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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09화 (85/280)

109화 침대 축구 ON

이 세계의 엄청난 비밀을, 학교 친구와 게임 노가리 까듯이 들어버린 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어느새 케른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자 당장 중요해진 건 세계의 비밀 따위보단 불사교의 퇴치방안 쪽이었다. 나는 일단 그의 정체에 대한 건 뒤로 미뤄두기로 했고. 내가 처한 위기의 돌파구 쪽을 중점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으음. 한 마디로 디펜스겜 하는데 인구수가 딸린다는 소리 아니냐?

용사 지원 시스템의 개발자답게 게임스러운 비유가 나왔다.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동시에 나는 기계적으로 불사교도 척살을 시작했다. 직장 출근하면 업무를 하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죠. 아무리 제가 날고 기어봐야 구역 하나 정리하는 동안, 다른 데서는 이미 수백 명이 죽어나가니깐요. 싹 정리하고 나면 최소 1000명은 죽을 겁니다.”

입으로는 수호 형님의 말에 대답하면서 스킬 흉인 살포를 사용한다.

용사, 현지인 할 것 없이 주변에 있던 대다수의 인간들이 숨을 삼키고 몸을 경직시키며 공포에 떨었다. 날카롭게 벼려낸 내 시선은, 오히려 경직되지 않은 놈들을 훑었다.

‘쟤. 얘. 그리고 저 새끼까지.’

몸이 경직되지 않은 이들 중 낯이 익은 놈들을 추려냈다. 저놈들은 미미르의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다. 머릿속 블랙리스트에 11번이나 저장된 놈들이니까.

퍼버벅. 곧장 마력검을 쑤셔 넣었다. 놈들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는다. 피분수가 도처에서 뿜어져 나왔다.

“꺄아아악!”

“사, 살인이다!”

“미친놈이 사람을 죽인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혼비백산 뛰어다닌다.

어 그래 짖어라. 그 반응도 슬슬 지겹다 야. 나는 입매를 비틀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마력검이 사방으로 분산되며 멀찍이 날아갔다.

푸직, 우직, 우드득. 멀리 다섯 방향의 지붕 위에서 파육음이 동시에 들려온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걸로 중앙 시가지 저격수는 전멸했다.

거침없는 살육 속에서 수호 형님과 내 대화는 계속되었다.

―흐음. 여기서 일어나는 게 아스타르트 파편 소환이라고 했나?

“예. 제가 듣기론요.”

―어떤 미친 새끼들이 그런 짓을 한다냐?

“불사교랑 카사스의 사도인지 뭔지 하는 씨봉알 새끼들이요.”

―카사스의 사도? 걔네 나 때부터 있던 놈들인데 아직도 있냐? 지구고 여기고 나쁜 새끼들만 잘 처먹고 잘 산다니까. 옘병 족같은 세상.

“제 말이요.”

근데 형님은 역사책에도 대서특필된 희대의 나쁜 새끼 아니유? 그런 생각을 했지만 꾹 참았다.

이 발언을 내뱉었다간 꼰대 타임 최소 10분 각이 잡힌다. 알아도 닥치고 있어야 한다. 미안해 루시. 앞으론 진실의 방으로 너 협박하지 않을게. 나의 과오를 깊이 반성했다.

내가 닥치고 있자, 이번에도 수호 형님이 먼저 말문을 텄다.

―내가 알기로 아스타르트 파편이 현현하려면 최소 인간 500명 분의 목숨이 필요해. 물론 어디까지나 최소 수치고. 아스타르트가 만족하려면 5000명 정도는 죽여야겠지만.

“그 말은 최소 500명만 죽이면. 일단 소환할 수는 있다는 거네요.”

―뭐 그렇지. 대신 소환된 아스타르트는 완성체보단 훨씬 불완전하겠지.

이건 굉장히 유용한 정보다. 나는 새롭게 알아낸 사실을 철저하게 기억에 각인시켰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내가 87번이나 죽어서, 몸에 쌓인 흉마 때문에 수호 형님이 깨어났다면. 인생사 새옹지마란 게 이 짝인가 싶다.

오히려 잘 죽었다고 기뻐해야 될까?

‘… 도저히 그럴 생각은 안 들지만.’

푸직, 우드득! 빠각!

입으로는 대화. 머릿속은 잡생각. 그러면서도 나는 손은 쉬지 않았다.

눈을 쉴 새 없이 돌려가며 사람들의 정보를 훑고. 몬스터가 발견되는 즉시 검을 휘두른다. 피가 튀고, 바닥에 흩뿌려지고, 뜯겨나간 육편이 민가와 상점 벽에 처덕처덕 달라붙는다.

거침없는 살육의 한 가운데서, 수호 형님과 대화하는 내 심경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여기 모인 그… 불사교도? 걔네가 총 몇 명이라 그랬지?

“한 600명 정도 됩니다.”

내가 대수롭잖게 대답하며 푸확! 불사교도 한 놈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잠시 동안 수호 형님이 말이 없었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불사교도를 죽여나갔다.

내가 열 명 정도를 더 학살한 뒤에야 수호 형님이 말을 이었다.

―야. 그러면 애초에 못 이길 게임이잖아 이건.

“예? 왜요.”

―네가 불사교도만 다 죽여도 최소 조건이 성립되잖냐. 쟤네는 뭐 목숨도 아니야?

“……!!”

그제야 내 학살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움직이질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시기적절하게 쿠구구구, 하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온다. 눈이 멀 것 같은 하얀 섬광이 지평선 너머에서 치솟았다.

하얀 폭발. 아스타르트 파편 소환 의식이 시작되었다.

“어… 아니… 그, 그럴… 수가.”

스르릉! 주변의 무표정한 불사교도들이 동시에 검을 빼들었다. 지금껏 저항도 못하고 당했던 울분을 표하듯, 순식간에 내 주위로 수십 명의 불사교도가 조여들었다.

시가지에 있던 거의 모든 불사교도가 내게 들러붙었다. 정확히 불사교도만 골라 일격에 쳐죽이는 손속을 보고 특급 위험인물로 판단한 것이다.

물론 내가 그러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

나는 주변에 바글거리는 조무래기 따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수호 형님의 일침이 뇌를 끊임없이 휘젓고 있었다. 전율이 치달렸다. 번개를 맞은 양 몸을 움찔거리기를 잠시.

나는 진득한 허탈함이 담긴 목소리를 간신히 뽑아냈다.

“그, 그럼… 막을 방법이… 없는 겁니까.”

―가용인원이 너 혼자라면 그렇지? 백날 해도 소용없어. 노답이야.

그 말에 온몸의 힘이 쭈욱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11번의 도전.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76번의 더 많은 도전들. 그게 전부 허공의 삽질이었단 말인가. 닳아 없어져가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가면서 얻은 게… 예정된 실패뿐이라고?

‘상상 이상으로… 악랄하네. 개새끼들.’

나와 루시를 함정에 빠트린 카사스의 사도라는 조직은, 대체 얼마나 우리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 일단 어지간한 악감정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빠진다. 놓쳐버릴 것 같다. 눈앞이 서서히 캄캄해진다. 시커먼 감정이 울컥 치고 올라와 서서히 퍼져나간다.

―하지만 뭐. 가용인원이 한 명이 아니면 얘기가 다르지. 가능성이 있겠는데.

불사교도들이 찌른 날붙이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 순간 수호 형님의 한 마디가 들려왔고. 눈을 번쩍 뜬 나는 곧장 진화의 흑익을 변형시켰다.

파바바박! 30개의 날카로운 가시촉수가 불사교도들을 제로거리에서 훑고 지나갔다. 그들의 의아한 표정이 그대로 두동강 나며, 사방으로 선혈을 흩뿌렸다.

“도와주십쇼 형님!! 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주변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검에 대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내 절박한 그 표정이 퍽이나 볼만했는지, 수호 형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핫. 그래. 일단… 지금부터 절대, 아무도 죽게 놔두지 마. 불사교도 마찬가지야. 너도 이제 한 명도 죽이지 마.

이해하기 힘든 주문이었다. 자연히 나는 눈썹을 슬쩍 비틀어 올렸다.

“…… 예? 불사교 놈들도요?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는데요?”

―토 달지 마라. 이대로 평생 동안 실패하고 싶냐?

“분부대로 하죠!”

나는 발이라도 핥을 기세로 대답했고. 다시 망토를 변형시켜 날개를 뻗었다.

투학! 지면을 박차자 신형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천천히 활강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던 불사교도들이 망연히 위를 쳐다본다.

피피핑! 활 따위의 원거리 무기를 가진 놈들이 저격을 시도했다. 나는 혀를 차며 저격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케른의 모습이 점점 미니어처처럼 작아졌다.

―일단 확인차 묻겠는데.

불사교도들이 개미새끼들처럼 보일만큼 고도를 상승했을 무렵, 문득 수호 형님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붉은 문자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베스타크에 시선을 뒀다.

―늦게라도 이 도시에 나타나서 너를 도와줄만한 사람. 혹시 짐작가는 사람 있냐?

“늦게라도…?”

나는 형님의 질문이 이해가 안 돼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뇌리를 스치는 얼굴 하나 때문에 탄성을 흘렸다.

있다. 있었다.

늦게라도 나타날 사람. 정확히 말하면 늦게 나타났던 걸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예. 있어요.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한… 저보다 강한 사람이요!”

―그래. 그러면 확실하네. 그 사람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

“네…?!”

나는 경악한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

뭐지 이건. 희망고문인가? 도저히 믿지 못한 나머지 의심에 찬 눈을 베스타크에 향했다. 그러자 수호 형님은 첨언했다.

―내가 이 꼬라지가 된 뒤로 생체마력에 엄청 예민해졌거든? 인간 스카우터란 급이란 말이야.

“예. 그런데요?”

―너보다 강한 생체마력이 여기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어. 내 왼쪽 불알 건다. 찍고.

“진짜군요! 믿습니다 형님!”

자고로 남자가 자기 그거 걸고 진실을 주장하면 그건 진짜인 거다. 적어도 나는 그런 주의니 믿기로 했다. 검에 불알이 있나? 하는 생각은 좀 나중에서야 들었다.

나는 신뢰를 담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수호 형님은 믿음직한 목청을 한껏 높였다.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은 다른 게 아니다. 우선….

“우, 우선?”

―너 혹시 속박 계열 기술 쓸 수 있는 거 있냐?

갑작스레 튀어나온 질문.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긴 한데요.”

―한 번에 몇 명이나 동시 속박할 수 있냐.

“한 번에는… 스무 명이요.”

그림자 사슬의 얘기였다. 그림자 사슬도 20레벨을 찍고 나니 한 번에 속박할 수 있는 개체가 20개체까지 늘어났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왜 진작 이 스킬을 안 찍었나 땅 치고 후회했었지.

내 말에 연신 비음을 흘리던 수호 형님이 계속 물어왔다.

―이게 가장 중요한 점인데. 여러 번 중복 사용은 가능하냐?

“가능은 한데… 그만큼 유지하는데 마력 소모가 막심하겠죠?”

―가능만 하면 됐어. 이제 내려가.

나는 일련의 대화 흐름이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비빌 구석이 이 형님 밖에 없었기에 빠르게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장난감 같던 케른이 점점 윤곽이 잡히고, 이내 불사교도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시야에 포착될 때쯤.

―저 새끼들 보이는 대로 전부 속박해놔! 있는 대로 전부!

“어, 아 예!”

수호 형님의 명령이 급작스레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콰앙! 추락하듯 지면에 착지한 뒤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의 불사교도들을 쳐다보며 곧장 스킬을 영창했다.

“그림자 사슬!”

촤르르륵! 내 뒤로 시커먼 문이 열리며 어둠이 꿈틀거린다. 쏜살같이 치달린 어둠이 무표정한 불사교도 20명을 단단히 옥죄더니, 번들거리는 쇠사슬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수호 형님이 외쳤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죽지도 죽이지도 않고 최대한 버티자고! 존버는 항상 승리한다!

아아. 나는 그제야 수호 형님이 시킨 짓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직전보다도 빠릿하게 그림자 사슬을 재차 시전했다. 도처에서 시커먼 문이 열리며 불사교도들을 옥죄는 어둠을 끊임없이 생성해냈다.

―침대 축구 작전이다! 이해하지?

“수신양호!”

촤자자작!

나는 시가지를 종횡무진하며 닥치는대로 그림자 사슬을 사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가지 전체가, 시커먼 사슬의 거미줄로 덕지덕지 점철된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숨어서 떨고 있던 시민과 용사들이 머리를 빼꼼 내밀어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얼빠진 탄성과 수근거림이 흘러나온다.

“사, 사, 살인이… 멈췄다.”

“저 검은 머리… 하, 한 패가 아니었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생살을 써는 소리도, 비명 소리도 멈췄다. 시가지에는 잠깐 동안 죽은 듯한 적막이 감돌았다.

시가지에 있던 모든 불사교도가 사슬에 휘감겨 살육이 멈춘 것이다. 거기엔 이제 어리둥절하게 상황을 살피는 일반인들만이 있다.

나는 그 상황을 눈에 담고는, 후우. 마무리의 한숨을 쉬었다.

“… 일단 시가지 클리어!”

이마를 스윽 훔쳐보니 땀이 많이 맺혀 있었다.

그림자 사슬로 흡수하는 생명력이 넘치도록 차오르는 한 편. 마력은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 양이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위험하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마력이 위험 수위까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에테르 하나를 급하게 들이켰다. 새파란 청량감이 몸을 감싸며 마력이 다시금 몸 곳곳을 채워 들어갔다.

수호 형님도 내 상태를 감지했는지, 곧장 목청을 높였다.

―시간이 없어! 바로 다음 구역으로 가자!

“정용정용!”

나는 수호 형님의 말에 포X몬 마냥 대답하며, 탄환처럼 거주지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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