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세스나가 불사교 척살조에 들어오자, 사태는 순식간에 진척되었다.
“타깃 생명체, 현재 331 개체 생존. 일제요격 하겠습니다.”
투두두두! 그녀의 짤막한 통보와 함께 양팔에 열린 미사일 사출구가 연신 불을 뿜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간 수십, 수백 개의 초소형 미사일들은 그대로 유성우처럼 케른 곳곳에 새빨간 섬광을 남기며 떨어졌다.
콰과과과!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중첩된 폭발음이 사방에서 나를 두들겨왔다.
매캐한 매연과 화약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 케른. 나는 눈앞을 가득 메운 폭발의 연기를 걷어내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뱉어놓고 아차 싶었다. 이걸로 적이 살아있을 확률 떡상.
그리고 과학은 괜히 과학이 아니었다. 그녀가 일거에 폭사시킬 수 있는 불사교도들은 어디까지나 조무래기들에 불과했다.
“으음. 나머지는 제 미사일 화력으론 데미지도 안 들어가는데요?”
세스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곤란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려, 아직 사슬에 묶인 채 숨이 붙어있는 놈들을 찾아냈다.
“…….”
“…….”
그 대상은 일부 고레벨 불사교도들. 그리고 카사스의 수장이 배치했던 괴물들. 마지막으로 마족 누님. 이 정도였다.
그러나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불사교 척살조는 애초에 세스나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뒤는 맡기게. 화끈한 아가씨.”
적랑이 득달같이 불사교의 잔당들에게 달려가 무차별적으로 도륙을 재개한 것이다.
그 세스나조차 “와 저건 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혈이 낭자하길 잠시. 결국 그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착실히 숨이 끊어져 갔다.
“이제 네놈 하나뿐이구나.”
적랑은 순식간에 모든 불사교도를 처치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마족 누님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마족 누님은 연신 이를 갈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 이렇게 무력하게… 복수도 이루지 못하고 끝나다니….”
“뭐 원래 그런 거 아니겠나. 될 성 싶다가도 안 되고, 안될 성 싶다가도 되는 게 세상만사지.”
“…….”
“마녀에 관한 건 모두 처단한다. 마녀사냥꾼 적랑의 이름에 걸고.”
사납게 웃으며 건틀릿을 까딱거리는 적랑과 이를 악무는 마족 누님. 두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 찰나.나는 뭘 하고 있었냐고?
“끄… 허억.”
드디어 사슬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도달한 나머지, 스킬을 해제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수없이 고민한 결과, 마지막의 마지막엔 스킬을 해제하고 생존을 택했다.
촤르르륵! 케른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어둠의 사슬들이 허공에 열린 문으로 다시금 빨려들어간다. 나는 껄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붙들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점점 시야가 가늘어진다. 눈이 감기고 있는 것이다.
‘아… 직….’
조금만 더 버텨라.
적어도 최후의 순간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쓰러지고 싶다. 이대로 죽더라도, 이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뇌리에 각인할 수 있도록.
그러나 그 순간. 헐거워진 사슬을 황급히 풀어낸 마족 누님과 적랑이 격돌했고. 땅을 울리는 그 가벼운 진동에 내 의식은 하릴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이, 런.’
몸이 가벼운 듯 무거운 듯 애매하다. 죽어갈 때면 언제나 느꼈지만. 언제 느껴도 꺼림칙한 시커먼 감각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반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 어.’
문득 손끝에 따듯한 무언가가 닿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내 손가락 마디 사이로 얽혀 들어온다. 뭔지 확인할 새도 없이 훅. 암전되었다.
놀랍도록 편안한 기분이었다.
* * *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
그리고 지긋지긋한 회귀점 패널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눈을 부릅뜬 채 한 10초 있었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회귀점 갱신 패널이 뜨지 않는 걸 알았다.
“… 살았다.”
안 죽었구나.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머리가 따끔, 아려온다. 지금껏 겪은 파란만장한 전생. 그리고 현생에서 겪었던 모든 상황들이 뒤늦게 대가리를 후려쳤다.
“음?”
그것 때문에 살짝 늦게 깨달은 점이 하나.
회귀할 때마다 보였던 루시 얼굴 대신, 다른 여자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차 있다.
“아. 깨셨어요?”
물색 머리와 은색 눈. 보고 있으면 편해지는 느긋한 미소와 고스로리 풍의 메이드복.
레이라가 입었던 것과는 조금 복식이 다른데, 하늘하늘한 동양풍 느낌이 섞여서 굉장히 이색적이다. 일단 그녀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건 확실하다.
그녀의 정체는 세스나. 얼굴은 초근접 거리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다.
“…….”
“…….”
나는 한동안 말할 기운조차도 없어서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입을 열 생각이 딱히 없는지 그냥 말없이 나만 지켜봤다.
결국 아쉬운 내가 가까스로 먼저 입을 열었다.
“옷 바뀌었다?”
“아 네! 제가 크로스페이드에서 신세지고 있는 여관의 근무복이에요. 어떤가요?”
어떻긴. 사장님이 센스가 최고다. 돈 벌 줄을 알아.
나는 이름 모를 여관 주인을 향해 속으로만 감사를 표했다.
“잘 어울린다.”
“앗… 아, 하흐. 고맙습니다!”
세스나는 입에 발린 칭찬에도 눈에 띄게 좋아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좋아. 이 정도면 인사치레는 됐겠지. 나는 곧장 본론으로 치고 들어갔다.
“근데 지금 뭐 하냐?”
“갑자기 쓰러지셨길래 무릎베개 해드리고 있어요.”
“… 그렇구나.”
“네. 그렇습니다!”
세스나가 방글거리는 얼굴을 힘차게 끄덕인다.
세스나의 뒤로 하늘이 보이고, 나는 쓰러져있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는 구도. 그리고 몽롱하게 느껴지는 뒤통수의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 굉장히 밀착된 그녀의 신형.
아무래도 사실인 듯하다.
“…… 쿠학!”
나는 뒤늦게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꼼짝은커녕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고통스럽게 펄떡댄다. 시선만 돌려도 머리가 끊어질 듯이 아려왔다. 어쩔 수 없이 침묵 속에서 세스나와 눈을 계속 마주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세스나는… 애초에 나와 눈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세스나.”
“네. 정용님.”
“좀 쪽팔려서 그러는데 바닥에 내려두면 안 되냐?”
“네. 안 돼요.”
생각보다 훨씬 단호한 거절이 튀어나왔다. 방글방글 웃는 채로.
이건 좀 예상 밖인데.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좀 더듬었다.
“어, 난 괜찮아. 죽을 고비는 넘긴 것 같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곧 에테르가 차서 회복 수단도 생길 거고….”
“그냥 제가 무릎베개 해드리고 싶어서 싫은 건데요?”
“…….”
그러십니까. 유감.
시종일관 상큼하게 웃으며 쌈박하게 거절해 버리니, 반박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여전히 자기주장이 강하구나. 한결 같아서 차라리 좋다.
이렇게 되면 물리적으로 도망가기는 글렀고. 나는 이 어색한 상황부터 타파하기로 했다. 대화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자.
“상황은 어떻게 됐어?”
“상황이라면, 정용님이 결박해놓으셨던 특수뇌파를 뿜는 생명체들의 처우 말인가요?”
“어. 그래 그거.”
“마지막에 유사 인류 DNA를 가진 보라색 암컷 생명체가, 하얀 머리칼의 남성분한테 단백질 블록처럼 산산조각나면서 사태는 완전히 종결됐답니다. 정용님이 결박해놓으신 생명체들은 전원 원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파괴됐어요!”
“어… 그래. 고마워. 고생했다.”
“에이. 뭘요!”
세스나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긋나긋하게 설명해준다. 문제는 말하는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그녀 특유의 딱딱한 단어 사용과 겹쳐서 좀 섬뜩하게 들린다는 거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녀의 통보를 곱씸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끝났다는 거… 맞지…?”
드디어 이걸로 사건 해결. 진짜 끝난 거냐?
나 이제 진짜 더 안 죽어도 되냐? 루시랑 키스 그만해도 되냐?
제발. 누군가 그렇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하도 숨 쉬듯이 죽어대서 그런가, 이번에는 진짜 도저히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세스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애초에 어디로 눈을 돌리든 세스나밖에 안 보이는 상황이다. 나는 이제 대놓고 그녀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 미녀랑 눈싸움하면 나는 이득이지.
“어… 음, 아이….”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오히려 그녀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나보다도 감정표현이 풍부한 저 얼굴을 보건대, 아무래도 쑥쓰러워 하는 듯하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왜 이제 와서 쑥스럽냐.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점점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물었다.
“근데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내가 여기 있는지.”
그건 실제로 세스나에게 가장 궁금한 사항이기도 했다.
찾아와준 것은 물론 기쁘다. 그것도 최고의 타이밍에, 구세주처럼 나를 구해준 그녀를 위해 종교를 하나 창설할까 생각중이다.
아니 창설할 거다. 교주는 세스나고 목사는 나다. 로봇메이드교 만만세다.
‘하지만 분명 수도에 있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크로스페이드는 도보로 최소 일주일 거리는 떨어져 있다. SNS도 우투브도 없는 마당에 케른의 풍문이 몇 시간만에 거기까지 퍼지는 건 말이 안 된다.
분명 뭔가 계기가 있어서 내 위기를 알고 찾아온 것인데. 그 계기를 모르겠다.
“당연히 알죠. 크로스페이드 전역에 전단지가 쫙 깔린 데다, 정보길드에서도 제가 일하던 여관으로 찾아올 정도였는걸요? 정용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으니 즉시 케른으로 오라고요!”
세스나의 대답은 그것이었고. 그제야 그녀가 늦지 않고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 나도 모르게 힘 빠진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설백이… 진짜 열심히 하긴 했구나.”
“설백? 수도에서 저를 찾은 분의 이름인가요?”
“뭐, 그렇지.”
새삼 설백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번 사건에서 그녀가 험한 꼴을 많이 봤다. 나랑 루시 때문에 갑자기 마왕 소환의 제물이 된 마당에. 나는 아가리 묵념하고 설명도 안 해주지. 여러모로 상황에 휘둘리기만 했다. 그리고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러 번, 처참한 꼴로 죽었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설백이야말로 나를 살아남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가슴 깊이 다짐 하나를 새겼다.
‘나중에 제대로 감사도 하고. 막 굴린 것도 사과하자.’
그래. 무신제 후의 불꽃놀이. 타이밍은 그 때가 딱이겠다.
다 같이 불꽃놀이도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말하면 분위기도 좋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응? 서로 없던 감정도 생기고. 응? 여러 방면에서 각도 날카롭게 서고 말이야….
“여자인가요?”
“어?”
설백과 손주 유치원 보내며 볼에 뽀뽀 받고 있었는데, 세스나가 망상을 부쉈다.
나는 무심결에 시선을 돌렸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분명 방금과 똑같은 웃는 얼굴인데. 이상하게 세스나에게서 한기가 느껴진다. 마력이 바닥나서 기도 허해졌나?
“여자인가요?”
세스나는 시험의 장막에서 그랬듯. 대답이 없자 똑같은 말을 똑같은 어조로 반복했다. 빨리 대답 안 하면 양팔에 돋아난 미사일 런쳐를 내 아가리에 처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난 어느 때보다도 빨리 대답했다.
“여, 여잔데. 왜.”
“아뇨. 음. 그냥… 좀 의외였네요! 솔직히 놀랐어요.”
“뭐가.”
“스칼로씨, 알드콘씨, 용머리 남성분… 주변에 이종족 연로자 남성 밖에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경계태세를 격상해야 할 것 같아서.”
“???”
“사랑은 전쟁이죠. 맞아요. 진돗개 하나 발령이에요.”
혼자 이해 못할 말들을 연신 지껄이는 세스나. 나는 한동안 이해하려 노력했다가,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무렴 설백의 심리도 못 읽어서 그 고생을 했다. 이세계 전투 메이드 로봇의 심리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
“… 아.”
어느 순간. 세스나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선을 멀리 던진 그녀.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안간힘을 쥐어짜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나 역시 멍청한 탄성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예쁘네요. 기껏 다른 세계까지 왔는데, 제대로 보는 건 3개월 만에 처음이에요.”
“그러게.”
해돋이였다.
눈이 멀 것처럼 타오르는 햇빛이 새벽을 물리고, 아침을 끌어올리고 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살아남았다….”
무수한 사람들의 도움을 빌어서 이뤄낸 결과라 그런가. 아니면 무지막지하게 죽어대서 그런가. 하수도를 탈출할 때, 엘더리치를 잡을 때보다도 이번엔 특히나 끝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그것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있으니 한 번에 실감이 된 것이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감이 교차한 나머지 눈물이 나오려 했다. 꼴에 존심은 있어서 이 악물고 참아내며 중얼거렸다.
세스나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입가의 웃음을 한층 짙게 그렸다.
“그냥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정용님과 밥을 나눠먹던 저처럼요.”라며 뒤늦게 덧붙였다. 볼에 살짝 홍조를 띄고, 만면에 미소가 걸려 있다.
나한테는 암울한 이세계 생활의 시작이었던 시험의 장막 식사. 그런데 세스나는 어지간히도 그 기억을 좋게 가지고 있나 보다. 역시 인간사 참으로 얄궂다.
“고생하셨어요. 정용님.”
뭐 아무려면 어떤가. 세스나의 말대로다.
기껏 오질나게 뒤져가며 잘 마무리해 놓고, 복 떨어지게 즙 짜긴 왜 짜냐. 대충 웃자.
이럴 때라도 안 웃으면. 안 그래도 족같은 이세계 생활, 힘들어서 살겠냐.
“흐하. 으하하하하!”
나는 오랜만에. 기분 상으론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도록 박장대소를 했다.
웃다 지쳐서 그대로 기절해버릴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