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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04화 (80/280)

104화

중앙 시가지 전투는 생각보다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사실 그럴 법도 했다. 나도 나름 학습을 한다. 기억만 그대로 이어지면 놈들의 습성을 점점 파악하게 되는 법이다.

누구를 먼저 죽여야 하는지.

어디를 타격해야 효율적인지.

어디를 무너뜨려야 공세가 줄어드는지. 뭐 이런 것들을 알게 된다.

“허억… 커헉.”

우선적으로 시가지 구역 곳곳에 포진된 저격수의 위치를 알아내고. 암살한다.

다음은 카사스의 수장놈이 곳곳에 심어놓은 끔찍한 괴물들을 파악해 일순위로 척살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스폰 위치(?)가 불분명한 패잔병 마족 누님의 순이다.

“아. 으으윽…!”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면. 의식 시작 전에 불사교도의 수를 최대한 줄여 놓는 게 생각보다 엄청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번 시도에서 가장 곤란했던 건 다른 게 아니고, 한꺼번에 덤벼오는 조무래기들이 너무 많아서 방어가 벅찼다는 점이었으니까.

다음부턴 무조건 내 쪽에서 개전해야겠다. 나는 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끄… 흐윽.”

그나저나 아까부터 낑낑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나는 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줬다.

푸지직. 고기 써는 소리와 함께 베스타크가 더욱 깊게 그녀의 배를 뚫고 들어간다.

“… 어떻게… 그 사이… 이렇게 강해진 거냐.”

내 앞에 서있는 마족 누님은 대량의 핏줄기를 머금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죽어가는 누님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내 가슴팍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나 역시 누님처럼 고통을 억누른 목소리가 새어나갔다.

“강해지긴. 누님 따위랑 러브샷을 해서야 한참 멀었지.”

내 검은 마족 누님의 배를 꿰뚫고 있었고. 반대로 그녀는 내 가슴에 검을 찔러넣은 상태다.

솔직히 피하자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싸움이 길어질 게 뻔하다. 그럴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당장 확인해야 하는 게 있다.

“하악… 여신이여… 대체….”

마족 누님은 말을 맺지 못했다. 잘게 떨리던 육체가 추욱 늘어졌다. 동시에 레벨업 패널이 올라왔다. 그녀의 질긴 생명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나는 검을 뽑아내고,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의 시신에 잠시 시선을 뒀다.

“쿨럭! 커헉… 크흠.”

폐에 구멍이 뚫렸는지 숨 쉬기가 괴롭다. 깔끔하게 팔이 도려내진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린다. 이건 참고로 누님과 싸우기도 전에 조무래기들한테 다굴 당해서 잘린 거다.

나는 시체가 산처럼 쌓인 광장의 모습을 한 번씩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뭐… 대충 다 외웠다.”

중앙 시가지에는 저격수가 총 5명이 있고. 괴물은 8마리가 있고. 이레귤러인 마족 누님이 하나 있다. 그리고 불사교도는 강약을 막론하고 약 150명 정도가 있다.

‘거주지구와 상업지구에도 이 정도 있고… 뒷골목에 숨어든 놈들까지 생각하면….’

최대 500명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제논 새끼 이거. 더 많잖아. 나는 속으로 씨부렁거리며 하나 남은 에테르를 곧장 들이켰다.

이번 생에는 무려 물의 에테르를 하나 남긴 채 시가지 정리를 마쳤다. 이 결과가 내 발전을 보여주는 가장 큰 반증이다.

“후우.”

새파란 빛무리가 내 몸을 휩쓸고 나가길 잠시. 나는 한결 편해진 몸을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리고 휑하게 비어버린 오른팔의 자리를 잠시 주시했다.

‘역시. 에테르도 잘린 팔은 어떻게 못하는군.’

하긴 도마뱀 꼬리마냥 잘린 팔이 돋아나면 그건 그것대로 징그럽겠다.

나는 순식간에 아물어버린 어깨의 절단면을 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곧장 걸음을 재촉했다.

방향은 당연히 거주지구 쪽이었다.

“…….”

마왕은 설백을 설득했을까. 설백은 내 말을 들어줬을까.

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지만 최대한 안 하도록 노력했다. 주변이 워낙 적막해서 자꾸 잡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플 때는 고통 때문에 잡념이 금방 꺼졌는데, 팔팔하니 이게 문제군.

“… 에효.”

그리고 나는 거주지구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흘렸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여관 ‘약속의 쉼터’를 가만히 쳐다봤다.

불안한 얼굴의 설백이 어김없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저, 정용님… 팔이…!!”

설백은 내 꼬라지를 보자마자, 모 해적만화 주인공의 유년시절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뒤의 프레이즈는 전생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우고 있는데… 저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라고요?!”

설백은 전생처럼 나를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같이 싸우게 해달라고.

“에효오.”

나는 두 번째 한숨을 흘렸다.

설백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완강했다. 무슨 말을 해도 설백은 나를 쫓아올 심산인 듯했다.

지금껏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운 적은 없었다. 어지간히도 걱정이 되나 보다.

―배… 고, 파.

문득 뇌리를 후려치는 목소리가 내 몸을 굳게 만들었다.

설백의 얼굴 위로 그 소름끼치는 괴물의 면상이 겹친다. 나는 잠깐 구역질을 막는데 사력을 다했다.

아스타르트의 파편. 그놈을 이번에도 봤다간 끝이다.

나는 마음이 꺾인다. 확신이 들었다.

‘절대로… 안 돼.’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앞으로 미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실대로 말하자. 그리고 그녀의 안전을 지키자.

괜찮다. 가능성은 있다. 그녀는 내가 불사라는 사실도 믿어줬다. 그러니까 분명 이번에도 잘만 얘기하면….

“설백. 들어봐.”

“듣고 있어요.”

“너. 내 말이라면 무지개로 줄넘기한대도 믿는댔지?”

“네. 무슨 말이든 믿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혼자 가지 말아요 정용님.”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설백.

나는 한숨을 슬쩍 흘린 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다. 사실 이미 14만가지 미래를 보고 왔는데….”

거기까지. 어거지로 농담까지 섞어 말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설백의 눈을 빤히 주시했다.

“…….”

“정용님?”

갑자기 말이 끊기자 설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끝내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게 체념의 한숨을 흘릴 뿐이다.

“맞네. 이제 보니… 네 말대로다 똥털.”

“… 네? 무슨 말이죠 그건?”

“아니. 아무것도.”

나는 그제야 미네르바가 전에 했던 말의 진의를 깨달았다.

‘그래. 믿는 게 이상한 거지.’

미네르바는 시공회귀에 대한 내 말을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라 했다. 나는 그래도 설백은 믿어줬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내 말을 무조건 믿어줬다고.

그리고. 그녀는 슬픈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지.

―그 여자의 믿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뢰가 아니에요.

당시엔 무시받는 느낌이라 발끈했지만 이젠 알겠다.

죽음을 무릅쓴 각오가 깃든 설백의 시선을 보고.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아무리 사실대로 말한들… 얘는 돌아가지 않는다. 절대로.’

오히려 내가 설백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정도로 참된 인성을 탑재한 용사새끼가 아니지만. 어쨌든 설백의 입장에선 우습게도 그게 제일 합리적인 발상이다.

그러니 입으로는 믿는다 말하면서도, 설백은 끝까지 나를 쫓아오려 할 것이다.

왜냐고?

‘불사신이란 말도 사실은 믿지 못하니까.’

나는 내 이기심을 증명하고 싶다.

죽지 않는 몸이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다. 보험이 있으니 이 지랄을 하는 거다.

너 같은 평범한 힐딱 용사 나부랭이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떵떵거리고 싶다.

X발, 노답인생 박정용의 유일한 자랑거인데. 당연히 존나 자랑 마렵지.

‘그런데 증거가. 아무것도 없어.’

그게 문제다. 내 쪽에선 설백에게 보여줄 수 있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 자신조차도 기억을 수복하기 전까진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를 못하는데.

‘시공회귀는… 기억이 지워지는 게 아니다.’

죽으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거다. 그게 치명적이다.

세상에게도, 설백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모두 없었던 일들이 된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나조차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마치 남의 일처럼 깨닫는다.

‘내 모든 죽음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된 것처럼.’

그런 상황인데. 없었던 일을 무슨 방법으로 있었다고 증명할 것인가.

망자의 함으로? 고작 손바닥만한 함에 넣을 수 있는 물건 중에, 내가 불사라는 사실을 확실히 밝혀줄 물건이 과연 있을까?

애초에 시공회귀를 하고 망자의 함을 열어보면. 나 자신도 마술사가 아니라 관객이 돼버린다. 나도 맨날 전생의 내가 벌여놓은 트.릭.쇼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그런 맹목적인 믿음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아요. 상처면 모를까.

미네르바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연신 울렸다.

나는 통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X발. 짜증날 정도로 네 말대로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을 누구도 진심으로 믿어주지 못하고. 증명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오지게 답답하다. 답답하다 못해 고통이다. 지금 절절히 실감했다.

불사신 인생 처음으로, 마음에 살짝 기스가 난 기분이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어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뱉은 말치곤 싱겁기 그지없었다.

설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서글픈 미소를 띄웠다.

“… 역시, 말씀해주지 않으시네요.”

“말해도 못 믿을 게 뻔한 거라서.”

“저는 정용님을 무조건 믿는다니까요? 정용님은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진짜로 믿는 게 아니잖아. 믿는다고 너한테 우기는 거지.”

“…….”

설백은 내 말에 충격 받았는지, 잠깐 시선을 내리깐 채 침묵에 잠겼다. 뭔가 말을 하려다 중간에 막히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길 반복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우기지 않으면 못 믿을 말이야. 그래서 안 해. 억지로 믿어지는 건… 이제 내쪽에서 사양하고 싶다.”

나는 최대한 사실대로 말했다.

아무것도 못 믿으면서도 믿어주고 따라주고. 지금껏 나한테 휘둘렸던 설백에게 보내는 예의였다.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눈가엔 물기가 차 있었다.

“그렇다면… 네. 묻지 않겠습니다. 궁금해 하지도 않겠어요.”

“그래. 고맙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전했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걸 지켜봤다.

‘이제… 또 그걸 봐야하는 건가?’

아스타르트의 파편. 피에 젖은 섬뜩한 얼굴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선명해진다. 자연스레 심장이 벌컹거렸다.

결국 설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 일은 결국 다시 일어날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죽음의 공포, 그 이상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돌아갈게요.”

설백은 그런 말과 함께 등을 돌렸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시가지 쪽으로 걸어갔다.

내 말대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 어? 엥?”

나는 할말을 찾지 못해 입만 뻐끔거렸고. 설백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내쪽을 슬쩍 돌아봤다.

“…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약속의 평원에서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정용님이… 무사히 돌아오실 때까지요.”

설백의 숙인 얼굴 아래로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 떨어진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사실 나도 구태여 보고 싶지 않다. 지금 설백의 얼굴을 봤다간 기억을 수복할 때마다 두통만 추가될 것 같다. 안 보는 게 득이다.

그래서 나는 피묻은 칼을 털어내고. 설백을 등진 채 거주지구 안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 혹시나 불사교가 그쪽으로 덤벼오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죽여버려. 최대한 이기적으로 살아남아. 네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

설백은 입을 꾹 다문채 대답을 아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처음 내려올 때, 나도 미네르바에게 비슷한 조언을 받았지. 나는 깔끔하게 무시해서 이미 수십 번 가까이 걸레짝처럼 굴러다녔고.

‘네가 나 같은 호구는 아니길 빈다.’

속으로 조용히 설백의 안녕을 기원한 나는, 거주지구 안쪽으로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불꽃놀이… 보기로 했으니까. 꼭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제발요.”

설백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

“나 불사신이라니까.”

이 자리에서 내가 내뱉은 말 중 진실도가 가장 높은 말이었다.

나는 그녀를 슬쩍 돌아보며 따봉을 치켜들었다. 설백은 슬픈 미소로 화답했다.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더니.’

오늘은 인생 명언들을 되새김질하는 날인가.

돌아가라고 간곡히 빌어도 안 가던 그녀는, 왜 내가 입을 다물자 별안간 돌아가고 싶어졌을까.

모르겠다.

말 그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으음. 여자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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