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그녀만은 기억한다
뭐 그래서.
설백에게 가오를 있는 대로 잡고 거주지구에 진입한 결과를 말해주자면.
조무래기 불사교도를 한 20명 잡고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설백을 돌려보낸지 약 15분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 나, 옘병할.”
사실 뭐 당연한 일이다.
한쪽 팔이 날아간 건 치명적이다. 왼팔이었으면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또 오른팔이다. 자주 쓰지 않는 손으로는 검격에 공방을 맞추기도 힘들었고. 몸의 균형조차 제대로 안 맞았다.
자연스럽게 빈틈이 많아졌고. 허용하는 공격이 많아졌고. 내 살을 파고드는 날붙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쿨럭!”
15분쯤 지나니 숨 쉬듯이 기침다발과 함께 핏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연필꽂이마냥 검이 수북이 박힌 내 몸통. 시선을 어디에 돌려도 불사교도가 찌른 검과 비수들로 가득하다.
그 상태를 눈에 담자, 죽는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엄습하는 한편. 더없이 냉정한 머리로는 내가 당장 할 일을 계산했다.
‘흑익!’
파사삭! 망토가 갈라지며 까마귀 날개가 되었고, 나는 곧장 하늘로 솟구쳤다.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까지 케른의 어느 곳에서도 하늘을 나는 적군은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공간계 마법이 극히 희귀한 점도 그렇고, 이 세상에선 기본적으로 이동수단이 굉장히 제한적인데. 이건 적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흑익은 굉장히 유용한 도피수단이자 이동수단이기도 했다.
“시작… 지, 점으로….”
나는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자신에게 암시를 걸듯 중얼거렸다. 실제로 제대로 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반쯤은 몽롱한 감각에 의지해 날아갔다.
그리고 얼마나 날았을까. 퍼걱, 하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몸뚱이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크욱.”
콰당탕! 날던 속도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서, 한참 구른 뒤에야 제동이 걸렸다. 고통이 한계치를 넘었는지 둔중하게 뭉개진 압박감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나는 이젠 거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가만히 몸을 살폈다.
“…….”
배에 큼직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등에서 시작한 구멍이 배쪽으로 올수록 넓어지는 걸로 보아, 탄환 같은 게 꿰뚫은 듯했다. 나는 격추당한 것이다.
뚫린 구멍으로 피와 파열된 장기들이 찔끔찔끔 새나오고 있다.
‘아, 하.’
하긴. 꼭 날아야만 공중을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머리가 멍해서 그런가. 당연한 사실인데도 그걸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 아픔이 점점 가신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반복된다.
마지막엔, 언제나 그랬듯이.
시커먼 어둠이 찾아왔다.
* * *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에 의해 회귀 고정축 강제 개변이 시행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13일, 02시 44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약속의 평원 상부지역, 소도시 케른 서부 관문]
얼떨떨하게 패널을 내려보는 내 앞에서, 루시가 천천히 맞닿았던 입술을 떼어냈다.
기분 탓인가. 핏기 없는 루시의 하얀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는 듯했다.
“… 으음. 뭔가 이것도 이제 적응되는구나.”
자기 입술을 매만지면서 그런 말을 내뱉는 루시. 갑자기 첫키스를 빼앗긴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당황스러운 리액션이다.
나는 그녀의 볼을 꼬집어주기 위해 한 발짝 내디뎠고. 푸지직, 하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려왔기에 시선을 퍼뜩 아래로 내렸다.
거기엔 곤죽이 된 내 시체가 있었다.
내가 내딛은 오른발은 뻥 뚫린 시체의 뱃가죽에 정확히 골인해 있었다.
“호에에엥!!!”
나는 17세 군필여고생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파바박 물러났다.
미친 듯이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길 잠시. 내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루시가 턱을 쓰다듬는다. 이내 대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시작지점을 이렇게 정확히 맞춰 죽다니 재주도 좋구나? 어케 죽었누 용사놈아.”
“내, 낸들 아냐! 아, 아니… 그, 그것보다 역시 이건….”
나는 긴장을 잔뜩 머금은 채 시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루시를 쳐다봤다.
‘그거냐?’라고 묻는 눈빛을 보냈다. 루시는 곧장 ‘그거다’라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놀라는 것도 슬슬 식상하지 않느냐? 적당히 하고 빨리 받아들여라. 보는 사람 지겨워한다.”
“너, 너야 지겨울지 모르지만 나는 날마다 새롭다고 인마.”
나는 루시에게 툴툴거리며 허리춤을 뒤졌다. 불길한 빛을 머금은 랜턴을 꺼내고, 그대로 시신에 갖다댔다.
답지 않게 평온한 표정으로 죽어있는 전생의 내 모습이… 잿더미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간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힘을 43, 민첩을 88, 지능을 0 포인트 수복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스킬이 없어, 실전스킬을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크윽…!”
그리고 짧은 신음과 함께, 전생의 기억들이 모두 내게 돌아왔다.
나는 잠깐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
그러다 습관처럼 가장 먼저 상태창부터 열었다.
작전이 작전이다 보니, 이건 기억을 되찾은 뒤로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었다.
[명칭: 박정용]
[별칭: 163417413번째 정식 용사. 마왕의 알 수호자. 불사에 종속된 자]
[LV. 213]
[체력: 1800/1800 마력: 1000/1000 신체상태: 약한 혼란]
[힘: 257 민첩: 430 지능: 51 히어로 센스: 19]
드디어 계승된 경험치만으로도 레벨이 200을 넘는 쾌거를 달성했다. 레벨의 상승폭이 커서 그런지 이자나미의 심장으로 수복된 능력치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 전생에 마지막으로 본 레벨이… 258이었던가?’
아마 어느 순간부터는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가 급격하게 더뎌질 것이다.
불사교도들이 주는 경험치는 물론이고 불사교도의 수도 한정돼 있다. 하지만 내 레벨은 점점 올라가는 만큼 상한선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쭉쭉 오르는 걸 보니 상한선이 오는 건 한참 먼 얘기긴 하지만.
‘… 가자.’
잠깐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치고 들어오는 한편. 수없이 죽은 전생의 나들은,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불사교도를 하나라도 때려잡아야 한다며 다그쳤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비척거리며 전진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우뚝 멈췄다. 멍하니 루시를 쳐다보다가… 퍼뜩 입을 열었다.
“야. 루시.”
“엉? 왜 갑자기 부르느냐.”
그러게. 왜 불렀을까. 불러놓고도 내가 당황했다.
동그랗게 뜬 눈을 끔벅이는 루시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는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필터없이 내뱉었다.
“내가 굉장한 사실 하나 얘기해줄까?”
뭐라 할까. 지금 나는 역대급으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 것이다. 술주정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딱히 멈추진 않았다. 이런 짓이라도 안 했다간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
“굉장한…? 뭐, 뭐냐.”
내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진지해서 그랬을까. 루시도 거기에 편승해 긴장된 얼굴로 눈을 번쩍였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굉장한 사실을 내뱉었다.
“나 사실 불사신이라 죽어도 살아난다.”
“…… 엥?”
“진짜야. 안 믿기냐? 사실 나도 안 믿기는데 진짜 죽으면 살아나더라. 존나 개쩔지 않냐?”
“이놈이 그새 여기까지 미쳤나….”
루시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허, 하고 한숨을 흘렸고. 이내 내게 득달같이 달려와서 종아리를 마구 걷어차기 시작했다.
“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내가 그걸 모를 거 같으냐? 나도 안 죽는다 이놈아! 대단하냐?”
나는 그 대답에 곧장 농담으로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서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고 말았다.
“… 너두? 대단한데! 너 이 쌔끼, 대단한 마왕이었구나!”
“아니, 이, 이놈 왜 이래 이거!? 개무서워!”
루시는 갑자기 실실 쪼개기 시작한 나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슬며시 내 품으로 가져와 그대로 껴안아버렸다.
“… 엑?”
루시가 상황이 이해가 안 된건지 얼떨떨한 탄성을 흘렸다.
시체를 부둥켜안고 있는 듯한 서늘함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숨을 히익, 하고 잔뜩 들이켰다.
루시는 잔뜩 당황하며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다.
“으엑? 왜, 왜 이러냐 진짜! 용사, 미쳤냐? 미쳤어? 배, 배때지 칼침 쑤셔주랴?”
“어. 미쳤다. 미치는 중이지.”
“아, 아니… 아으… 아오 진짜….”
루시는 이내 팔을 푸는 걸 포기했는지, 저항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뭐라 혼자 중얼거리는데 뭐라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부둥켜안은 팔에 슬쩍 힘을 주면 루시의 몸이 움찔거린다.
은근 재밌네 이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말했다.
“기다려 봐. SAN수치 회복하는 중이다.”
“산 수치…? 그, 그게 뭐냐.”
“있어 그런 게.”
“아까부터 불사신이라는둥 당연한 소리를 지껄이질 않나… 이번 생의 네놈은 뭔가 진짜 이상하다 용사. 아냐?”
“알지.”
당연한 일.
루시에겐 내가 불사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말을 듣자 지금까지 죽일 듯이 목을 조르던 답답함이 사라졌다.
루시만은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만이 진심으로 내가 불사신이라는 걸 신뢰할 수 있다.
그녀만은… 나조차 잊어버린 나의 모든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알았으니 됐다.
“이제 됐다. 한 100트라이까진 거뜬하겠네.”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루시를 속박했던 팔을 풀었다. 루시는 팔이 풀리자마자 파바박 뒤로 물러나 매무새를 정돈했다.
자세히 보니 조금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내가 미친놈이 되면… 알지?”
나는 케른 시가지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고.
흠칫거리며 내 눈치를 보던 루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당한 자세로 돌아와 이죽거렸다.
“알지! 사지를 갈갈이 분해해서 정신차리게 해주마!”
“… 오우야.”
나는 킬킬거리는 루시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케른으로 향했다.
퍼엉! 흑익을 사용한 내 신형이 하늘로 치솟았다. 밤하늘을 가르는 기분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 *
그렇게 나는 다시금 불사교도 사냥에 나섰고. 무난하게 중앙 시가지를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이번에도 설백의 앞에서 침묵을 지켜 그녀를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경사스럽게도 거주지구를 모두 정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상업지구에 들어간지 얼마 안 돼서 나는 곧장 죽어버렸다.
“… 컥.”
타아앙―!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거 같은데. 저격이라도 당한 거겠지.
흑익의 방어도도 진작에 다 떨어졌다. 마법 총탄에 뇌가 박살나면 죽어야지 뭐 어쩌겠는가.
한마 유X로처럼 뇌를 이동시켜서 피할 것도 아니고. 지미럴.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
….
… 아, 그래.
다음 생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벌어진다.
상업지구의 잔류사념을 회복하지 못한 채, 거주지구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방심을 했던 걸까? 아니. 애초에 이미 레벨이 오를 대로 오르고, 전투 경험도 5번이나 반복한 경력 있는 신입이었는데.
대체 나는, 뭘 잘못했던 걸까.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 의문들이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나는 잔류사념을 회복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5번의 전생에 걸친 나의 분투는 싸그리 ‘없던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을 가지고 갑론을박해서 뭘 하겠는가.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래서 한참 후의 나…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미네르바가 내게 무엇을 경고했는지. 설백이 나와 어떤 표정으로 대화를 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전부 없었던 일이니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처음 도전하는 기분으로 미친 듯이 꼴아박는다.
내가 원하는 엔딩이 나올 때까지. 계속.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레벨이 200대였다가, 300대까지 갔다가. 400대 초반까지 갔다가. 몇 번인가 아무것도 못하고 내리 죽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추락한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어떤 때는 거주지구까지 클리어 했다가 상업지구에서 전부 잃고. 상업지구까지 클리어했는데 다음 생에서 중앙시가지를 삐끗하는 바람에 다 잃고.
그런가 하면 중앙시가지도 전부 클리어 못한 채로 다 잃기도 하고.
설백을 돌려보냈음에도… 약속의 평원에 침투한 일부 불사교도들에 의해 아스타르트의 파편이 소환되어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러면 또 짜잔. 아무 일도 없었던 내가 새로 탄생한다.
타라의 사건도, 설백과의 설전도, 미네르바의 조언도 듣지 못한 박정용 mk2, 3, 4, 5가 그곳에 계속 등장한다.
“아으… 이번이 몇 번째냐 이놈아.”
마왕은 키스가 신물이 나는지 회귀를 하고 나면 똥씹은 표정으로 바닥에 침을 뱉는다.
내가 설백에게 그랬듯이, 마왕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했다. 그리고 나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내 죽음에 대해 답답해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루시는 모두 기억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죽든 몇 번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든. 그녀만큼은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모두 기억해주고 있다.
그러면 됐다. 너만 모두 기억해준다면.
없던 일이 되어 버린 내 도전들도 무의미하지 않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