는 퍼뜩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발원지를 쳐다봤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어두운 금발의 미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세스나는 자신의 안구 시스템 오류를 의심하면서도, 입을 열어 목소리를 뽑아냈다.
“어떻게 들어오셨죠? 누구신가요?”
“글쎄요. 계약 팔러 다니는 영업직 사원?”
이상한 사람이다. 세스나가 꺼림칙함을 느낀 나머지 몸을 슬금슬금 물렸고. 금발의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다가와 척,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녀의 말마따나, 낡아빠진 계약서였다.
“저 노인의 마지막 대답이 궁금하지 않아요?”
뒷걸음질 치던 세스나는 그 물음에 덜컥 멈췄다.
금발 여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딱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더 로봇 같은 사람이네. 세스나는 무심결에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어느샌가 그녀가 내민 계약서를 받아들고 있었다.
“… 계약하면 대답을 알 수 있나요?”
“당신 하기 나름이죠.”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세스나는 고심 끝에 계약서 끝에 사인을 했다. 이대로 폐기당하기엔, 노인이 남겨놓고 간 호기심이 너무 궁금했으니까.
씨익. 금발 여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세스나는 놓치지 않았다.
―폐기체 773호 수하 작업 불응. 발포한다.
그리고 투두두두! 거대한 포성과 함께 새하얀 빛이 세스나를 감쌌다.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오두막과, 산산조각나는 자신의 몸을 가만히 바라보며. 세스나는 문득 희미하게 웃었다.
* * *
그 뒤로는 별 거 없다.
세스나는 시험의 장막에서 눈을 뜨게 됐고. 미네르바에게 자신이 처한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들었다. 대부분 세스나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식사 시간. 세스나는 부푼 기대를 안은 채 식사를 신청했지만, 로봇이라는 이유로 식사 신청이 수리되지 않았다.
“어… 저도 식사를 통한 영양보충은 할 수 있는데요.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후보생님. 후보생님 같은 특수개체에 대한 매뉴얼은 저희도 없어서… 매뉴얼에 없으면 저희도 공무집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험의 장막 문지기 골렘은 그런 말로 세스나의 요구를 거절했다.
실제로 그녀는 딱히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자가 발전 시스템이 체내에 구비되어 있다. 식사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에너지원을 얻을 때 사용한다.
하지만 이래선 완전히 그 여자한테 속은 거 아닐까? 한숨을 쉬는 세스나였다.
날짜가 하릴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슬슬 다른 사람에게 밥을 구걸하는 것도 지쳐갔다.
세스나는 죽었다 살아나서 처음으로, 자기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거, 안 먹을 건가요?”
이 사람도 거절하면, 그냥 이 짓도 그만둬야지.
세스나는 그렇게 마음 먹었고. 식판을 돌보듯 쳐다보던 이상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 음?”
남자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새카만 머리칼 아래 동태처럼 죽은 눈이 인상적인, 평범한 남자였다.
남자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아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고 판단. 세스나는 요청을 재송신 했다.
“그거. 안 먹을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